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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UNDY PARK 원문보기 글쓴이: Mundy Sung
[인생/人生]
2018년 12월 31일(음력 11월 25일) 월요일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아직 무술년은 진행 중이다
2019년 2월 5일(음력 1월 1일/설날/화요일) 부터는 ‘황금돼지해’라고 하는 기해년(己亥年)이 시작될 것이다
2018년의 마지막 날이나 2019년의 첫날은 우리 인생에서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일생에서 딱 한번 맞이하는 날이 될 것이다
12월 31일 날 자정을 지나면 1월 1일이 되는 것이지만 지구가 존재하는 한 월력이 있는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첫날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다시는 우리 인생에 되돌아오지 않을 날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게 되기를 축원한다.
‘送舊迎新’
‘先後緩急輕重秘非秘)(선후완급경중비비비)’
인간만사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매우 중요하거나 그렇지 않은 일이거나 아주 급하게 우선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가하면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중에서 지금까지라도 살아있어보았더니 ‘가족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보다 더 소중하고 우선해야할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과연 무엇이 대단히 중요하고 우선해야 할 일인지 지금 당장 곰곰이 생각해봐도 좋을 듯하다
분명한 것은 어딘가에 갈 수 있을 때 다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때 해야 되듯이 지금 이전의 지난 시간들로 만들어진 기록이나 물건 심지어 사람의 인연까지도 무엇인가 할 수 있을 때 그나마 정신이 있을 때 하지 않으면 누가 그 뒤치다꺼리를 할 것인가
‘三災八難 憂患疾病(삼재팔난 우환질병)’
우리인간사에 누구에게나 어느 가정이나 가족 중에 단 한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일지라도 우환 질병이나 삼재팔난이 생기게 되면 그 집안은 속된말로 젖을 담게 된다.
아주 건강하던 사람이 몸에 작은 병이라도 하나 얻으면 그 합병증세로 점점 건강이 악화되듯이 집안에 삼재팔난 우환질병이 가족 중 한사람에게만 와도 그 가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세월 속으로 휘말리게 된다.
한마디로 가족과 가정은 그냥 저절로 무너져버리게 된다.
‘몸조심’이라는 말이 그냥 예사로 나오게 되는 말이 아니다
‘건강하거라’와 ‘몸조심’의 의미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언제 무슨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 모른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라
본인이 원하지도 않은 날벼락 같은 일들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받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가끔씩 생각을 떠올린다.
모두가 아는 실제 사건이지만
고층에서 어떤 사람이 자살을 하려고 뛰어내렸다
그때 마침 남편이 귀가하기를 아이들과 기다리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가장과 함께 아파트 현관을 막 들어서던 일가족 중에 그 아빠가 떨어지는 사람에 맞아 둘 다 죽었다
이것은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단순히 재수가 없는 일일까?
확률로 치면 어떻게 계산해야 답이 나올까?
날벼락이란 것이 이런 게 아닐는지?
이렇듯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嚴重한 現實’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않은 세월로 살아왔다
현실적으로 요약하면 ‘가진 것 없이 늙고 병든 남자’라고 표현함이 맞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보통의 경우 누군가를 대면하게 되면 ‘껍데기는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어디가 아프다는 것이야?’ 라고 말하기 일쑤다
처음에는 그냥 웃어넘기기도 했지만 이제는 너무 오랫동안 [전문 환자]생활을 해오다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그 말을 듣거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싫어진다.
왜 대인기피와 사회공포증에 항 우울증 약이나 향정신성 약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지 이해할 듯하다
스스로 담을 쌓고 칸을 만들고 점점 사람들을 멀리하게 된다.
특히 세 사람이 한 자리에 앉는 것은 무조건 피하고 된다.
여전히 호기심반, 동정심 반으로 쳐다보는 그 눈길이 무지하게 싫어졌다
물론 이 모든 현안들이 자책감, 열등의식, 피해의식, 대인기피, 사회기피, 심지어 만성피로에 무기력감까지 포함되어 나타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추해지고 싶지 않으면 선을 그어야 하는 인연들이다.
새해가 되면 시니어가 된다.
