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미국에서 가장 찬란한 장관
이강옥
미국 땅의 모든 것들은 크고 높고 길고 넓습니다. 미국 땅 어디로 가나 우리의 입을 딱 벌리게 하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미국서 목격한 최고의 장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맨 먼저 무얼 이야기할 지 난감해지는 듯도 합니다.
미국 최고의 장관으로 많은 사람들은 맨해튼 마천루를 이야기할 법도 합니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기는 하지만 여전히 높고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아래서 아득히 올려다보는 것이 장관이겠습니다. 엘리베이트를 타고 꼭대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맨해튼 풍경도 장관이겠습니다. 그리고 더한 것이 있습니다. 해질녘 브룩클린 다리를 걸어가면서 바라보는 맨해튼 풍경 정말 대단합니다. 드높은 빌딩들이 어떻게 그리도 아름다운 직선과 곡선, 그리고 다채로운 색조를 하늘에다 만들 수 있는지요. 우리 아이는 그 장면을 경험하고 난 뒤부터 맨해튼이 자기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끝없는 옥수수밭은 어떻습니까? 아이오와, 오하이오를 거쳐 사방팔방으로 펼쳐지는 들판, 그 들판에서 보이는 건 옥수수밭 뿐. 지평선이 그렇게도 아득하다니요. 박지원 선생께서 요동벌판을 보고 한바탕 통곡하고 싶다 하셨지만, 정말 아이오와 들판을 질주하기 시작하면 그 광활함 앞에 이 작은 몸의 숨이 막히는 듯하여 통곡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끝없는 들판이 장관입니다.
제가 아직 못 가본 서부의 여러 국립공원들, 요세미티나 그랜드케년은 더하겠지요. 어릴 때부터 우리의 상상력을 지배해온 그랜드케년. 천관우 선생의 글은 아직도 그것이 미국 자연 풍광의 으뜸임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얼마 전 나이야가라 폭포를 다녀왔습니다. 멀리서 보고는 무슨 연기가 저렇게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지? 큰 불이 났나? 이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가까이 보니 그건 떨어진 폭포물이 떨어지면서 일으킨 힘으로 다시 하늘로 치솟아 올리는 물보라의 기둥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폭포 위 하늘은 그 물보라가 일궈낸 구름으로 언제나 덮여 있었지요. 거대한 물이 중력을 못 이겨 그대로 꼬꾸라지는 것.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었습니다. 쾅, 쾅, 쾅. 대지에 내리꽂히는 거대한 물의 집단. 그 순간 생성되는 힘과 소리가 한 인간을 그렇게도 초라하게 하고 또 감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아, 이래서 인간이란 자연을 경배하게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떨어졌지만 다시 하늘로 치솟는 물보라, 자연 낙하의 엄청난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하기만 하는 폭포 아래의 물줄기들. 움직임과 소리의 힘, 치솟아오름과 자포자기...그 장관을 잊지 못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한시바삐 멀어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충격적인 글을 읽었습니다. 부모님의 차를 타고 학교 앞에서 내린 초등학생이 트럭에 치여 즉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은 사고를 목격하고 그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초등학생이 올린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자동차의 나라입니다. 땅이 넓어 자동차 없이 사는 게 불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자동차 도로가 사통팔달입니다. 도로의 번호를 아는 게 중요할 뿐 아니라 동서남북을 구분하는 것은 더 중요할 정도입니다. 자동차는 미국의 일상생활에서 최고로 중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맨 먼저 놀란 게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달려오는 자동차에 맞서서 횡단도로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운전자가 그 보행자에게 욕을 퍼붓지 않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횡단보도에서 운전자로부터 워낙 꾸중을 많이 들은 저로서는 그 장면을 보고 잘 이해가 되지 않던걸요. 그러다 아주 특별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횡단보도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표시판입니다. 노란색으로 둘레를 만들고는 걸어가는 사람을 그려놓고 아래 위로 몇 글자를 써놓았습니다. 그걸 풀이하면 이렇게 되겠죠.
뉴욕 주의 법입니다. 자동차들은 횡단보도에서 무조건 사람에게 양보하여야 합니다!
아, 자동차의 나라가 자동차를 이렇게 기죽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떠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저로서는 한동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지요. ‘별 힘도 없는 것들이 괜히 으스대기는...’
