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론
신약성서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탄생되어 성령의 강한 임재와 역사를 통해서 예배하고, 가르치고, 선교하던 A.D 1세기의 초대교회에서 형성된 문헌이다. 초대교회의 역사는 바로 성령의 역사다. 성령에 사로잡힌 예수의 무리들, 즉 그의 제자와 추종자들에 의해서 복음이 전파되었고 신약성서가 기록되어졌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약성서의 본문을 중심으로 성령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성령론에 대한 신학적 정립을 통하여 신앙의 형태, 내용 등을 새롭게 정립하므로 하나님의 현존인 성령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1. 성령의 어원적 의미
영(SPIRIT)은 히브리어 낱말 두아크와 희랍어 퓨뉴마(PNEUMA), 둘 다 대기의 운동을 나타낸다. 그리고 성경의 문맥에 따라서 바람, 폭풍, 미풍, 숨(BREATH)으로 번역되지만, 상징적으로는 ‘생명의 근원’ 또는 ‘활력’으로 쓰이기도 한다. ‘거룩한 영’, 즉 ‘성령’이란 낱말은 구약성서에서 주로 포로기 이후 시대부터 사용된다.
신약성서 전체적으로는 ‘프뉴마’란 낱말이 총 379회 등장하는데 그 사용 용도는 다음과 같다. 총 379회 중 가장 많은 275회 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중 149회는 다른 단어와의 연결없이 독립적으로 ‘프뉴마’만 사용되고 있고, ‘거룩한 영’이란 표현은 92회, ‘하나님의 영’이란 표현은 18회, 그 외에도 ‘성경의 영’, ‘아버지의 영’,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등의 표현이 나타난다.
2. 성령의 인격성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신약성서에서 증거되고 있는 성령의 인격성을 인정하지 않고 성령을 역동적인 하나님의 힘, 혹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의 능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성령의 이해는 신약성서의 일부 본문이 성령을 마치 비인격적인 능력이나 물질적인 성격의 것으로 표현하는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들은 찾아보면, 성령을 준다(눅11:13), 성령을 받으라(요20:22), 성령을 받으리니(행2:28), 내 영으로 부어주리니(행2:17),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2:4), 성령을 마시게 한다.(고전12:13)등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신약성서는 성령의 인격성을 전제로 하는 많은 진술들을 보여주고 있다. 성령은 영원히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히9:14)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다 행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다.(고전 2:10-11) 성령은 지성을 가지셨고(롬8:27), 예수께서 말한 것들을 다시 생각나게 해 주시는 분이다.(요14:26) 또한 성령은 감정을 지니셨기 때문에 근심할 수 있고(엡4:30), 탄식하며 간구할 수 있는 분이다. 성령은 또한 의지를 가지신 분이다. 그 분은 자신의 의지로 사도들의 선교계획에 간여 하시는 모습을 우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행16:6-7)
신약성서가 말하는 성령은 하나님의 창조의 영이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전적인 의지의 일치 속에서 활동하시는 분이고 또한 지적인 분으로서의 성령은 ➀가르치시고(눅12:12), ➁인도하시고(요16:13), ➂말씀하시고(행10:19), ➃명령하시고(행11:2), ➄어떤 일을 금지하시고(행16:6), ➅듣는 것을 말하며 알리시고(요16:13), ➆예수를 증거하시고(요15:26), ➇생각나게 하시고(요14:26), ➈위로하신다(행9:31)
신약성서에서의 성령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혹은 하나님과 함께 언급되기도 하고, 또 세분이 삼위일체론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러한 신약성서의 진술들은 성령이 하나님의 능력이나 성도와 신앙공동체 안에서 현존하시는 분이시라는 진술의 울타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성령이 지·정·의를 소유하신 인격적인 분이면서,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 구원의 사역에서 일치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과 성화의 영이심을 말해주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신약성서는 성령을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과 새 창조의 능력, 혹은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개인과 교회와 세상 속에서 역사하시는 현존의 역동적인 힘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을 분명히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영 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 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3. 성령의 사역
신약성서에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진술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특별히 예수의 공생애 활동과 관련하여 그리고 초대교회 탄생과 발전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예수의 공생애는 세례요한의 세례 후 성령충만함을 받으신 때부터 시작된다.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눅4:18-19의 말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에는 성령이 예수에게 임하신 목적이 분명히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은 ➀복음전파, ➁포로된 자와 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는 일, ➂눈먼 자 치유, ➃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예수는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므로 너희가 구하라고 가르치시고, 또한 성령으로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예수의 공생애를 주관하신 성령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묻힌 예수를 다시 살려내심으로 예수의 공생애를 완성하신다.(롬1:4)
예수의 공생애가 성령충만으로 시작하여 성령의 권능과 능력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처럼 초대교회의 역사도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 그밖에도 신약성서에는 개인과 공동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이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기도 하다. 성령은 택하신 자들을 감동, 감화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케 하신다.
성령은 아들의 소임을 계속 수행. 확장시키며 아버지와 아들에게 공통되는 영역에서 일하신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현존하시며 활동하시고, 아들은 성령 안에 지속적으로 현존하며 활동하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인간이 인간자체만으로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 자신만의 영역에 계시기 때문에 성육하신 진리이신 아들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다가올 수 있도록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보냄으로써 하나님은 자기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사람들을 찾으신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은 삼위일체에 관련된 예배이며, 이것은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4. 성령의 은사
신약성서에서는 성령의 은사를 주로 ‘카리스마’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본래의 의미는 선물, 은혜의 선물, 성령의 선물이다. 신약성서가 말하는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과 그 성도들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구체적 계시요 그 나타나심이다.(고전12:7) 은사는 선물이요, 그 선물주심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럼으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청지기 됨을 의미한다.(벧전 4:10) 성령의 은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예수를 믿고 세례받은 성도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은사요, 둘째는 개개 성도들에게 성령이 그 뜻대로 나눠주시는 개별적인 은사이다.
신약성서에서는 또한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믿는 성도들에게 세례를 통해서 주어지는 성령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로 보고 있다. 이 선물은 은혜 입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처음 익은 열매요, 부활과 영생의 보증으로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에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은사는 현재 눈에 띠게 역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도들의 몸 안에서 부활과 생명의 원동력으로 역사하게 된다. 성령은 자신의 뜻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지 그리고 누구에게나 은사를 주시지만 대체로 ➀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때 ➁말씀을 들을 때에 ➂은사를 사모하며 간구할 때에 ➃성령충만을 받을 때에 ➄하나님께서 교회의 부흥과 개인의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여기실 때에 각 자에게 가장 적절하고 요긴한 은사를 주신다.
5. 성령의 내주
신약성서의 주된 입장은 누구나 예수를 믿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며 그를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는 성령이 임하셔서 그 안에 내주하신다는 것이다. 이 성령의 내주는 반드시 성령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령의 내주의 현상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성령충만의 현상은 성령이 임하시는 성령세례 시에 혹은 성령이 내주하신 이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의 삶은 이미 ‘성령 안에서의 삶’ 즉 성령의 통치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