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8:1~50 나의 힘이신 여호와 2020. 9. 23
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시편 18:1~3절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에 노래로도 만들어졌습니다. 한글 개역에서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라고 하였는데 이번 개역 개정에서는 나의 힘이신 여호와로 번역하였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힘과 도움이 되어 주셨다고 하기보다는 여호와 자체가 나의 힘이라고 하기에 한글 개정에서는 이렇게 표현하였다고 봅니다.
시편 18편의 표제어를 보면 이렇습니다.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여호와 앞에서는 종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아뢰었다고 합니다. 시편 18편은 사무엘하 22장에 거의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시편에서는 표제어로 되어 있는 부분이 사무엘하 22장은 1절로 되어 있습니다.
사무엘하 22:1~50절을 봅니다. “봉독” 몇몇 단어의 차이는 있지만 대동소이합니다. 이어지는 사무엘하 23:1~7절도 함께 봅니다. “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4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6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살리리로다 하니라”
사무엘하 23:1절에서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을 먼저 보고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시편은 여호와의 영에 의하여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자기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하실 일을 미리 찬양하는 겁니다. 공의로 다스리며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가 누구십니까? 다윗에게 공의로 다스리는 내용이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기 백성을 참으로 공의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다스릴 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내용을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것을 미리 찬양한 내용입니다. 물론 다윗도 온갖 역경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사악한 자는 심판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사악한 자는 언약을 멸시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입니다. “봉독” 나의 힘이신 여호와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이런 고백은 사무엘하를 통하여 살펴본 대로 다윗이 여호와의 구원을 경험한 후에 마지막으로 한 말에 속합니다. 1~3절에서 나온 여호와가 자기의 힘이라고 하면서 한 표현을 봅니다. 여호와는 자신의 반석, 요새, 건지시는 이, 나의 하나님,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산성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여러 전쟁을 하였기에 자신이 위기 속에서 구원을 받았을 때에 이러한 표현들로 여호와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의 힘이라고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만 다윗의 생애에서 고난과 역경이 없었습니까? 앞에서도 몇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다윗은 소년 때에 기름부음 받음으로부터 미움과 시기를 받았습니다.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쫓겨 다녀야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다윗이 간음하고 살인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하여 자식이 죽고 형제들 안에 간음과 살인이 일어납니다. 자식이 반란을 일으켜서 맨발로 머리를 풀어 헤치고 감람산으로 도망을 갑니다. 이러한 과정을 다 겪고 난 후에 지은 시로 머리말에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하 23장은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윗의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나의 힘이신 여호와께서 피할 길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힘은 무엇입니까? 자본주의 국가에서 최고의 힘은 자본입니다. 권력도 자본으로 움직입니다. 돈으로 안 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윗의 고난을 생각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한다고 하면 무엇을 구하게 되겠습니까? 세상의 힘을 구하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세계최고의 정보를 모으는 회사가 최고의 힘을 가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나의 힘이신 여호와를 내가 주를 사랑한다고 할 때에 하나님이 무슨 힘을 주시기를 기대하십니까?
지난 화요일 김수길 집사님 장례를 치르고 나니 수요일 저의 어머니가 별세하였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고향의 외사촌 형에게 부탁을 하여 장지를 정비하였습니다. 외사촌 형이 아는 분을 소개하여 일을 잘 마쳤습니다. 마무리하고 내려오는 중에 외사촌 형이 장로님인데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내가 한 일이 무엇이 있느냐고 하면서 돈이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수십 년 벌초를 하려고 할아버지 산소에 갔습니다. 그곳에 옛날에 농사짓던 밭이 있는데 그곳을 평토장 할 수 있도록 정비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포클레인이 두 대나 올라가서 공사를 하였습니다. 평소에 마음은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번기회에 마무리를 하였지만 외사촌 형이 한 말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리가 있는 말이었습니다. 돈이 일을 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가 구하는 힘이 과연 무엇입니까? 다윗처럼 여호와가 나의 힘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세상에 속한 것 아무것도 주지 않고,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당하지 않는 고생을 다 하는데도 여호와만이 나의 힘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의 방배와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도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하여 자기에게는 자식이 없는데 나에게 무슨 상이 있느냐는 식으로 대답을 하였습니다(창15:1,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나 다윗에게 방패와 상급과 힘이 누구신지 알려주셨습니다. 그 힘과 방패와 상급과 구원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볼 때를 기다리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말씀하시고(요8:56) 다윗이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2:43). 십자가로 다 이루신 예수님이 그들의 힘입니다.
본문 4~6절입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다윗이 세상에 일어나는 어려움만을 호소함이 아닙니다. 사망의 줄이 거대한 혼돈의 바다처럼 두렵게 합니다. 스올의 줄과 사망의 올무가 이르렀다고 합니다. 죽은 자들이 가는 스올과 그 사망의 올무에 걸려서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의 성전에서 들으시고 귀를 기울여주셨다고 합니다. 다윗이 기도가 현 세상의 문제뿐이라면 다윗도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탄식은 죄와 사망에서의 구원을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하시는 일이 사탄을 멸하시는 일이어야 합니다.