새해라는것도 이제는 별 개념이나 계념이 없어지는 것 같다
그냥 12월 31일 다음날이 1월 1일이라는 정도로 감흥이 없다
달력을 12개월로 만들지 않고 900개월이나 1,200개월짜리 월력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이 세월 인간에 대한 많은 공부를 했다
사람은 왜 죽을 때 까지 배워야 하는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눈귀 입은 닫고 지갑은 빨리 열어야 된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 못할 바에는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누구에든 간에 보이고 싶지 않다
그런 의미라면 상대방은 절대로 원하지 않더라도 내 입장에서 사실적인 주변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꼬끼리 여행을 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코끼리 여행에 대하여 잘 모를지도 모른다.
코끼리 무덤이란 말과 象牙塔(상아탑)이란 말이 있다
코끼리 들은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자기가 죽을 곳을 찾아 나선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한자리에 모여 죽어서 상아가 쌓이게 되고 그것을 상아탑이라고 한다.
하지만 코끼리가 죽은 후의 상아는 코끼리 몸을 떠나 자연에 노출되어 습기를 만나면 화학작용을 일으켜 썩어버린다고 한다.
그러니 상아를 얻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코끼리를 죽여서 상아를 강제로 획득하는 것이다
아프리까 밀수꾼들이 코끼리 무덤을 발견하였다거나 상아탑을 발견하여 그것을 팔러 왔다는 것은 어쩌면 허구의 현실이거나 무영탑일지도 모른다.
이런 것은 아프리카 코끼리를 무자비하게 사냥했던 밀렵 도살꾼들이 만들어 낸 말이 아닌가 싶다
나는 설령 그것이 현실의 허구라 할 지라도 동심에서 싼타가 존재하듯이 내마음속의 꼬끼리 여행을 때 맞춰서 떠날것이라 다짐하고 준비한다.
뒤돌아보지 말자,
내 인생에 후회란 없다
고맙다.
미안하다.
후회한다.
나는 이런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성장과정이나 어릴 적에는 고맙다는 말은 많이 했던 것 같다
1일 기도문도 그랬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지금도 살아 있음에 감사드리고 저녁 잠자리에 들 때면 오늘 하루도 보람되게 살게 해주심에 나의 믿음에 감사기도 하고 축원합니다.
그러나
전문 환자가 되고 부터는 고맙다, 미안하다, 후회한다는 말을 거두었다
결국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나 나 자신에게 고맙거나 미안하거나 후회할일을 하지 말자고 한 것이다
지금은 나에게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거나 하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내가 가진 것 없이 늙고 병든 남자가 아니고 반대로 가진 것이 많은 사람, 건강하고 젊은 사람이라면 가설적인 해석은 얼마든지 길어질 수도 있다
이미 지나간 時空(시공)이다
지금의 기도문은 하나의 서원만 남았다
‘내가 만약 불치의 병이 걸리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치매에 걸리게 되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죽어야 된다는 기억만은 지우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정치인이 그랬다
죽기 전에 묘비명을 써놓고 ‘아흔까지의 인생은 부질없었다. 했다
아흔둘에 세상을 떠났으니 아흔 이후 숨을 거둘 때 까지는 어땠을까 나중에 저승에서 만나면 한번 물어볼 생각이다
인간관계,
그것은 ‘편하냐, 불편하냐’ 의 선택에 따른 결정이다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매우 복잡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세상살이에서 제일 간단한 것이 인간관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상대와 ‘편하냐, 불편하냐’를 선택한 다음 그 결정에 따라 행동으로 옮기면 되기 때문이다
편한 사람이면 말 그대로 계속 편하게 지내면 될 것이고 불편한 사람이라면 연락을 끊고 대면하지 않고 살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相從(상종)하지 못할 인간이란 말이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은 서로가 연락을 하거나 만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인해서 발생하는 모든 것은 당사자 서로의 책임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연락하지 않고 안보면 된다.
이렇듯 간단한 것이 사람관계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아무리 불편해도 그 불편함을 감수하는 인간관계가 존재한다.
바로 ‘母情(모정)’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이 보다 더 숭고하고 무량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독하고 제일 모질고 가슴 아픈 사람의 마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당사자끼리 만나도 서로 각자의 時空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만났던 사람에 대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를 하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호불호를 가리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 사람 이상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앉게 되거나 모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 자체가 이야기꺼리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나쁘거나 좋은 뉴스가 될 수도 있다
돌고 돌아 마치 남의 이야기인 냥 오래지 않아 내 귀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항상 기도한다.
