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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후 휴거에 대한 성경적 근거
오직예수훈련원 http://cafe.daum.net/ojjs
(이 내용을복사하여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구약에서 예언한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은 모두 성취되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오시리라” 고 약속하신 언약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기록은 25절마다 언급되고 있는 것만큼 예수님의 재림은 기독교 교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성경에서 초림은 360번 정도 재림은 1560번 기록되어 있다. 재림의 중요성을 성경이 밝혀주고 있다. 기독교인들에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이고 휴거 사건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성도들의 관심을 충족시켜 주기 보다는 오히려 여러 교리적인 가르침으로 성도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어떤 가르침은 휴거는 대환난 이전일 것이라고 가르치고 또 어떤 가르침은 휴거는 대환난 중간이라고 가르치고 또 어떤 가르침은 대환난 후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한 가지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 재림 전에 휴거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에는 모두 같은 주장이다. 문제는 휴거가 환난 전이냐 ? 환난 중간이냐? 환난 후냐? 하는 것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성도들은 어느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몰라서 그냥 자기가 속한 교회의 교리에 따르고 있고 믿고 있는 실정이다. 이 해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겠는가?
그것은 바로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주장하는 모든 교리가 성경을 지적하면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성경 해석이 다 옳다고는 볼 수 없다.
성경은 성경 그대로 해석해야 될 것이다. 그 어떤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이 앞선 성경 해석이라면 그 해석은 올바를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주장도, 어떤 학설도, 어떤 이론도, 아무리 강력 한다 할지라도 성경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 설득력은 이미 힘을 잃고 있는 것이다.
(사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계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시대의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휴거에 대해 올바르게 배워서 올바른 신앙을 가져야 의무와 사명이 있다.
첫 번째. 휴거의 용어.
1. 헬라어로 άρπάζω (하르파죠) 인데 “잡아 올리다” “꽉 움켜 잡아채다” “강탈해 가다” “이끌어 가다” “끌어 올려간다”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영어로 Rapture 인데 납치, 유괴, 강제로 잡아챈다, 라는 뜻이다.
3. 한자로는 끌 휴(携) , 들 거(擧) 로서 이끌어 올리운다 라는 뜻이다.
두 번째. 휴거의 성경적 근거.
(살전4:13-18)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본문에는 휴거 때 나타날 상황에 대해 7가지로 증거하고 있다.
1. 예수님의 호령 소리 (16절)
2. 천사장의 소리 (16절)
3. 하나님의 나팔 소리 (16절)
4.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 (16절)
5. 주께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신다. (16절)
6. 그 다음에 살아남은 자가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가는 휴거의 사건이 일어난다. (17절)
7. 공중에서 주를 영접 하게 된다. (17절)
세 번째. 휴거의 대상.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 (16절)
2.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은 자다. (17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7절)
네 번째. 휴거에 대한 여러 학설.
1. 환난 전 휴거설. (7년 대환난 전에 휴거를 주장하는 학설)
2. 환난 중 휴거설.
3. 부분 휴거설.
4. 환난 후 휴거설.
네 가지 학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환난 전 휴거설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19세기 초 미국에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와 유명한 주석가인 매튜 헨리(Matthew Henry) 의 활약으로 인하여 후천년설의 영향이 득세하자 여기에 반발하여 나타난 것이 환난 전 휴거론입니다. 환난 전 휴거설을 처음 주장 한자는 존 넬슨 다비 (John Nelson Darby) 였다.
그래서 다비즘(Darbyism) 혹은 세대주의의 이론은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미국 신학을 주로 받아온 한국 교회는 환난 전 휴거 학설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1952년에 환난 후 휴거론이 유명한 풀러 신학교 신약학 교수인 래드(G.E Ladd)에 의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래드 교수도 처음에는 세대주의자 였지만 다비의 이론 즉 세대주의 종말론은 성경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깨닫고 성경을 연구한 결과 환난 후에 대한 학설을 주장하게 되었다.
환난 전 휴거설은
첫째. 구약 성경에도 맞지 않는다.
둘째. 복음서에 맞지 않는다.
셋째. 서신서에도 맞지 않는다.
넷째. 계시록에도 맞지 않는다.
