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묵호이야기
 
 
 
카페 게시글
━━。묵호♧뉴우스 스크랩 묵호를 사랑한 이동순 시인
김영채 추천 0 조회 681 11.11.01 22:56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시로 쓴 묵호 풍물화첩

묵호를 사랑한 시인, 이동순

 

 

 

 

가자미야 / 너는 하늘 향해 반듯이 누워라 / 오징어야 너는 온몸을 줄곧 흔들어라 / 꾸둑꾸둑 말라 가는 명태야 / 바람이 없어도 네 스스로 몸을 뒤집어라

-「덕장 사람들」부분

 

막연히 묵호를 가고 싶었다. 묵호에 특별한 인연하나 없다. 그렇다고 묵호라는 도시를 잘 아는 것도 아니다. “찬바람부니 쓸쓸하지” 라고 문자 한통 보내고 소식이 끊긴 투병중인 후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묵호를 그리워했다. 묵호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묵호가 어떤 곳일까 궁금하여 묵호를 사랑한 시인, 이동순 시인을 만나러 갔다. 현재 영남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인 그가 지난 9월 14번째 시집『묵호』(시학)를 펴냈기 때문이다.

 

 

시집『묵호』는 70년대 전후 묵호 사람들의 삶의 소리다. 총 69편 4부로 나눠져 있으며 제1부에서는 묵호 사람들의 뼈아픈 가난과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고 제2부는 묵호 사람들의 일상의 구체적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묵호의 토속적 음식문화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고 제4부에서는 묵호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좇으며 그리워하고 있다. “이 시집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1970년대의 한 편의 흑백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잔상으로 남아 있어 따뜻함과 아픔이 동시에 느껴진다” 고 혹자는 말한다. 정호승 시인은 시집 ‘묵호’의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것은 묵호사람들의 슬프고 아름다운 삶의 풍경이라며 1970년대의 묵호가 산업화 및 도시화돼 가는 과정을, 그 과정 속에서 피어난 삶의 애환을 이동순 시인은 긍정적 관점에서 따스한 사랑의 시선으로 노래하고 있다고 했다. 시로 만나는 묵호 여행, 독자들과 함께 떠나본다.

 

묵호 등대

 

저녁 뱃고동 소리 들려오면

가뜩이나 먹빛 바다 더욱 검어지네

 

도째비골 언덕 아래로 채령이네 집

모퉁이 돌아 논골 쪽으로 내려가면 석구네 집

또 그 옆으로는 자야네 집

 

어스름 속에서 등대는 슬픈 얼굴을 하고

종일 뱃일하다 돌아온 남편과

종일 오징어 배 따고 돌아온 아내가 싸우는 소리를 듣네

 

창백한 얼굴로 가슴 앓다

혼자 먼 길 떠나간 지아비 생각하며

이 밤도 등대 앞에 나온 젊은 여인의 한숨 소리를 듣네

 

오래된 공동묘지 옆에 우뚝 서서

길 잃은 사람들의 앞을 밝혀주던 묵호 등대

 

 

 

 

 

시집『묵호』를 펴내며

“묵호는 우리나라 항구 가운데 그 지명이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먹빛처럼 검푸른 바다란 뜻을 담고 있지요. 하지만 이 아름다운 지명은 지금 우리 곁에 없습니다. 정겹던 이 이름은 북평과 통합되어 동해란 새 명칭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묵호 사람들은 여전히 묵호란 옛 지명을 즐기며 사랑합니다. 묵호는 비록 나의 태생지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시로써 꼭 한번 그려보고 싶었던 마음의 고향이었습니다. 나는 묵호 사람들의 시리고 아픈 가슴속으로 들어가서 격려와 위로의 가슴으로 그들을 쓰다듬고 어루만졌습니다. 오랜 시간 묵호에 몰두하면서 묵호 시를 쓰노라니 묵호는 어느 틈에 나의 그리운 고향으로 생기롭게 되살아났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묵호를 한국인 모두의 고향과 그 의미의 전형성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시집은 ‘시로 쓴 묵호 풍물화첩(風物畵帖)’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시집의 멋진 배역으로 기꺼이 들어와 준 묵호와 묵호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1973년 신춘문예당선 후 팬레터가 400여 통 왔는데 그 중 묵호에 사는 한 여성이 여러 통의 편지를 보냈어요. 그녀 때문에 묵호가 궁금해졌고 기차를 타고 찾아간 묵호의 첫인상, 정말 가슴이 짠했습니다. 모든 게 검었어요. 시커먼 석탄가루, 해풍마저 검은빛이었던 묵호는 강렬하게 남았죠. 그때 그 알 수 없던 짠했던 마음이 묵호 사람들의 삶속으로 천천히 들어가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나의 문학은 중년에 들어 서서히 한국사의 굴곡,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이산의 아픔을 알고 역사의식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마침 묵호의 비극성이 일깨워진 시기가 중년이었고 비로소 시집『묵호』가 세상으로 나 올 수 있었던 것이죠.”