나를 위한 작복이거나 누구를 위한 기복이 아니다
내가 나의 믿음에 기도하는 것은 단 한 가지 誓願(서원) 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내가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치매나 불치병에 걸렸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된다는 것만은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해 주세요’
이것이다.
고로, 내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누구 탓도 아니고 스스로 자신의 탓으로 일그러지고 추해진 모습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 것 또한 인간의 기본 심리이고 본능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도 모르고 일어나고 때도 없이 눕기를 반복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이나 출입문을 열고 바깥을 나가는 횟수는 줄어들고 점점 혼자서 외롭고 슬프고 고독한 것은 정도를 넘어 철저히 고립되고 사람과 사회를 기피하는 피폐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人命은 諸天’
과연 그럴지도 모른다.
인간의 수명이 200년 300년까지 살 수 있다면 지금의 기준으로 볼 것 같으면 지겨워서라도 일찍 이 세상을 떠나고자 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아마 그때쯤이면 이웃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다가도 ‘나, 내일 그만 가볼래’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지나 않을까 상상의 세상을 펼쳐본다
‘그래, 잘 가’이런 식으로
인간세상에서 그냥 무의미하고 새로운 소식이나 뉴스거리도 되지 않게 정리하고 떠나거나 그냥 아침 먹고 가버리거나,
더 이상 살아있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로부터 잊히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좀처럼 살아있는이상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지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인간관계도 그러하겠지만 없으면 안 보게 되거나 만나지 못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더 이상의 아무 말도 못할 것이다.
‘종교’
아흔을 훌쩍 넘긴 내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 계신다.
슬하에 4남1여를 두었는데 내가 중학교 특차 시험을 치러갈 때 곱게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중학교 시험을 치러갔던 기억이 있다
전통적인 불교 집안이었지만 아이들이 학교를 선택하면서부터 달라졌다
월요일 첫 시간이 예배이고 금요일 첫 시간이 성경인 학교에 다녔다면 말이다
필기 40 : 실기 60이었다
실기는 주일 예배를 1년 내내 한 주일도 안 빠지고 다닐 경우 60점을 받을 수 있다
어릴 적부터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그렇게 보수적이고 봉건적이었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종교 선택에 대한 자유를 부여했다
그 결과 지금은
하나있는 내 형은 대학을 세 군데나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결국은 목사가 되었다
바로 밑의 남동생은 대한불교 태고종 골수 통이다
여동생은 전통적인 천주교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막내는 교회 장로 일을 보고 있다
그런데,
가끔 형제들이 모여서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가만히 듣고 계시던 아버지가 ‘그래, 니말도 맞고 니말도 맞다. 우쨌든가 건강하게 살아만 있어라. 살아 있어야 하느님을 섬기든지 부처님을 모시든지 할 거 아니냐’
그 말씀이 지금 나이에 내 머리에 작은 망치를 두들기듯 울림이 되어 온다
인생의 진리는 오직 살아있어야 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로지 건강해야 하는 것이었고
그러나
작금의 엄중한 현실에 건강을 잃고 존재하는 자신이 부모님께 죄스러울 뿐이다
‘무주상 報施(보시)’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있다면 불교에서는 ‘자비’라는 말이 있다
어릴 적부터 많은 종교를 경험해 보았다
결론은 성경말씀에 있는 말은 불경에서도 실천하라고 되어있고 불교에서 하지 말라고 하거나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나 다른 종교에서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불교에서 자비를 행함에 있어서 ‘육바라밀’이라는 것이 있고 그중에 ‘보시’를 가장 으뜸으로 친다.
사랑도 그 부족함을 더하기 위해 ‘참사랑’이라 표현하듯이 보시도 ‘무주상 보시’라고 한다.