다섯째. 역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자들의 이론은 교회와 성도는 환난이 시작하기 전에 이 땅에서 휴거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환난 속에서 믿음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더 이상 환난을 당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환난과 고통을 담당 하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종말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은 환난 전에 성도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이지 결단코 환난을 당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환난 전의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할 때 성도들은 휴거가 되고 그리고 이 땅은 7년 대환난이 시작되고 이스라엘과 휴거 되지 못한 성도들은 7년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휴거된 성도들은 7년 동안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한 후에 7년 대환난이 끝난 후 예수님과 지상에 재림하여 천년 왕국에서 지낸다는 것이 세대주의 자들의 주장이다.
성경 그 어디에 공중에서 7년 동안 혼인 잔치 한다는 말이 어디 기록되어져 있단 말인가? 기록되어 있지도 않는 말씀 가지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혼란시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저주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계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이제 그만 성경에 없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거짓말로 하나님의 양들을 미혹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말씀을 보고 깨달아서 제대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 늦어지면 회개하고 싶어도 못할 것이다.
다섯 번째. 환난 전 휴거의 학설이 왜 성경적이지 않은지 7가지로 살펴보겠다.
1. 성경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약속이 있기 때문에 환난을 안 당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세대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안 받을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 세 곳을 가지고 주장한다.
(살전1:10) (살전5:9) (계3:10) 이 세 곳을 찾아보자.
1) “장래 노하심”(살전1:10) 이라는 단어는 대다수 학자들이 “하나님의 진노” 라는 것에는 인정한다.
그러나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것이” 과연 교회의 환난 전 휴거로 볼 것인가? 대해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살전5:9)
본문의 내용도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게 한다는 말이 아니다. 구원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3)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계3:10)
본문은 휴거의 시기에 관해 “화약고” 같은 역할을 하는 구절이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진노를 받게 될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교회의 환난 전 휴거로 본다는 것은 잘못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환난 후에 휴거가 있을 것을 증거하고 있다.
(1) 그날 환난 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을 명확하게 마태복음에서 증거하고 있다.
(마24:29-31)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 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2) 마지막 나팔에 휴거가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고전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자들은 이중 재림을 주장한다. 예수께서 공중에 재림하여 공중에서 7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하고 7년 후에 지상 재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자는 먼저 휴거되고 나중에 환난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또 구원받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하고 있는가? 홀연히 다 영어 성경에는 ALL 로 되어 있는데 “모두”라는 뜻이다.
모두 다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된다고 했다. 모든 것은 단회적이다. 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재림을 세상 환난이 다 끝난 후 19장에서 예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 속에 있지만 그 환난을 피하게끔 하나님이 보호하실 것이다.
(3) 휴거의 사건이 단회적임을 증거하고 있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4) 계시록에서도 예수님의 재림을 공중 재림이나 환난 전 휴거를 발견 할 수 없다.
(계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그렇다면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인가? 그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 기간에 교회와 성도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분명한 해답은 진노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보겠다. 많은 자들이 구약 성경은 신약 성경의 그림자라고 표현하면서 그 표현을 왜 사실대로 믿지 않는 것인가?
(1) 창세기 7장에서 하나님께서 무서운 진노로 이 땅을 홍수로 심판하실 때 노아 방주는 어디에 있었는가? 노아 방주가 하나님의 온전한 보호하심을 받은 것처럼 마지막 때에 7년 대환난 속에서도 교회와 성도들은 온전한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2) 창세기 19장에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죄악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으므로 불과 유황으로 진노를 내리셨다. 그때 롯이 그 무서운 유황 불 심판 속에서 구출 받았다. 누가는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눅17:29)
그 무서운 진노에 롯이 어디에 있었는가? 롯의 식구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았던 것처럼 마지막 대환난 때에도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것이다.
(3) 출애굽기 7장부터 시작된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열 가지 재앙은 출애굽기 11 장에서야 끝이 난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진노 속에 있었는데 같이 당했는가?
