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의 유래 | 남이섬은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에 붙어 있는 육지로서 홍수 때만 섬이 되었다가 1944년 청평댐이 만들어 지면서 온전한 섬 모양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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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에 떠 있는 반달 같은 남이섬 | 넓이 약 46만 평방미터, 둘레는 약 5km로 여의도 면적의 5분의 1 쯤 됩니다. 행정구역상 남이섬은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주차장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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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속의 돌무더기, 남이장군묘 | 남이섬은 남이장군묘의 이름을 따서 남이섬이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전해 집니다. 섬 북쪽 언덕에 남이장군묘라고 전해오는 돌무더기가 있었는데, 이 돌을 옮기거나 집으로 가져가면 액운이 낀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합니다. 1965년에 섬을 매입한 수재 민병도 선생이 봉분을 만들고 추모비를 세웠으며 노산 이은상 선생이 추모글을 짓고 김충현 선생이 글씨를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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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장군(1441~1468) | 남이장군은 조선 세조 때의 무신으로 태종의 외증손이며 17세 때 무과에 장원급제 하였습니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반란을 토벌하여 적개공신 1등에 올랐으며, 27세의 젊은 나이로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평소 그를 시기하던 유자광의 모함을 받아 처형 되었습니다. 1818년(순조 18) 복권 되었습니다. 시호는 충무(忠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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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장군 시 (北征歌) | 白 頭 山 石 磨 刀 盡 백 두 산 석 마 도 진 豆 滿 江 水 飮 馬 無 두 만 강 수 음 마 무 男 兒 二 十 未 平 國 남 아 이 십 미 평 국 後 世 誰 稱 大 丈 夫 후 세 수 칭 대 장 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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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돌은 칼 갈아 다하게 하고 두만강의 물은 말에 먹여 없애리.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리오.
이 시로 인하여 (간신 유자광이 未平國을 未得國으로 조작) 남이장군은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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