가진 것이 있어서 존재하고 살아있으면서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결국은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엄마가 하는 말, ‘이놈아, 엄마가 지금 너한테 투자하는 것이야’하는 말을 들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무엇을 줄 때도 어떤 사람들은 ‘이거 그냥 주는 거 아니야’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 세상에서 선하고 착하게 행하는 보시는 그 주는 순간에 잊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은혜와 은총으로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은 받은 사람이 할 일이다
하느님의 사랑도 부처님의 가피도 관세음보살님의 대원력도 받은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선악을 구분해서 선업을 베푼다면 그것은 더없는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모두가 비즈니스나 거래가 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 줬는데?’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나는 너한테 이래도 돼’
이 세상에는 어떻게 해 준 것도 어떻게 키운 것도 아무것도 없다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오롯이 받은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과거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흔히 식사를 한번 하자고 하면서 내가 밥을 세 번이나 샀는데 네가 한번쯤은 사야할거 아니야?
밥을 백번이라도 사야 할 형편이 되면 사는 것이고 단 한번이라도 못 살 형편이면 못 사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릴 적 부모님 가르침에서 부터 네가 그렇게 했으니까 내가 이렇게 한다는 공식은 없다
그것이 부담되면 어떻게 될까
그 다음은 아마도 영원히 보지 못하는 인간관계로 돌아설 것이다
왜?
불편하니까.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장애와 두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장애와 공포를 없애주는 일이 무애와 무외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누구에게나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나 받침돌이 되어야 하고 두려움을 없애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 베풀고 나눔의 극치일 것이다
‘無碍(무애), 無畏(무외)’
사람이 살아가는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일상의 걸림돌과 두려움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뭐 그런걸 가지고?’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살자고 들면 일상의 장애와 공포는 산더미 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상 포기하자고 하면 그 공포와 장애는 사라지는 법이다
인간은 가진 것이 있으면 외형적인 병이나 어려움은 치료가 되고 해결이 된다.
수술을 해야 한다거나 병원에서 또는 과학 의학을 동원해서 가능한 일이라면 돈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아흔을 훌쩍 넘긴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자식얼굴을 한번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넘어 내가 죽기 전에 부모님 얼굴을 한번이라도 봐야 되겠다거나 이제 그야말로 부모자식 가리지 않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모님 한번 모셔서 편하게 여행을 시켜 드리고 싶은 것도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돈 앞에 자유로운 영혼은 아무도 없다’
오랫동안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로 지내온 주위의 친구 지인들이나 심지어 형제자매 까지도 돈 이야기를 하면 10명중 8명은 불편한 관계로 변하고 만다.
10명중 한명 정도는 그러거나 말거나이고 생각이 없거나 반응이 없는 사람이 있을수있고 나머지 한명은 돈이 필요하면 돈을 내밀어주는 사람일수도 있다
그것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이야기 했을 때는 다를지 모르지만 가진 것 없이 늙고 병든 환자가 말을 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평소 때는 ‘호기심반 동정심반’으로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있는 원숭이처럼 쳐다보다가 막상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을 한 사람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인간’으로 변하게 된다.
평소때와는 180도 달라지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주변 사람들 10명을 선택하여 실험해보는것도 좋을 것이다.
아마도 변함없이 생활하는 사람들은 인생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덜 주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가지고 살 때,
나누고 베풀고 살았을 때,
가진 것 없이 병들어 살 때,
아니 존재한다는 자체일 때 모두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이 달라진다.
마치 팔색조 같은 것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다
이 대목에서 분명한 것은 모두가 내 탓, 내 탓, 내 큰 탓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제일 큰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도달하게 되면 억만금이 있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다
건강과 생명까지 포함해서
‘말’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사람에게
허리 통증에는 뭐가 좋다고 하더라.
암에는 뭐가 좋다는데 인터넷 쇼핑에서 백만 원에 싸게 팔더라.
몸이 그런데는 맥반석돌침대가 좋다는데 얼마 안하는 모양이더라.
그말 듣고 예전에 실제로 한번 가보았다
돌침대 황토침대 하나에 사오백만원하는줄을 그때 알았다
현실이 엄중한데 그런 말들을 하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많다
그들은 생각을 해서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산삼이 아무리 좋으면 뭐하냐?
뭐에 뭐가 좋은 줄은 너무 오랫동안 [전문 환자]생활을 한 내가 더 잘 알 것 같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이 세상에서 뭐에 뭐가 좋은지는 금방 알아낼 수 있다
그것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것은 실제적인 그 물건을 가져다주거나 그것을 살 수 있는 재원이 필요한 것이지 그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다음은 불편을 느끼게 되면 통화를 기피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관계의 결정을 하게 되는 ‘편하냐, 불편하냐’ 로 이어지는 하나하나이다
사람은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편해 질려는 고집대로 하는 경우가 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상대방을 진정 배려하는 것은 그 상대가 편하게 해 줘야 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서 상대에게 배려를 강요한다면 결국은 서로가 불편해지는 것이 아닐까?
