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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율려, 천지조화 태을주 수행
<<<수행의 필연성 >>> 그런데 혼백은 천지의 영적 요소의 용用으로, 그 바탕 체體는 정精과 신神이다. 종으로 아래쪽에서는 정이 작용하고 위쪽에서는 신이 작용한다. 두 콩팥 사이에 있는, 내 생명의 근원적인 힘이 동하는 이 곳을 흔히 한의학에서 ‘신간동기腎間動氣’라고 한다. 감수성이 열리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하트 차크라(heart chakra), 곧 만물의 순수성, 생명성을 느끼고 들을 수 있는 귀와 눈이 열리기 시작한단 말이다.
음적인 것이 하단전 정이고, 양적인 게 상단전 신이다. 정은 내 몸의 땅이고 신은 내 몸의 하늘이다. 내 몸의 하늘과 땅이 위아래로 있다. 얼마 있다가 그 영체도 소멸한다. 그러므로 자연이 구성해준 내 정과 신을 뒤집어야 한다. 내 생명의 바탕인 천지비天地否 괘상을 뒤집어 지천태地天泰 괘가 될 때, 내 영혼이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사는 불멸의 생명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이 왜 수도를 해야 되느냐 하는, 수행의 필연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아무리 “주문을 읽어라. 앞으로 개벽할 때 태을주 안 읽으면 다 죽는다더라. 이게 상제님 말씀이라더라. 그게 천지공사의 결론이다.” 이렇게 얘기해 줘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상제님 진리의 틀을 보면, 도를 닦지 않으면 그 정혼이 흩어져서 영원히 멸망당한다. 아, 내 생명이 어느 날 병들어 시들부들하면서 죽으려고 헐떡거리는 것보다 더 허망한 일이 어디 있는가. 사람은 건강해서 소주 한두 병씩 먹고 양주를 물처럼 마실 때는 생명의 본성에 대해, 내 몸 속에 깃들어 있는 우주의 비밀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이 병들거나 가족이 불의의 사고로 죽어서, 어떻게 헤어날 수 없는 큰 고통을 겪게 되면, 의식이 일순간에 뒤집어진다.
" 태을주: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
하늘 아래의 모든 공부를 합한, 공부의 열매를 딸 수 있는 게 태을주 공부다. 태을주를 잘 읽으면,
첫째로 혼이 밝아진다. 하지만 실제로 태을주를 읽어보면 ‘아, 수도라는 게 이런 거로구나’ 하는 걸 곧바로 깨닫는다. 태을주 읽고 체험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게, 태을주 읽는 법을 바르게 알고 잘 읽으면, 영이 밝아진다는 것이다. 사람은 우주로부터 분리되는 순간, 어둠의 세력에 묶여 버렸다. 해서 빛의 세계를 갈 수가 없다. 태을주 수행을 통해 본래의 나를 회복하고 나의 근본, 나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날 불교의 도통의 역사, 도교의 깨달음의 역사, 기독교의 하나님의 역사 등 모든 문제의 결론에 다다른다.
태을주 속에 동서문화의 깨달음의 열매가 다 들어있다. 가을철에는 태을천에 들어가 태을천 기운을 받아야 인간 생명이 완성된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달라스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곳으로 유명하다. 그 때 달라스도장을 세운 웨인 신도가 바로 이 태을주 문제를 질문한다.
그러고 강연회 때, 달라스도장에 있는 미국 신도들 여러 명이 둘러앉아 질문을 하는데, 한 남성이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 미국이란 나라가 세계 인종이 모인 곳 아닌가. 그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데, 그 내용이 우리 한국신도들이 궁금히 여기고 있는 생각과 똑같다. 도교의 경전을 『도장道藏』이라고 하는데, 그 책 내용을 보면 거의 대세가 신의 세계에 대한 얘기다. 헌데 그 신도 세계의 뿌리가 누구냐 하면, 태을천 상원군님이다. 또 불교도 그 결론이 태을주의 한 글자, ‘훔’이다, 훔! 이 대우주가 열린 생명의 조화 경계를 보는데, 바로 그것을 상징해서 ‘훔’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디팍 차프라(Deepak Chopra)라고 하는 인도출신의 의사가 있는데, 그는 수행문화를 사람의 영성 개발 쪽으로 이끌어감으로써 미국에서 크게 존경받는 사람이 됐다. 헌데 그가 ‘훔’소리를 암세포에 들려주었더니 암세포가 뻥뻥 터지더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강의한 『양자치료법(Quantum Healing)』 이란 테이프에 그 얘기가 나온다. ‘훔’ 소리에 암세포가 터진다. 왜일까? ‘훔’은 이 우주 만유의 모든 소리의 근원이며, 모든 소리를 낳는 모체다. 모든 소리를 머금고 있는 소리다. 그러면 ‘훔치훔치’는 무슨 뜻인가? ‘훔’은 인간과 천지 만물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의 조화자리다.
그리고 ‘치’는 “내가 그 조화자리와 영원히 떨어지지 않고 하나가 된다.” 곧, ‘대정불변야大定不變也. 크게 정해서(굳혀서) 변치 않는다’는 뜻이다.
이렇듯 ‘훔과 치’에는 ‘천지만물의 근원 신성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훔치훔치~’는 상제님 말씀대로 천지부모를 찾는 소리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도통한 사람들이 써 놓은 비결에 “낙반사유落盤四乳”라는 말이 있다. ‘낙반, 즉 저런 큰 바위가 무너져도 사유, 곧 네 젖꼭지를 빨면 산다’는 뜻인데,
네 젖꼭지는 ‘훔치훔치’를 말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훔치훔치 네 젖꼭지를 빨면 산다’는 뜻이다.
