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어느덧 3년 후. 많은 취재진들이 진을 치고 애타게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연착되는 비행기시간으로 2시간 남짓 기다리느라 지쳐 보이는 사람들. 그제야 많은 짐들을 카트에 싣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Sweet.B멤버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3년이란 시간을 해외활동에 투자하며 마무리 짓고 귀국하는 길. 밝은 브라운색의 머리로 염색을 하고, 좀 더 단단해진 근육질을 슬쩍슬쩍 보이는 팔을 들어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환하게 미소로 화답하면서 누군가를 찾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려 보지만 못 찾은 듯 선글라스를 올려 쓰는 윤준. 귀여운 연하남의 이미지로 누나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던 준성은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패션으로 검게 물들인 자연스러운 커트머리, 여전히 듣고 있는 "그대와 영원히-이문세" 노래. 많이 야윈 모습에 연승은 여전히 근육돌로 불릴 만큼 황금 몸매를 자랑하며 빅 백을 메고 준성과 나란히 걸어 나온다. 사투리를 확연히 고친 서울말투의 강한섭은 붉은색계열의 헤어로 물들이고, 세련되고 편해 보이는 후드티에 청바지 차림으로 흥분해서 팬들을 향해 휘적휘적 팔을 흔들고 있다. 여전히 시크함으로 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마지막으로 나오는 이수현은 씽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검지와 중지를 들어 브이를 지어 보이고, 해맑게 막내 태 팍팍 내면서 훤칠한 키에 블랙계열의 브이넥과 블랙진으로 멋을 살린 임대한이 방긋거리며 팬서비스를 한껏 보여주고 있다.
3년이란 시간동안 많은 양의 곡들을 작사해온 별님. 매번 연말 시상식에서 작사가상을 휩쓸면서 명예도 한층 높이고, 머리 식힐 겸 제주도로 여행 온 달님, 별님. 별님덕에 온갖 럭셔리한 짓은 다 해본다며 잔뜩 들떠서 방방거리는 전달님.
"왔어?! 나 제주도야. 시간 되면 올래?"
"누굴 오라는 거야?"
"어?! 어... 어. 이따 봐."
비밀거리라도 되는 듯 급하게 대화를 끝내고 전화를 끊는 달님. 별님은 그런 달님이 수상하기는 하나, 평소에도 별거 없이 수상해보이게 행동하는 게 주특기인 달님이라 의심하는 듯하다가 이내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는다.
"그래서."
"아, 잠깐만! 누나 지금 나이가 몇 살인 줄 알아?"
"알거든?!"
"아홉이야, 아홉! 스물아홉!!!!"
"죽고 싶냐, 전달님?"
"아! 쫌!! 여자면, 여자답게 좀 굴어보란 말이야. 이런 사람을 좋다했던 그 놈이 미스터리다 진짜."
"너 또 뭔 소리하려고."
"됐어. 나 배고파, 럭셔리한 디너를 준비해주시죠 누님."
Sweet.B가 귀국한지 불과 하루 남짓 되었을 무렵. 아침 댓바람부터 "쾅! 쾅! 쾅!"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HeeRa와 우준성의 결별설. 해외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 기자들을 만났던 HeeRa의 행보가 절묘한 타이밍에 딱 드러나 주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헤드라인 1면에 너도나도 장식한다.
[우준성 ♥ HeeRa 결별!!!]
[우준성 ♥ HeeRa 친한 오빠동생으로 남기로 했어요!]
[충격! 장수커플 우준성 ♥ HeeRa 돌연 결별!!]
[Sweet.B 귀국과 함께 우준성♥HeeRa 결별!!]
"우준성이!!!!!"
"어, 봤냐?"
"봤구나?!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내가 한국에 배수정이랑 잠깐 같이 갔을 때의 이유... 알게 될 거라고 했지? 근데 타이밍 진짜 절묘하네."
"그래도 홀가분하겠다. 형."
"당연하지 임마. 그동안 억울하게 뒤집어쓰고 있던 누명을 홀딱 씻어낸 기분이다. 아우 씐나!!!"
"땅 꼬맹이. 좋냐?"
"아, 최연승! 우리 이제 신장 공격 그만 하자했지?!!!!"
