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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범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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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직녀에게/ 문병란
성하 추천 0 조회 30 18.04.29 15: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직녀에게/ 문병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여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도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 시선집『땅의 연가』(창작과 비평사, 1981)

.................................................................

 

  우리 시대 통일의 염원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남과 북을 각각 견우와 직녀의 연인 관계로 비유한 시는 대중가요에 의해 더 많이 불려졌다. 이 시가 나올 때만 해도 남북 이산가족의 첫 상봉이 이루어진 1985년 이전이라 직접 통일을 겨냥하여 쓰진 시라기 보다는 만남 자체를 애타게 갈망하는 순도 높은 서정성이 돋보인다. 또한 사상 최고의 휴먼 드라마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방영된 1983년보다 몇 년 앞서 발표되어 회자된 작품이기에 절절한 그리움이 그 분위기를 촉발시켰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낭만적으로 이별의 슬픔을 들이댈 일은 아니라 생각되지만, 남북관계의 최대 현안은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어느 경우에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할 우리란 사실을 잊지 말 것과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란 운명의 얽힌 매듭을 푸는 일이 되어야할 것이다. 이제 더는 예전의 갈등관계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 전망하고 또 희망하지만, 남북관계는 모름지기 거시적으로 풀어야하며 담대하게 민족의 평화와 통일이 우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 세계가 내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을 주시하고 있다. 어쩌면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평화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역사적이고 운명적인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가치가 평화이고 선택과 집중이란 측면에서도 한반도 비핵화가 최대 과제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민족의 동질성이라든가 공동 번영, 통일을 이야기하지 말란 법은 없다. 서로 신뢰할만한 분위기만 조성된다면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이나 주변국을 의식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다

 

  남북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의 예비회담 정도로 인식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이 회담이 북미회담과 궤도를 같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다시 만나야 할 우리민족끼리 할 이야기가 핵뿐이겠는가. 첫술에 배부르지 않으면 또 만나면 된다. 이제는 일 년에 한번 만났다 다시 헤어지는 견우직녀가 아니라 영원토록 한 이불 아래서 사랑을 구가해야한다.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온 겨레의 열망을 담아 온 누리에 메아리치도록 노래해야한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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