 

하늘 닿은 / 저 산자락 동네에도 / 허기를 움켜잡고 / 한 가닥 빛이 솟아오른다 / 삶은 덕지덕지 /굴 껍질처럼 붙어서 / 아우성 치고 / 저 멀리 아른아른 / 만선 알리는 뱃노래 들려올 때쯤 / 과붓집 술청 문턱은 / 저 혼자 달아오른 바람이 넘실대는구나

-「묵호이야기」부분

 

부잣집만 / 전기를 켜던 / 그런 시절이 있었지 / 복순이네 흙담 밑구멍에서 / 옆집 복남이네로 몰래 이어져 있던 전깃줄 / 전봇대에서 / 슬쩍 당겨 와 잡풀 속으로 / 전선을 이리저리 숨겨 놓고 쓰던 전기 / 빨간 모자 쓴 검침원 오면 / 큰일 난다 식구들 / 가슴은 저녁마다 콩닥콩닥 숨죽였지

-「도둑전기」부분

 

그 시절엔 / 지게꾼들 많았어 / 항상 모퉁이에 몰려와 서성이던 / 날품팔이의 하루 / 내 아배도 그들 중의 하나였지 / 담배 한 개비로 긴 한숨 뿜어내며 / 명태랑 각종 생선 바지게에 담아서 지고 / 덕장 언덕길로 무거운 발걸음 / 터벅터벅

-「지게꾼」부분

 

논골 / 가는 길로 / 따라 올라가면 등대 / 그 등대 마당 뒤에 작은 슈퍼 / 이른 아침 / 술 사러 온 사내 문 두드리고 / 비좁은 마당에 널려 있는 하얀 빨래 위로 / 검은 탄가루 날아와 떨어지는 / 등대 슈퍼

-「등대 슈퍼」부분

 

늘 피어오르던 / 앞집 굴뚝에 오늘 아침은 / 연기가 오르지 않네 대체 무슨 일인가 / 사람들 웅성웅성 모여드는데 / 알고 보니 오징어 배 타고 나갔던 앞집 아들 철수 / 고압선에 감전되어 시커멓게 타 버렸다네 / 통곡 소리 들리는 여름날 아침 / 오징어 잡던 철수는 / 제 아버지가 이북서 데리고 온 하나뿐인 아들 / 귀한 자식 하늘로 먼저 보내고 / 철수 아버지 눈에 눈물 마를 날 없네 / 집안은 수심으로 가득한데 / 하루해는 왜 이다지 더디기만 한가

-「오징어 배」부분

 

 

“그때 묵호를 가려면 대구에서 영주 가는 중앙선 열차를 타고 새벽에 영주역에 내려 다시 기차를 갈아타야 했어요.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추운 겨울에는 많은 사람들이 인근 여인숙으로 가요. 거기서 쪽잠을 자는데, 배니아 합판 아시죠? 칸칸이 다 쳐져 있어요. 거기서 쪽잠을 자는 데 옆 사람 숨소리까지 들리니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있겠어요?그저 몸에 온기만 채우다 나오는 거죠. 방은 두 칸인데 형광등은 하나인 방 보셨나요? 무슨 말이냐 하면, 천정에 형광등 하나를 매달아 양쪽 방을 비추는 거죠. 지금은 상상도 못하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하하)”

