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동
1899년 당시 부평군 마장면(馬場面) 효성리(曉星里) 지역이다. 효성리는 옛부터 ‘새별이’라고 불리어왔는데, 이 지역은 수원(水源)이 없는 척박한 지역으로 온통 억새풀 만이 무성한 벌판이기에 ‘새풀’이라 불렀던 것이 후에 ‘새별이’로 변하였다고 한다. 한편 이 지역은 옛부터 말을 먹이던 ‘새벌[草原]’이었는데, 그 어휘가 변하여 ‘새별’이 되었다고 한다. 하여간 ‘새별이’(또는 ‘새별’)를 한자화하면서 ‘샛별’로 잘못 알고 효성(曉星)으로 쓰게 된 것이다. 1914년 부천군 부내면 효성리(曉星里)가 되었다가 1940년 인천부에 편입되어 일본식 명칭인 서정(曙町)이 되었다. 광복 이후 1946년에 본 이름을 되찾아 효성동이라 하였다.
서정(曙町)
서정은 효성리와 같이 샛별마을을 뜻한다.
김촌(金村)
이촌(李村) 남쪽의 벌판 마을로 안동김씨(安東金氏)가 모여 살아서 ‘김촌’·‘김촌말’이라 하였으며, 효성리의 아래에 있었기에 ‘아랫말’이라고도 하였다.
되내미마을
되내미고개[升峴] 근처에 생긴 마을이기에 ‘되내미마을’이라 하였다.
이촌(李村)
중구봉(重九峯) 남록의 동쪽 마을로 전주이씨(全州李氏)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가 많이 살고 있어 ‘이촌’ 또는 ‘이촌말’이라 하였고, 또 산밑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안말’이라고도 하였다.
임촌(任村)
중구봉 남록의 서쪽 마을로 풍천임씨(豊川任氏)가 많이 모여 살고 있어 ‘임촌’·’임촌말’이라 하였고, 효성리의 서쪽 너머에 있었기에 ‘넘말’이라고도 하였다.
중구봉(重九峯)
철마산과 계양산 사이에 있는 산으로 고려시대에 불교의 중구절(重九節; 9월 9일) 행사를 치룬 산이라하여 생긴 이름이라 전하고 있다. 또 크고 작은 봉우리가 아홉 개가 있어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한편 계양산과 중구봉 사이에 서곶으로 넘어가는 ‘징맹이고개[景明峴]’가 있어 일명 경명산이라 한다.
길마재[鞍峴]
중구봉을 남쪽에서 바라보면 봉우리 두 개가 마치 길마[말 안장; 안·鞍]처럼 보인다고하여 ‘길마재’ 또는 ‘길마재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 고개를 ‘되내미고개’라고도 부르고 있다.
은골[銀谷]
한말 때 이곳에서 은(銀)이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효성중학교 뒤편 골짜기를 말한다.
황쇠들[黃牛野]
김촌 북쪽에 있었던 들로 황새들이 많이 서식하여 ‘황새들’이라 하였던 것이 후에 ‘황쇠들’로 변음되어 한자로 ‘황우야(黃牛野)’가 된 것이다.
안하지(雁下池) 마을
옛 산중 마을로 이곳에서 살면 모든 것이 고요하고 살기 좋다고 하여 ‘안화지(安和地)’라 하였다고 한다. 또 ‘안하지(雁下池)’·[內河池]·‘안아지(安阿只)’ 등으로도 불렸는데, 안하지(雁下池)는 이곳에 기러기[雁]가 많이 내려[下]와 앉은 연못[池]이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며, 안하지[內河池]는 조선시대의 권신 김안로(金安老)가 경인운하를 굴포(掘浦)할 때 이곳에 있던 고개[안하지고개]를 뚫으려고 고개 밑에 연못을 만들어 ‘內河池’라 한데서 생겼다는 이름이라 전한다.
안하지고개
‘구십현(九十峴)’이라고도 한다. 이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새 도읍지를 물색할 때 부평의 골짜기의 수를 세었는데, 이 안하지 골짜기가 아흔번째가 되었기에 구십현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세미(稅米)를 서울로 운반할 때 이 고개를 통과하였는데, 이 고개에 안아지(安阿只)라는 주모가 운영하는 주막이 있었기에 그녀의 이름을 따서 불렀다고도 전한다.
안하지골
철마산 동쪽에 있는 깊은 골짜기로 청천(淸川)의 발원지이다. 이 골짜기는 도둑의 소굴로 ‘도둑굴’이라 불렀는데 조선조 말기 이 곳을 본거지로 신출귀몰한 도둑의 두목이 있어 행인들을 몹시 괴롭혔다. 고종 22년 정병하(鄭秉夏)가 당진현감에서 부평부사로 승진되어 와서 이 도적떼를 소탕시켰다 한다. 일제 때에는 일본군 포병대가 병참(兵站)에서 이 깊은 골짜기에 대포를 쏘아 연습하던 곳이기도 하다.
철마산(鐵馬山)
산 중턱에 말 발자국과 같은 모양이 파진 큰 바위[일명 마제석·馬蹄石]가 있는데, 이에는 아기장사의 탄생과 용마(龍馬)·천마(天馬)의 승천 전설이 있어 이 산을 천마가 출몰했다는 ‘천마산(天馬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천마산이 후에 변음되어 ‘철마산(鐵馬山)’이 되었다.
신선번덩이[神仙坪]
옛날에 신선이 내려왔다고 해서 ‘신선번덩이’ 또는 ‘신선번뎅이’라 불렀다고 한다.
(퍼온 글)
첫댓글 효성동 이름의 새로운 의미를 알게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그렇군요 ! 새로운 것을 알았습니다. "효성동" 참 정겨운 이름입니다.
내가 살고있는 이땅의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 지명의 의미를 알게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나지길로 알고 있었는데~효성동 살면서도 그냥 지나쳤는데..유익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설명을 듣고나니 이해가 가네요.
효성동의 뜻이 참 다양하네요,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
원래가 척박한 땅이었군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