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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재회
“여보세요?”
“.......”
“통화로 할얘기 아니니까, 내가 보내주는 주소로 와. 거기서 보자.”
한 달 넘도록 꾹꾹 참았다가 걸었던 첫 통화가 그렇게 끝났다. 해율은 주리의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만나서 할 얘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반면 한 달이 지나서 걸려온 해율의 전화가 너무 반가워서 단숨에 받기는 했으나, 어떤 말부터 어떻게 뱉어야 할지 순간 막막했던 주리는 한마디도 뱉지 못하고 통화를 끝내야만했다.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한참동안 멍하니 귀에 대고 섰다.
* * * * *
오랜만에 보는 둘은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은 카페 안에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앉아있다. 막상 보자고 했지만 어떤 말부터 자연스럽게 시작해야 될지 어색해지는 건 해율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주리는 해율이 하려던 말이 뭘 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저 마음을 다 잡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잘 지냈어?”
“...아니.”
“왜. 나 그렇게 차버렸으면 잘 지내야지. 얼굴이 그게 뭐야.”
“.......”
“나랑 이제 말하기도 싫은 거야?”
“...아니야.”
조심스럽게 진심을 뱉어내는 주리를 보면서 해율은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더 고민할 필요도 없단 생각에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주리는 해율이 자신의 태도에 또 오해를 한 건가 싶어서 놀란 눈으로 일어선 해율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주리의 시선은 해율을 따라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아무 설명도 없이 주리의 앞에서 두 다리를 굽혀 무릎 꿇어 앉는 해율의 행동에 당황한 주리가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해율의 팔을 잡고 왜 그러냐며 일으켜 세우려 한다. 하지만 꿋꿋하게 자세를 유지하는 해율이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일일 거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 같아. 입장 바꿔서 내가 자기 입장이었을걸 생각하니까 진짜 눈앞이 깜깜해지더라.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겠더라고. 그런 일을 말로 설명하면 이해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정말 미안해.”
해율의 말을 듣고 있던 주리가 참아냈던 감정이 터져버린 듯 눈물을 보이고 있다. 무릎 꿇고 있던 앞에 주리의 눈물이 ‘툭’하고 떨어지자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를 해대던 해율이 놀라 고개를 들어 주리를 본다. 자신의 모습이 들켜버린걸 애써 감추려고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며 일어서는 주리 앞에 몸을 일으켜 세워 마주하고 선 해율. 그리고 가만히 주리의 목을 자신의 양 팔로 감아 당겨 안는다.
“미안해, 다신 이런 일 생기지 않게 할게. 속상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 보고 싶었어. 자기...”
그동안 꾹꾹 눌러놓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쉬지 않고, 주리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런 울먹임을 들으며 주리를 감싸 안은 해율은 마음이 저릿해진다.
마음이 진정될 시간이 필요할 듯 해 주리를 마주하고 앉아서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참으며 기다려주는 해율. 어느 정도의 적당한 시간이 흐르고, 주리도 진정이 된 듯 울먹임이 차츰차츰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다시 정적만이 둘 사이를 감돌고 있다.
“봉주리 사랑해!”
“......!!!”
“나 다시 만나줄 거야?! 어?! 어?! 사랑해! 안 만나줘도 사랑할거고, 만나주면 더더 많이 사랑할거야! 어?! 대답 안할 거야? 나 더 크게 말 한다아~?!”
점점 데시벨이 높아지는 목소리에 다급하게 몸을 들어 해율쪽으로 굽히고, 큰 소리로 외치는 입을 막아보려고 팔을 뻗었지만 요리조리 잘도 피하면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해율. 끝내 주리의 손에 해율의 입은 막아졌지만 그 안에서도 계속해서 웅얼거리며 그동안 못했던 말을 마구 쏟아 뱉고 있는 해율.
“아, 알았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진짜?! 진짜지?!”
“어, 알았어. 다시 만나, 그러니까 제발 작게 말해. 사람들 보잖아.”
“싫어!! 봉주리!! 사랑해!!! 예전도,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계속 사랑해!! 죽을 때까지 사랑해!! 아니, 죽어서도 사랑해!!!”
“아후... 어떡해...”
주리는 해율의 막무가내 애정공세가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이런 공공장소에서 너무 요란스럽게 하는 건 조금 부담스러워 말리는 거다. 해율은 그런 주리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더 짓궂게 군다.
“어어?! 나 아직 답 못 들었어. 나 계속 해?”
“어? 답 했잖아.”
“아니, 그건 당연한 거고 내가 지금 하는 말, 대답 안 해줄 거야?! 나 언제까지 할까? 나 대답 들을 때까지 계속할 수 있어!”
“아, 알았어! 사랑해.”
“안 들려! 뭐라구우?!!”
짓궂게 되묻는 해율의 행동에 주리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벼랑 끝에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인질처럼 얄궂은 해율에게 뭐가 됐든 답을 줘야 그만두겠다 싶은 주리는 해율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슬쩍 당겨 자신의 입술과 맞닿게 한다. 해율은 짧게 맞대었다가 떼어내는 주리를 더 멀어지지 못하도록 두 팔을 뻗어 목을 감고 당긴다. 그렇게 맞닿은 입술을 떼지 못하게 슬쩍슬쩍 비벼대며 꾹 누른다. 마주하고 있는 둘의 코가 순간적으로 뭉개졌다 원위치를 찾는다.
* * * * *
격렬하게 재회를 한 해율과 주리는 카페를 나와 나란히 앉은 차안. 조금 전 많이 격앙됐던 해율이 안정을 찾은 듯 운전석에서 물끄러미 조수석에 앉은 주리를 본다. 해율의 시선이 느껴지는 주리는 차마 해율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뻣뻣하게 정면을 보는 척. 하지만 해율의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자꾸만 신경이 쓰여 힐끔거리게 된다.
“사랑해.”
불쑥 주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해율의 고백에 심장이 쿵하고 기분 좋은 충격을 받은 느낌이다. 그리고 티내지 않으려 하지만 발그레해진 볼 빛을 낸다. 그런 주리가 귀엽다는 듯 계속 정면만 보고 꼿꼿하게 앉아있는 주리의 뺨에 입을 맞춘다. 놀라 해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주리의 얼굴에 다가들어 이마에 입을 맞춘다. 주리는 자연스럽게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다.
“우리 오랜만에 키스한번 할까아~?!”
장난스런 말투로 주리를 보며 말을 뱉은 해율. 주리도 그런 해율의 말에 딱히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자, 서서히 몸을 가까이 하며 그동안 참았던 애정을 모두 쏟아내기라도 하듯 둘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여전히 변하지 않은 마음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