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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오전 수업이 끝난 달님이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즈음. 건물 앞에서 서성이며 이러지리 왔다 갔다 하는 준성을 발견한다. 혹시라도 별님이 준성을 보고 추스르던 마음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준성에게 다가가는 달님.
"오랜만?!"
"아... 네, 잘 지냈어요?"
"나야 뭐. 그러는 그쪽은 잘 지냈나?"
"........."
"우리 잠깐 얘기 좀 하지?!"
인근 식당으로 준성을 데리고 가는 달님. 어색한 듯 쭈뼛거리면서 뒤 따르고 있는 우준성. 내심 안으로 들여보낸 HeeRa가 무슨 짓을 할지 불안한 듯 초조해 보인다.
"안 잡아먹으니까. 우선 먹어."
"네……."
"근데 참... 시종일관 예의는 바르네?! 우리 갑이라니까?!"
"압니다."
"근데 왜 계속 극존칭을 쓰시냐고오. 괜히 내가 버르장머리 상실한 놈 같잖아. 늙어 보이기도 하고."
"원래 쉽게 말 놓는 편이 아니라 그래요."
"참나, 그럼 난 뭐 쉽게 말 놓는 편이란 얘긴가?"
"뭐... 저보단."
준성의 대답에 괜히 피식 웃음이 나오는 달님.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누나처럼 준성도 피해자일지 모른단 생각이 들어 측은해 보이기까지. 불편한 듯 눈치를 보면서 꾸역꾸역 입으로 음식을 넣고 있는 준성이 안쓰러운 듯 농담 삼아 말을 던지는 달님.
"왜? 뭐에 쫓기기라도 하나? 아니면 뭐 내가 나가있어 줄까? 그렇게 먹다가 체하겠네."
"아, 아닙니다. 아!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전별님 아직 내 얘기하면 많이 힘들 테니까, 오늘 나 봤다는 거 비밀로 해줘요."
"왜?"
"부탁합니다. 말하지 마요. 난 오늘 절대적으로 전별님 보러 온 거 아니니까."
"허이구... 우리 누나 집 앞에서 엄마 잃은 애처럼 종종거리면서 있는 거 내가 다 봤는데?!"
"무튼, 말하지 마요. 나중에... 나중에 내가 제대로 다시 찾아올 때까지."
"뭐……."
별님을 생각하는 준성의 마음이 확연히 보여서 더 이상 비아냥거리기도 멋쩍은 듯 묵묵부답이지만, 준성의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듯 보이는 달님의 태도. 한편, 황당하게 사과부터 해대는 HeeRa의 행동에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한 별님. 한참을 말을 잇지 않고 버티던 HeeRa가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하나 풀어놓기 시작한다.
"준성오빠랑 내 사이... 다 거짓인거 알고 있었어요?"
"뭐... 어느 정도는."
"그동안 준성오빠 둘러싸고 터져 나왔던 온갖 스캔들기사... 다 사실 아니에요. 내 짓이에요."
"......."
"오래전부터 준성오빠 좋아했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억지로라도 상황을 만들면 잘 되지나 않을까... 그냥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들인데, 누구하나 좋지 못한 결과로 치닫고 말았어요. 처음 스캔들 났을 때 찍혔던 사진도 내가 다 꾸며서 만든 상황에 준성오빠가 걸려든 거고, 호텔루머라고 해서 시끄러웠던 그 테이프도 솔직히 난 본적도 없어요. 그냥 그 타이밍에 별님씨한테 전해주면 알아서 헤어지겠지 하고.... 삼각관계 스캔들도 회식하는 장소를 아는 기자님한테 슬쩍 흘려줘서 그런 기사 나게 하고……."
"이제 와서 그런 말을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에요?"
"그러니까 그런 일들로 오해해서 헤어진 거면... 풀라고요. 다 내가 만든 일들이니까……."
"HeeRa씨 말대로 우리가 그래서 헤어졌던 거라면 솔직히 다시 풀어서 만나고 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준성이랑 난... 그저 둘의 문제로 관계를 정리한 거예요. 하지만 HeeRa씨의 의도도 잘못된 건 맞는 거니까. 대중들을 상대로 속인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잘 해결해나가길 바랄게요."
