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 가양동 허가바위-
양천 허씨 시조인 허선문 출생 설화가 있는 바위로 그 후손인 허준이 이곳에서 동의보감을 저술했다고 한다.
허준박물관 옥상정원으로 올라 관람 후 옥상정원 약초원 방향으로 갔다. 약초원에서 허준근린공원 방향으로 갔다. 허준박물관 뒤편으로 나가니 허가바위 30m 이정표가 보여서 가보았다. 허가바위 가기 전에 산 쪽 방향에 동향 의학의 집대성 「동의보감」 허준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조금 더 가니 공암(孔巖) 바위라는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표지석에 서울특별시문화재 제11호 양천허씨 시조 고려 개국공신 공암촌주유적지라고 쓰여있었다. 바로 옆에 지면에서 1.0m 하부에 허가바위가 있었다. 허가바위는 석기시대 사람들이 조개와 물고기를 잡으며 살았으리라 추측되는 자연 바위동굴로 커다란 구멍이 있어 공암(孔巖)이라고도 한다.
허가바위는 양천(楊川) 허씨의 시조인 허선문(許宣文)이 출생한 곳이라는 설화가 전하는 바위동굴이다. 이 바위에 동굴이 뚫려 있어 공암이라고도 불린다. 동굴의 크기는 가로 6m, 세로 2m, 길이 5m 정도로 어른 1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다.
<京畿邑地>에는 이 바위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가 건국될 무렵 이곳에는 허선문이라는 이가 살았다고 한다. 그는 나이가 90이 지났는데도 고려 태조 왕건을 섬겼다. 왕건이 견훤을 정벌할 때 그가 군사들을 격려한 공이 커 공암의 촌주로 임명되었다. 그 후 그의 자손들이 공암 허씨가 되었는데 신라시대에는 이곳을 공암이라 불렀고, 고려시대에는 양천이라 불렀으므로 공암 허씨는 양천 허씨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 여류시인 허난설헌, 북병사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허종 등이 모두 양천 허씨다.
왼쪽 기둥에는 병의 원인과 처방 등이 쓰여 있었고 오른쪽 기둥에는 외형편, 탕액편 등의 글이 쓰여 있었다.
하늘이 내린 명의 허준은 이곳 허가 바위에서 당시의 의학을 집대성하여 「동의보감」을 저술했다.
몸 안팎의 의학적 기능과 질병의 종류 및 치료법을 정리한 「동의보감」은 세계 최초로 예방의학을 강조하였으며, 동아시아 의학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바위는 가로 6m, 세로 2m, 길이 5m 크기의 동굴이 뚫려 있어 '공암'으로도 불린다.
허가바위는 어른 열댓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동굴이었다. 여러 차례 정변과 임진왜란, 병자호란 시에 많은 사람들이 피신했던 곳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