여기서 하늘이 무너진다는 건, 하늘땅이 부서진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천지 질서가 바뀌면서 오는 엄청난 충격을 말한다.
즉 그런 천지의 대변혁기에도
이 네 젖꼭지를 빨면 절대로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고 해서 ‘낙반사유’라고 하는 것이다.
왜 태을주를 읽어야 하는가? 봄에 태어나는 것은 여름철에 성장하기 위해 존재하고, 봄여름의 모든 생장과정이란 가을에 오직 열매 하나 맺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따라서 만일 가을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내 생명이 성숙하여 여물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이 가을 천지의 숙살기운을 받아 영원히 사멸된다면, 지난 봄여름 수천 수만 년 동안 윤회하면서 이뤄놓은 모든 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그러니 어찌 보면 지금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어떤 자리에 앉았든 진정으로 성공한 게 아니다. 가을 천지의 열매가 돼야, 비로소 성공하는 앉을 자리가 정해진다.
태을주를 읽으면
첫째, 영이 밝아진다. 인간 몸이 영원히 살려면 어두운 음기운을 몰아내고 내면의 영적 공간을 밝은 양기운으로 채워야 된다. 태을주는 정성을 다하여, 성경신으로 읽어야 한다.
주문 읽는 데는 어떤 공식이 없다. 오직 참마음으로 읽으면 된다. “훔치훔치 태을천 상원군~” 이렇게 진실된 마음으로 읽으면, 20대 초에는 한 5분이면 밝아진다. 내가 읽어본 경험으로 보면 그렇다 나는 그 때 잠자기 전에도 주문 읽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읽었다. 잠이 안 오면 새벽 두세 시에도 일어나 어두운 데 앉아서 주문을 읽었다. 그러면 마치 불 켜 놓은 것처럼 눈앞이 환히 밝아진다. 영이 밝아지는 것이다. 둘째, 태을주를 읽으면 어떤 재난과 사고가 일어나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 태을주의 태을천 상원군님은, 예로부터 도가에서 구고천존救苦天尊이라고 했다. 인간의 고통을 건져주는 가장 존귀한 천상의 지존이란 뜻이다. 가을개벽의 정신은 원시반본이다. 초목도 가을이 되면 뿌리로 돌아간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을 원시반본이라고 한다. 이 때는 원시반본하는 생명만 열매종자가 되어 살아남는 것이다. 내 생명이 원시반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태을주를 읽고 상원군님을 찾아야 한다.
왜 그런가? 인간의 도, 인류사에 있어 깨달음의 역사의 뿌리, 그 첫 시조가 바로 상원군님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첫 조상은 아담과 이브가 아니다. 동양사람이 됐든 서양사람이 됐든, 흑인종이든 백인종이든 황인종이든, 모든 인류의 시조는 태을천 상원군님이다.
도가道家에서는 북녘하늘에 있는 북극성에 태을천太乙天이 있다고 한다. 모든 별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해서 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가 음양적으로 상제님과 상원군님을 함께 모시는 것이다.
상제님은 우주의 주신主神이며, 우주의 조화옹 하나님이다. “나는 예의상 둘째가 될 수 없다.”고 하신 상제님 말씀 그대로, 이 우주에 상제님보다 더 높은 분은 없다. 그런데 상원군님이 상제님보다 더 근원이 되고 뿌리가 되는 분이다. 그래서 상제님이 “나보다 더 높은 양반이다.”라고 존경해 주신 것이다.
태을주 읽을 때, 맨 앞의 ‘훔치훔치’는 천지부모를 찾는 소리, 곧 태을천 상원군님을 찾는 소리이기 때문에 떼어 읽으면 안 된다. 그 다음 ‘태을천 상원군’은 석 자씩 떼어 읽어야 한다.
내가 천지와 같은 영원한 생명체가 된다. 시간이 없어서 율려도수에 대해 상세한 얘기는 못 하고 하나만 얘기한다. 그래서 인간이 천지와 같은 본래의 생명력을 회복하려면, 천지의 율려수를 되찾아야 한다. 인간은 어머니 뱃속을 거쳐 나오는 과정에서 유한한 율려수를 갖게 되었다.
그러면 율려란 무엇인가? 천지의 음양의 순수정신! 그런데 상제님께서 “태을주에는 율려도수가 붙어있느니라.”고 밝혀 주셨다. 그래서 태을주를 잘 읽으면 만병이 물러간다. 만병통치 태을주다. 그리하여 상제님 말씀대로 태을주는 여의주如意珠다. 내 머릿속에서 나쁜 기운, 어두운 기운, 자살하고 싶은 기운, 우울한 기운, 주변의 일체 마장魔障이 말끔히 거두어진다.
태을주를 잘 읽으면 초기에는 우주의 아름다운 바다, 히말라야산보다 더 멋진 산의 실상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산의 나무들이 서로 말하는 게 들린다. 또 그 위에 바위가 앉아 수도하는 신령한 모습이 보인다. 곧 천지만물의 생명의 본성이 보인단 말이다.
불가에서는 수도를 통해 자기 마음의 체를 닦지만, 태을주를 읽으면 우주만물의 개체 속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본성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무궁한 태을주의 조화, 주문 읽을 때는 허리 딱 펴고 눈 지그시 감고 아래턱을 약간 숙인 채, 내면을 향해 읽으면 된다.