별님을 찾아와서 자존심까지 굽히고 사과를 하려고 왔던 HeeRa가 오히려 한심스러워질 정도로 어른스러운 별님의 태도. 고개를 들 수조차 없게 민망해진 HeeRa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을 빠져나온다. 달님과의 식사를 끝내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준성이 HeeRa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기다린다.
"참... 오빠 사람 보는 눈은 있네. 그래서 내가 될 수 없었던 거구나?!"
"무슨 소리야?"
"그냥... 다음은 뭘 하면 되는데?!"
바쁘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그동안 정보를 흘려줬던 기자들을 찾아가 여차저차한 상황을 설명하고, 서로가 피해가지 않도록 결별설을 보도해달라고 부탁하는 HeeRa. 연습생시절에 가슴이 답답하고,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자신이 항상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추슬렀던 편의점 귀퉁이를 찾는 준성. 테이프를 본 후, 준성이 너무너무 보고 싶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는 그 목소리를 듣고 싶던 별님은 추운 겨울에 항상 호호 불며 호빵을 사먹었었던 편의점을 찾았다. 아직은 조금 이른 감이 있는 때라 호빵은 찾을 수가 없고, 온장고에 들어있는 따뜻한 물병하나를 꺼내들고 계산을 한다. 허무한 마음에 편의점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별님.
"저 붉은 바다 해 끝까지 그대와 함께 가리, 이 세상이 변한다 해도 나의 사랑 그대와 영원히……."
항상 잊을 수 없었던 그 목소리. 편의점 인근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찾아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걸어가 보는 별님. 일순간 끝나버린 노랫소리. 들리던 소리를 따라 걷던 별님의 발걸음도 멈추고, 아무도 없는 구석어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준성은 그렇게 노래한곡을 흥얼거리다가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탄다. 떠나버린, 비어버린 공간에서 메아리처럼 돌아오듯 계속 맴도는 노랫말을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별님.
"우준성이! 작사가 누나는 만났노?"
"아니."
"야! 내가 만나라고 그 황금 같은 기회 만들어 준건데, 왜 안 만났어?!!"
"그럼 너 설마... 이제 배수정이랑 제대로 만나볼 생각으로 같이 간 거야?"
"그건 더더욱 아니지."
"뭐야, 형! 알아듣게 말 좀 해봐."
"아마... 내일이나, 모레? 내가 왜 한국에 갔었는지 알게 될 거야."
"건 또 뭔 소리고? 아... 게임이나 할란다."
"나도, 나도!"
한국을 다녀온 준성의 기분이 한결 좋아 보이긴 한 듯 슬쩍 안도의 표정을 짓는 윤준. 내심 우준성과 HeeRa의 관계가 궁금하긴 하지만 더이상 묻지도 않는 최연승. 다음 앨범에 수록하기 위해 열심히 이것저것 찾아보고, 들어보며 가사를 쓰고 있는 이수현은 준성의 일에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반면, 얼굴도 이름도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오랫동안 별님의 첫사랑으로 자리하고 있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별님은 시무룩하게 냉장고 문을 열면서 먹을 것을 찾아본다. 낮에 준성을 만난 일을 말할 수 없는 달님은 괜스레 만나기라도 했나 해서 궁금한 별님의 표정을 관찰한다.
"하... 볼 수 있었는데."
"누굴?!"
"너한테 얘기한적 있던가? 내 첫사랑?"
"첫사랑? 와... 그새 우준성 싹다 잊은 거야?"
"아니... 기분 꿀꿀할 때 내가 찾는 편의점이 있는데, 거길 갔다가 내 첫사랑 목소리를 들었거든. 근데!!!! 못 만났어. 망할 놈... 드럽게 빨라."
"첫사랑 목소리?"
"어...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건 그거 하나야."
대접에 우유를 양껏 그득 부어놓고, 수저로 홀짝홀짝 떠서 마시고 있는 전별님. 그런 별님을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계속 관찰중인 달님. 별님의 반응을 봐서는 우준성을 만나진 않은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첫사랑이란 놈은 또 누군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전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