(출9:6)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생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
(출9:26) “이스라엘 자손의 거한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
(출10:23) “그 동안은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더라”
구약에 이러한 사실을 믿는다면 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환난 전 휴거라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택함 받은 자들의 신앙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축소시키는 해석은 그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기록된 대로 그 진노에서 보호 해주신다고 하셨다면 그대로 그 약속을 믿는 게 믿음이고 바른 신앙이다. 절대로 성경 해석을 인위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 하셨으면 그 약속만 믿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이다. 보호의 방법에 대해서 성경에 명백히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을 인간의 지식으로 그 방법을 지어내는 것은 성경 해석에서 올바르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있을 하나님의 진노를 환난 전 휴거로 피한다는 세대주의 자들의 학설은 성경의 지지를 얻지 못할뿐더러 인간의 지식과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에 법원에서 지방 법원이 유죄로 판결을 내렸을지라도 고등 법원이 무죄라고 판결하면 무죄인 것이다. 또한 고등 법원이 무죄라고 해도 대법원이 유죄라고 판결하면 유죄인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떠들어도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다. 성경은 곧 대법원이다. 그 어떤 주장도 학설도 성경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마지막 때 성경을 뒤엎어 버리려고 하는 배도의 세력에 미혹되어서는 안된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24:4)
2. 계시록 4장 이후에 교회라는 용어가 없기 때문에 교회와 성도는 환난 전에 휴거 한다는 것이다.
계시록 1-3장에서 계속 나오던 교회라는 용어가 4장 이후에 없으므로 환난 전에 휴거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4:1절에 “이리로 올라오라” 했기 때문에 이것을 휴거라고 주장한다. 너무나도 인위적인 성경 해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7가지로 환난 전 휴거가 틀리다는 것을 살펴보겠다.
1) 사도 요한 의 기록 의도를 오해하고 있다.
(계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계시록의 기록 목적은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것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4장 이후에 교회라는 단어가 없다고 해서 교회가 휴거 되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더욱 확실하게 성경이 세대주의자들의 학설이 틀리다는 것을 증거 해주고 있는 계시록 22장16절이다.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사도 요한에게 계시록을 증거케 하신 것은 교회들 때문에 증거케 하신 것이라는 사실이다.
2) 사도 요한이 받은 명령을 오해하고 있다.
(계1: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사도 요한이 본 것을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예수님은 명령하셨다. 이 일곱 교회는 당시에 교회에만 극한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오시는 그 순간까지 전 세계 어느 시대 어느 교회에나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계시록 전체 말씀은 모든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계시록 4장 이후에 교회가 없다고 해서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 된다는 이론은 설득력이 없다. 계시록 3장까지가 교회에 주어지는 것이라면 계시록 4장 이후도 교회에 주어지는 것이다. 세대주의 자들은 4장 이후는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계시록을 분리시키고 있다.
교회라는 단어는 없지만 계시록 11장에 성전이라는 말씀이 나오고 성도들이 나오는 것은 곧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또한 계시록 12장에서는 해입은 여자가 나오는데 성경 해석자들이 대부분 교회로 해석하고 있다. 계시록에는 성령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고 일곱 영이라고 기록되는데 그렇다고 성령이 없는 것인가? 또한 계시록에는 적그리스도라는 말이 안 나오는데 그렇다고 적그리스도 세력이 없는 것인가?
3)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을 오해하고 있다.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본문에서 “교회들을 위하여” 라는 말씀과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 하게 하였노라” “이것들” 이란 계시록 전체에 해당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세대주의 이론은 4장 이후부터 18장까지 내용을 교회에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4) 휴거의 대상을 오해하고 있다.
(계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은 “이리로 올라오라”는 본문의 말씀을 근거로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 될 것의 근거로 삼고 있다. 본문의 내용은 사도 요한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지 집단체인 교회의 휴거가 될 수 없다. 휴거의 장면을 다루고 있는 바울 서신과 너무나도 다른 장면이다.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5) 계시록4장 1절이 휴거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하고 있는 살전4:16-17 의 내용과 계시록4:1 의 내용을 비교하면 일곱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소리의 차이가 있다.
살전4:16에서는 예수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있었다. 계4:1에서는 나팔소리 같은 음성이다. 나팔소리도 아닌 나팔소리와 비슷한 음성이었다.
둘째. 본문의 장면에 차이가 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휴거 장면에는 그리스도 재림과 더불어 그리스도 안에 잠자는 성도들과 살아있는 성도들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사도 요한이 기록한 본문에는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기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후에 될 일을 사도 요한에게 알게 하려는 사역적인 면만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이리로 올라오라”는 말씀이 교회의 휴거가 아님을 자연스럽게 입증하고 있다.
