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민의 농촌 이주 정책, 온라인 게임에서 시작하자.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 발 담그고 바람이 실어다주는 정겨운 하모니에 취해 해 지는 줄 몰랐던 어린시절의 추억. 도시민이라면 누구나 이런 시골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꼭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더라도 시골의 폐 속 깊이 정화시켜주는 맑은 공기와 보는 것만으로 가슴을 뻥 뚫어주는 높고 푸른 하늘, 어두운 밤 쏟아질 듯한 별을 본 도시민이라면,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자동차가 뿜어내는 시커먼 매연과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그리고 문명의 이기가 만들어낸 각종 소음에 익숙해져 버린 도시민. 이제 그만 그곳에서 탈출하고픈 도시민들에게 정부가 나서서 해방구를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
농촌경제연구원에서 도시의 20세 이상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6.1%가 농촌 이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 연령대 분포를 보면, 50대 65%, 40대 59.6%, 30대 54.6%, 60대 51.6%, 20대 49.6% 순으로 나타났다. 농촌 이주를 위해 주택 또는 토지를 알아보고 있거나 저축 하고 있는 도시민은 전체의 23.2%였고, 10년 이내 이주를 희망하는 도시민은 33%에 달했다.
설문조사 통계만 놓고 보면 도시민이 꿈꾸는 전원생활에의 열망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중 10년 내 농촌 정착을 위해 구체적인 준비를 하는 사람은 2.5% 그쳤다. 또, 시민단체인 전국귀농운동본부가 마련한 농촌 이주 관련 강의를 듣는 도시민 중 실제 귀농을 하는 사람은 100명 중 10여 명에 불과했다. 이 결과를 놓고 볼 때 도시민 절반 이상이 전원생활을 꿈꾸고는 있지만 실행에는 다양한 현실적 장벽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민이 원하는 이주희망지역은, 경관이 좋은 곳 65.2%, 숲이 있는 지역 12.6%, 농사여건이 좋은 곳 8.9%로 나타났다. 이주 시기는, 은퇴 시점인 50~60대에 정착하겠다는 답변이 64.5%에 달했다. 이주 동기는, 은퇴 후 여가생활을 위해 30.6%,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 23%, 농업 종사를 위해 21%로 나타났다.
응답한 도시민의 경향을 분석해 보면 사실상 농사를 생업으로 생각하기보다 부수적 일거리로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물 맑고 공기 좋고 조용한 곳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직장 문제다. - 대도시에 직장이 몰려있는 현실에서 농촌으로 이주함은 사실상 직장을 포기함을 의미한다. 도시민들이 농사를 부수적 일거리로 생각하는 경향에서 보듯 직장을 포기하고 완전 이주를 권장하는 건 무리가 있다. 아직 온라인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이는 도시민들의 농촌 이주 결정에 발목을 잡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둘째, 자녀 교육 문제다. - 현대병이라 할 수 있는 아토피 피부염을 가진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첨단 의학으로도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이 질병에 맑은 공기와 깨끗한 환경이 특효약이라 한다.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모두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를 농촌으로 보내지 못하는 건 교육 여건 때문이다. 농촌에 폐교가 늘어가는 현실에서 자녀를 농촌으로 보내는 건 여간 어려운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의료 문제다. -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알 수 없는 노후 이주자들에 의료 시설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이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그동안 모아 둔 노후 자금을 바탕으로 정착하는 부류이기에 의료 시설이 갖춰진 여부를 중요시 할 것이다. 이들의 요구에 맞는 실버타운은 사업으로서의 가치가 높기에 돈에 민감한 민간 기업에 맡기고, 정부 관계 기관에서는 퇴직한 의사들과 보통의 노후 이주자들을 엮어주는 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
넷째, 문화 여건 문제다. - 1천만 관객의 영화가 3편이나 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도시민에게 있어 문화생활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기에 농촌의 문화 여건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현실은 이주를 결심하는데 장애가 된다. 프로젝터와 스크린은 저렴한 비용으로 구매가 가능하기에 문제가 없지만 영상 콘텐츠는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바로 여기에 정부가 나서야 할 부분이 있다.
다섯째, 치안 문제다. - 현재 농촌의 고령화와 농민의 저소득은 도둑마저 발길을 끊을 정도로 심화된 상태다. 하지만 도시민의 농촌 이주가 본격화되면 상대적으로 털기 쉬운 이주 농가를 노리는 도둑들이 기승을 부릴 것이 자명하다. 농촌 이주를 생각하는 도시민은 이를 염두에 두고 있기에 결단이 쉽지가 않다. 이는 공동체 형성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현재의 귀농이나 이주 체계로는 본격적인 도시민 이주 시대를 맞이할 수 없다.
여섯째, 두려움의 문제다. - 사실 농촌 이주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이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도시민은 농사를 지어본적이 없다. 농촌에 아는 사람도 없다. 그동안 누려온 문화 여건도 태부족하다. 가족과 함께 하기에는 제약사항이 너무 많다. 때문에 농촌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으로 이주를 결정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농촌의 낭만만을 생각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을 들어보자.
