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으로 3년간 통학하면서
새벽마다 삼거리에서부터 뛰어가던 철길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보게되었다.
봄이면 벚꽃이
하얗게 차려입은 화사한 모양새로
아직 동복차림의 그 많은 학생들을 보내며 맞던 그 날들이 떠오른다.
여름철엔 하복으로 윗옷을 하얗게 갈아입은
남녀 학생들의 복장이 움직이는 꽃처럼 너풀대듯했었지~...
울타리 가엔 무궁화 꽃이 오래 피어있었고
코스모스 꽃들이 하늘 대던 가을철도..
어릴적 고향역은 사시사철 추억이 깃들인 곳이다.
40년이 훌쩍넘은 세월을 어찌 짧다하겠는가?
대야역에도 변화는 왔었고 다시 더 변화중이란다.
마침 서울에서 장항 거쳐 익산으로 향하는 열차가 멈춰 섰다.
2년 후면 대야 신역이 500m 동남쪽 방향으로 신축 되고
7,000명 인구가 더 많이 줄어들면 아예 화물만 취급하는 역사가 될지도 모른다했다.
농촌 인구가 줄어들면서 대야의 인구도 매년 줄어든다고 하지만
새만금 사업으로 번창을 꿈꾸는
군산시의 동문 역할로 새롭게 활기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역전..
대야 역전도 어느 지역이든 마찬가지 이겠지만
역전이란 지명만으로도 누구에게나 있을 많은 사연이 떠오르는 곳이며
군산 과 익산(이리)으로 왕래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많은 추억거리가 담긴 곳이다.
도로 폭이 예전보다 2배이상 넓어졌다.
올라가다가 삼거리 전에는 병 원과 사진관이 있었고
오늘편 골목안에는 김종수(30-초로)님이 어릴 때 살전 집이있다.
옛 대야 지명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지경 교회의 역사는
나그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였는지도 모른다.(김성원 후배님의 답글에 부탁합니다.~..)
기독교 장로교회 이지만 교파와 상관 없이
오늘 서울 지역에 나와있는 우리 향우님들 중에는
믿음을 가진 지경교회 출신들이 많다.
옥구여자 중학교가 있었던 곳에는 정신보건센터와 원불교 건물이 새로지어 들어서 있었다.
군산남고등학교..
옥구중학교(남자부) 옥구농업학교가 있던 자리에
군산 남고등학교의 교명을 보면서
그 옛날을 떠올리며 지금은 어떤지? 교내 정보가 궁금햇다..
호남평야 넓은들 대야들~..
그 당시에는 동네 어디를 가나 대야초등학교 친구들이 있었다.
옛이야기 나누면서 폴신님과 함께 돌아본다.
대야의 농수로는 우리나라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좋은 물길이다.
회현 옥산면 방면으로 가는 물길과
대야 시내쪽으로 가는 물길은 어떤 가뭄에도 깨끗한 물로 넘쳐난다.
하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추운 겨울 더운 여름에도
이 먼거리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책가방 걸쳐메고 학교에 오고 갈 때 ,
나그네도 5학년 때에 김재성이 따라서 그 동네에 놀러가서 잠까지 자고 왔던 길이다.
미끌고 질퍽할 때도 있었던 맨흙 길이었었는데~..
하리 마을..
김재성과 최복룡 강형천 친구들..
요즘 서울에서 가끔씩 만나뵙는 김금평(27회) 회장님과
전에 만나서 식사하던 최대문(38회)후배님이 사신던 마을이다.
지금 사진으로 보이는 집이 최복룡 최대문 님들이 살던 곳이라던데..
하리보다 더 먼 곳
이 신자(30)님과 이방렬(33)님이 살던 구복리와 김정호(32) 후배님의 방채 건너마을까지 다녀왔다.
초6학년 같은 반 친구 최원일을 찾아갔었던 경창리 마을엔
지경 교회에서 분가한 경창리 교회도 세워져 있었다.
그 당시에 원일이가 자기 동네에 같이 놀러가자고 해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그 더운 여름에 찾아갔던 마을이 얼마나 멀게 느껴졌었던지~..
근데..자기 집에 친구를 초대 했지만
막상 부모님도 안계시고 먹을 것이 없어서 둘이서 점심도 탱탱 굶었었다.
부엌까지 드나들며 뭔가를 찾던 원일이는
그제야 미안한 생각이 들었었는지 친구 대접을 궁리하다가
마침내 좋은선물거리를 생각해 냈다.
구멍가게 하나 없는 촌락에
대야 읍지에서는 볼 수 없는 특산물이 있었는데
만경 강둑 근처에 있는 수로에 아이들이 갖고 놀기 좋아하는 부들이 있었다.
대야 삼화당에서 파는 아이스케기 모양으로
털이 부드럽고 매끈매끈했다.
" 야~..넌 거기 서있어~!"
원일이가 바지가랭이를 걷어 올린 채
물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어 가더니
수수대처럼 생긴 긴 갈대잎 모양의 줄기를 휘어잡아 많이도 꺾어주었다.
하하~..!
배곺은 생각은 곧 잊혀지고 자랑할만한 대단한 수확거리로 선물을 받았던 생각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생각난다.
소차 마을로 가는 중에 한 아저씨를 만났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보니 나그네의 친구 문영동이의 조카라했다.
문영동 노창덕 홍장표 장진태 장혜순이가 살던 소차 마을로 들어갔다. 문영동 친구의 집이 정겹게 보인다.
