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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승해공존자 (僧解空尊者)
송대 고승이며 선조의 호적은 화정(華亭)이고 성은 척(戚)씨이다.
법호는 가관(可觀) 또는 해공(解空)이라고도 하며 자는 의옹(宜邕)이다.
꾸준하게 법을 학습하여 16세에 계율을 받았다.
당시 천태종의 거장 지례 혹은 법지(智禮, 法智)의 가르침이 강서를 뒤흔들었는데 가관해공은
지례의 후계자로서 학업이 해박하여 그 뒤로 지례의 뒤를 이어 제4대전인(四代傳人)이 되었다.
일찍이 호주에 가서 명승 혜각과 함께 선리를 연구하였다.
가관은 경을 외움에 있어서 밤낮이 없었고 불전에만 집중하여 경전을 자기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건염초(建炎初) 사명산 수성사를 주석하고 소홍 원년에 호덕장원을 주석하였으며 도건 6년에
천태사를 주석한 후 순회 9년에 입적하였는데 향년 91세였다.
352. 수무덕존자 (修无德尊者)
수행과 대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무덕 즉 무공덕(无功德)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1권에 의하면 달마대사께서 양무제를 만나니 양무제가 묻기를 “사도승(寺道僧)
으로 인하여 무슨 공덕이 있는가?”하자 달마는 “무공덕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수무덕존자는 불법이 성행한 시대에 태어나서 여러 가지 악을 멸하게 하고 보호를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으며 중생들이 불법의 진리와 정의를 탐구할 줄 모르기에 마음속에 동정심이 생겨 무공덕을
설파하고 자성이 본래 청정함을 깨닫게 하여 그 마음에 보리심을 얻게 하였다.
353. 희무저존자 (喜无著尊者)
존자의 법호는 문희(文喜)라고 하고 시호는 무저(无著)이며 당말의 고승이었다.
가화인(嘉禾人)이고 성은 주(朱)씨이며 7세에 출가하여 사분율을 수학하고 후에 대자산 성공선사
(性空禪師)를 만난 후 선사의 권유로 명산대찰을 돌면서 법사명승에게 배웠다.
당의종 함통 3년(862)에 문희는 홍주에 와서(남창) 관음원의 앙산대사(仰山大師)를 만났는데
앙산이 그에게 법을 설파하여 문희는 배운 바가 많았다.
문희는 당전사의 스님들을 관리하게 되었다.
하루는 유랑객승이 와서 시주밥을 얻으려고 하였으나 시주밥은 이미 분배가 끝나서 문희는 자기의
밥을 주었다.
앙산대사는 이 일을 알고 그를 크게 칭찬하였다.
당말년에 황소군이 강남을 공격하자 문희는 호주 인왕사에 피난하였다.
당희종 광기 3년(887)에 우월왕전양이 그를 청하여 용천사에 거주하게 하였다.
대순 원년(890)에 전양이 상주하여 당소종이 문희에게 자주빛 가사를 하사하였다.
건녕 4년(897)에 소종은 특별히 ‘무저’라는 시호를 내려주셨다.
광화 3년(900) 10월 문희무저대사는 병이 난 후 입적하기 전에 많은 제자들에게 “삼계심진(三界心盡)이니 곧 열반이다.”라고 하고 단정하게 앉은 채 입적하였는데 이때 흰 빛이 용천사를 번쩍 비췄다.
354. 월개존존자 (月蓋尊尊者)
인도 비사리국인이다.
청관세음보살소복독해타라니주경(淸觀世音菩薩消伏毒害咤羅尼呪經)에 의하면 비사리국에서
온역이 발생하였는데 사람들은 모두 눈이 충혈되어 피와 같았고 두 귀에서 고름이 흘러내리고
코피가 났으며 입으로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음식이든 모두 서서 먹기 어려웠고 생각이 혼란하여 모두 술취한 사람 같았다.
동시에 오야차가 있었는데 이름이 흘나가라(訖拿迦羅)였는데 얼굴은 검어서 먹 같고 눈이 다섯이고
이빨이 앞으로 벋쳐 나와 주로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었다.
월개는 사람들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처럼 여겨 그들을 고난 속에서 구하기 위하여 5백장자를
거느리고 비사리암라수원 대림정사 중각강당 에서 석가모니를 만나 뵙고 불타께서 일체 자비와
동정을 베풀어 사람들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구제해 주시기를 구하였다.
불타는 그들에게 응당 오체투지(五體投地)하고 서방삼성(西方三聖)께 예배하게 하였다. 즉 아미타불
및 협사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다.
월개등은 법에 따라 예배(禮拜)하고 서방삼성을 좇아 비사리국에 이르러 대광명을 뿌려서 대지가
모두 황금색으로 변하였다.
비사리인은 곧 준비해 놓은 양지정수(揚枝淨水)를 관세음에게 바치고 관세음께서 그 양지정수를
사방에 뿌리자 모든 역병이 즉시 제거되고 야차는 도망갔다.
불타와 관세음께서는 또 중생들에게 일체 고난과 액에서 벗어나는 주문을 전수해 주셨다
355. 전단라존자 (전檀羅尊者)
먼 옛날에 전단라라고 부르는 국왕이 있었는데 석가종족의 남녀를 멸종시키겠다고 맹세하였다.
인왕경소(仁王經疏)상권에 의하면 당시 심산중에 한 신선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의 눈은 천하의
일을 다 살펴 볼 수 있었다.
석가종족이 곧 멸하게 되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남자 아이를 선부에 숨겨
놓았다.
전단라는 이 일을 알고 신선이 없는 틈을 타서 그 남자 아이를 훔쳐 갔는데, 아이는 태양 빛이 따가워
목숨이 곧 끊어질 무렵에 신선이 또 그를 구해 신통력으로 감자전(甘蔗田)의 소똥무지속에 숨겨서
후에 석가종족의 후계자가 있게 하였다.
전단라왕은 악한 일을 너무 많이 하여 그의 후대는 벌을 받아 백정이 되고 실인옥졸이 되어 몸에
더러운 것을 걸치고 얼굴에 때가 잔뜩 묻었으며 거리를 다닐 때는 표시로 종을 흔들어 죄인임을
알렸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부처가 되신 후 전단라왕은 환생하여 불교에 귀의하고 허물을 고치고 바른
길을 행하여 널리 착한 일을 하였다.
석가모니께서는 나쁜 버릇을 고치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가문의 원수도 가리지
않고 그에게 법문을 통달케 하였으니 전단라는 끝내 나한과위를 획득하였다
356. 심정론존자 (心定論尊者)
심정론존자는 덕행하여 이름을 떨쳤다.
불교에서 ‘정’은 “마음을 한 경지에 정지시켜 흔들거리지 않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는 응당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혼란한 마음을 멀리하고 깨끗한 마음(淨心)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지도론(智度論) 26권에서 말하기를 “깨끗한 마음을 가진 자는 한 가지 마음으로 혼란하지
않고 마음이 혼란할 때는 실사(實事)를 볼 수 없다.
이것은 마치 물에 파도가 일어나면 평평함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고 바람이 불때 불이 꺼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심정론존자는 근면하게 수행하고 선정하여 정심을 얻었는데, 정심은 마치 고용한 물과 같아서
왕생십인(往生十因)에서 말한 것처럼 “만약 정수가 깨끗하면 자연히 둥근달을 볼 수 있으니
정수의 연고로 허공에 뜬 달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357. 암라만존자 (庵羅滿尊者)
암라’는 인도의 과일나무의 일종인데 암마라, 암마락가라고도 부른다.
