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의 관문이요 교통의 요지로 중요한 곳이어서 나그네의 어렸을적부터 삼거리 중앙에 검문소가 있다.
김제 만경으로 향하는 방향표시대로 딸아가다보면
남우 내상리 거쳐 상리가 나온다.
길을 따라가다보면 수로를 건너가는 다리와 상리 방향으로 물을 보내는 농수로 수문이 있는데
빨래하는 여자들과 낚씨하는 남자들이 자주 보였었다.
다리 근처에 사는 하관윤(30) 친구가 함께 운동하자고 하여 여름 방학 때 밤마다 둑을따라 달리기를 하던 생각도 났다.
대똘로 부르던 이 곳에서 여름철이면 초등학교 어린이(낮)로부터 어른(밤)에 이르기까지 물놀이를 즐겼으며 수영을 배우는 수영장 역할도 했었지~..
장마비가 그친 날에는 수문 밖에서 많은 청년들과 어린이까지 몰려들어 고기잡느라고 법석이었고...
大野 들은 글자의 뜻대로 크고 넓은 들이다.
호남평야의 금만경 평야지에 들어서는 곳으로 논과 들 마을에서는 작은 돌멩이 하나 찾아보기 힘든 비옥한 땅이다.
군산시와 익산시가 가깝고 김제로 통하는 도로가 있어서 벼 저장 창고나 정미소가 일찍부터 있어온 상리 마을이 대야들의 중심에 큰 마을로 자리잡고 있다.
상리 마을은 오래된 역사를 알려라도 주는 듯 새로 지은 집들도 많지만 옛날을 떠올리게하는 오래된 골목으로 보이는 곳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나그네 초등학교 2학년 때 여름과 함께 닥친 6.25 전쟁 중에 지경(대야) 폭격 소문이 있었고 어린나그네는 장사 다니시던 어머니를 하루종일 따라다니던 생각이 났다. 대야가 폭격을 당한다면 홀로 집에 두고 온 아들에 대한 염려가 크신 어머니의 염려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상리 마을은 크게 알려진 이름처럼 아직도 기억되는 이름들이 너무 많고 서울에서도 일찍부터 상리회가 조직되어서 해마다 큰 행사모임을 갖기도 했다.
나그네의 동기 이한주(30)가 그 모임일을 많이 해왔었고 대야향우회 초기에 원로 회장 고 최봉환 선배님이 계셨다.
얼른 떠오르는 이름만 해도 이남수(29)최창훈(33)서주원(35) 서윤원(38)이강석(38)김효숙(39)등등 활동중인 향우회를 중심으로 떠오른 이름들이다.
마을 남쪽 떨어진 곳에는 우리들 시대에는 없었던 대야초등학교 분교인 대야남초등학교가 있다.
김제 방향으로 가는 큰 도로를 건너가서 만경강변 둑 아래 편으로 잘 정돈되어 보이는신촌마을에도 가보았다.
우리 대야향우회(재경대야초등총동문회) 인터넷 카페의 운영자로 일하는 정영례(42)회원이 사는 마을로 그 때 마침 다리 밑에서 동네사람들과 윷놀이를 하고 있던 영례님 오빠 정경남(30)친구와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만경강 구 다리..
대야 군산에서 만경 김제 부안 방면으로 가는 도로는 만경강 다리를 건너서 간다.
곡창 지대의 쌀 운반을 위하여 일제 통치시절부터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었지만, 6.25 전쟁 때에는 미군 폭격기에 의해서 다리가 끊어지기도 했었다.
대야 뒷산에 올라서서 몸까지 진동하는 듯한 폭음 소리와 함께 바라볼 수 있었던 비행기(B24폭격기 24대) 폭격으로 다리가 폭파 당하는 모습을 오늘날 에어쇼보다 실감나게 바라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지금은 새로운 다리가 놓여져서 차들이 다니지만 걸어가는 사람들은 옛 다리를 걸어서 건넨다.
나그네도 혼자서 건너편의 김제군 청하면까지 걸어갔다가 건너왔다.
새만금 사업으로인하여 서해 바다로부터 밀물로 올라오는 바닷물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어서 상류로부터 흘러내리는 민물만을 만경강 하구로 흘려보낸다고 했다.
강물이 흐르는 폭은 훨씬 줄어들어서 어린 시절에 게잡으러 다니던 갯벌에는 밭농작물이 자라면서 자리를 넓혀가고 있었다.
어업에 종사하던 가정은 보상은 받았지만 강가에 매어놓은 배들은 종일 할 일 없이 흔들거리면서 어쩌다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추억속의 그림으로 옛날들을 속삭임으로 말해주는 듯 하였다.
첫댓글 구석구석 자세히도 돌아보셨네요... 여기사는 저희들이 올렸으면 좋았을텐데 저희는 고향 그리운 줄 잘 모른다니까요...고향을 사랑하는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햐!!!! 감회가 새롭네요 고향에가도 이렇게 다돌아보지 못하는데 선배님 우찌 섬세하게도 담아오셨어요.. 고향 애 ( 愛.) 가 와 닿네요..고마워요
오라버니와 동네 마을 사람들 윷놀이에 바쁘더군요..특히 그 곳에서만은 영례후배님과 같이 걸어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