자, 다 같이 읽어보자. “훔치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주문은 큰 소리로 읽기도 하고, 잡념이 들 때는 소리에 집중해서 읽으면 잡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정성스런 주문소리에는 천지가 감응한다. 천지는 신이다. 천지 자체가 살아있는 신이기 때문에, 천지가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행동을 그대로 다 보고, 우리 인간 삶의 전 과정을 다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상제님 태모님께서 “천지를 너희 부모 섬기듯 하라.”고 하신 것이다. 밥 먹으면서 기도할 때나, 청수 떠놓고 기도할 때, 상제님 태모님과 함께 천지에 대한 기도를 한다. 밤에 자다가도 참된 마음을 갖고 잘못된 걸 뉘우치면, 순간 막이 열리는 것처럼 천지가 밝게 열린다. 그리고 천지의 심정과 천지의 뜻이 내 몸에 그대로 내려온다. 그건 마치 맑은 비가 온몸에 내리는 것과 같다. 상제님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올 때, 천지에서 그렇게 일러주는 것이다. 태을주를 잘 읽으면 그런 체험을 많이 하게 된다. 태을주의 조화라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 사실 선천에는 성자들 정도의 경계를 가야 태을주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인간의 마음자리, 신명을 전격적으로 열어놓는 가을개벽기다. 그래서 상제님이 태을천 상원군님의 무궁한 조화의 도를 받아 우리의 영이 천지처럼 밝아지도록, 전 인류에게 태을주라는 무궁한 축복의 선물을 내려주셨다. 태을주를 읽으면 “이 우주라는 건 다 신이구나. 다 살아있구나.” 이것을 알게 된다.
주문 읽을 땐, 소리를 내서 읽기도 하고, 작은 소리로 읽기도 하고, 남이 잠들었을 때나 공공 지역에서는 입을 꽉 다물고 마음으로 읽는다. 그러면 ‘마음이라는 게 뭔가? 일심 경계가 뭔가? 심지心志라는 게 뭔가?’ 이에 대해 스스로 깨달아지는 게 있다.
<<<태을주가 기성종교 수행법과 다른 점>>>
태을주: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1. 태을주는 동서양 수행 문화의 뿌리
태을주를 아는 사람, 태을을 아는 사람은 문화를 아는 사람이다. 수행 문화의 뿌리와 과정을 제대로 짚을 줄 아는 사람이다. 증산도의 태을주는 상제님이 주신 태을주는 예전의 무슨 반야심경이라든가 무슨 단전호흡은 예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수많은 주문 만트라가 있는데 그것과는 왜 다르냐!
그것은 태을천 상원군님이 인간의 그 깨달음의 역사, 수행의 역사, 도통의 역사에서 근원이 되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번 가을개벽기는 우주의 가을 정신이 원시로 반본, 근원으로 돌아가는 때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수행, 우리들의 이 도의 의식이라는 것도 그 근원에 계시는 태을천 상원군님을 만나야 우주의 가을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 이외에는 전부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건 단전호흡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기도로 되는 것이 아니다. 동양문화라는 것은 유교의 근원, 불교의 근원, 선가의 근원이라는 게 '태을사상'이다. 그래서 태을은 불과 선의 뿌리이다. 선불지도다 이런 얘기를 했다.
2. 태을주를 통해 인간이 성숙하고 우주의 목적을 실현한다.
이것이 무슨 소리냐. 인간은 천지창조의 목적을 완성하는 자다.
인간의 삶은 그 사명이 너무도 지고한 것이다. 우주의 뜻을 이뤄야 한다. 그것이 우주의 가을이다. 가을 문화를 여는 것. 그것은 인간의 잔머리나 기존 문화로 되는 게 아니다. 이때는 우주의 질서 즉 틀이 바뀌기 때문에, 우주에서 가장 높으신 지존자 상제님이 인간 역사에 개입을 하는 때다. 인간 역사에 직접 내려와서 인간이 되어서 인간의 자리에서 이 우주를 바로잡는다. 이것을 인존시대라고 한다.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 인존시대다.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우주의 하추교역기에는 상제님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다. 그것이 모든 종교의 깨달음의 결론이다. 상제님의 도를 만나서 체험하는 것. 그것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한다. 나의 생명이 가을의 생명으로 태어나고 신도가 열려 진리를 체득하는 것은 태을주를 통해 이루어진다.
<<< 태을주 정신과 공부법>>>
1. 태을주의 정신
태을주의 세계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바로 이 주문을 앞으로 오는 대개벽기에 전 인류를 죽이고 살리는 문제로써 말씀하신 증산 상제님을 알아야 된다. 상제님을 깊이 깊이 알면 알수록 태을주의 수행 세계에 대해서, 태을주의 도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상제님께서는 사람이 도를 닦지 않으면 그 정혼이 해체되어 그 사람의 신명이 천상에 올라가서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하셨다. 도를 닦는 자는 정혼이 굳게 뭉쳐서 천상에 올라가서도 영원히 그 신명이 흩어지질 않는다 하셨다. 사람은 죽은 뒤에도 하늘에 올라가 계속 공부를 한다. 천상에 가면 자신의 선영신을 만나고 그들과 더불어 공부를 계속한다. 배운다는 것, 깨닫는다는 것 이것이 인간 삶의 궁극 과업이다. 나의 생명을 영원히 존재하는 이 우주와 함께 조화를 시키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이다.