 

강릉 묵호쪽으로 간다는 / 새벽열차는 언제나 올것인가 / 기다려도 오지 않는 밤차를 기다리는 / 영주역 대합실에는 / 깊은 밤에도 장사치들 발걸음 / 부산하구나/…영주역 앞 여인숙/피난민처럼 옹기종기 어깨 맞대고 / 퀴퀴한 곰팡내 나는 / 아랫목 이불 속에서 잠시 쪽잠을 청하는 사람들 / 지친 몸 서성이며 한참 머뭇거리다 / 곤하게 잠든 새벽을 / 소란스레 일깨우며 달려 들어오던 / 동해 북부행 열차

-「영주역에서」부분

 

“묵호 사람들을 만나면서 묵호의 오랜 기억들을 들춰냈습니다. 눈내리는 덕장, 묵호 이발소, 묵호 양조장, 지금은 나이트클럽으로 변한 묵호극장, 나포리 다방, 묵호 한약방, 묵호유곽, 묵호 과부집, 묵호 장날, 묵호 카바레 등 묵호사람들의 일상을 보았습니다. 너도나도 힘겨운 삶이었지만 그 속에 나름대로의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여인들대로 사내들은 사내들대로 멋을 내며 고단한 일상을 풀어냈죠. 그때 그곳은 사라졌지만 묵호의 과거는 아주 소멸된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우리 내부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중요한 자료였습니다.”

 

역 굴다리 지나 / 신작로 따라가면 언덕 밑 발한동 / 시외버스터미널 옆으로 서 있던 묵호극장 / 선술집 과부 / 나포리다방 아가씨 / 쉬는 날이면 끼리끼리 목욕탕 들러 / 한껏 빛을 내고 어디로 종종걸음 내딛는가 / 묵호의 달동네 / 개구석 사는 아낙네들도 / 망망대해 나가는 가장들에게 / 이거저것 음식 꾸러미 챙겨서 올려주면 / 이젠 드디어 해방 / 재빨리 주섬주섬 차려입고 찾아가던 묵호극장

-「묵호극장」부분

 

어부들 / 만선으로 돌아와 / 집보다 먼저 찾아오는 선술집 / 얼기설기 판자로 엮어 문지방은 다 닳았는데 / 이 집 아비 저 집 아비 / 여기저기서 웃음소리 낭자하구나

-「묵호 선술집」부분

 

아부지는 / 날이면 날마다 그 다방에 사셨지 / 몹시 화난 엄마가 / 아부지 당장 찾아오라며 등을 떠밀면 / 입안의 눈깔사탕 오물거리며 / 찾아갔던 나포리 다방 / … 망망대해로 나가서 / 피땀 흘려 벌어온 돈 모조리 쪽쪽 다 빨아들인다며 / 울 엄마가 제일 미워했던 나포리 다방

-「나포리 다방」부분

 

 

이 시인은 묵호 어머니들의 한스러운 삶에 함께 가슴 아파했고 묵호 어머니들을 그리워했다. 시인은 어머니 자궁에서 10개월, 태어나서 10개월. 어머니 품안에서 고작 20개월을 살았다. 6.25전쟁 피난길에서 어머니를 여위었다. 장티푸스에 걸려 약 한 첩 못쓰고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소년시절 어머니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났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사랑의 결핍을 시로 회복했다. “지금도 어머니란 단어만 떠올려도 가슴이 시큰합니다. 소년시절에 친구어머니가 친구를 부르는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왜 그렇게 서럽던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신 묵호의 어머니들처럼 제 어머니도 그러하셨겠죠. 묵호 어머니들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지만 울고 있었습니다. 깊게 패인 주름이 당신의 억척스러운 삶이고 말 못하는 가슴앓이인거죠.”