그러다가 유독 더 으스대는 자동차를 발견했습니다. 이마에 스쿨버스라고 크게 적어 놓았습니다. 온통 짙은 노란 페인트를 칠하고는 크고 작은 온갖 등들을 박았습니다. 특히 그 엉덩이가 참 요란합니다. 세어보니 꼭 15개의 등이 붙어 있었습니다. 15개가 깜빡이기 시작하면 정말 정신없습니다. 앞에서 무슨 위급한 일이 크게 벌어졌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스쿨버스가 정지할 때를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스쿨버스가 정지하면 출입문은 아주 천천히 열립니다. 출입문이 열리면서 운전석 백미러 주위에서 코끼리 귀같이 큼지막한 육각형 빨간 표시판 역시 슬그머니 펼쳐집니다. STOP이라고 까만 글씨가 분명하지요. 스쿨버스 운전석 옆에서 빨간 육각형 스탑 표지판이 옆으로 펼쳐지는 순간 도로는 정적으로 빠져듭니다. 뒤의 어떤 차도 추월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멈춰서는 것입니다. 출근시간에는 스쿨버스 뒤쪽으로 아주 긴 자동차의 대열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스쿨버스는 ‘줄반장’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맞은편 차선의 풍경도 놀랍습니다. 스쿨버스의 스탑 표지판이 펼쳐지면 그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맞은 편 차선의 차들도 스쿨버스 코 앞에서 멈춰서야 하는 것입니다.
속담에 ‘태산이 울릴 듯 진동하더니 쥐새끼 한 마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거창한 일이 일어날 듯한 징조를 보였는데도 하찮은 쥐새끼 한마리가 튀어나와 어이가 없다는 뜻이지요. 미국의 스쿨버스가 정지하고 스톱 표시판이 펼쳐져 주위 모든 차량들이 꼼짝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는데, 스쿨버스 출입구에서 아주 작은 아이 하나가 톡 뛰어내리곤 합니다. ‘스케일’ 큰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 말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요. 이 미국인들이 말입니다. 가끔 총기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이 미국인들이 어린 학생을 쥐새끼로 보기는커녕 거대한 코끼리보다 더 크게 본다는 것입니다. 어린 학생 한명이 안전하게 학교로 갔다가 다시 그대로 부모님 품에 안기게 하는 것. 그들은 그러기 위해 태산을 울리는 군사작전을 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미국 학생들이 가고 오는 길. 스쿨버스가 수행하는 태산을 울릴 듯한, 온 세상을 꼼짝 못하게 하는 그 작전 매뉴얼이 부럽습니다. 그건 사람의 선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닙니다. 엄격한 규정에 바탕을 둔 것이겠지요. 그런 규정을 만들 수 있는 이 사회의 정신과 노력이 부럽습니다. 어떻게 하여 한명의 아주 작은 학생 하나가 차에서 내리고 타는 데에 저렇게 수많은 차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규정을 만들 수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그 규정을 완고할 정도로 그대로 따르는 이들이 더 크게 보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만히 하고 있으면 대한민국을 방금 떠나온 저의 가슴이 콱 막히고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러다가 드디어는 속에서 불이 일어나고 욕지거리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지요.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어린 학생들의 엄연한 삶을 박탈해가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공부를 못한다고 기죽게 하고 마침내 스스로 생을 마무리하게도 하는 것도 모자라서 행동이 굼뜨다고 거리에서 죽게 만드는 것입니까? 이렇게도 잔인한 나라가 우리의 고국 대한민국입니까.
저 노란색 스쿨버스 앞뒤로 펼쳐지는 풍경. 아, 이 장면이야말로 우리가 미국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장관입니다. 눈부신 찬란함입니다. 그 풍경은 맨해튼보다 높지 않지만 올곧고, 그랜트케년보다 웅장하지 않지만 철저합니다. 아이오하 들판보다 넓진 않지만 하해같은 마음을 깃들이고 있습니다. 나이야가라 폭포의 웅장한 소리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정적이지만, 그 정적 속에 작고 약한 자에 대한 가장 위대한 사랑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드넓은 미국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최고의 장관은 정지해 있는 스쿨버스가 연출하는 그 모습이 틀림없습니다. 등하교 시간이야말로 미국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