2. 태을주의 공부법 상제님께서 이 공부법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셨냐 하면, 올바른 공부방법을 모르고 시작하면 난법의 구렁텅이에 빠진다고 하셨다. 수행 공부를 하려면 공부하는 법에 대해서 가장 확실한 생명력 있는 공부법을 취해야 된다는 것이다.
1) 빛과 소리로 구성된 우주 이 우주는 빛과 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만물은 빛과 소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우주는 음양 양면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 몸에서 수행을 할 때 나타나는 수승화강 현상이다. 하단전에 있는 신장의 정수가 내 머리로 오르고 내 머리 상단전에 있는 불기운이 몸 아래로 내려온다. 그때 나타나는 것이 뭐냐 하면 귀가 밝아지고 눈이 밝아지는 현상이다. 동시에 신의 세계에 대한 생명의 빛이 보이고, 그 생명의 소리가 들리게 된다.
2) 하단전의 정精 관리 우리 몸에는 에너지의 중심처로서 생명밭이 있는데 배꼽 아래는 하단전, 가슴에 중단전, 머리쪽에 신이 자리잡고 있는 신단 상단전 그것이다. 정단과 기단 신단 삼단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생명의 동력원이 하단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을 할 때는 가장 중요한 게 뭐냐. 하단전의 정이다. 내 몸의 생명의 근원, 내 몸의 모든 생명의 자산, 내 몸의 모든 생명력의 동력의 근원인 정에서 신이 열리는 것이다. 내 몸의 하단전에 있는 정을 어떻게 쓰느냐는 것이 수행의 가장 밑거름이며 수행이 성공하는 관건이고 열쇠고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몸 관리를 안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도구로써 수행을 한다는 것은 기만에 불과하다.
3) 주문을 읽을 때는 고저 청탁의 리듬을 잘 맞춰 읽어야 주문을 읽는데는 고저 청탁의 곡조가 있나니 주문 소리가 너무 유치하면 천상에 있는 신명들이 웃는다. 손가락질을 한다. 주문을 읽을 때는 곡조 리듬을 잘 맞춰서 읽어야 된다.
4) 상원군님과 상제님을 알아야 태을주의 비밀을 안다 태을천 상원군님에서 상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높다는 뜻이고 이 원군을 알아야 된다. 모든 인간과 이 우주 생명의 근원이 되는 바탕자리, 원이 으뜸이다, 근원이다, 첫 머리가 가장 지극하다. 그래서 이 원군, 상원군님이 동서양의 인류의 원 조상이 된다. 상원군님이 동서 인류의 원 조상이 되면서 모든 깨달음, 도통을 열어주는 도신의 뿌리가 된다.
이 상원군님이 태을천에 계신데, 바로 이 우주 도의 비밀이 증산도에서 처음 제기 되고 있는 것이다. 상제님에 의해서. 그러니까 상제님을 알아야 태을주의 비밀을 알며, 태을주의 신비와 비밀은 상제님 세계를 알아야 된다
태을주 수행과 마음을 닦는 것의 의미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허리를 반듯하게 펴야 된다는 것이다.
왜 허리를 꼭 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태을주와 율려도수에 있다. 천지의 조화세계를 율려라고 한다. 율려는 우주의 무궁한 조화가 일어나는 바탕자리다. 그것이 곧 태을주의 태을세계다. 율려는 사정위四正位에 바르게 서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세를 바르게 할 때, 생명이 가장 안정되고 편안해진다. 허리가 굽는다든지 삐뚤어진다든지 하면, 생명이 병들기 시작한다. 추나요법을 주장하는 이들은 “모든 인간의 병은 허리가 반듯하지 못해서 오는 것이다.”라고 매섭게 지적한다. 수행할 때는, 척추를 바로 세우고 자연스럽게 온몸의 힘을 빼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 의식을 집중한다. 모든 생각을 떨구고 내면의 세계로 마음을 보낸다. 상제님 진리를 접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다가오는 가을 대개벽 문화에 대해 눈 뜨면서, 태을주 체험을 한 일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행에 관련된 크고 작은 의문이 솟구쳐 올라, 태을주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많이 던지고 있다. 또한 일꾼들은 수행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영적 현상들에 대해, 진정한 깨달음에 대해, 나아가 앞으로 오는 대우주의 개벽현상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경험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싶어한다. 오늘은 태을주를 중심으로 해서, 이 모든 걸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겠다.