왜냐하면 계시록1:7에서는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라고 예수님의 재림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반해 계시록4:1에서는 “이리로 올라오라” 는 말씀을 비교하면 계4:1의 내용은 휴거가 될 수 없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내용에 차이가 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휴거의 장면에는 “그리스도 안에 잠자는 성도들의 부활”이 있은 후에 “살아남은 성도의 변화”(고전15:52)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기록은 오직 자신에게만 국한되고 있음을 볼 때에 “이리로 올라오라” 라는 것은 교회의 휴거로 볼 수 없다.
넷째. 장소에 차이가 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하고 있는 휴거의 장면은 “공중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기록은 “하늘 보좌 앞으로 올라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섯째. 장면에 차이가 있다.
사도 바울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증거한 반면에사도 요한 기록은 “이 후에 마땅히 될 일 을 보이는” 두려운 장면이다.
여섯째. 기간에 차이가 있다.
사도 바울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였는데 사도 요한은 “이 후에 마땅히 될 일“만 보이는 한정된 기간이다.
일곱째. 목적에 차이가 있다.
사도 바울은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진 성도들이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는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목적이 있지만 사도 요한 기록은 “이후에 마땅히 될 일 네게 보이리라” 라는 마지막 때에 될 일을 보여주시는 것이 목적임을 알 수 있다.
3.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계3:10 )는 약속이 있기 때문에 환난 전에 휴거된다는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이다.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본문은 휴거 논쟁에 있어서 화약고 같은 말씀이다.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자들은 이 본문을 중요한 근거로 삼는다. 과연 “면하게 해주리라”는 말씀을 교회의 환난 전 휴거로 볼 것인가? 아니면 환난 속에서 보호받게 해 주신다는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인데 6 가지로 살펴보겠다.
1) 전치사 용법이 증명한다.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는 말씀에 사용되고 있는 전치사 헬라어 에크(εκ)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환난의 시간 속에서 보호라는 의미와 환난의 시간으로부터 보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본문의 내용이 증명한다.
“지키어”라는 용어는 미래에 닥치게 될 그 환난에서 휴거시켜 주시겠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그 환난 중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지켜 주시리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왜냐하면 “지키어”라는 한글의 의미는 사건의 공간 속에서 빼내어 가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그 사건의 공간 속에서 보호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3) 권면의 말씀이 증명한다.
(계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 말씀에서 발견하여야 할 것은 빌라델피아 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님 강림하실 때까지 굳게 잡아야 할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환난 전 휴거론이 맞는다면 이러한 표현은 불필요할 것이다. 미래에 닥치게 될 그 환난 속에서도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예수님이 임하셔서 그 보상으로 지켜주시리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4) 대 환난기의 예언이 증명한다.
(계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260일 동안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 두 때 반 때를 양육” 이러한 말씀은 환난 속에서 보호받는 성격을 의미한다.
5) 요한복음의 기록이 증명한다.
(요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이 내용에서 “세상에서” 라는 원어가 εκ τού κόσμου(에크 투 코스무) 로서 계시록에 나온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라는 말씀과 같은 용법으로 사용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본문의 내용은 제자들을 세상에서 빼내시리라는 의미가아니라 세상의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시리라는 것을 의미하듯이 마지막 날에도 예수께서 자신의 택한 자들을 온전히 보호하실 것이다.
6) 구약의 기록이 증거한다.
(출11:5-7)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6)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애굽의 열 가지 재앙 중에서 마지막 장자의 재앙에서 어린 양 피를 바른 집은 재앙이 건너뛰었던 것처럼 오직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강한 팔로 지켜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라고 빌라델피아 교회에 주신 예수님의 이 약속은 휴거론의 논쟁에서 화약고 같은 것은 사실이나 이와 같은 사실들을 볼 때에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교회의 환난 전 휴거를 지지하기보다는 교회가 환난 속에 보호 될 것을 성경이 증거해주고 있다.
세대주의자들은 본문을 근거로 환난 전 휴거론을 그들의 교리로 정당화 하고 있는데 그 설득력이 부족하다.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기를 좋아하는 세대주의 자들의 이론을 따른다면 환난으로부터 보호받는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에만 주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약속을 교회 전체로 확산시키면서 환난 전에 휴거 될 것으로 주장하고 있으니 그들의 문자적 해석 주장은 일관성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성경의 올바른 해석은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그 해석이 미진하면 그 문맥이 주는 의미를 살펴보고 그래도 부족하면 신, 구약 전체의 말씀들을 통하여 살펴 볼 때에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4. 세대주의 자들의 환난 전 휴거론의 문제점을 7가지로 살펴보겠다.
