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5일에 떠난 1박2일 전신자 피정.
정하상교육회관 관장님이신 김석태베드로신부님의 피정 강의 내용 중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 것이란 하느님을 중심에 두는 것이며 하느님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놓은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일상의 삶안에서 하느님을 중심에 놓은 것은 어떤 것인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것이다. 십 년동안 주일미사를 한 번도 빠지지 않겠다는 정신과 마음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하루에 세 번 밥을 먹듯이 세 번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습관이 바로 하느님을 중심에 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톨릭 신앙의 진리 중의 진리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느님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200년경 프랑스 리용의 주교였던 이레네오성인의 말씀 속에 이 진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신앙의 이유와 목적은 단 한가지, 주님 되는 것. 신학적인 용어로 신화되는 것. 이 말이 엄청난 말이고 인간의 교만함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가 풍겨서 이 말을 대신해 성화라는 말을 즐겨 쓰게 되면서부터 우리 교회는 신화라는 말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성화라는 말의 본질적인 의미는 신화된다는 것이고, 신화된다는 말의 가장 본질적인 의미는 하느님 된다는 말이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의 이유와 목적은 하느님 되는데 있다.
그러면 하느님 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여러분의 신관에 따라서 여러분의 하느님관에 따라서 이 하느님 된다는 말의 의미는 천 가지, 만 가지로 해석되고 정의 될 수 있는 말이다. 여러분이 엉뚱한 개념에 빠지지 않도록 가장 본질적인 개념에 이르도록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하느님이 된다는 말은 사랑과 자비가 충만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 나에게 잘 해 주는 사람,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 또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러면 자비는 무엇인가? 늘 속썩이는 남편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은 채 항구하게 사랑하는 것이 자비다. 나와 주파수와 코드가 안 맞는 사람을 사랑의 교류가 멈춰지지 않으면서 '이제 우리는 하나다.'라는 그 마음 안에서 함께 사는 것, 이것이 자비다. 끊임없이 나에게 이기심, 열등감, 연약함, 부족함을 드러내는 어느 교인에 대해, 그와 같은 사람을 우리가 미워해야 당연한 인간적인 것이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와 같은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은 자비로운 사람이다. 내가 정말 추하고 죄인같고 더 나아가서 사랑이란것을 손톱만큼도 받을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자비다.
나와 성격이 모난 그리고 주파수와 코드가 다른, 끊임없이 열등감과 연약함, 단점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누군가에 대해서, 내가 내 자신처럼, 마치 내 자식처럼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따뜻하고 부드러운 최고의 사랑이 바로 자비인 것이다. 자발적인 희생이 들어간 최고의 사랑을 일컬어서 자비라고 한다. 영어로 Compassion이라고 말하는데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상대방의 고통과 함께 나누는 마음, 상대방의 슬픔과 함께 나누는 마음, 그 마음 마음 안에서 그 빈 곳을 채워 주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자비인 것이다. 이제 성격이 모난 나와 성격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문제로 보지 않고 '야! 신기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서로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해 되셨나요?
첫댓글 참석자는 서은덕카타리나, 안은자레지나, 이순희율리안나, 오윤희수산나, 이경환안나 그리고 나! 여섯 단원이 함게 했다. 오! 멋진 날들이여~~~
마르첼, 귀한 글을 봤으면 답글이란걸 좀 남기시오. 그게 서로간의 예의라는 것이오.
참으로 고귀한 시간이었다니 보는 저또한 소중한 시간이었다는걸 알수있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공손하게까지야....
여튼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소이다.
@노엘라 원래 한공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