율려란 무엇인가? 우주 만물은 천지의 음양의 변화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그 음양의 변화를 다른 말로 동정動靜이라고 하는데, 동정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율동律動과 여정呂靜이다. 본래 율려는 천지와 인간, 신명계, 나아가 살아있는 모든 우주만물이 태어나는 생명의 근원, 창조정신의 근원을 말한다. 모든 생명은 이 율려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다. 즉 만물이 살아 움직이도록 양의 운동을 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 律이고, 휴식하여 생명의 수렴운동을 하게 하는 것이 呂다. 율려는 천지의 순수 음양, 천지의 조화정신이다. 이 율려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태을주의 태을이다. 왜 율려가 태을이 되는가? 본래 태을은 철학적으로 태일이라고 한다. 하늘이 생겨난 자리나 땅이 생겨난 자리나 인간이 생겨난 그 조화의 근원은 동일하다. 그것을 ‘근원’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 ‘일’ 자를 붙여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 이라고 한다. 곧 ‘하늘과 땅과 인간이 생겨난 바탕은 하나’라는 의미로 일 자를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천지의 열매로서 천지의 이상을 성취하는 주역이다. 그래서 인일이라고 하지 않고 태일이라고 한다. 따라서 태일은 천지의 주인인 인간 생명의 근원자리를 말하는 것이면서, 실제로는 천지와 인간과 신명이 태어난 본래 생명의 근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태일을 영적, 신도적인 경계로 말할 때 태을이라고 한다. 콩깍지를 열어보면, 거기에 새 을乙 자처럼 생긴 콩의 싹, 생명의 핵이 있잖은가. 곧 생명이 처음 태생되어 일어나는 근원, 그 핵을 태을이라고 한다. 을이란 본래 동방의 만물탄생 기운인 ‘갑甲·을乙’ 가운데 을을 말하는 것이다. 을은 만물을 낳는 창조의 음기운을 상징한다! 따라서 태을은 천지자연과 인간과 신명이 태어난 근원인 우주의 순수음양 조화기운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율려도수란 무엇인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몸이 지닌 율려는, 천지의 조화 율려와 일체가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천지의 율려에 미치지 못하는 율려 도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천지정신과 인간정신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모든 만물은 천지의 순수 조화정신과 온전히 하나가 될 때,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 따라서 상제님 율려도수에는 인간의 몸 속에 천지의 조화력을 온전히 회복해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가 담겨있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태을주 공부, 태을주 수행이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마음의 세계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마음이라는 게 실제로 있는 것인가? 우리는 생활 속에서 종종 마음을 언급하고 있다. “난 지금 마음이 언짢아.” “그 사람은 마음이 넓어.” 상제님께서 “대장부는 뒷구멍이 넓어야 된다.”고 하시며, 마음의 변화무쌍한 경계를 여러 번 지적해 주셨다. 그렇다면 마음이 실제로 있는가? 마음은 어떤 실체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몸 속 어디에 마음이 있는가? 머리에 있는가? 심장에 있는가? 마음은 어떤 구체적인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인가? 상제님은 “사람 마음이 천층 만층 구만층이다.”, “마음 얕은 것이 가장 큰 한이 되리라.”고 하신다. 또한 “앞으로는 마음을 완전히 열고 온 우주와 하나된 경계에서 새 역사를 여는 신문명이 태어나는데, 그걸 도술문명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지심대도술’의 세계다.” “백성까지도 제 마음을 다 알아 분수를 넘지 않는다.” 등등 여러 말씀이 있다. “사람 마음이 천층 만층 구만층이다.” 이 말씀은 어떤 열려있는 의식의 경계를 이르는 것이다. 마음은 어떤 실체로서 “꼭 요것이다.”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본래 우주가 태어난 조화세계를 신이다, 도다, 하나님이다, 부처다 등 여러 가지로 얘기한다. 그것을 우리 순수한 한글세계에서는 ‘알’이라고 한다. 태초에 우주가 태어난 생명의 ‘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알’에서 마음이 나왔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아프다.” “내 마음이 기쁘다.” 할 때, '맘'이란 우주가 태어난 생명의 근원자리 '알'에서 왔다. 그러므로 마음은 온 우주가 태어난 생명의 근원이다. 그런데 그 마음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닦는다는 것인가? 닦는다는 것은 이미 더러워진 걸 깨끗하게 씻어낸다는 뜻 아닌가. 우리의 생명을 움직이게 하는, 우리의 생명을 끌고 나가는 주인이 마음이다. 그런데 그 주인의 깨어있는 경계가 시시각각 다르다. 잘 때와 일할 때가 다르고, 무엇에 집중할 때와 흐리멍덩하게 딴 생각할 때가 다르다. 밥 먹으면서 재미있는 뉴스를 듣는다든가 좋은 영화를 본다든가 할 땐, 뭘 먹고 있는지조차도 잊어버린다. 보는 쪽으로만 정신이 가 있기 때문에 감각이 마비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몸 속에서 사물을 느끼고 터득하고, 뭘 배우고 아는 인식 작용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간의 감각 작용은 너무도 변화무쌍하다.
현실의 삶을 바탕으로 마음을 닦아야 이 점 세 개는 유불선이고, 아래로 둥글게 두른 것은 땅이다.”라고 하셨다. 참 멋진 해석이다. 그러니 마음을 닦으려면, 이 땅에서 현실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바탕으로, 불가, 선가, 유가의 가르침을 알아야 된다.
생명, 진리, 깨달음, 고통, 자유, 구원, 그 모든 삶의 궁극적인 명제는 지금, 여기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 곧 인생은 지금 여기서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말이다. 감각에 따른 마음의 작용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말나식 그리고 아뢰야식을 얘기한다. 일반적으로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 오식五識이다.
안식은 눈으로 보고 아는 것이고, 이식은 귀로 들어 아는 것, 비식은 코로 냄새 맡아서 아는 것, 설식은 혓바닥으로 맛을 봐서 아는 것, 신식은 온몸으로 느껴서 아는 것이다.
