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획부장은 왜 없나!
도전님께서 저를 처음 면접 보던 그날에 "기획부는 모든 부서와 협력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부서다" 라고 하셨으며 저 역시 도전님께 "제가 원하는 일이 기획일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도전님께서는 흔쾌히 저에게 기획부로 출근할 것을 명하셨고 저는 다음날 바로 출근 하게 되었습니다.
출근 첫날에 총무부, 수도부, 교무부등 각 부서장들은 저에게 주요업무를 맡겼고 저는 그 일을 하도록 준비된 사람임을 자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도전님께서 이미 모든 판을 만들어 주셨으니 저는 그리 어렵지 않게 모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부서에는 부장들이 있었지만 기획부에는 부장이 없었으며 기획차장(박성일선남)이 부장의 역할을 대신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외국에서 자신이 기획부장이라며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2. 기획부장을 만나다.
저는 젊은날 대순진리회를 만나 7년간 연락소 생활을 하며 도(道)를 닦았습니다. 그 당시 우리들의 선각들은 상도방면에 대해 말하길 우당께서 모셔놓으신 서가여래자리에 미륵세존을 임의로 모셨다며 우당의 유지를 어기고 신위(神位)를 바꾼 난법자들이니 조심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그후 저는 대순을 떠나 고향에 와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다니는 회사 바로 뒤에 상도도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오메가메 상도도장을 지나칠때면 불쌍한 난법도인들이라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저는 10년간 회사일을 하면서도 상도도인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차원 문명세계의 메시지' 에 관련한 배너디자인을 의뢰한 사람이 왔었고 저는 그것을 직접 디자인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신선봉안식에서 제가 만든 배너를 만났고 저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날에는 상도수도인이라며 '포항의 옛지도'와 '배모양의 현포항지도' 등 여러가지를 출력하러 왔었고 저는 디자인과 출력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저는 도(道)를 떠나 도를 잊고 살아왔으나 우연찮은 이들과의 만남은 가슴에 묻어 두었던 도(道)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놓은 끈을 다시 잡기 위해 삼일간 휴가를 내어 선각들의 자취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방면 최고선감이 죽기전에 모든 수반에게 돌렸다는 편지의 내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대부분 내용이 상도방면 박성구선감과 관련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읽었을땐 그저 상도 난법도인의 이야기를 이토록 자세하게 기록했을까 하는 의문으로 읽었지만 한번 읽어선 안될 중요한 내용이라 생각되어 두번세번 자세하게 읽었습니다. 그러다 확연이 종통이 상도로 왔음을 알게 되었고 저는 그순간 매우 감격 하였습니다.
대순의 모든 수도인으로 부터 지탄을 받고 있던 상도에 종통이 넘어왔다는 사실은 완전 대반전 드라마를 보는 듯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상도에 관한 모든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 했으며 새로 옮긴 직장에서 틈틈히 공부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내용을 보면 볼 수록 상도박성구선감이 종통자이며 대두목임을 확신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상도 도전님을 따르는 많은 사이트중 가장 명확하고 분명한곳을 찾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오봉산의 진리'였습니다. 여러개의 상도관련 사이트중 진리가 난해하고 손길이 가지 않는 사이트들을 하나씩 제거하고나니 자연히 오봉산의 진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종통이 상도로 왔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으로도 충분히 기뻤지만 또다시 종통이 넘어간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한번 더 감격하게 되었습니다. 반전에 반전이 있는 기가막힌 드라마 한편을 보는 듯 했습니다. 이처럼 보름간 선각의 발자취를 쫒다가 상제님과 천모님 두분을 모두 찾게 되었고 '천지부모'라는 한마디는 저의 두눈과 가슴을 적실만큼 매우 감격스러웠습니다.
저는 오봉산의 진리에서 상제님과 천모님의 모든 행적들을 읽기 시작 했으며 읽으면 읽을 수록 더 없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두목이신 하느님을 직접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난 하느님은 너무나 초라했으며 사는 곳 또한 너무나 궁색하였습니다. 어찌 하늘은 이렇게 오셔서 이렇게 하고 있는지!
하늘을 받드는 사람들의 숫자 또한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느 누가 지혜가 있어서 하늘을 찾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고 저는 무슨 복으로 이 자리를 찾은 것인지 참으로 신기 하고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저는 일년간 천모님의 밥을 먹으며 천모님과 오봉산 신선선녀님들과 기도수련을 하며 천모님의 말씀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저는 2017 년 8월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렸으며 천모님과 함께 상도입성을 꿈꿨습니다. 그리고 하늘은 하늘의 계획데로 9월에 암시를 주셨고 10월에 구체적인 발판을 만들어 주셨으며 11월에 상도로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기획일은 대부분이 디자인 관련 일이었으며 일반적인 디자이너들은 쉽게 할 수 없는 내용의 디자인들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천모님을 뵈었을 때 천모님께서는 봉황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으며 저는 직접 보지 않았으나 눈으로 보는 것처럼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봉황의 주인께서는 자신의 정체를 모를 젊은날에 꿈이 아닌 현실에서 직접 봉황을 보셨으며 그때의 모습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상도입성후 봉황작업에 실질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봉황을 모시도록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봉황작업이 마무리될 무렵 광명절 행사를 위해 외국에서 기획부장이 들어 왔으며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매우 놀라워 했습니다. 지난날 디자인 회사일을 할때 상도수도인이라며 디자인을 의뢰 했던 사람이 상도의 기획부장이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서로 사람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찌기 천모님으로 부터 상제님의 아들 박지환이 군자(君子)라 들었는데 기획부장이 바로 상제님의 아들이었으니 저는 더 없이 놀랐으며 우리의 만남이 우연이 아님에 또 기뻤습니다.이미 이날을 위해 상제님께서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셨는지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박지환 기획부장은 저에게 특급임무를 줬고 저는 그 일만큼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3. 기획부장의 특급임무
외국에서 돌아온 박지환기획부장은 광명절 행사를 마치고 저에게 특급임무를 줬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외국으로 보낼 물품을 보관하고 있는 창고를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창고안에는 옷들과 신발 그리고 가방. 책상. 컴퓨터 등 다양하고 많은 물건들이 있었으며 서로 얼키고 설키고해서 혼자서 정리하기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옷들 사이사이에는 쥐의 배설물들이 늘부러져 있었고 보기만 해도 온몸이 가려웠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에 보내는 물품 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싶어서 저는 안하겠다고 몇 번을 거절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하기 싫었던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그날에 그 어렵다는 ‘금산도득’을 이루었으니 기획부장과의 만남 역시도 상제님의 깊은 배려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금산도득'한 그날의 이야기를 풀어드리겠습니다.
-백만송이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