 

시끌벅적하던 / 어판장은 풍랑주위보로 / 애타는 눈물조차 말라 버렸네 / 해풍에 떨리는 문풍지 / 바람벽에 서걱대는 시래기 다발 / 방문 틈으로 어머니의 깊은 한숨 들리는 데 / 어느 자식들 그 속을 알 것인가

-「눈보라」부분

 

딸만 여섯을 낳아 / 딸부잣집으로 불리기도 하던 복순네 / 두 딸은 술집 작부로 또 다른 둘은 젊은 과수댁이 되어 / 단 하루도 한숨과 눈물이 마를 날 없던 / 동동구리무 장사

-「동동구리무」부분

 

튼실한 엉덩이로 / 걸음걸이도 기운찬 똥개 엄마 / 가게 앞 도랑으로 개숫물 / 홱 쏟아 부으며 오늘도 욕지거리하시네 / …… 입에는 욕설 / 얼굴은 사나운 표범 같지만 / 똥개네 엄마 속내는 따뜻한 봄날 아지랑이 / 마음 시린 사람들/몰래 보듬고 쓰다듬어 주었어

-「똥개네 엄마」부분

 

 

“이번 시집을 내면서 묵호의 토속음식문화를 새롭게 발견했어요. 묵호항 어판장과 어시장 쓰레기통에 버려진 오징어 내장(이까여리)을 뒤져 시장에 버려진 배추 잎을 주워 오징어 내장과 함께 끓여먹던 오징어 내장국, 고봉 감자밥, 아침밥상 단골 곰칫국, 삼세기……. 음식에서도 묵호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이름마저 삼식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가슴에 슬픔 많은 삼세기처럼 묵호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은 밥상에도 올라왔죠.”

 

좁쌀 서너 줌 넣고 감자 섞어 지어 내면 / 보기만 해도 그득해 보였던 / 고봉 감자밥이여 / 메주고추장 휘이 둘러 바가지에 척척 비벼 내면 / 마당귀 그늘에 앉아 짧기만 하던 / 하루해여

-「감자밥」부분

 

언제나 가난하던 / 묵호 사람들의 아침 밥상 / 어제도 오늘도 곰칫국은 단골로 올랐었다 /워낙 미끈거리고 못난이라 / 늘 선창 바닥에 마구 내동댕이쳐지던 곰치 녀석들 / 장광에 쌓인 눈 걷어내고 / 잘 익은 김치 한 사발 푸짐하게 썰어 내면 / 곰칫국은 얼큰한 해장국으로/ 다시 태어났지 / 나는 오늘 / 관광지로 바뀐 바닷가 식당에서 / 그 옛날 추억을 떠올리며 곰칫국을 시켰는데 / 문득 국물 한 숟갈 뜨노라니 / 엄마의 도마 소리 / 아부지의 불그스레한 얼굴 모습이 / 국그릇 속에 그대로 보이는 것 같다

-「곰칫국」부분

 

 

묵호 사람들 / 겨우내 밥상 위엔 / 항상 못생긴 놈 하나 오르나니 / 이곳 사람들이 / 쌍퉁이라 부르기도 하는 / 도치란 녀석 / 몸이 온통/불룩한 뱃집뿐이데 / 그 속엔 엄청난 알을 품고 있어 / 터질 듯 어눌한 몸짓으로 / 춥고 배고픈 사람들 / 허기를 달래 주던 주둥이 뭉툭한 생선 …… 오후 내내 사박히 눈이라도 나리는 날이면 / 아부지 소주 안주로 오르던 도치 / 세상에 태어나 / 단 한 번도 화려한 중심에 가 보지 못한 / 가슴이 시린 묵호 사람들처럼 / 못생기고 가슴에 슬픔 / 많은 도치

-「도치」부분

 

단단한 머리에 / 퉁방울처럼 부릅뜬 눈 / 몸에는 우툴두툴 가시 박힌 갑옷을 입었지만 / 말 마라 그의 모습은 / 힘든 세월을 살아오신 내 어머니의 / 갈라 터진 손마디 보여 주네

-「삼세기」부분

 

 

 

 

 

묵호 시집 한권을 다 읽고 이동순 시인을 다시 떠올렸다. 묵호 시집을 내기까지 참 많이 아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을 노래할 시간보다는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던 그이들의 삶을 만나야 했으니 말이다. 시인은 말한다. “처음 나에게 문학은 표현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수단이었고 철이 들면서 시인은 마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는 기교를 부리거나 언어 비틀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시는 과장된 위선이나 손재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진정한 마음이죠.” 작고 가냘프고 여리고 보잘 것 없는 것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것, 그것이 시인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고. 시집 ‘묵호’는 묵호를 사랑한 시인, 묵호를 온전히 품은 이동순 시인의 마음 전부였으리라.