눈으로 강력한 게 들어오면, 그것이 장애물이 되어 끊임없이 괴롭힌다. 주문 읽을 때 집중 못 하고 자꾸 딴 생각으로 빠져버린다. 신유神癒를 하고 신유를 받아보면 그걸 안다. 가장 큰 문제가 음란한 생각, 음기를 품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무엇을 보되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셨다. 무얼 본 게 마음에 걸려있으면, 마치 오장에 음식이 걸려있는 것과 같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온몸으로 느끼는 안이비설신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사물이 우리 의식에 들어오는데, 그것이 정상적으로 순화되어 내 생명을 기쁘게 하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고, 나를 깨어있게 하고,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게 전부 마장魔障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오식 다음에 의식이 있고, 일곱 번째 마나식이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연결해주는 중간 고리가 마나식이다. 그리고 제8식이 인간의식의 바탕, 생명 의식의 창고 역할을 하는 알라야식이다. 그걸 장식藏識이라고도 하는데, 장이란 저장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우주에서 태어나 살아온 섦의 전 과정이 의식의 바다인 장식(藏識), 무의식에 전부 그대로 기록돼 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수행을 하다보면 어릴 때 생각이 그대로 다 난다. 어릴 때 수행해서 광명통이 터진 사람은, 호연이 상제님과 다니면서 들은 말씀, 본 것을 기억하듯이, 어릴 때 일을 모두 기억한다. 사진이 찍히듯 순수의식에 기록되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비록 어려서 말은 못해도,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문득 자연과 하나가 됐었다면, 그 때의 장면이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 마음 닦는다는 것의 의미 >>> 마음 닦는다는 것은, 첫째 사물에 대한 인식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몸의 기운이 수승화강의 과정을 거쳐 정화된다. 생리학적으로 우리 몸의 기능은 삼초三焦로 나누어진다. 폐, 심장, 머리가 상초上焦이고, 비위 중심의 소화기관이 중초中焦, 방광, 신장 등 배설, 생식하는 기관이 하초下焦다.
즉 상초에는 신神이 작용하고, 하초에는 신이 생성되는 힘의 근원, 내 몸이 생명활동을 하는 에너지의 근원인 정精이 자리잡고 있다. 그게 내 몸 속의 천지다, 정은 곧 땅이요, 신은 곧 하늘이다. 정신! 인간은 몸 속에 하늘과 땅을 지니고 사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우리 몸의 천지기운이 밝아지면, 사람을 바르게 보고, 사물의 내면과 본성을 보기 시작한다. 둘째, 수행을 하면 모든 생명의 본성인 신성(divinity)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마음은 체와 용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체란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 등, 주변의 사물과 관계를 맺고 마음이 작용하기 전 단계, 근원마음이다. 그것을 성, 본성 이라고 한다. “야~, 그래도 걔는 바탕은 착해. 본래 마음은 그런 애가 아니야. 본성은 착해.” 이런 말에서처럼, 본성이란 '본래 성품' 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의 본래 성품은 같은 경계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늘이나, 땅이나, 사람이나, 짐승들이나, 돌멩이나, 흙덩어리나, 흐르는 물이나, 타오르는 불이나, 저 태양과 달, 은하계 별들이나, 그 본성은 모두 똑같다는 말이다. 본성은 열려있는 우주생명 의식이다. 대우주와 완전히 하나가 돼 있는 환한 불덩어리, 그러면서도 아주 시원하고 의식이 평온해지는 대광명의 경계다. 거기 보면 우주 만유가 다 살아 있다. 천지만물과 하나가 된 일심 경계, 그런 절대 평등의 경계, 절대 순수 의식에 돌아가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선후천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이러한 본성에 머무르려면, 그 동안 살아오면서 저지른 모든 죄업을 정화해 나가야 한다. 누군가를 억울하게 했거나 죄를 지었으면, 청수 떠놓고 빌면서 모든 걸 풀어야 한다.
상제님 진리는 해원의 도 아닌가? 해원의 도란 무엇인가? 우주만물의 마음세계를 정화하는 생명정화의 도요, 궁극의 자유의 도다.
상제님의 해원의 도를 통해 상생으로 가는 것이다. 마음 닦는다는 것은, 바로 자기의 죄업을 풀고, 자기의 후천적인 성품 -그걸 기질이라고 하든, 성격이라고 하든, 환경적인 요인 등 여러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형성된 지금의 ‘나’라는 독립된 개체가 갖고 있는 것 - 가운데 문제되는 것을 정화해서, 천지율려의 조화 속에 일체를 이루는 본래의 자기 생명의 모습, 즉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경계를 불가에서는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그 다음, 하나의 개체로서 구체적인 의식활동을 하는 것,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걸 정(情, emotion)이라고 하는데, 마음은 동하기 전의 본래의 근원 모습인 본성과, 구 체적으로 사물에 동화되어 작용할 때의 감정 둘 다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에서는 “심통성정心統性情”, 즉 “마음은 성과 정을 통섭한다.”고 말한다
3) 내 몸의 기운을 정화하여 의식의 경계를 넓히는 것 앞서도 말했듯이, 불가의 유식설에서 말하는 인간의 감정활동에는 오식五識과 의식, 그 다음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해주는 통로로서 제7식 말라식, 그리고 내 생명 의식의 거대한 바다와도 같은 바탕인 장식藏識, 아뢰야식이 있다. 나무로 얘기하면, 잔가지들이 오식(안이비설신)이고, 잔가지들 아래로 뻗은 줄기가 의식, 의식의 줄기와 뿌리를 연결하는 가운데 큰 줄기가 말라식(마나식), 그 다음 뿌리가 아뢰야식(알라야식)이다. 뿌리에서 모든 게 뻗어나가는 것처럼, 인간의 말이나 행동, 습관들은 그 사람이 과거에 행해 온 모든 것이 바탕이 되어, 저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을 닦으려면 자기의 과거 인생사, 더 나아가 전생부터의 어둠까지 모두 씻어내고, 잘못한 것, 죄 지은 것을 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기초 작업에 불과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수행을 통해 내 몸 자체를 정화해서 의식의 경계를 넓혀야 하는 것이다. 수행하려고 눈을 감으면,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안식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또 몇 미터 이상만 떨어져 있어도 소리를 듣지 못한다. 냄새도 일정한 거리 이상이 되면 맡지 못한다. 이것이 보통 세속 중생들의 몸이다. 그런데 수행을 통해 수승화강이 되면서, 내 몸의 음양 기운이 개벽되어 율려도수를 회복하기 시작하면, 혼탁한 음양이 순수음양으로 정화된다.