암라만존자는 원래 암라수의 딸인데 기록에 의하면 이 여인은 암라수의 꽃 속에서 자랐기에 이
이름을 얻었고 후에 마갈타국의 빈파사라왕에게 시집을 가서 자식을 낳았는데 이름이 기파(耆婆)
였다.
기파는 성년이 된 후에 왕사성의 저명한 명의가 되어 불교에 귀의하였는데, 의술이 고명할 뿐만
아니라 불교진리에 능통하여 늘 백성들에게 법을 믿고 모시라고 권유하였다.
암라수 여인은 자신의 암라수원을 석가모니께 희사하고 석가모니 및 그 제자들에게 청하여 원내에
거주하며 법문을 설파하고 도를 전수하게 하여 불교초기의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그 후로 빈파사라왕도 불교에 귀의하였다.
불교학설에서는 공덕이 원만한 여인은 능히 남자 몸으로 변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암라수의 여인이
불교를 믿어 과원을 희사하고 그 아들도 불교를 행하며 남편도 불교를 믿고 모셔서 그 공덕이
무량원만하여 점차 남자의 몸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358. 정생존존자 (頂生尊尊者)
즉 정생왕보살이다.
불명경 16권에서 그를 응당 예배(禮拜)하고 귀의해야 할 대보살중 하나로 보았다.
중생은 범부로서 귀천을 불문하고 혹은 전생의 인으로 혹은 금세의 업으로 모두 무량한 죄과가
있으므로 응당 일초분(日初分), 일중분(日中分), 일후분(日后分), 초야(初夜), 중야(中夜), 후야(后夜)
등 ‘여섯 개의 시기‘에 예불하고 참회해야 한다.
예배하는 법은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오른쪽 어깨를 감싼 후 합장하고 일심으로 보살의
이름을 묵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복전을 널리 가꾸어 무량죄를 소멸하고 무량한 복을 늘여 생사고통을 멀리 떠나서
해탈의 기쁨을 얻었다.
359. 살화단존자 (薩和壇尊者)
존자는 보살의 과위를 얻었는데 시방(十方) 여러 대보살에 속한다.
살화단보살에게 예를 올리니 복을 얻고 화를 면한다고 한다. 세상의 중생이 만약 무량한 죄악을
범했으면 내세 혹은 지옥에 들어가서라도 지옥의 맹화(猛火)의 고통을 받을 것이요, 내세 혹은
전생에 짐승으로 변하여 상호간에 피와 고기를 먹이로 할 것이고 내세 혹은 전생에 아귀가 되어
백 년동안 기갈의 고통을 받을 것이다.
죄악을 범한 자가 살화단보살에게 정례참배하며 성심성의로 참회하고 고쳐서 새사람이 되면
그 죄악은 면죄된다.
살화단보살은 또한 모든 선량한 중생의 친구이고 복전이니, 만약 삼보에 귀의하고 살화단보살께
기도를 올리면 무량의 복을 얻을 것이요, 고뇌를 벗어나고 일생토록 즐거울 것이며, 곤란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360. 직복덕존자 (直福德尊者)
직복덕존자는 직은 직심(直心)이니 정직하고 비뚤어지지 않은 마음이다.
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에 이르기를 “직심은 바르고 굽히지 않은 마음이니 이런 마음이 곧 만행의
근본이다.”
복덕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일체를 선하게 행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선행함으로서
그 복리를 얻는 것이니 직복덕존자는 직으로 발심하여 일체 선행을 성취하고 복리의 보답으로
세상과 하늘의 낙을 향수 하였다.
361. 수나찰존자 (須那刹尊者)
존자는 석가모니의 성문제자(聲聞弟子)로 불문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계율을 준수하지 않았다.
대지도론 권100에 의하면 부처님께 수나찰다라라는 악한 제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수나찰이
석가모니께 활 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으나, 석가모니께서는 활은 중생의 몸과 생명을 위협할
염려가 있는데다가 수나찰의 불성이 천박하기에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수나찰은 대단히 불평하며 ‘
나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떠들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백선산에 계실 때 한밤에 상위에서 경을 읽고 있는데 수나찰이 가사를
뒤집어쓰고 양손을 높이 든 후 석가모니를 위협하며 ‘나는 천지대신이다. 내가 오늘 세간에
강림하였으니 너는 어서 도망가라.‘하고 크게 소리 질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내가 부처가 될 때는 필연코 18억 악마의 공격을 받았지만 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네가 지금 가사를 뒤집어쓰고 발광하지만 나를 놀라게 할 것 같으냐?”라고 말하자
수나찰은 달아나 버렸다.
그 후 수나찰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감화로 성심 성의껏 불법을 지켰으며 또한 자원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시종이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는 석탁(石鐸)이 한 개 있었는데 그것은 사천왕산 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세상에서 보기 드문 보물이었다.
수나찰은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에서 손으로 석탁을 들고 날마다 석가모니 부처님 옆에서
시중을 들었는데 무거운 줄 몰랐다고 한다.
수나찰은 끝내 나한과위를 얻었다고 한다.
362. 희견존존자 (憙見尊尊者)
즉 일체중생 희견보살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畵經) 권6에 의하면 과거세에 부처님이 한 분 있었는데 이름은
일월정명덕여래불이라고 불렀다. 일체중생희견보살은 이부처님에게서 법화경을 들은 후 고행하여
2천세 후에 일체색신삼매를 얻었다.
그래서 일월정명덕불께 보답하리라 생각하고, 그는 허공에 몸을 싣고 만타라등 각종 향기로운
꽃을 뿌렸다. 그러나 그는 법력으로 공양하는 것은 몸으로 공양하는 것 보다 못하다고 느껴서
각종 향료향유를 먹고 2천세 후에 참기름을 몸에 바르고 천보의를 입었으며, 천보의에도 참기름을
바른 다음 신통력으로 스스로 불태우니 그 광명은 80억 항하사 세계를 비추었으며 불은 1200년을
계속 타다가 꺼졌다.
일체중생 희견보살은 죽은 후 정덕왕가에 환생했다. 그는 환생 후에 쉬지도 않고 또 허공에 올라가
일월정명덕불에게 나아갔으며, 일월정명덕불이 열반에 들 때 불법을 부탁하였다.
일체중생희견보살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사리를 십일만사천개의 보배병에 담아 십일만사천개의
탑을 세웠으며 또한 스스로 두 팔을 태워 각 탑 앞에서 공양하였다.
그는 대중에게 “나는 두 팔을 아끼지 않았으니 필연코 금색불상의 몸이 될 것이다. 만약 이것이
거짓이 아니고 진실이면 나의 팔은 원래 모습대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두 팔은 과연 자연히 회복되었다.
363. 위람왕존자 (韋藍王尊者)
존자는 또한 위람보살이라고도 한다.
불명경 권17에 의하면 위람보살은 시방(十方) 여러 대보살에 속한다.
그는 깨끗한 천안이 있어 세상의 선악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위람 보살은 중생에게 악한 것을
소멸하고 선한 것을 부흥시키라고 권했으며 사람이 세상에서 잘못이 없을 수 없으니 온순한 사람도
성을 낼 수 있는 법이라고 했다.
중생이 만약 성심성의로 참회한다면 죄를 감소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무량한 공덕을 증장시킬
수 있으며 심지어 여래무상묘과(如來无上妙果)를 세울 수도 있다고 했다.