오히려 결별설로 화기애애한 Sweet.B 숙소. 반면 정신이 하나도 없는 소속사 내부의 모습.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확인 전화에 응대하다 기운이 쭉 빠지는 직원들. Sweet.B 매니저 휴대폰도 불이 나는 상황. 참다못한 소속사 대표가 매니저를 불러 토크쇼 스케줄을 잡아서 자연스럽게 풀어놓도록 하라는 지침을 받는다. 점잖은 모습의 Sweet.B 멤버들. 오랜만에 촬영하는 한국 스케줄에 설렘 반, 긴장감 반으로 스탠바이를 기다린다. 스타일리스트가 녹화시작 5분전, 멤버들의 의상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메이크업을 다듬어준다. 흐트러진 헤어들도 가지런히 잡아주고, 오프닝이 시작됨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토크쇼의 진행자가 등장을 하고, 서두를 늘어놓으며 Sweet.B를 소개한다. 대기하고 있던 멤버들이 녹화세트장 무대로 한명, 한명 오른다. FD가 멤버 수에 맞게 의자를 세팅해주고,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농담도 주거니 받거니 즐거운 분위기속에서 자리를 잡고 하나둘 앉는다.
"반갑습니다. 정말, 우리 얼마만이죠?"
"약 3년만 인거 같습니다."
"와... 한국에서 볼 수 없던 시간동안 해외에서 아시아투어를 성황리에 마친 것은 물론이고, 타임라인잡지에 영향력 있는 100인 랭킹 중 5위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 하십니다! 부럽습니다. 진심으로."
"아, 아닙니다. 열심히 하는 것을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토크쇼는 한창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촬영은 지속되고, Sweet.B멤버들도 오랜만에 한국에서 일하는 거라 그런지 굉장히 신나서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어느덧 진지한 분위기로 접어드는 토크쇼. 조심스럽게 큐 카드를 한번 훑고, 준성과 아이 컨텍을 하는 MC.
"조금은 예민할 수도 있는 질문을 지금부터 시작할건데요, 원치 않으시면 *노코멘트*라고 외쳐주시면 됩니다."
"네, 오늘 우리 멤버들 모두 허심탄회하게 전부 탈탈 털어놓으려고 나왔으니, 걱정 마시고 질문 막 해주세요."
"자, 그럼! 먼저 윤준씨. 팀의 리더로써 멤버들에 대해 속속들이 모르는 게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참 유일무이하게도 Sweet.B는 불화설이 없었던 그룹이에요. 그죠? 소올찍히!! 다투거나, 싸운 적 있죠?"
"당연하죠. 더구나... 가족인 형제들도 툭하면 토닥거리면서 싸우고, 울고불고 하지만 어느새 풀려서 다시 놀고... 그러잖아요. 저희는... 진짜 일적으로 만난 비즈니스관계라기 보단, 정말 우정이란 매개체로 끈끈하게 얽힌 형제 같은 느낌이에요. 스케줄이 미친 듯 몰아닥치다보면 잠도 제대로 못자고,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예민해져서 조금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음반 작업하다가 의견충돌로 싸워보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서 사는데 다툼이 없을 순 없는 것 같아요. 저희도 웃고 떠들다가도 다투기도 합니다."
"네 오늘 토크쇼를 함께 녹화하면서 Sweet.B 분들이 새삼 제 동생들 같고, 그냥 친한 친구 같고 그런데... 여러분들도 그렇죠?"
"네!!!!!!"
"Sweet.B 짱!!!! 멋있어요!!!"
"자! 이제 최근 가장 궁금해할만한 일에 대한 질문인데요."
"아, 전가요?"
조금 조심스러워 보이는 MC에게 넉살좋게 먼저 치고 나와 답변을 해 보이는 우준성. MC가 준성의 답변에 조금 풀어진 편안한 얼굴로 슬쩍 눈꼬리를 올리며, 엄지를 들어 준성을 향해 보여준다. 으쓱하는 시늉을 하며 한껏 여유 있는 미소로 질문을 기다리는 준성.
"최근 결별설이 났잖아요. 여성 걸 그룹 멤버분이랑요."
"네, HeeRa씨요."
"하하... 네, 너무 솔직하게 선수치고 말씀하시니까 좀 당황스러운데요."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고 있는 만큼, 속 시원하게 좀 털어놔주세요. 진짜인가요?"
"음... 사실 맞고요. 좋은 선후배 사이로 남기로 했습니다. 연인사이 라는 게 아시다시피 사소한 걸로 다투고, 서로 좋을 때는 또 별거 아닌 거에도 죽고 못 살고 그러잖아요. 저희도 똑같았어요. 그리고 여느 연인들과 다를 거 없이 자연스럽게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구요. 그분도 앞으로 좋은 분 만나서 행복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아, 네... 준성씨 질문 다음으로 이 질문을 하는 게 조금 생뚱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저희 프로그램 스타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멤버 분들 모두에게 질문을 드릴게요. 결혼은 언제쯤?!"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죠. 그치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됐을 때, 그때 결혼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 않나 싶어요."