그렇게 되면, 눈을 감아도 영적인 신도 경계가 환히 보인다. 또 깊은 밤 주문을 읽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귀에서 뚝 소리가 난다. 귓밥이 스스로 파헤쳐져서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또 아주 먼 곳에서부터 소리가 들린다. 히말라야, 알프스 산에 있는 나무들이 바람에 춤추면서 자기들끼리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히말라야, 알프스 산이 여기서 얼마나 먼가.
그뿐이 아니다. 천상 신도세계의 수도원에서 신명들이 주문을 읽으면서 왔다갔다 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수행한다는 것은 바로 내 의식의 경계가 천지의 대생명과 하나가 되어, 내 생명이 온 천지의 생명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체득하게 되는 경계가 있다. 정신이 확 깨져서 수도를 잘 하면, 어느 순간 내 몸이 없어진다. 내 몸뚱아리가 온 우주 생명 자체라는 열려있는 의식의 경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첫 경험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수행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된다.
태을은 율려의 신도적 표현 율려는 만물이 태어나 살아가는 생명 근원의 집, 조화의 집을 말한다. 이 우주는 어떻게 해서 태어나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영원을 향해 지속적으로 순환, 변화해 가는가? 그 조화의 근원이 바로 율려다. 하늘과 땅, 인간과 신명, 모래알 하나까지도 율려 속에서 태어나 율려의 힘을 받아 순간순간 살아간다. 율려는 다른 말로 태을이라고 한다. 곧 천지의 조화정신이 실체로 작용하는 걸 율려라 하고, 신도적 영적 차원에서 태을太乙이라고 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신도적 차원에서 볼 때 이 우주가 33천으로 구성돼 있다고 하셨다. 정미년 음력 12월 25일, 상제님이 이십여 명의 성도들을 데리고 고부 경무청에 들어가 앞으로 선천세상을 마무리짓는 대개벽 공사를 행하실 때, 33천을 말씀하신 것이다. 불가나 도가에서도 33천을 얘기한다. 크게 동서남북 사방위에 여덟 천씩 있다. 그래서 4 곱하기 8 하면 32천이고, 그것을 주재하는 중앙천, 즉 온 우주 하늘을 통치하는 가장 높은 하늘 대라천大羅天이 있다. 큰 대 자, 벌릴 라 자 대라천은 이 우주에서 가장 넓은 하늘이다. 지존의 하나님이 계신 호천금궐이 있는 하늘! 이 대라천의 하나님이 바로 온 우주를 다스리는 조화옹 하나님, 옥황 상제님이다. 인간으로 오신 우리 상제님이시다. 그런데 상제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의 구원, 심판, 모든 인간의 완성 등 우주 진화의 궁극 목적은 어떤 특정한 한 하늘의 신의 권능과 힘만으로 달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사후에 영적으로 살아가는 하늘도 하나가 아니다. “그 위에 또 있습니까?” “있느니라.” 이렇게 김송환 성도에게 아홉 번, 즉 구천이 있다고 하셨다. 영적 진화의 층을 수직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33천은 수평적인 하늘이다. 그런데 태을천에 대해서는 다른 하늘과는 상이한 독특한 창조문제, 도권道權 문제가 제기된다. 태을천은 이 우주만물의 조화의 근원인 율려의 생명과 힘을 신도 차원에서 열어주는 곳이다. 그 곳의 주신이 바로 상원군님이시다.
제는 하나님, 곧 우주역사의 전면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는 참하나님이고, 상원군님은 조화의 근원 되는 자리에 계신 분, 생명 활동의 저 깊은 배후에 계신 분이다. 직접 나서지 않기 때문에 제帝가 아니고 군君이시다. 상제님께서 태을주의 상원군을 ‘하늘 으뜸 가는 임금’이라고 하셨다. 으뜸이란 뭔가? 그것은 근원, 첫머리란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태을천은 모든 우주의 하늘 가운데 생명의 근원 되는 하늘이다. 아울러 ‘으뜸’이란 말씀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현실 역사 인식의 눈으로 볼 때, 모든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태고시절 자연과 더불어 인간의 탄생이 있었으며, 그 후로 인간은 지속적으로 역사를 이루며 살아왔다. 바로 그 과정에서 생명의 근원, 뿌리 역할을 하는 자리에 계신 분, 그분이 바로 상원군님이다. 그런 면에서 상원군님도 이 땅에서 인간의 삶을 살다 가신 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태을주 수행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가요? 첫째, 태을주에는 율려도수가 붙어있어서, 태을주를 읽으면 무엇보다 영이 밝아진다. 천지일월과 만물이 태어난 생명의 근원, 그 조화기운을 받아내림으로써, 읽으면 읽을수록 내 생명이 건강해진다. 또한 영원히 우주와 더불어서 살 수 있는 힘을 받는다. 영생永生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을주 읽는다는 것은, 생명의 밥을 먹는 것이다. 아무리 먹어도 체하지 않는 유일한 밥, 태을주의 밥을. 오전에 태사부님께서 “‘태을주는 생명의 주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잖은가.