서울에서 가까운 친구로 살다보니
언젠가는 아직 생존해 계시는 어머님을 찾아 뵙고 싶었었다.
어머님은 101세의 연세로 아직 건강한 모습을 보이셨다.
"누구시대요~..?"
홀로 어머님을 모시고 사시는 팔 순 되신 형수님께서 물으셨다.
"누구여~?"
어머님은 인사드리며 잡아드린 손을 놓지 않으시며 귀가 어두우셔서 잘 알아듣지는 못하셔도 불쑥 찾아온 객들을 반겨하시며 누군지 궁금해 하신다.
"서울 아들 영동이 어릴 때 친구여요~!"
나그네도 어머님을 생각하며 감격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나그네의 어머님이 생전에 들려주시던 이야기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지금 생존해 계신다면 비슷한 연세이실 나그네 어머님께서 남편(아버지)과 아들(27세 나이에 별세)을 잃고 홀로 남매를 키우시며 들녘으로 시골 장사 다니실 때 이 곳 소차부락 영동이 어머님은 아들 친구인 어린 나그네의 어머니라는 관계 때문에 언제라도 반기시며 식사라도 대접해 주시면서 아들들 이야기로 많은 시간을 쉬시며 보내신다는 말씀을 오래토록 들어 왔었다.
어머님께는 과거의 가느다란 회상의 끈이라도 연결시켜서 풀어보여드리고 싶은 나그네의 큰 목소리도 이미 신체의 기능이 어두워지신 어머님께는 시원스럽게 알려드릴 수는 없었지만.. "고마워요~.. 안녕히들가셔요~.."
"안녕히 건강히 계십시요~.." 친구와 함께 밤이라도 새고 싶었던 정겨운 집을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서 나오는 한 편의 나그네는 진한 회억의 끈을 쉽게 덜쳐낼 수는 없었다.^^*
옥구중학교는 1973년에 남자학교로 진성여중은 여자학교로 분리되었다가 점차 인구가 줄어들면서 2000년경 다시 남녀공학으로 통합되었죠....옥구중학교 전교생은 270명정도이고요, 고등학교는 옥구농업고등학교로 시작해서 인문계와 실업계를 겸한 종합고등학교로 개명하였다가 옥구군이 시군통합으로 군산시에 편입되면서 군산남고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었습니다.. 장경동목사님도 옥구종고 출신이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셔서 가끔 고향에 오셔서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계시죠..양선숙사모님은 목사님과 함께 지경교회 출신 초등동창으로 장목사님과 연애하다가 집에서 쫒겨나실뻔한 추억도 있죠...
첫댓글 지경교회의 역사는 1900년 10월에 창립했으니까 108년의 나이가 되었지요... 아래 사진 할머니는 지경교회에서 제일 연세 많으신 전구복집사님이시고 며느님은 고삼복집사님이십니다.
할렐루야~! 미리 알았더라면 같이 앉아 기도라도 드렸을 터인데~..야곱의 말씀처럼,,나그네인생길 험악한 세월들로 살았을지라도 후에는 의의 면류관이 주어주실 것입니다^^*..
옥구중학교는 1973년에 남자학교로 진성여중은 여자학교로 분리되었다가 점차 인구가 줄어들면서 2000년경 다시 남녀공학으로 통합되었죠....옥구중학교 전교생은 270명정도이고요, 고등학교는 옥구농업고등학교로 시작해서 인문계와 실업계를 겸한 종합고등학교로 개명하였다가 옥구군이 시군통합으로 군산시에 편입되면서 군산남고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었습니다.. 장경동목사님도 옥구종고 출신이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셔서 가끔 고향에 오셔서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계시죠..양선숙사모님은 목사님과 함께 지경교회 출신 초등동창으로 장목사님과 연애하다가 집에서 쫒겨나실뻔한 추억도 있죠...
김후배님, 자세한 설명으로 성의를 보이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천국 향한 인자한 101세 노모님 모습에서 내 어머님 모습 치시어집니다. 지금 멀리서라도 기도 드려도 좋을것 같아요. 주안에서 편안하시라고 기도합니다.
후후,,2번 사진,,정말이네요...대야역 ?? 눈 안오는 부산에서 살다가 펑펑 쌓인 눈속으로 오돌오돌 떨며 새벽같이 군산으로 학교 다니던 때가 생각납니다~사진 너무 고마워요~~^^*
장수하시는 두분 노모님 사이가 정말 아름다워 보이십니다 (( 더욱 건강하세요 )) ..주님의 길을 가시는 선배님의 자상함이 눈에 보이십니다 . 선배님 더욱 행복하세요..
행복과 장수를 빌어주시는 님 같이 가야겠네요^^*..
감사함니다 오랜만에 고향소식과 사진보니 고향집에 다녀온것처럼 마음이기쁩니다 앞으로도종종 좋은소식 부딱드려요
들녘 마을에 빨간장미 꽃이 안보여서 사진에 담지 못했네요..자주 들리셔서 선후배님들과 많은 이야기도 나누시고 공유하는 고향의 정취도 함께 느껴보시지요^^*.. 00:27
*^_^*하세요 요즘에 고향들과산에는 푸르고 예쁜으로 장식되있겠용
**사진으로보는. 대야역은 .추억그자체로군요 요즘고향엔 모네기철이네요,,
빨간장미 철인데..? 어느님 따라서 미련없이 내려놓으셨나요..? 고향인으로 오래토록 같이 가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