 

정호승 시인이 말하는 ‘동순 형’을 생각하며 시속의 묵호 여행을 마친다. 다음 인터뷰는 ‘이동순 시인의 해설이 있는 옛가요 듣기’와 이동순 시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볼 예정이다.

“그는 다정하고 섬세하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부드러운 마음의 손을 지니고 있다. 그를 만나면 이런저런 인간관계 속에서 팽팽히 긴장된 마음의 끈이 툭 풀어진다. … 그와 함께 있으면 늘 마음이 편안하고 시종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친구는 셋은 불가능하고 둘은 너무 많고 하나면 족하다”는 말을 인용한다면 그는 내게 ‘그 하나면 족한 친구’다. 그만큼 동순 형은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내 문학적 인생의 귀한 벗이다.”

 

 

 

 

 

 

 

▶이동순 시인

1950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국문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마왕의 잠』, 1989년에는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는『개밥풀』『물의 노래』『지금 그리운 사람은』『철조망 조국』『발견의 기쁨』등 14권이 있다. 2003년 장편서사시 『홍범도』(전5부작10권)를 완간했으며, 평론집『민족시의 정신사』『시정신을 찾아서』『한국인의 세대별 문학의식』『우리시의 얼굴 찾기』『달고 맛있는 비평』『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등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분단시대 매몰시인들의 자료를 복원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갖고

『백석시전집』『권환시전집』『조명함시전집』『이찬시전집』『조벽암시전집』『박세영시전집』 등을 발간하였다. 산문집으로는『시가 있는 미국기행』『실크로드에서의 600시간』『번지없는 주막-한국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서』『나의 기차는 어디로 갔을까』등이 있다. 신동엽창작기금,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 시인은 문학뿐 아니라 흘러간 우리의 옛 가요에 대한 애정도 지극하다. 옛 가요에 학문적 관심을 갖고 자료 수집과 정리 및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번지없는 주막-한국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서』등의 저서를 통해 가요가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도구인지를 말한다. 대구MBC 라디오에서 ‘이동순의 재미있는 가요이야기’(2003∼2008)에서 MC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미국 워싱턴 소재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남북이 같이 듣는 노래’프로에 매주 고정 출연 했다. ‘이동순 시인의 해설이 있는 옛가요 듣기’ 강연에서 그는 직접 옛 가요를 부르며 우리 노래의 가사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한국인이 즐겨 부른 노래들을 골라 노래에 담긴 사연과 이면사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지금까지 도서관, 구청, 문학회 등 150여회 이상 가요해설 강의를 했다. 옛 가요를 사랑하는 전국적 모임인 ‘유정천리有情千里’의 회장이기도 하다.

 

 
다음검색
댓글
  • 11.11.02 10:52

    첫댓글 카페 지키라 글 올리라 무지허게 부지런한 영채님 덕분에 묵호소식도 접하고 가심 한쪽 아리하게 느낄수 있는 글도 보고
    너무 너무 좋으네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작성자 11.11.03 22:11

    등대님 고맙습니다^^*
    묵호는 저에 고향이라서 더욱 마음이 애잔합니다
    그래서 묵호를 저 처럼 사랑하고 가슴 아련히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댓글 달아 주시니 더욱 감사하네요 .

  • 11.11.18 01:21

    카페지기 영채님 고생많으시군요 늦은 밤까지 자료 올려 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느라...
    이 수고를 뭘로 보답하지 ㅎㅎㅎ
    덕분에 볼거리가 많아 지네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 11.11.18 11:18

    이렇게 댓글 하나면 충분하지요^^*
    감사합니다.자주오셔서 함께하는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 14.09.24 08:44

    묵호가 좋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 애환과 추억이 가득한 곳입니다
    산과 바다가 있는 곳 친구들이 있는 곳입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