위람보살은 중생들이 친구를 사귈 때는 반드시 신중해야 하며 스스로 깨끗해야 한다고 하였다.
악한 친구를 만나면 무수한 죄악을 저질러서 지옥으로 갈 것이다. 수신양성(修身養性)을 즐기는
사람은 스스로 악한 일을 아니하고 입으로 악한 말을 하지 않고 마음으로 악한 생각을 가져서도
안된다.
어쩌다가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절대 그것을 숨겨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천상지하의 신귀(神鬼)가
틀림없이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심성의로 참회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엄숙하게 위란보살에게 서원하며 일심으로 예배
(禮拜)를 하면 이전의 죄악은 제하여 진다.
364. 제파장존자 (提婆長尊者)
즉 승가제파(僧伽提婆)인데 그 의미를 번역하면 중천(衆天)이다. 본성은 구담(瞿曇)이고
계빈국인이다.
고승전권1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기를, 삼장(三藏)에 통달하였으며 특히 아비담심론을 즐겼고
그 자세한 내용까지 통달하였으며 삼법도론(三法度論)에도 통달했다. 전진건원(前秦建元)년간에
장안에 도착하였으며 후에 피난하여 낙양으로 이주해서 합작하여 아비담팔건도논
을 번역했다.
그 후에 초청으로 강을 건너 노산에 왔는데 명승 혜원과 함께 거주하면서 불교의 법리를 연구하고
아비담심론 및 삼법도론을 번역하였다.
융안 원년에 혜원과 헤어져 건강에 왔는데 왕과 귀족과 병사들의 존경과 숭배를 받았다. 불법을 굳게
믿는 낭아왕 사마순은 제파를 정사로 모시고 스님들을 모아 놓고 제파에게 아비운학을 설하게
하였다.
이때 제파는 벌써 한어에 정통하여 청산유수와 같이 평생의 학술을 모두 강의했는데 모든 사람들의
탄복을 자아냈다. 그는 또 사마순의 요청으로 중아함(中阿含)등의 경서를 재번역하였다.
강북과 강남등지에서 번역한 경서들은 무려 백여만권이나 된다.
365. 성대리존자 (成大利尊者)
존자는 보살과위를 얻었다.
십주비파사론에 의하면 이름을 성리 또는 성대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성리보살은 과거에 세간의 일체 마귀를 굴복시켰으며 무한한 지혜로 천하의 중생들에게 이로움을
가져다 주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진심으로 성대리존자를 공양하였으며 그를 공경하고 높여서 그를 만나면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예를 표하였다.
현세에서 성리보살은 시방(十方) 세계의 여러 중생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정도를 구하게 하였으며
늘 무상묘법을 전하고 있다.
성리보살은 공덕이 원만하여 금신불과(金身佛果)를 얻을 수 있지만 중생들의 고난을 염려하여
세간에 오래 살기를 원했으며 중생들을 인도하여 고해에서 극락정토로 오르게 하였다.
366. 법수존자 (法首尊者)
즉 법수보살이다.
늘 석가모니불의 법교를 즐겨 들었다.
불설정공경(佛說正恭經)의 기록에 따르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의 법회에 법수보살이 와서 들었다.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의 기록에 의하면 사파세계의 서북쪽 무극원처에 금강불국 세계가
있었는데 그 불명은 일승도(一乘度)이고 범수는 일성도불의 수제자였다.
불명경(佛名經) 권11에서는 법수를 응당 예경(禮敬)해야 할 대보살이라고 했다. 이경에서
지적하기를 중생은 마땅히 성심으로 번뇌와 업장을 참회하여야 하고 만약 빨리 참회하지 않으면
업보를 받을 때에 수명은 끝날 것이고 지옥의 악마가 눈앞에 출현하여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을
것이라고 했다.
십주비파사론 5권에서도 말하기를 “중생은 법수등 대보살을 예경하여야 아뇩다라삼막삼보리가
가능할 것이다.”고 하였다.
367. 소빈타존자 (蘇頻陀尊者)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곧 열반하실 때에 중생들은 슬퍼하였고 또한 마음속으로 공포를 느꼈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시면 곧 효시를 잃게 되어 세계는 곧 고난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런 상황을 보고 16대 아라한을 파견하여 세간에 영주하며 사악을 몰아내고
중생을 보호하게 하셨다.
소빈타도 16대 아라한 중의 제4존자로서 7백 아라한과 함께 북구노주에 거주하면서 16대 아라한과
공동으로 중생을 보호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남섬부주의 사람들의 수명이 극히 짧았는데 열 살이 넘기기가
바쁘게 죽어갔다. 또한 칼을 든 병사가 도처에서 일어나 서로 싸워서 불법이 유행되기 힘들었다.
소빈타 및 16 아라한은 함께 남섬부주에 와서 불교의 불법을 흥왕시켰으며 무량중생을 이끌어
출가하게 하였는데 불법을 널리 전하여 주둔해 있던 칼든 병사들을 몰아냈다. 그리하여 전쟁은
끝나고 백성은 안락하여 이곳의 수명이 육만 세로 올랐다.
이후부터 불법의 신심은 더욱더 높아졌고 사람들의 수명은 다시 7만세로 올랐다고 한다.
368. 중덕수존자 (衆德首尊者)
즉 공덕수보살(功德首菩薩)이다.
이 보살은 공덕과 지혜로써 그 마음을 수련하였는데 명성은 수미보다 뛰어났고, 심신은 견고하기가
금강과 같았으며 법보가 널리 빛나고 ,감로가 내리는 것 같으며, 불법에 깊이 들어가 사견을 끊었다.
이 보살은 불법에 정통하였으며 그 해석에 막힘이 없었고 전력을 다해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하였는데, 그 설법은 우레와 같았으며 사자가 울부짖는 것과 같았다고 하였다.
중생들은 힘과 용기를 얻었으며 마음속의 많은 마귀의 장애, 곧 사악함을 깨끗이 없애고 보리심이
환하게 나타나는 것 같았다.
369. 금강장존자 (金剛藏尊者)
존자는 금강장보살인데 금강장왕이라고도 불렸다.
현겁 십육 존자중 한 분이었다.
존자는 등각계위(等覺階位)를 획득하였는데 대승계위 52위 중의 제51위에 속하고 여러 보살
중에서도 최고 등위였다.
존자는 삼지백겁중에서 수행이 원만하였고, 법을 전하여 중생들에게 유익하게 하며 여러 보살과
같이 많은 공덕을 쌓았다.
존자는 심신이 청정하고 불성이 견고하여 금강석과 같았다.
그는 여러 부처님께 배워서 여러 부처님과 같은 자비와 지혜를 획득하였는데 그의 지혜는 예리하여
아주 작은 의혹도 분석할 수 있었으며 극히 미묘한 의문도 해결할 수 있었다.
금강장보살이 세운 공덕은 물론 자신의 불성으로 이미 성불할 인연이 되었다. 곧바로 불과를
얻게 되었으며 부처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금강보살은 항상 분노하는 모습과 손에 금강방망이를 들고 있는데, 악마를 굴복시키고 불법을
보호함을 나타내었다.
370. 구가이존자 (瞿伽梨尊者)
또한 구가구(俱迦俱), 구가이(仇伽梨), 구파이(瞿波離), 구화이(瞿和이)등이라 하고, 그 의미는
악시자(惡時者), 우수(牛守)이다.