"서울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볼까 하구요. 이제 사투리는 고쳤으니 사랑하는 사람만 생기면 됩니다. 서른 즈음 하고는 싶지만... 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네요."
"서른셋 정도면 잘 살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은 너무 철부지인 절 감당해주실 분이 없을 것 같아서요."
"결혼은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주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생기면 결혼발표 바로 하겠습니다! 하하하"
"아담한 여성분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면 결혼을 생각해보려고요. 하하."
"전... 오래전부터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 만나게 되면 프러포즈하려고요. 어쩌면 제가 가장 빨리 품절남이 될지도 모르죠."
솔직 담백 토크쇼 촬영을 끝내고 모두가 숙소로 돌아갔지만, 괜스레 만나고 싶은 사람을 그리듯. 연습생 시절때 종종 찾던 편의점 귀퉁이 구석에 익숙한 자세로 벽에 기대서는 우준성. 늘 그랬든 전주만 나와도 제목을 맞추고, 가사를 외우지 않아도 자동으로 흥얼거릴 만큼 많이도 들었던 그 노래를 조용히 부른다. 데뷔가 언제인지도 모른 채 죽어라 연습만 하면서 답답하고, 힘들었던 때에 자주 불렀던 그 노래.
"그대와 영원히 (song. by 이문세) 中
저 붉은 바다 해 끝 까지 그대와 함께 가리
이 세상이 변한다 해도 나의 사랑 그대와 영원히
무뎌진 내 머리에 이제 어느 하나 느껴지지 않고
메마른 내 입술에 이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지만
맑은 음성 가만히 귀 기울여 행복에 소리를 듣고
고운 미소 쇠잔한 내 가슴 속에 영원토록 남으리……."
그날 이후. 첫사랑의 얼굴을 기필코 확인하겠다며 줄곧 그 편의점을 찾는 전별님. 오늘도 어김없이 별님은 작업실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하철까지 타고 내려서 편의점을 향해 익숙한 걸음을 걷는다.
또각또각...
투둑.
별님의 앞에 가지런히 모은 낯선 남자의 구두가 보이고 구두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옮겨간다. 놀란 눈은 휘둥그레져서 한참을 넋을 잃은 듯 그를 응시하며 굳어버린 듯 서 있다. 씽긋 웃어 보이며 가볍게 손짓해 보이는 우준성.
"나 한국 온 거 몰랐어? TV에서 꽤나 시끄러웠을 텐데."
"언제 왔어?"
"어어?!! 진짜 몰랐나보네. 며칠 됐어."
"여긴 어떻게 알고?"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전별님이 여길 어떻게 알고?!"
서로가 같은 질문으로 놀라운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내 피식 웃고 만다. 그렇게 애틋했던 마음을 숨겨가며 힘들게 헤어지면서도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해보였고. 그 후 서로가 너무 힘들어서 하루하루 버티는 게 지옥 같았던 일들도 하루아침에 녹아내리듯 잊히는 둘.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고 서서 반가움에 미소를 짓고 있다. 준성이 와락 별님의 어깨를 감싸고 끌어 당겨 꽉 안아준다. 그동안 버티느라고 참았던 눈물이 한순간에 왈칵 쏟아져 버리듯 울음을 터트리는 별님. 많이 어른스러워진 준성이 오빠처럼 별님의 등을 토닥토닥 다독여 준다.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내가 훨씬 더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전별님."
"치……."
"이젠 절대 안 놔줄 거야. 그리고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 숨 쉴 수 없는 그 순간까지 사랑하고, 사랑해."
말을 끝내고, 별님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는 우준성.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며 볼이 발그레해지는 전별님. 별님에게 들었던 내용을 기억해내며 편의점을 찾아왔던 전달님이 준성과 별님의 모습을 지켜보며 호빵을 들고 서 있다.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오면서 손에 든 호빵을 호호 불며 준성을 향해 소리치는 달님.
"어이, 어이!! 거기 둘!!! 딱 걸렸어!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누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매형은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매형?!!"
"그래!! 내가 딴 놈은 몰라도 우준성이라면 허락할게. 우리 누나 잘 부탁해!!"
서로 다른 생각으로 달님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 준성과 별님. 손에 든 호빵을 호호 불면서 반을 갈라서 양 손에 쥐어들고 우준성을 바라보며 서 있는 달님이 그저 웃긴 별님. 우준성 역시 그런 모습의 달님을 보며 자신의 연습생시절이 어렴풋이 겹치듯 생각나서 슬쩍 미소를 짓는다. 셋은 그렇게 서로를 둘러서서 반가움과 옛 기억에 마냥 웃음만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