1) 예수님의 가르침을 벗어나고 있다.
(마24:29-31)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 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분명히 예수님은 재림을 그 날 환난 후라고 말씀하셨고 그 어디에도 재림을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을 말씀하지 않고 있다. 재림이 단회적으로 이루어 질 것을 말씀하셨다.
또한 환난 후에 휴거 사건이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세대주의 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벗어나서 예수님의 환난 전 공중 재림과 7년 대환난후 지상 재림으로 분리하고 있다. 말씀에서 벗어난 이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도의 부활에 대해서도 교회와 참 성도는 예수님이 공중 재림 하실 때 휴거되고 유대인과 믿음이 약한 자들은 지상 재림 하실 때 부활할 것이라는 이중적인 부활론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벗어난 것이다
그 누구의 학설이나 이론일지라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벗어난 것이라면 그 이론은 거짓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사도 행전의 기록을 오해하고 있다.
(행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사도 행전은 의사인 누가가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눅1:3) 후에 기록했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의 내용을 외면하는 그 어떤 학설도 인정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주후 1세기 중엽의 누가가 기록한 사실을 기록자보다 앞설 학자가 없기 때문이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쳐다보고 있는 자들에게 천사가 들려준 말은 “너희 가운데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본문의 내용 그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재림이 이중적인 재림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 해주고 있지 않다.
성경 해석을 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성경 본문이 가르치는 바를 바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이 가라는 곳까지 가고 멈추라는 곳에서 멈추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도 단회적 이었으며 십자가의 죽으심도 단회적 이었고 부활하심도 단회적 이었으며 승천하심도 단회적 이었으니 에수님 재림 또한 분명코 단회적 일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 세대주의 자들의 이론표 >
공중 재림 지상 재림 † 영원세계
교회 시대 지상 : 7년 대환난
공중 : 7년 혼인잔치
어떤 자라 할지라도 사도들이나 복음서 저자들이 기록한 본문의 의미보다 더 앞설 이론은 없다.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누가가 기록한 본문에서도 이중 재림의 근거를 발견 할 수 없거늘 세대주의자들의 이중 재림에 대한 이론은 정당할 수 없다. 성경을 떠난 그 어떤 학설 이론이 아무리 아름답다 할지라도 받아 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3) 고린도전서 기록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고전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세대주의 자들은 본문에 나온 나팔을 일곱 나팔 중 마지막 나팔로 보지 않고 이 세대의 마지막을 알리는 것으로 주장한다. 본문의 내용이 들어있는 15장은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필두로 말씀이 이어지는 내용이다.
(고전15:23-26)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그리고 51절에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52절에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하였다.
본문 그 어디에서도 이중적인 부활을 찾아볼 수가 없다. 51절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 말씀을 주목하라. “순식간에 홀연히 다” 단회적 사건임을 증거하고 있다.
4) 데살로니가 전서의 기록을 오해하고 있다.
(살전4:15-18)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세대주의자들도 본문에 나온 "하나님의 나팔을” “마지막 나팔과”(고전15:51) "하나님의 큰 나팔”(마24:31)로 인정은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시기를 환난 전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의 내용이 “주의 말씀으로 이것을 너희에게 말하노니” 라고 하면서 바울의 증거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감람산의 교훈을 근본으로 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 예수님이 강림하시는 장면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강림하심으로 일어날 휴거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 본문의 정확한 문맥적인 분석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해석은 세대주의 자들의 해석처럼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에 대한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큰 영광과 능력으로 강림 하실 때에 일어날 상황을 증거 하면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구절에서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는 말씀은 본문의 목적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그 어디에도 예수님의 재림을 이중적으로 증거하지 않고 있고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도 단회적임을 본문은 명확하게 증거하고 있으므로 세대주의의 이론을 올바른 해석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5) 데살로니가 후서의 기록을 오해하고 있다.
(살후2:1-5)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본문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두 번째로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먼저 보낸 편지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일어날 성도들의 휴거와 부활에 대하여 위로를 준 것이고 그리고 본문은 예수님 강림하시기 직전의 상황을 증거하였다.