본문 7~15절입니다.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들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아래는 어두캄캄하도다 룹을 타고 다니심이여 바람 날개를 타고 높이 솟아오르셨도다 그가 흑암을 그의 숨는 곳으로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 그 앞에 광채로 말미암아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고 지존하신 이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을 내리시도다 그의 화살을 날려 그들을 흩으심이여 많은 번개로 그들을 깨뜨리셨도다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
4~6절에서 다윗은 사망의 줄에서 스올의 줄에서 구원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구원하시기 위하여 일하시는 모습이 7~15절입니다. 다윗이 전쟁을 많이 한 사람이기에 전쟁에서 승리를 하려면 병거와 말을 많이 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리품으로 노획한 병거의 말들을 일부만 남기도 나머지 말들의 발목 힘줄을 끊어버립니다(삼하8:4). 그러므로 다윗이 사망의 줄에서 구원하여 달라고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은 출애굽과 시내산의 현현의 모습으로 응답하십니다. 7~15절은 애굽에 쏟아진 열 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심과 시내산의 현현을 함께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 7~9절을 ‘본 브라운’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초자연적인 어두움이 온 땅을 덮었다. 그분의 영혼이 떠나자마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가 쪼개지고 무덤들이 열렸다. 그분이 부활하신 후, 잠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 무덤에서 나왔고, 거룩한 도시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났다.” 방금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을 이렇게 십자가의 사건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간구에 여호와의 응답의 긍극인 모습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이며 이를 위하여 여호와는 십자가로 구원하여 내시는 겁니다.
본문 16~24절입니다.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2)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로다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4~5절에서 사망의 줄에서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7~15절은 출애굽과 시내산의 현현으로 응답하십니다. 이것의 궁극적인 모습은 십자가로 구원하십니다. 이 구원을 받고서 찬송합니다. 자기보다 강한 자가에서 구원하여 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앙의 날에 여호와가 자기의 의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20~24절을 보면 자신이 깨끗하고 의로워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노아가 당대에 의로운 자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언약을 받고 그 언약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다윗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이 고백을 한 것은 그리스도의 깨끗함이며 의로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의지가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의지라는 말입니다.
본문 25~30절입니다.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자신이 자비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면 자신의 자비로움은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자신이 완전하다고 하는 자에게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면 자신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깨끗한 자에게 주의 깨끗함을 보이시면 주의 보좌둘레에 주를 섬기는 천사라고 할지라도 얼굴과 발을 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십니다. 사악한 자가 누구입니까? 자의 의를 가지고 교만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십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 주시면 내 흑암을 밝혀주십니다. 이런 자들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습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기에 그 말씀으로 우리를 비추시면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자인지 알게 되기에 오직 주님께만 피하여 들어갑니다. 그런 자에게 주님은 방패가 되십니다.
본문 31~36절입니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다윗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완전한 그리스도만 이 싸움을 싸웁니다.
본문 37~44절입니다.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가리니 그들이 망하기 전에는 돌아서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들을 쳐서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리이다 주께서 나를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이 내게 굴복하게 하셨나이다 또 주께서 내 원수들에게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끊어 버리게 하셨나이다 그들이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그들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 내가 그들을 바람 앞에 티끌 같이 부서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여러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들이 내 소문을 들은 즉시로 내게 청종함이여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 이방 자손들이 쇠잔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다윗의 승리가 이방인에게도 전하여집니다. 그러나 이 내용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가 땅 끝까지 증거 될 내용을 미리 보여줍니다. 이방인들이 다윗에게 복종한 경우가 다윗이 여호와의 전쟁을 행할 때에 승리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전쟁의 완결은 십자가의 승립니다. 그 십자가의 승리의 소식을 듣고 복종하는 자들 가운에 이방인들이 포함이 됩니다. 이방 자손들이 쇠잔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힘으로 여기는 것들이 힘이 아님을 알게 되어야 십자가로 승리하신 예수님께 나아와 그에게 복종하게 됩니다.
본문 46~48절입니다.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자들의 위에 나를 높이 드시고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이 부분은 해석은 독일성서공회 해설을 옮깁니다. ‘보복과 복수는 오로지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보복과 복수를 집행하시고 자기 백성을 통해서도 그리하신다(시149:6~9; 겔25:14참조). 보복의 목표는 죄지은 자들이 여호와를 참 하나님으로 알게 하는 데에 있다(겔25:17참조).’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원수에게서 건져주심의 결론은 십자가입니다.
본문 49~50절입니다. “49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50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시편 18:49절의 말씀을 바울사도가 인용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4~7절입니다.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바울사도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라고 하는 내용은 구약성경입니다. 구약 성경이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보는 시편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다윗의 시편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망의 올무에서 구원하여 달라는 영원한 소망의 노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윗도 이 세상에서 죽어서 무덤에 묻혔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셔서 한마음으로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믿음이 강한 자와 연약한 자 사이의 다툼을 교훈하기 위하여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받아주심이 그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서로 받으라고 하면서 오늘 시편 18:49절을 인용합니다.
로마서 15:8~9절입니다.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ㄴ)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9절에서 시편 18:19절의 내용을 인용합니다.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이 구절을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받으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이 고백의 결론은 예수님이 나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의로움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거룩함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함입니다(고전1:30). 그러므로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이 고백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서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 죽으심으로 받아주셨듯이 서로 교제합니다. 이들은 한 마음으로 성경의 인내와 위로와 소망으로 나의 힘이시며 전부이신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