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울병으로 치료받던 남학생이 서울 명문대학 수시모집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 학생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약 5년 동안 조울증manic-depressive illness으로 치료를 받아왔다. 한 번 재발해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입원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 조울병이란 기분장애의 대표적인 질환이다. 기분이 들뜨는 조증mania이 나타나기도 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조울병을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라고도 한다.
어릴 적 이 학생은 집에 들어오면 항상 허전하고 외로웠다고 한다. 부모는 모두 교사로 학생은 아침에 부모가 출근하려고 하면 따라가겠다며 떼를 썼다고 한다. 그에게 비친 어머니의 모습은 ‘반응을 잘 해주지 않는 엄마’였다.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귀가하면 매우 피곤해했다. 아이 마음에 어머니는 담임을 맡는 학생을 더 좋아하고 자신에겐 무심하다고 느꼈다. 어머니가 자신을 방치했다는 느낌이 들 때면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화를 내곤 했다. 아이의 문제를 체감한 부모는 가족치료를 함께 받았다. 먼저 자신들의 정서적 문제를 극복하더니 이후 자녀에게 공감을 잘하게 됐다. 또 끊임없이 반복되는 아이의 불만을 받아줄 수 있게 되었다.
정신치료는 환자의 과거 감정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환자의 현재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과거에 느꼈던 감정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치료 반응이 좋다. 노이로제는 현재에 살지 못하고, 과거의 느낌에 머물러 있거나 미래를 앞당겨 걱정하면서 사는 것이다.
조울병 치료에는 전통적인 치료약인 리튬과 더불어 새롭게 개발된 기분조절제와 항정신병 약물 등을 사용한다. 이들 약으로 급성기 증상을 우선 치료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약 복용을 유지하면 효과적으로 조울병을 치료할 수 있다. 무엇보다 환자의 고유한 정서적 갈등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해나가는 정신치료 작업을 함께해야 한다. 환자의 심리적 이해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재발 방지에 더욱 효과적이다. 재발하더라도 회복 과정이 빠르고, 재발이라는 몸살을 앓고 난 뒤 일어나는 여러 가지 심리적인 부작용 역시 최소화할 수 있다.
정신병적 증상을 겪고 나면 대부분 심한 자책감과 스스로 초라해지는 열등감이 생겨 자존감에 상처를 받는다. 또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폭발하고 나면 죄책감을 느낀다. 남들 앞에 서면 주눅이 들고 위축감이 생기기도 한다. 급성기 뒤에 나타나는 신경증적인 증상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되면 정신병적 증상의 재발을 촉진하게 된다.
그러니 조울병 환자의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과도하게 기분이 들뜨거나 우울해지는 등의 일차적인 증상뿐만 아니라 여러 이차적인 심리적 부작용을 주의 깊게 다루고 치료해야 한다. 그래서 약물치료와 더불어 정신치료적 접근을 통합한 포괄적인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재발하더라도 환자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강한 인격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이 학생은 조울병 치료의 긴 여정 가운데 짧은 기간에 걸쳐 병이 재발하곤 했다. 지속적인 회복 과정에서 완치 상태에 이르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다름아닌 ‘부모의 태도’였다. 학생이 비록 상태가 나빠져 다시 입원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부모가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처했다. 그 의젓한 태도가 환자 치유에 중요한 인자로 보인다. 부모는 조울병의 속성상 재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놀라지 않았다. 환자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보호자의 태도에 따라 심하게 흔들리기도 하고, 별일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 학생의 경우 부모의 의연한 태도로 환자 자신도 조울병 치료의 긴 여정 동안 심하게 흔들리지 않고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