석가모니의 종형제로서 두반왕의 아들이며 제파달다의 제자이다.
불교전설에 의하면 하루는 사리불과 목건련 두 사람이 도중에 비를 만났는데 도공(陶工)집에
잠자리를 빌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집안에 여자가 있었는지를 몰랐다.
이 여인은 밤에 꿈에서 실정(失精)을 하고 아침에 목욕하다가 구가이에게 발각되었다.
구가이는 사리불, 목건련 두 사람의 덕행이 부정하다고 모함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구가이가 호인을 비방하는 것에 대해 세 번이나 그러지 말기를 당부했으나
구가이는 아집과 독선으로 자신을 주장하였기에 끝내 구가이는 종기가 나서 죽었고 아비지옥에
처했다.
그 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도, 불, 선으로 환생해 부지런히 수련하여 나한과위를 얻었다.
371. 일조명존자 (日照明尊者)
당대 중천축의 고승인데 범명은 지파하라라고 하였다. 그뜻은 일조(日照)이다.
존자는 삼장을 통달하고 주술에 정통하였으며, 또한 계행을 엄수하고 재능이 탁월하였다. 한때는
마가보리사 및 나란타사에서 거주했다. 영융(永隆)초년에 현장법사를 따라서 멀리 중국으로 왔다.
마침 당고종과 만나 불교를 널리 전하였으며, 당고종은 일조를 초청하여 장안 위국서사(魏國西寺)에
있게 하였고, 널리 대덕도성율사(大德道成律師), 박진법사(薄塵法師) 등 열명의 명승들을 모집하여
경서를 번역하게 하였다.
현수법사가 늘 불경이 부족함을 탄식하였는데, 일조가 경서를 번역한다는 것을 알고 대선대덕이라
여기며 친히 와서 일조를 도와 번역 및 검열을 하였는데 그 수량이 18부도 넘었다.
무칙천수공(垂拱) 연간(685~688)에 동도낙양에서 입적하였는데 제자들이 용문산하 강 오른쪽
언덕에 탑을 세우고 공양하였다.
후에 양왕무(梁王武)가 세 번 청을 올려 탑 곁에 절을 세웠다.
그 절의 이름을 ‘향산사’라고 지었는데, 사원의 정경이 아름다워 월전(月殿)은 높이 연기에 싸이고
수면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깃발을 둘러선 모습이 구름 속으로 날아오른다.”라고 하였다.
당시 낙양의 유명한 큰절이었다.
372. 무구장존자 (无垢藏尊者)
즉 무구장보살이다.
대보적경(大寶積經) 29권의 기록에 의하면 한 불국(佛國)이 있었는데 청정행세계이고, 그 불명은
보화여래(普花如來)라고 하였는데 무구장은 보화여래불전의 상수보살(上首菩薩)이다.
석가모니께서 당시 왕사성 기도굴산중에서 설법을 하고 계실 때 그 광명은 시방(十方)의
무량불토세계를 비추었는데 보화여래께서 무구장보살에게 구만이천의 많은 보살들을 거느리고
와서 법을 듣게 하였다.
무구장이 도착하여 먼저 석가모니께 예를 올리고 보화여래께서 그에게 명하여 보낸 칠보천협연화를
부처님께 올렸으며 그 다음에 보화여래의 문안을 전하였다. 말을 마치자 즉시 허공에 올라가
결가부좌하고 전심으로 설법에 귀를 기울였다.
또 생경(生經)권3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마갈타국 보리수 아래에서 처음 성도(成道)하셨을 때
무구장보살도 청정행세계에서 와서 이곳에서 만났다고 한다.
373. 제의망존자 (除疑網尊者)
제의망존자는 제의보살이라고도 하는데 불경 십주비파사론 권5의 기록에서 볼 수 있다.
존자는 벌써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고 전법륜(轉法輪)하여 법우(法雨)를 부리고 법고를 치며 법라
(法螺)를 불어서 세간에 불법을 널리 알렸다. 그리고 중생들과 함께 고난을 겪고 중생들을 유익하게
한 것을 천신들과 세간의 백성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중생들에게 악담으로 사람을 해하지 말고 힘으로 사람을 깔보지 말며 사악으로 사람을
괴롭히지 말 것과 불탑사원을 도둑질하지 말며 또한 스님과 사람들의 재물도 훔치지 말 것이며 더욱
부모에게 효도해야 된다고 가르쳤다.
만약 악한 말로 사람을 상하게 하고 남을 괴롭히거나 증오하면, 그리고 악한 일을 하고도 부처님께
참회를 하지 않으면 지옥으로 가거나 아귀로 환생한다고 하였다.
제의보살은 불법으로 중생들의 의혹을 해결하였으며 성심으로 중생들이 불법을 좇아 영원한 해탈을
획득하라고 제도하였다.
374. 무량명존자 (无量明尊者)
즉 무량명보살이다.
화수경(華手經)권4에 의하면 파의불(破疑佛)께서 거주하시는 의회(疑悔)세계와
무구변공덕성취불께서 거주하시던 덕주세계(德住世界) 사이에 한 불토세계가 있었는데, 그 곳의
이름은 묘선(妙禪)이고 부처님의 이름이 무상음(无相音), 무량명(无量明)인데, 보살은 이 불전의
상수보살이었다.
무량명은 무한광명이란 의미다. 이것은 덕행으로 얻은 이름이다.
이 보살은 절대의 지혜를 구비하고 그 광명은 일월을 가리우며 인간세상을 비추어 중생들로 하여금
무상정등정각하여 해탈하게 하였다.
375. 제중우존자 (除衆憂尊者)
존자의 이름은 제일체우명보살(除一切憂冥菩薩)이며 제일체우뇌보살 이라고도 불렀는데 별칭은
대구금강이다.
대장계의 만다라지장원의 제일 위에서 살았다.
불교는 세간이 여러 가지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고 인식하였다.
그 원인으로 첫째로 생로병사의 고통은 세상중생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고통이고, 둘째는 이별의
고통으로 처자 및 친척, 친구간의 이별로 일어나는 고통이고, 셋째는 원한과 증오의 고통으로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마음에 생기는 고통이고, 넷째는 구하되 얻지 못하는
고통이니 물질이나 마음을 얻지 못하여 속으로 앓는 말 못할 고통이고, 다섯째는 오음성고(五音盛苦)
로 사람의 신심을 5음이라 하는데 신심이 성장하는데 받아야 하는 고통이다.
세상의 많은 고통을 통틀어 말하면 고통은 많은 사람들의 염려에서 생기고 그 염려는 바다처럼 깊다.
세상의 많은 감정은 바다와 같아서 염려 속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제일체우명보살은 중생을 불쌍히 여겨 불법을 널리 전하여 중생들에게 지혜가 생기게 하고 지혜로
고통을 물리치게 하였다.
따라서 제일체우명보살은 일체중생들의 근심과 어리석음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376. 무구덕존자 (无垢德尊者)
즉 무구덕보살이다.
십주비파사론 권5의 기록에 의하면 중생이 만약 무구덕등 대보살께 공경하고 예념(禮念)하면 가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에 들 수 있다고 하였다.
무구덕보살은 덕행으로 이름을 얻었다.
무구는 무루(无漏)라고도 하는데, 번뇌와 탐욕과 분노는 밤낮으로 눈과 귀 등의 여섯 문으로 새어 들어와 그치지 않아서 예로부터 루(漏)라고 했다.