“도시민의 생각과 이상적인 농촌, 현실의 농촌은 괴리가 크다. 고령인구 유치는 가능하지만 이미 고령화된 농촌에 활력을 주기는 어려울 듯싶다.” - 농림부 관계자 -
“농촌 이주는 막연한 생각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느냐의 문제다. 아직은 귀농을 위한 여건이 부족하고 농촌 실정도 열악하다.” - 농경연 성주인 전문연구원 -
“농촌의 생활환경을 끌어올려야 하지만 농촌인구가 일정 수준 이상 돼야 교육, 교통 등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다.” - 농경연 송미령 연구위원 -
“우수 고등학교 육성, 방과 후 교육프로그램 개발․보급 등을 통해 농촌학교의 교육 능력을 제고한다. 농촌교육이 도시 수준에 근접하면 아이교육을 위한 이농 및 도시 유학이 줄어 농촌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 한국교육개발원 구자억 박사 -
현재 농림부는 앞서 설명한 도시민의 농촌 이주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올해부터 귀농 도시민에 직업훈련 과정 운영을 운영한다. 44세 미만의 교육생들에 교육비 전액을 지원하고 월 50만 원의 훈련수당을 지급한다.
또, 정부의 농어촌 정책 목표 중 하나인 농어촌 인구 20% 수준 유지를 위해서는 도시민을 위한 정주 공간 조성 등 도시민 유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농림부 등 15개 부처가 합동으로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대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09년까지 20조 3,000억을 투입할 계획이다.
농림부는 이에 대한 일환으로 도시은퇴(예정)자들의 웰빙 생활이 가능한 은퇴자마을 조성할 계획을 세워 지자체를 대상으로 ‘은퇴자마을 콘테스트’를 개최(06년 10월)한다. 콘테스트에서 우수한 시․군으로 선정될 경우 정부 포상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참여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세계화 시대에 날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농업 부문에 관계 당국이 관심을 갖고 정책 사업을 펼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도시민의 농촌 이주 정책에 있어 관계 당국이 공동체 형성의 모든 제반시설(학교, 도로, 의료, 치안 등)을 갖춰놓고 이주자를 유치하는 것은 정책 실패 가능성이 높고 막대한 예산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행정 기관에서는 관련 통계와 설문조사 내용만을 보고 자칫 도시민의 농촌 이주 활성화를 위해선 그들이 요구하는 제반시설을 갖추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것은 착각일 수 있다.
농촌 이주를 실행에 옮길 준비를 하는 도시민은 그동안의 삶을 바꿀 용기와 결단과 자유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도시의 짜여진 시간표와 도시 계획에 의해 설계된 집, 꽉 막힌 도로 등의 갑갑함에서 벗어나 농촌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어 떠나려는 것이다. 때문에 이주 희망자들의 이러한 특성을 간과하고 관계 당국이 행정의 편익을 고려한 계획된 공동체를 형성한다면 그 틀 안에 들어갈 도시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민의 농촌 이주 활성화에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인가?
그 방안은 컴퓨터 게임에 답이 있다.
컴퓨터 게임 중에 게이머가 직접 도시를 설계하고 건설하는 게임이 있다. 이를 응용하여 20세 이상의 국민이 농촌에 공동체를 형성하는 내용의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 유포하는 것이다.
게이머는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 집을 짓고 원하는 목적에 맞게 공동체를 건설한다.
예를 들면, 직장 전체가 이주하여 공동체를 형성할 수도 있고,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자녀 교육을 위한 공동체, 노후 생활을 위한 공동체, 아이에서 노인까지 총괄하는 공동체 등 각자가 원하는 공동체를 건설한다.
게이머가 온라인상에 자신이 만든 공동체를 올려놓으면 홈페이지를 방문한 수많은 네티즌이 각자의 목적에 맞는 공동체에 구성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전체 구성원을 채운 공동체는 오프라인 만남을 갖고 실제 공동체 형성을 결의한다. 이들 대표는 관계 당국에 관련 서류를 첨부하여 전달하고 관계 당국은 적합 토지, 예상 견적, 지원할 수 있는 제반 시설을 분석해 그들에게 알리고 사업 실행 시 토지 구매에서 건설업체 입찰, 실제 이주에 이르기까지 지원한다.
이 방안과 관계 당국이 제반 시설을 마련한 후 도시민을 유치하는 방안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첫째, 도시민의 농촌 이주 욕구를 증진시킬 수 있다. 농촌에 이주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던 도시민들이 직접 가상의 터전을 만들어봄으로써 농촌 이주 욕구 증진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둘째, 관계 당국이 추진하는 하향식이 아닌 도시민이 원하는 상향식 공동체기에 이탈이나 불만이 없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반찬이 짜다고 불평해도 자신이 만들었을 땐 뜻한 바대로 만들었기에 불만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셋째, 실패의 위험부담이 없다. 앞서 언급했듯 관계 당국이 공동체 형성에 필요한 제반 시설을 갖추고 이주자를 유치하는 건 실패 시 예산 낭비가 너무 크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 하나를 만듦으로써 도시민이 직접 참여하게 되고 관계 당국은 감독 및 지원만하는 시스템이라면 실패의 위험부담 없이 이주 정책을 활성화할 수 있게 된다.
넷째, 각각의 공동체는 목적에 맞게 설립되기에 정부에서 각각의 공동체에 필요한 부분만을 지원하는 효율적인 정책을 펼 수 있다.
얼핏 두 가지 방안에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꽃놀이패를 두고 부담 없이 돌을 놓는 것과 대마불사를 믿고 무리수를 두는 것은 그 결과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불러올 수 있음을 기억하자.
관계 당국은 도시민의 농촌 이주 정책의 활성화를 위하여 다양한 방안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 방안을 실행하기에 앞서 정책의 중심에 농촌 이주를 원하는 도시민이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리고 위험부담이 큰 하향식 정책을 지양하고 도시민이 원해서 만들어지는 상향식 정책을 지향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때 비로소 온라인상의 ‘농촌 공동체 만들기 게임’ 제안이 빛을 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