미혹의 시대 불법의 시대 세상 끝
↓ ↓ ↓
환난 시작 불법의 아들 출현 예수님 재림
적그리스도 등장
이처럼 예수님의 재림은 미혹이 난무하고 배도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 후에 불법의 사람 곧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짐승 통치의 시대가 있은 후에 있을 것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예수님의 재림을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으로 구분하고 있지 않다. 세대주의자들의 이론은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6) 요한 계시록의 내용을 오해하고 있다.
(계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20:5-6)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재림 광경은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예수님 말씀과 일치한다. 세대주의자들의 이론대로 하면 계시록 4장 이후에 교회가 휴거된다면 이곳에서 이중적인 재림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면 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모습은 “땅의 모든 족속으로” 으로 증거하고 있다.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일치한다.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마24:30)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재림은 그 어디에도 이중적인 재림을 말하고 있지 않다. 천년왕국 축복에서도 성도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만 언급하고 있다.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공중 재림으로 인한 휴거와 지상 재림으로 인한 이차적인 부활을 성경을 말하고 있지 않다.
7) 부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오해하고 있다.
부활에 대한 성경 구절은 앞에서 말한 것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부활을 말씀하고 있다.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만을 말씀하고 있다. 사도 바울도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만을 언급했다.
(행24:15)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성도들의 부활이 단회적임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의 이론은 주님이 공중 재림하실 때 휴거가 있고 7년 대환난 후 다시 예수님이 지상 재림하실 때 2차적인 부활이 있을 것을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으로 왜 세대주의 자들의 이런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것일까?
1.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 지어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2. 성경 해석을 문자적인 해석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3. 자신들의 교리에 너무 충실하려고 때문이다.
세대주의 자들의 이론은 놀라운 정도의 조화성을 지니고 있고 믿는 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예수님의 이중적인 재림과 성도들의 이중적인 부활과 환난 전 휴거 문제점들이 그들의 인간적으로 조직된 교리일 뿐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칼빈은 “성경 해석자가 첫째로 할 일은 해석자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지 않게 하는 대신 성경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세대주의 자들의 이론은 성경 저자의 말씀을 초월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구원은 교리로 받지 않는다.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다. 어떤 분은 종말론을 전하면 “예수만 잘 믿으면 되지 무슨 종말론이 필요하고 환난전 환난후가 중요하냐고” 서슴없이 말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를 제대로 모르고 있는데 잘 믿을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집 주소를 제대로 모르는데 그 집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겠는가? 교리로 구원 받은 것 아니다. 그러나 잘못된 교리로 예수를 향한 내 믿음이 잘못되어 간다면 무지한 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마지막 때에 예수를 바로 알고 믿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졌고 교리가 주어진 것이다. 예수 전한다고 해서 다 같은 예수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복음이라고 해서 다 같은 복음이라고 생각하는 미련한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11:04)
가짜들이 나는 가짜라고 나타나지 않는다. 짝퉁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영적 짝퉁들도 곳곳에서 판을 치고 있는 시대이다.
예수께서는 미리 이러한 일들이 마지막 때에 있으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25절에서는 내가 미리 말해주었으니 잘 기억해두라고 당부까지 하셨다. (마24: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또한 거짓 것들이 예수 이름을 이용해서 온갖 짓들을 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마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표적에 민감한 자 되지 않기를 바란다. 말씀에 민감한 자 되어서 다시 오실 예수를 영접하는 놀라운 영광 속에 거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란다. 끝으로 두 가지 말씀을 마음 속에 새기시기를 바란다.
(계22:10-11)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계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오직예수훈련원 http://cafe.daum.net/oj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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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목사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러나 계시록의 말씀을 좀더 연구해 보시면 중간 휴거가 아니라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과 보호처에 있는 성도들이 분명 나옵니다. 그들은 대환난의 삼년 육개월 동안 분명 환난에서 보호받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 두 증인즉 십사만 사천 혹은 두 감람 나무, 두 촛대)은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 심판하러 같이오셔서 천년왕국에서 왕노릇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천년 왕국이 지나면 그 때 부활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천년 후천년 그리고 무천년 은 논하지마시고 성경에서 있는 그대로 그리고 보호처라고 하는 곳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은혜받고 갑니다. 스크랩도 해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