무루는 즉 번뇌를 제거하고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서 청정본성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나 번뇌로 오염된 것은 마치 거울이 먼지로 더렵혀진 것과 같은 것이다.
무구덕보살의 이름을 기억하고 생각하면 중생들로 하여금 그 쌓인 먼지를 떨어버리고 티끌없이
깨끗한 본체를 드러내게 한다.
377. 광명간존자 (光明간尊者)
존자의 이름은 광명왕보살이다.
그 지혜는 일월과 같고 존귀함은 왕자와 같으며 염불하며 행하는 자를 보호하는 25명의 보살 중
한 분이다.
미륵불께서 장차 중생들을 인도하여 극락정토로 오를 것이라고 맹세 하였다.
만약 세상의 중생들이 입으로 미륵불의 불호를 염불하고 또한 전심으로 생각을 모아 입과 마음이
일치하면 미륵불의 대비원력(大悲原力)의 응답을 감지할 수 있으며 염불자의 마음과 대비원이
상호감응 할 수 있어 염불자는 곧 염불삼매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천하의 선량한 사람들이 이 법을 수지하면 극락정토로 오를 수 있다.
천하의 악인도 이 법을 수지하면 바르게 고쳐 재난을 면할 것이며 나아가서 극락정토에 오를
수 있다.
광명왕보살은 주로 염불하는 많은 중생들을 보호하였는데 흉악한 악귀가 수행자의 마음과
생각을 혼란케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그들로 하여금 밤낮 안온하게 하였다.
수련자의 공덕이 원만해지면 광명왕보살은 곧 미륵불과 함께 와서 영접하였으며 그들로
하여금 극락세계에 환생하게 하였다.
378. 선수행존자 (善修行尊者)
즉 수행보살이다.
불유교경론소절요(佛遺敎經論疏節要)에 의하면 “수행보살은 인내함에 있어서 능히 여러 가지
많은 고뇌를 참을 수 있다.”고 하였고, 소위 감인지(堪忍地)는 보살십지(菩薩十地)중 초지(初地)의
별명인데 남본열반경 권11에서 말하기를 “보살마하살은 이곳에 있은지 오래 되었는데 탐욕을 능히
참을 수 있고 또한 춥고 덥고 배고프고 목마른 것과 모기, 등에, 벼룩, 이가 무는 것과 폭풍과 열기에
부닥치는 것 그리고 신심고뇌의 모든 것을 다 참을 수 있었다. 고로 감인지라고 이름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현의(玄義) 권4에서 이르기를 “위로 불법을 수지하고 아래로 중생들을 돌보는 것을
감인지라고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수행보살은 불법을 배우고 수지하는 어려운 과정을 상징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분이 여러 가지 고뇌를 참고 견디는 것은 중생들을 불쌍히 여겨 스스로 고통을 짊어지고 중생들이
해탈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379. 좌청량존자 (坐淸凉尊者)
존자는 당대의 명승이었다.
속성은 하후(夏侯)요, 조상의 본적은 산음(山陰)이었다.11세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고 법호는
등관(등觀)이었다.
성년이 된 후 남북의 유명한 사찰로 다니며 고승들을 찾아뵙고 각파의 학설을 통달했다.
채자사경전(采子史經傳)의 학술에 해박하여 각 큰 사찰의 초청으로 경문을 설하였는데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다.
당대 덕종 정원 8년에 장안에 기거하며 황제에게 경서를 설했다. 정원15년(779) 4월 덕종의
수탄절에 수레로 영접하여 전내에서 화엄종지(華嚴宗旨)를 강의했다.
경서 강의가 끝나자 덕종은 군신들에게 “스승은 언어가 우아하며 간결하고, 사전(辭典)이 풍부하여
불법으로 짐의 마음을 청량하게 하였도다.” 고 말하였다. 이로부터 그에게 ‘청량국사’라는 호를
붙이게 되었다.
당문종 개성 3년(838)에 청량국사는 입적하였는데 향년 102세였다.
군신들은 조중의 일을 3일간이나 중지하고 상복을 입었으며 전국적으로 도하였다. 또한 탑을 세워
종남산에다 모셨다
수일 후 인도스님이 장안에 온 적이 있었는데 북인도 문수당의 두 사자가 동쪽에서 날아와 화엄보살
(즉 청량국사)의 어금니를 가지고 돌아가서 모시고 있는 것을 친히 목격하였다고 하였다.
문종이 탑을 열고 검사해 보라고 명령하였는데 과연 청량국사의 이 한대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문종은 친히 탑액을 주었는데 그 이름을 ‘묘각(妙覺)’ 이라고 명하고 상국(相國)에게 명하여 비문을
쓰게 하였다.
380. 무안존자 (无憂眼尊者)
즉 아육왕(阿育王)이다.
아노가(阿怒迦) 또는 아수가라고도 한다. 의역하면 무왕(无憂王), 천애희견왕(天愛喜見王)이란
뜻이다.
인도 마갈타국 공작왕조의 창시자인 단타라지다의 자손이다. 그는 태어나서 성격이 광포하여 부왕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부왕이 죽은 후 여러 형제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며 무력으로 인도를
통일했다.
왕위에 오른 후 초기에도 그 성질을 고치지 못하고 대신들과 무수한 부녀자들을 죽였으며 또한
큰 지옥 하나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도살하였다.
후에 뉘우치고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불교를 국교로 삼았다.
그리고 사찰과 탑을 건설하였는데 무려 8만 4천 개나 세웠고 또한 화씨성에서 목건련 등에게 명을
내려 불교 제3차 결집을 주관하였다.
그리고 전국에 령을 내려 마애(磨崖)와 석주(石柱)에 새기게 하였다.
결집을 완성한 후 아육왕은 또 전교사를 파견하여 사방에 불교를 전하게 하였는데, 불교가 고인도의
각지와 이웃나라에 전파되게 하였다.
그가 파견한 전교자는 심지어 먼 시리아, 애굽, 에스파니아 등에까지 갔다.
381. 거개장존자 (去盖障尊者)
존자의 이름은 제일체개장보살(除一切盖障菩薩)이신데 또한 제개장보살 혹은 거재장보살 이라고도
하였다.
태장계만다라 13대원중 제8원에 거주하였다. 존자는 불문에 초입하였을 때는 수정보리법문에
살았으나 오랜 수행의 수고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말았다.
후에 제일체개장삼매를 깨달아 다시는 힘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련을 견지하여 끝내 견법명도
(見法明道)하였으며 다섯 신통력을 갖추고 보살과위를 얻어 제불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존자는 구념진언(口念眞言)하면 중생들의 선성(善性)을 개발할 수 있고 중생들로 하여금 지혜를
발휘하게 하여 네 가지 더러움을 깨끗이 제거한 후 종래에는 청정의 인연을 획득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제개장보살은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대중을 위하여 장문(障門)을 제거하고 중생의 바램을
만족시키며 중생들의 신심이 편안하게 하였다.
382. 자명존존자 (自明尊尊者)
자명존존자의 명(明)은 밝음을 뜻한다.