이때는 한번쯤 자식의 입장에서 자기 부모형제같았으면 어떻게 했을지 엄마의 입장에서 자기 자식이었으면 어떻게 했을 지를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배려하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그 상대를 무지하게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불편하면?
연락하지 않고 만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인간 세상은 안보고 연락을 하지 않으면 없는 말을 만들어 내기는 힘들지만 누구든지 연락하고 보게 되면 그로부터 말이 씨가 되고 불편이라는 불이 붙게 되는 것이다
평생을 안 보고 살아가는 멀리 있거나 관계없는 사람으로부터 말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가장 지근에 있는 사람들이 때로는 없는 말을 만들거나 확대재생산 하는 것이다
더더구나 당사자끼리가 아니고 세 사람 이상 자리를 같이 하게 되면 그 만남 자체가 안주가 되는 수도 많은 것이 인간세상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로부터 똑같이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 있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비 오는 날이라도 공원을 걸어야 하고 밥 빵 면을 먹지 말고 생선 채소 과일을 먹어야 한다’고 말을 하면서 몇월며칠날 환자에게 이런 것을 의사가 지시했노라고 차트에 갈 때마다 두들겨 쳐 넣는다
환자의 현실은 전혀 생각지 않는 것이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인생은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누구도 대신 아파 주거나 죽어 주거나 살아 줄 수가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는 정해지지 않고 언제 누가 먼저 떠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또한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도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갈 것임을 알고 있다면 마지막 길은 웃으면서 보내고 웃으면서 떠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으면서
혹여, 천상병 시인이라도 만나면 선생님보다 소풍길이 조금 늦었노라고 호방한 웃음으로,..
내 마지막 소원은 설령 허구라 할 지라도 꼬끼리 여행을 떠나는것이다
그러기에
엄중한 나의 현실은
불가능을 더 이상 가능으로 만들 수는 없기에
모든 주변 정리가 필요한 때이다
바로 지금.
‘수명을 다한 건전지’
인간은 가진 것 없이 늙고 병이 들면 물리적인 비유로 ‘수명을 다한 배터리’가 되고 만다.
새 배터리는 잠깐의 시간만 충전을 해도 며칠간이나 사용할 수 가 있다
하지만 수명을 다한 건전지는 며칠을 충전해도 잠깐만 사용하면 나가버린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충전도 안 되고 사용도 할 수 없는 그렇다고 아무데나 버릴 수조차 없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가 되고 만다.
사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이제,
내 한 몸 하나 虔修(건수)는 커녕 간수도 못할뿐더러 추스르기조차 버겁다
이럴 진데
이것이 엄중한 현실일진데 누구일 에 나서거나 말이라도 끼어드는 것은 분수도 모르고 주제도 모르는 사치이거니와 허세와 허풍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잠을 못자거나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하는 요인들이 통증, 쥐내림과 마비, 역류, 악몽에서 기인한다.
보통 때 같으면 밤 10시를 기준으로 이튿날 아침 8시까지 10시간 기준으로 4번정도 일어났다 다시 약을 먹고 눕고를 반복한다.
그런데
갈수록 그 횟수가 늘어난다.
일상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다른 특별한 움직임 없이 그냥 조금만 앉아 있기만 해도 몸이 피곤하고 나도 모르게 까부라진다.
점점 수명을 다한 건전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깊이 인식하고 있다
사람이 살다가
내일 아침에 저세상으로 가는 일이 아니더라도
생각이 살아 있고 육신을 움직일 수 있을 때 무엇인가 주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주변을 잘 돌아보자
한동안 손을 대지 않았거나 하물며 몇 년 동안 쳐다보지도 않아서 먼지가 내려 쌓여있는 물건은 없는가.
한동안 연락하지 않아 전화번호조차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은 없는가.
그렇다면 내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거나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누군가 무슨 일을 벌이고 나거나 일어나고 나 면 그때서야
‘내 그럴 줄 알았어’라고
그때는 이미 버스는 지나가고 없을 텐데 말이다
허허허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