람세스는 이집트 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프랑스의 크리티앙 자크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집필한 책으로 지원전 1279년부터 1212년까지 67년간 재위하며 고대 이집트왕국의 영토확장을 이루어 냈고 남쪽 아부심벨에서 북쪽 타니스에 이르는 이집트 전역이 그의 유적지로 불리울 정도로 자신의 통치기간 중 고대 이집트 문명의 절반을 이룩한 람세스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람세스는 제1권 ‘빛의 아들’ 제2권 ‘영원의 신전’ 제3권 ‘카데슈전투’ 제4권 ‘아부심벨의 여인’ 제5권 ‘제왕의 길’ 등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제4권 ‘아부심벨의 여인’편이 특히 고대 이집트에 있어서 사법권의 독립과 재판제도를 실증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모세는 람세스2세의 막역한 친구로서 장래를 보장받은 고위관리였지만 왕의 매형 사리를 살해하고 이집트를 탈출했다가 나중에 자수한다.
이집트의 왕이자 최고의 신관인 파라오 람세스2세는 그의 악락한 매형을 죽인 모세를 구해주기 위해 그의 친구이자 모세의 친구인 비서 아메니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재판을 언제 열리지?/ 그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우리가 확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겠지?/ 피해자가 비열한 인간이라는 것을 말하겠네, 정당방위에는 유죄선고를 내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에 아메니는 재판은 2주 후이고, 왕은 어떤 방식으로도 재판에 개입할 수 없다. 왕은 지상에서 정의의 신 마아트의 존재와 정의의 공평함을 보장하는 자이기 때문에 사법절차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답변하였다.
첫 번째 대화에서 재판이 2주 후에 열린다는 것은 당시에 이미 피고인에게 상당한 기간의 변론준비 기회가 주어져 있음을 뜻한다. 두 번째 대화에서 증거가 확보되어 있다는 것은 고대 이집트의 형사재판에서 증거주의가 채택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람세스 전편에서 증거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람세스 2세의 경호대장 세라마나가 파라오 정적들의 배신행위를 일련의 사실과 심증을 통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장면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세 번째 대화에서는 정당방위 즉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람세스 2세의 시대가 엄격한 신분사회였고 더욱이 모세가 살해한 자의 신분이 파라오의 매형이었다는 점에 비추어 획기적인 일이다.
네 번째 대화에 나타난 사법절차 불개입의 원칙 즉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우고 이집트의 모든 재산과 생명의 주인인 파라오조차도 정의의 여신 마아트의 정의를 실현하고 법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재판과정에는 개입할 수 없다는 법적 사고 방식은 고대 이집트가 내부적으로 3000년동안 30개왕조가 바뀌었지만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방위할 수 있었던 국민적 힘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영국의 낭만파시인 바이런이 자기의 신체적 결함-소아마비에도 불구하고 그가 동경하고 사랑한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여하여 전사한 것처럼, 크리스티앙 자크로 하여금 이집트 실증소설연구에 빠져들게 만든 이념적 계기가 되었다고 보지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