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샘 김동환의 백령도(白翎島) 탐색기-2
선배 문인들은 고향땅 밟지 못하고
인당수와 심청,그리고 은율탈춤
심청전으로 익히 알려진 심청각은 소설속의 허상을 현실성 있게 재현해 놓은 인위적인 가옥으로 심청이를 조각한 조각상과 심청과 연계된 판소리,고서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북녘땅 장산곳을 바라보면 심청이가 몸을 던진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바라다 보인다.
그 뒤편으로 옹진반도가 보인다. 직선거리 17Km, 헤엄치면 금세 다을듯한 짧은 거리이다.
예전에는 황해도로 표기되었지만 지금은 북한의 지방행정개편에 따라 황해남도 옹진반도 위로 대동만, 밑으로는 옹진만, 그리고 강령반도와 해주만이 펼쳐져 있다.
해주,연안,은율탈춤의 원고장 은율등 지척의 거리에 많은 피난민들의 고향땅이 근접해 있다.
문단활동을 하며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석인시인은 황해도 연백, 최경섭시인은 평북 희천,최시호시인은 함북 경성으로 모두 고향땅을 보지 못하고 떠난 문인들이다.
망원경으로 바라다보니 등산곶, 어화도, 창린도 그리고 군사주거지역이 어렴픗 보이는 옹진반도가 펼쳐진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판문점에 두 정상이 악수를 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북한에도 은율탈춤의 계승자가 있겠지만 중요무형문화재 제61호 은율탈춤 명예보유자인 90세로 돌아가신 김춘신(金春信) 씨가 떠오른다.
70년대 고 김춘신씨가 바다위에서 행하는 굿거리며 탈춤을 추는 모습을 관전하며 은율탈춤에 대한 사실적 관계를 문학지에 기고하기도 했는데....
이미 고인이 된 김춘신씨의 고향도 황해도 은율군 은율면 남천리이다.
은율탈춤은 은율군에서 큰 명절에 행하던 탈춤으로 향토색 짙은 황해도 지역의 음악과 활달하고 씩씩한 춤 동작이 특징이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됐다.
아름다운 몸매에 인상도 애잔하고 고즈녁한 한국의 여인상으로 비춰졌던 김춘신씨가 율동미 넘치는 탈춤을 바다와 함께 신명나게 춤을 추던 모습이 시나브로 펼쳐진다.
사라져가는 콩돌해변과 천연비행장
정확히 얼마나 된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나이를 먹은 무궁화(천연기념물 521호)가 있는 중화동교회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장로교회(1896년)로 기독교역사의 중요 거점지역이다.
자연이 창조한 곳으로 천연기념물 391호인 사곶해변과 천연기념물 392호인 콩돌해변은 그야말로 세계에서도 자랑할 만한 위대한 유산이다.
그런데 이 자연이 준 선물을 인간이 훼손시켜 그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다.
중,고생대부터 조각된 백령도가 고작 인간의 농경산업화시대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식량증산운동을 펼쳤던 60년대 이후 그 짧은 세월동안 버려놓은 흔적들이다.
사곶해변은 세계에서 두 곳밖에 없다는 규조토 해변으로 비행기의 이 착륙이 가능한 천연비행장으로 교과서에서도 공부한 곳이다.
6.25전쟁시절에는 실제 군비행장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그 규조토가 사라져가고 해변은 슬금슬금 발자국을 깊이 남길 정도로 변질되었다.
천연해변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백령도에 해수범란을 방지하기 위해 농어촌공사에서 건설한 방조제와 담수호 방조제,그리고 도로포장과 농토개간을 위해 농지정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쓸려가고 쓸려오던 규조토의 유입은 사라지고 바닷물에 씻겨만 가기에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인간이 먹고 살기에 적당한 자연환경을 조성한다는 목적과 천연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대립이 심각하게 충돌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같은 자연환경의 파괴현장은 콩돌해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작은 콩알과 같은 콩돌들이 해변을 따라 2km나 즐비하게 펼쳐진 콩돌해변(천연기념물 392호)은 파도소리에 울려오는 공명이 어느 해변에서도 들을 수 없는 소리인데 말이다.
하지만 5년 전만해도 즐비하던 그 귀엽고 작은 콩돌들은 공사장 자갈밑으로 숨어버리고 그나마 콩돌들은 두려움으로 옹기종기 숨어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시인,수필가,환경국제전략연구소 소장/김동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