둘째, 태을주를 읽으면 율려도수를 받아, 천지의 율려도수와 일체 되지 않던 내 몸 속의 부족한 율려도수가 채워져 천지와 하나가 된다.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회복된다. 어둠이 물러나고 영이 밝아지므로, 몸이 아프던 사람도 ‘아~ 나는 나을 수 있다.’, ‘모든 병이 바로 여기서 오는 거구나.’ 하고 몸 속의 어둠, 의식의 어둠을 깨닫고 거기서 벗어나게 된다. 마음 속에서 광명과 기쁨을 회복해서 건강의 도를 되찾는 것이다.
셋째, 태을주을 읽으면, 일체의 재난으로부터 구원받는 크나큰 은혜를 받는다. 태을천 상원군님은 예로부터 “태을구고천존”太乙求苦天尊, 즉 창생의 고통을 건져주시는, 하늘의 높은 분이기 때문이다. 도교의 경전 『도장』道藏을 보면 그런 기록이 많이 나온다. 상원군님은 우리에게 언제 어디서나 선천 천지의 상극기운으로부터 오는 일체의 충격과 재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궁극의 자유, 큰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만병통치 태을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넷째, 태을주는 선천 상극의 원리를 극복하게 해준다. 선천의 창조 이법은 상극이다. 선천에는 인간이나 비금주수, 미물에 이르기까지 상극 속에서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 그 극성을 이겨가면서 성숙해 가는 것이다. “선천은 상극의 이치가 인간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서 삼계에 넘쳐흐르매 마침내 그 살기가 터져 나와 이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킨다.”는 상제님 말씀이 있다. 곧 선천에는 음양의 부조화로 인해 창생들이 상극에 갇혀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 재앙, 인간문명 속에서의 재앙 등 비극과 불행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태을천 상원군님은, 이 천지일월 만물의 음양작용의 근원인 율려를 다스리는 분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고난의 화액을 면할 수 있게 해주신다. 곧 태을주는 선천 상극의 이법을 조화시켜줌으로써, 부조화로 인해 오는 여러 가지 재난을 제어해주는 것이다.
천지의 이법인 상극의 벽을 넘어서는, 상극의 고난을 넘어서는, 상극을 극복하는 궁극의 축복을 받는다. 그래서 태을주를 읽으면 현실에서 반드시 기적을 체험한다. 차가 정면으로 박치기했는데도 사람이 다치질 않는다. 그렇다고 시험삼아 해보진 말아라. 신도의 미움을 산다.
다섯째, 태을주를 읽으면 천지의 조화신인 깨비신을 본다. 정신이 크게 깨지고, 참으로 고통을 많이 당해서 큰 일꾼으로 성숙되어 태을주를 읽으면, 도깨비신을 직접 본다. 도깨비신이 내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그걸 보면 깜짝 놀란다. 하하하. 그만큼 인간이 천지의 조화단지로서 우주의 주목 대상인 것이다.
여섯째, 태을주는 도의 역사, 종통을 바르게 정립케 한다. 상제님 도의 궁극의 근원은 태을에 뿌리내리고 있다. 하늘의 근원도 태을, 땅의 근원도 태을, 인간역사의 근원도 태을, 신도세계의 근원도 태을이다. 온 우주 생명 창조의 역사가 태을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걸 부정하는 건 자기 존재 부정이고, 자기 뿌리 부정이다. 그러면 다 죽을 수밖에 없다.
상제님 도의 역사가 후천 5만년 인간사에 뿌리 내려가는 과정, 즉 도통맥을 바로잡는 종통사도 태을천으로부터 봐야 풀려나간다. 왜 그런가? 태을은 천지음양 조화의 근원자리이기 때문이다. 태을에서 팔괘, 팔음팔양으로 우주만유가 열려 나간다. 곧 태을에서 천지가 열리고 일월이 열리고 성신이 열리고, 그 열매로 천지일월의 아들딸인 인간이 태어난 것이다. 그러면 상제님은 도통 맥을 어떻게 전수하셨는가? 상제님은 공덕이 많거나 인물이 잘 났다 해서, 종통 맥을 임의로 전수하신 게 아니다. 상제님은 “나는 천지일월(天地日月)이다” 하시고, 하늘 아버지로서, 땅 어머니 되시는 태모님에게 수부도수로서 천지대권을 넘겨주신다. 그렇게 해서 뿌리를 내리는 분도 둘, 열매를 맺는 사람도 둘이다. 곧 천지자연법, 음양법에 바탕을 두고 도통을 전수하신 것이다.
본래 음양은 일체이기 때문에 수평적 관계다. 하늘과 땅이 일체이고 일월도 일체다. 그래서 상제님이 태모님에게 “내가 너 되고 네가 나 되는 일이다.” “천지 만백성의 부모가 되려면 이렇게 해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마찬가지로 상제님 대업을 인사로 마무리짓는 지도자 도수인 일월 도수도 그렇게 나온다. 계묘(1903)년에, 상제님이 도통문을 열어놓으신 대원사의 주지 박금곡에게 ‘용봉’龍鳳이라고, 서로 머리를 맞대게 하여 글자를 써주셨다. 누가 높고 낮고 그런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왼쪽 끝에는 ‘독존석가불’이라고 쓰여져 있다. 이 내용이 이번 개정판 『도전』에 실린다. ‘홀로 존귀한 석가모니’, 곧 석가모니불은 천륜을 끊고, 음양을 부정한다는 말씀이다. 상제님 도법은 천지조화의 근원인 음양의 도를 바탕으로 후천 5만년 도의 뿌리를 내리고, 음양의 도로써 그것을 끝매듭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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