법지론(法地論) 권1에서 말하기를 “의명자(義明者)는 혜(慧)로 성(性)을 삼았는데 지혜는 암흑을
제거하고 광명을 가져올 수 있으며 의(義)가 막히지 않고 선근(善根)으로 성을 삼으니 이르기를
무명(无明)이라 한다.“고 했고, 대승의장(大乘義章)에서 가로되 ”법이 명료함을 아는 것을 명(明)
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자명존존자는 중생들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중생들 스스로가 지혜를 구하고 밝은
마음에 스스로 이르게 하며, 자신의 소유욕을 일체 떠나서 청정해야 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383. 화윤조존자 (和倫調尊者)
무앙(无央)수겁이래 화윤조존자는 불법을 배우고 도를 닦아 왔는데 과거에 석가모니께서 한때
화윤조존자에게서 반주삼매를 배웠었다.
화윤조존자는 벌써 보살의 과위를 얻었으며 또한 부처의 공덕을 구비했으나 오로지 천하의 중생들이
모두 해탈된 후에 성불할 것이라고 맹세했다.
지금도 화윤조보살은 세상에 살고 있는데 천하 십만 세계의 중생들이 만약 어떤 급한 일에 처했을
때 화윤조보살의 이름만 부르면 곧 재난을 물리치고 회복할 수 있다.
언제든지 이 보살에게 참배하면 이후에 극락에 이르며 전생하여 연꽃의 꽃봉오리처럼 연궁화로
환생하게 된다.
384. 정제구존자 (淨除垢尊者)
즉 정삼구보살(淨三垢菩薩)이다.
문수지리보초삼매경(文殊支利普超三昧境) 권하에서 정삼구보살과 여러 대보살, 그리고 비구가 함
께 아도세왕을 점화(点化)하여 뉘우치게 하였다. 정삼구보살께서는 행으로써 이름을 세웠다.
삼구는 또 삼독(三毒), 삼근(三根)이라고도 하는데 즉 탐(貪), 진(嗔), 치(痴)로서 일체 번뇌의
근원이다.
탐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물에 대하여 생기는 탐욕의 마음이고, 진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사물에
대해 생기는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며, 치는 사물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는 우둔한 마음을
말한다.
정삼구보살은 수행을 통하여 탐, 진, 치를 깨끗이 제거 하였으며 번뇌의 뿌리를 제거하고 아울러
중생을 도와 3독을 끊고 고해에서 탈피하게 하였다.
바로 무량수경(无量壽經) 권하에서 이른 바와 같이 “삼구의 어두움을 제거하고, 널리 중생의 재난을
구제하였다.”고 하였다.
385. 거제업존자 (去諸業尊者)
존자는 제업보살, 추쇄보살, 존승보살, 제장불정보살이라고도 한다.
석가여래의 다섯 불정 중 한 분이시다.
존승불정수유가법의규 권하에 의하면 석가모니의 자비가 무량하여 중생들이 타락하여 고통을
받는 것을 불쌍히 여겨서 제장삼마지에 들어가 불입정하신 후 그 머리 위에서 윤왕의 형상을
나타내었는데 이 윤왕을 제엄보살이라 했다.
정수리 뒤에서 밝은 빛을 뿜었는데 세상을 비춰주었다.
제엄보살이 나타났을 때 시방세계에서는 6가지 진종이 발생하였는데 대지의 진동에 따라
일체지옥의 6취중생, 혹은 곧바로 약하게 타락할 중생들이 모두 다 죄악을 면하고 해탈을 얻었으며
함께 여러 중생들이 모두 시방 청정국토로 솟아올랐다.
제엄보살은 모든 악도를 청정케 하고 모든 유정의 생사고뇌를 깨끗이 없앨 수 있었다.
제엄보살에게 참배하면 본세와 전세의 모든 지옥악업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386. 자인존존자 (慈仁尊尊者)
즉 자인보살이다.
보살영락경 권14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마갈타국 니연선하변의 보리수 아래에서 증도성불하신
후에 법락당에서 설법을 하셨는데 시방의 여러 중생들이 모두 각 불국세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로
와서 세인을 위하여 설법하여 중생들의 고난을 해결해주고 구언하여 주실 것을 청하였다.
그때 자인보살도 법락당에 와서 설법에 참여하였는데 불타를 찬송하여 말하기를 “제법이
심오함이여 공에 단서가 없음이며, 근본에 통달하매 제도가 없으니 고로 인중존이로다." 하였다.
387. 무진자존자 (无盡慈尊者)
존자의 이름은 아일다(阿逸多)인데 번역하면 자씨(慈氏)이며 즉 미륵보살이다.
남천축파라문가에서 태어났다. 석가모니의 제자인데 다년간 석가모니를 따라다니며 불법을 배웠고
중생들을 구하는 방법을 찾았다.
자씨는 일찍이 무엇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불교를 따르면서도 해탈하지 못하느냐고 여쭈었다.
석가모니께서는 이르시되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불교를 믿고 받든다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불법을 의심하고 있다. 따라서 부처의 지혜를 얻지 못한다. 그들은 화복이 보응임을 믿으나 부처님께
예의로 행하지 않고 불경도 듣지 않으며 많은 보살 및 스님들에게 참배하지 않기 때문에 해탈을 얻을
수 없다.
만약 불법을 굳게 믿고 법의 지혜를 잘 알고 여러 보살들을 참배하며 일심으로 중생들을 유익하게
한다면 내세에 전생하여 칠보연화 봉오리에서 온몸에 빛을 뿌리고 고해로부터 해탈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자씨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훈을 명심하고 성심으로 불교를 믿었다.
자씨보살은 입적 후 도솔천의 내원에서 살았는데 사천 년 후에 인간세상에 강생하여 화림원 용화수
아래에서 정각한 후 대중들을 위해 세 차례 설법하고 일체 사람과 하늘을 보화(普化)하였는데 이를
용화회(龍華會)라고 하였다.
388. 사타노존자 (颯陀怒尊者)
즉 사타노인데 또한 발타화, 사타파라등이 라고도 한다. 번역하면 현호(賢護), 현수(賢守)이다.
마갈타국 왕사성중 제일 부자인 상인의 아들이다. 재가지보살(在家地菩薩)이다.
대보직경 권109에 의하면 현호장자회제39에서 말하기를 사타화보살은 전세에 복업을 수련하였기에
집에서 쾌락과보(快樂果報)를 향수하였다고 한다.
그는 어디에 가나 6만 명의 최대상주(最大商主)들이 그의 뒤를 따랐으며 그의 집에는 늘 6만장의
제일 좋은 침대가 있었는데 그 위에는 화려한 이불, 요를 깔아놓았다. 그의 신변에는 6만 명의
아름다운 여자들이 그를 시중했는데 그들은 모두 다 부드럽고 가늘고 매끈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밥을 먹을 때는 상위에 늘 6만 가지의 채소가 차려져 있었는데 그 맛이 기묘하고 향기로웠다.
이처럼 사타화보살이 누린 쾌락은 연도리천(連忉利天), 제석천(帝釋天)도 비교할 수 없었다.
389. 나라달존자 (那羅達尊者)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강생하시기 전 남천축에 한 신선이 있었는데 이름이 아사타(阿社陀)
라고 하였다.
그는 중장림 중에서 선도를 수련하여 법력이 높았고 다섯 가지 신통력을 구비하였다.
한 시동이 있었는데 이름은 나라달(那羅達)이며 늘 선인의 뒤에 서서 모기와 등에를 쫓았다.
불본행경(佛本行經) 권9에 의하면 하루는 아사타가 정반왕궁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라달을 데리고 그쪽으로 가서 조사하였다.
두 사람이 정반왕궁에 와서 보니 정반왕께서 아들을 얻어 기뻐하였다.
