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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난 잘못하지 않았어.
[일주일 전]
주리에게 이별통보를 받고, 아픈 마음을 위로받을 상대가 필요했던 해율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허윤에게 전화를 건다. 얼마동안의 통화연결음이 들리고, 허윤이 전화를 받는다.
“연애하느라 바쁘신 기해율씨가 어쩐 일이래?”
“나와.”
“다짜고짜?”
“나 좀 만나주라. 안 그럼 나 오늘 무슨 일 날 것 같거든.”
“무슨 일 있어?”
“일단 나와. 나 좀 만나줘.”
풀이 팍 죽은 해율이 허윤의 집을 찾았다. 같이 있던 주니가 현관문을 열어주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는 해율을 보고 가벼운 일은 아니겠구나 싶은 허윤이 말없이 일단 해율을 맞는다. 식탁에 마주하고 앉은 셋.
“말해봐. 뭔 일이야?”
“헤어지재.”
“주리씨가?”
“...응.”
“갑자기 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랑 여행 다녀온다 하지 않았어?”
“그게... 하...”
해율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주리에게 전해 받은 사진을 허윤에게 내보인다. 사진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허윤의 연인 주니와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한 반응으로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는 허윤.
“복우리 짓이지?”
“.......”
“알았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말투로 해율에게 건네는 허윤의 한마디는 단호했다. 마치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런 허윤을 바라보고 있는 주니는 걱정스런 표정을 감출 수 없다. 허윤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 * * * *
신기하게도 해율과 헤어지고 허윤의 눈에 단 한 번도 띤 적이 없는 복우리가 오늘 우연하게도 동네 편의점 근처에서 허윤의 시야에 딱 띠고 만다.
“어이! 거기 좀 서지?!”
낯이 익는 목소리에 가려던 발걸음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멈춰 서진 우리. 성큼 성큼 넓은 보폭으로 우리에게 다가서는 트레이닝 차림의 허윤. 애써 표정을 감추고 있는 우리의 얼굴은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그때도 참 우연스러웠는데, 오늘도 참 우연스럽게 만났네?”
“.......”
“왜 말이 없어? 너 이런 애 아니잖아?!”
“왜, 왜... 무, 무슨 일 땜에 그러는데요?!”
“모르는 거야, 모르는 척 하는 거야? 모르는 거면 넌 미친년이고, 모르는 척 하는 거면 넌 미친 썅 년이야. 어?!”
“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오호~ 내 말이 심해? 그럼 네가 한 짓은?!”
“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네요. 시간 없어서 먼저 가 볼...!”
잽싸게 상황을 모면하려고 발길을 돌리려던 복우리의 속셈을 이미 꿰뚫고 있는 허윤이 손목을 잡아채서 인적이 드문 외진 곳으로 끌고 가는 허윤. 허윤은 충분히 설명할 기회를 복우리에게 줬다고 생각했다. 미안해하는 기색 없이 뻔뻔한 얼굴로 시치미를 떼는 그 얼굴에 더 이상 화를 참을 수가 없었고, 사람 오가는 곳에서 할 얘기는 아니다 싶어 자리를 옮긴 것이다.
“아후, 아파라.”
“아파? 왜 아파?”
“네?!”
“이걸 보고도 계속 그렇게 시치미를 뗄 수 있을까?!”
복우리 앞으로 지난 밤 해율이 보였던 사진을 휴대폰 화면에 띄우는 허윤. 사진을 보고 복우리는 기겁을 한다. 그리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친다. 그런 복우리의 꼼수를 이미 다 알고 있는 허윤은 두 손목을 엇갈려 맞잡고, 건물 벽에 힘을 줘 세워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복우리를 보며 휴대폰으로 112를 누른다.
“네, 112센터입니다.”
“여보세요. 여기.!”
허윤이 전화를 하던 틈을 타서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트리게 몸으로 밀친 후, 걸려있던 통화 종료버튼을 누르고, 꽁지 빠지게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뛰어 가는 복우리. 순간의 찰나로 인해 복우리를 놓치자 분을 삭이지 못한다.
* * * * *
“어휴, 미친 놈. 큰일날뻔 했네. 헉헉...”
한참을 달려 도망친 복우리가 도착한 카페.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표정관리를 하며 환하게 웃어 보이며 마주한 상대는 다름 아닌 승재였다. 이전에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마주하고 있는 승재가 낯선 우리.
“어쩐 일이야? 먼저 보자고 연락을 다하고?”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어떤...?”
“왜 그랬어?”
“아니,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뭘 왜 그랬냐는 건데?!”
“그래, 순순히 네 입으로 말할 거란 기대는 안했어. 사진.”
“아, 진짜... 오늘 일진 진짜 더럽네. 너도 그거 때문에 보자고 한 거야?”
“뭐? 야 복우리.”
“그 사진 뭐. 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복우리의 태도에 순간 할 말을 잃은 승재. 하지만 주리를 위해서 자신이 도울 수 있는 한 도와야겠다 생각했기 때문에 차근차근 우리를 추긍하듯 묻는다.
“그래서 넌 잘못한 게 없다?!”
“그래, 해율오빠가 먼저 날 침실로 유인했어. 그리고 합의하에 그런 사진 찍었던 거고.”
“복우리, 너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만일 그게 거짓이면 너 이거 범죄야.”
“그, 그... 러엄!”
“알았어. 그만 가볼게.”
승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갔고, 그 뒤를 한참 바라보던 복우리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증거 없잖아. 그래 난 죄짓지 않았어. 그 사진도 합의하에 그런 거라면 문제될 수 없어. 맞아. 맞는 거야. 아니라도 맞게 하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