선인은 전국의 상사(相師)를 청하여 실달태자(悉達太子)의 관상을 보게 하였는데 상사들은 모두
다 태자의 모습이 단호(端好)하므로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아사타선인도 친히 가 보았는데 태자가 금후에 필히 큰 정과를 이룰 것을 알았다. 정반왕과 작별하고
나라달을 데리고 중장림으로 날아왔다.
선인은 나라달에게 이르기를 응당 부처님께서 금세에 나타나야 하는데 이 부처가 곧 정반왕의
실달태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 너는 나를 떠나 출가하여 불법을 배우면 불법이 널리 퍼질 때에 곧 해탈을 얻어
극락세계로 올라가 안락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라달은 바로 출가하였으며 끝내 나한의 과위를 획득했다.
390. 행원지존자 (行愿持尊者)
정행(正行)으로 이름을 세웠다.
행원, 즉 몸의 행과 마음이 원인데 행동과 마음이 반드시 상보상성(相輔相成)하여야 큰 일에 성공할
수 있다.
청룡소(靑龍疏) 권하에서 이르기를 “행동과 마음이 서로 의지해야 이 둘이 수행으로 기울어지지
않는다.“고 하였고 또 보리심론(菩提心論)에서 이르기를 “범인의 욕심은 선과 악이 함께 하는데 먼저
마음에 나타나고, 후에 밖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보리를 수련할 자는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보리의
마음을 수련해야 한다.“고 했다.
차제선문(次第禪門) 권1에서 이르되 “소원만 있고 행동하지 않으면, 사람이 강을 건너가고자 하나
배와 키잡이를 준비하지 않는 것과 같아서 응당 이 기슭에서 아무리 오래 있어도 건너갈 수 없다.“
고 하였다.
행원지존자는 마음으로 정각(正覺)을 구하리라는 결심을 하고 늘 이 마음이 흐려지지 않도록
하였으며 실행하여 열심히 수도함으로 끝내 보리심을 일으키고 나한과위를 얻어 피안의 세계에
도달하였다.
391. 천안존존자 (天眼尊尊者)
이 존자는 덕으로 이름을 얻었다.
이전의 몇 전생이래로 존자는 불교를 숭배하고 믿었으며 중생을 유익하게 하였다. 또한 선정 중에서
세계의 4대 정화(精花)를 취하고 안근을 수련하였다. 공덕을 구비하고 지혜에 통달한 후 세간에
환생하였는데 천안공능(天眼功能)을 구비하였다.
그의 눈은 무한의 먼 거리와 무한의 가까운 거리, 무한의 크기와 무한의 세밀하고 작은 모든 물체를
관찰할 수 있었으며 세상 중생들의 마음의 선악을 볼 수 있고, 전생의 선악의 많은 업을 보며 장래에
어디로 전생할지 알 수 있었다.
천안존자는 각 개인의 선악에 따라서 그들에게 죄악을 제거하고 해탈을 이루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권14에 의하면 천안존자는 부처의 과위를 얻었으며 중생들의
유익을 위해서 설법하여 세상의 악취에서 벗어나게 하며 여러 고통으로부터 떠나게 하였다.
천안존자가 간 모든 국토에서는 오곡이 풍년이요 만민이 희락하고 천지의 귀신마저도 그의 은택을
누렸다고 한다.
392. 무진지존자 (无盡智尊者)
즉 무진지보살이다.
불설대반니항경 권1에 의하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구시나가성 희련하변 견고림쌍수사이에서
열반하실 때 무수한 천인과보살 등 모두가 석가모니 부처님께로 왔었다.
무진지보살도 급히 와서 매우 슬퍼하였다. 불타께서는 그와 중생들을 위안하여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고 이에 무상묘법을 설법하셨는데 무진지는 공경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무진지보살은 무수한 겁 중에서 정계(淨戒)를 수행하여 삼보를 흥성시켰고 전법륜하여 대광엄
(大廣嚴)을 이루었는데 수행은 매우 견고하였으며 일체공덕은 모두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자비심으로 세상에 일체 선을 행하여 중생을 안위하고 깨치지 못한 중생을 도(道) 밭에서
도가로 부처가 나타나게 하였고 악은 사하고 선은 새싹을 트게한다고 각론하였다.
393. 편구족존자 (遍具足尊者)
구족아라한은 세간 중생들을 두루 제도하였는데, 편구족존자라고 불렀다.
불명경(佛名經) 권4에 의하면 구족존자는 세상의 맹인이 볼 수 있고, 귀먹은 자가 듣고, 벙어리가
말하고, 빈곤한 자가 풍의족식하며 창고가 가득 차서 한 사람도 기아와 추위의 고통을 받지 않기를
원했다.
구족존자는 중생들의 모습이 모두 단정하고 수려하며 묘상이 장엄하여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기를 원했다. 사람들도 서로 자비로 대하고 불안(佛眼)으로 보아서 쾌락길상을 추구하기를 원했다.
구족존자는 또한 중생들에게 권세 혹은 재부를 믿고 거들먹거리며 나쁜 짓을 하지 말고 무지로 악한
벗을 사귀지 말며, 부모의 은혜를 잊어 부모를 존경하지 않고 술잔에 미련을 두어 음주무도하지
말라고 권하였다.
이와 같은 죄가 있는 사람이 구족존자에게 기도하여 새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면 죄악이 제거되고
지옥의 고난을 피할 수 있으며 새사람이 되었다.
394. 보개존존자 (寶盖尊尊者)
인도 마갈타국왕사성인이며 신분은 우파새(憂婆塞)이다.
귀의삼보와 친하고 오계를 지키는 재가거사(在家居士)이다.
마갈타는 석가모니께서 도를 얻으신 땅인데 불교의 중심이 되었고 석가모니께서도 장기간 여기에서
활동하셨다. 보개존존자는 불교를 믿었는데 늘 불타의 거처에 와서 교의에 귀를 기울였다.
예를 들면 불설인왕반야파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에 따르면 불타께서 이성의 기도굴산
중에서 설법하실 때에 그도 즉시 출석하였는데 사위국 주파사닉왕은 그에게 문제를 제기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보개존자는 계율을 엄격히 준수하였으며 수행에 실증을 느끼지 아니하여 마침내 타라한(陀羅漢)의
과위를 얻었다.
395. 신통화존자 (神通化尊者)
존자의 법호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통력을 즐겨 사용하여 불법을 포교하고 중생들을 감화시켰기에 신통화라고 불렀다.
대당서역기 권12에 의하면 옛날의 진국(오늘날 신강 화진)은 불교를 믿지 않았다.
한 나한이 먼 곳에서 이곳으로 와서 불교를 전하였는데, 이 진성의 서쪽 수림 속에서 거주하였다.
야간에 나한은 신통력으로 온몸에서 큰 빛을 비추었다. 국왕께서 높은 다락방에서 수림 속의 광명을
보고 친히 수림으로 와서 보게 되었는데 한 나한이 신통력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은 마음으로 우러러보게 되어 나한을 궁중으로 청하였다. 나한은 수림속의 깨끗하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며 경성의 화려함을 구하지 않았으므로 좋은 말로 국왕의 호의를 거절하였다.
국왕은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으며 나한을 위해 수림 속에 전을 짓고 탑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절과 탑이 세워진 후 국왕은 또한 사리 수백과를 얻어 탑 밑에 넣으려고 하였으나 방도가 없어서
탄식하였다.
나한은 다시 한번 신통력을 발휘하여 오른손으로 탑을 들어올려 왼손에 놓고 국왕에게 이르기를
사리를 탑 밑에 놓으십시오.”라고 하였다.
많은 공인들은 땅을 파고 굴을 만들어 사리를 넣었다. 넣은 후 나한은 보탑을 서서히 원위치에
놓았는데 탑신이 곧게 섰고 처음과 똑같았다.
국왕 및 대중들이 이에 경탄을 금치 못했으며 이로부터 온 나라가 불교에 귀의하였다.
396. 사선식존자 (思善識尊者)
사선식존자는 선식, 즉 지식을 즐긴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지식은 해박한 지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품덕을 관찰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선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법화문구(法華文句) 권4에서 가로되 “듣는 것은 지(知)이고 보는 것은 식(識)인데 보리지도
(菩提之道)를 더해줌으로 그 이름을 선지식이라 한다.”고 하였고 또한 법화경 묘장엄왕품에서
가로되 “선지식은 대인연이요 소위 부처의 제도를 받아 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을 얻는다.”고 하였다.
유부비나야잡사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지식자는 모두 범행이요, 따라서 악한
지식에서 벗어나고 많은 죄악을 짓지 않는다. 늘 선을 수련하면 순수하고 청백할 것이며 구족이
원만하여 범행의 상(相)일 것이니, 만약 선한 동반자와 인연이 되어 함께 산다면 열반에 이르지
못함이 없을 것이니 그 이름을 전범행이라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선식존자는 선도를 배우는 과정에서 늘 착한 동반자를 얻어 서로 도왔으면 하고 생각했으며 빨리
무상정등정각을 얻어 끝내 아라한의 과위를 얻었다.
397. 희신정존자 (喜信靜尊者)
존자는 부처를 받들었으며 신(信)과 정(靜)의 둘을 숭배하고 제창하였는데 정으로는 자신을
규범하고 신으로는 사람들을 감화시켰는데 호는 희신정이라 한다.
불법을 믿고 받드는 것은 불교수행자에 대한 초보적인 요구이다. 오로지 불법을 믿고 받들어야
진정으로 불법을 이해하고 그 다음에 능히 법으로 수행할 수 있다.
불법에 대한 성실한 신앙은 수정보주와 같아서 더러운 물을 가려낼 수 있으니 마음속에 ‘신주(信珠)’
를 간직하고 있음이며,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여 세속의 더러움을 제거할 수 있다.
일체 삼보에 초입한 사람은 모두 믿음으로 그 근본을 삼아야 하는데 이는 일체공덕의 어머니이며
일분(一分)의 신심을 증장하면 일분의 선법을 증가할 수 있고 일분의 의혹을 멸할 수 있다.
불법을 보배산으로 여기면 신심을 가지고 산에 들어가 보배를 찾아야 하는데 신심이 견정하면 얻지
못하는 보물이 없을 것이다.
즉 신심이 있으면 그 다음은 정심(靜心)을 구하라. 정심은 번뇌를 없애고 분노하지 않으며 남을
원망하지 않게 한다. 역경에 처해도 증오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안정하고 혼란하지 않음은 지혜에서 나며 안정 속에서 생긴 지혜는 마음에 염려와 번뇌를 영원히
멸할 것이다.
398. 마가남존자 (摩訶南尊者)
또한 마가남, 마가나마, 마가납, 마가마남 이라고도 하는데 뜻은 대명(大名)이다.
석가모니의 숙부 후반왕의 장자이며 구리태자(拘利太子) 혹은 마남구리(摩男拘利)라고 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북천축 가비라위국(현재 네팔)인이라 한다. 석가모니께서 성불하신 후 받은
5명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불교의 전설에 의하면 석가모니께서 태자로 계실 때 일심으로 출가하여 수행하려고 하였는데 그의
부친 정반왕은 할 수 없이 동의 했으며 아울러 친족들 중에서 먼저 5명을 파견하여 태자를
따라다니며 시중들게 하였는데 마가남이 뽑히게 되었다.
석가모니께서 당시 인도의 각종 수행방법에 따라 6년이나 고생스럽게 수행했으나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차츰 고행무익의 도리를 깨닫고 강에 가서 목욕을 하였는데 그때 한 소치는
소녀가 주는 우유도 받은 적이 있었다.
마가남 등은 이 정경을 보고 석가모니께서 신심과 노력을 포기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힘들게 수행하였다.
후에 석가모니께서 보리나무 밑에서 무상대각을 이루고 마가남 등을 찾아서 그들을 위해
설법하심으로 마가남 등은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399. 무량광존자 (無量光尊者)
아주 먼 옛날에 한 국왕이 있었는데 세자재불의 설법을 듣고 불법에 이끌려 왕위를 포기하고 불교에
귀의하여 출가였다.
법호는 법장(法藏)이었다.
그는 속히 성불하여 하루빨리 중생들의 근심과 번뇌의 고통을 뿌리뽑아버릴 것을 원하였다.
그는 불전에서 48가지 대서원을 하였는데 그 서원은 천지를 감동시켜 무수한 선화가 공중에서
내렸고 대지도 또한 진동하였다.
법장이 전체에 쌓은 공덕과 세운 맹세로 즉시 성불하게 되었는데 그 호를 무량광이라 하였고 혹
은 무량수(無量壽), 감로(甘露)이며 범어로는 아미타불이었다.
그 불국의 이름은 안락(安樂)이었는데 범위가 서방의 10만리였다.
거기에는 노병이 없고 고통이 없으며 생명을 마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마음대로 천계불국으로
올라갈 수가 있었다.
안락국의 중생들의 몸은 금빛이고 사람들의 모습은 단정하였으며 아름답기로 하늘의 신선과 같았고
서로 평등하고 원한이 없어 무엇이든 얻고 싶으면 얻을 수 있었다.
식사 때마다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와서 상위에는 자연히 아름다운 향기와 맛의 음식으로 풍성했다.
귀에는 늘 듣기 좋은 방울소리가 울렸는데 그것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였고 또 천락이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천산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같고 이곳이 바로 극락세계였다.
400. 금광혜존자(金光慧尊者)
즉 금광염보살(金光炎菩薩)이다.
불명경(佛名經)중에서 금광염보살은 응당 예배(禮拜)하고 귀의하여야 할 시방(十方) 여러 보살중의
한 명으로 나열하였다.
본경에서 이르기를 중생이 범부로 태어났거나 혹은 삼업으로 죄를 짓게 되거나 혹은 6근으로 인한
것 이거나 혹은 내심에서 오는 생각이거나 혹은 외부에서 물들었든지간에 귀천을 불문하고 그 죄는
무량한 것이라 하였다. 즉 악업을 지었으면 악한 보를 받을 것이며 반드시 성심으로 참회하여 고치고
그 죄를 없애야 한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보응이 올 때에는 아무리 허공으로 솟아오르고 바다로 뛰어들고 산의 돌 속에
기어든다해도 응당히 받아야 할 응보에서 도피할 수 없을 것이며, 지옥의 험악한 모습이 눈앞에
나타날 것이니 이때 후회하고 두려워하여 다시 참회하려고 하여도 때는 이미 늦었다.
금광염보살의 몸은 금색으로 빛났는데, 이것은 그의 무상한 지혜를 상징하며 그 빛은 중생들의
마음을 환히 비추어 주어 중생들이 성심으로 귀의하고 진심으로 참회하여 힘껏 선하게 노력한다면
죄악은 없어지고 복록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