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와 와이파이
이강옥(영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나는 봄철 꽃가루 알레르기를 앓는다. 만물이 소생하는 3월 말 꽃 잔치가 시작되면 알레르기는 시작된다. 연두 빛 계절 4월과 계절의 여왕 5월을 다 넘길 때까지 두 달의 세월은 나에게 잔인하기만 하다. 이 무렵이면 바깥출입을 삼가고 피치 못하게 밖으로 나가야 할 때도 마스크를 하고 숨쉬기를 자제하며 빠른 시간 안에 용건을 마치고 집으로 피신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산과 들, 도심에 피어난 꽃들을 반기며 자연의 축복을 만끽하는데 나는 그런 봄을 지겨워하고 한스러워 한다.
꽃가루 알레르기 병증이란 꽃가루가 코의 점막에 닿을 때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비강이 부어오르고 콧물이 쏟아지며 재채기를 하게 된다. 일에 집중 할 수 없고 냄새를 맡지 못하니 음식 맛도 느낄 수 없다. 밤이 되면 증상은 더 심해진다. 코 안이 좁아지고 콧물이 고이니 누우면 코로 숨을 잘 쉴 수 없다.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데, 목구멍이 쉽게 감염되어 기관지가 좁아지고 결국 천식으로 악화된다. 한낮에는 그 찬란한 봄 풍경을 외면하다가 밤이 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창문 밖을 응시하며 재채기와 함께 불면의 봄밤을 지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봄꽃 구경을 마음껏 다니는 사람들이 야속하게 여겨졌다. 도대체 세상은 왜 이렇게 역설과 불합리로 만들어졌는가 한탄하곤 했다.
6월 어느 날 드디어 꽃가루로부터 해방된 나는 나보다 더 예민하고 역설적인 사람을 만났다. 그는 캐나다인으로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평소 스마트폰을 꺼놓고 있어 연락하기가 쉽지 않고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는 한국에 오고 나서부터 두통과 구토 증세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특히 스마트폰을 쓰고 난 뒤가 더욱 그랬다. 최근에서야 그것이 와이파이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한다. 와이파이가 자기 뇌를 짓누르고 관통해가면 두통과 구토를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그는 와이파이 존이 강력하게 형성되어 있는 곳에서는 몸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인터넷 최강국인 우리나라 곳곳은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와이파이 ‘거미줄’에 의해 단단히 얽매여 있다. 그중에서도 대학 캠퍼스는 와이파이의 힘이 가장 강성한 곳이다. 그는 처음 부임한 대학 캠퍼스의 와이파이가 너무 세어서 다른 대학으로 옮겨갔는데, 그곳 역시 전 대학에 못지않아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소연했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앞 다퉈 와이파이 존을 만들었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그는 휴대용 와이파이 감지기를 갖고 있었는데, 차를 타고 가면서 그것으로 와이파이의 세기를 재어보니 대로변은 말할 것도 없었고 깊은 산속에서도 와이파이 작동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곤 하였다.
그는 그뒤 옮긴 대학도 그만 두고 와이파이가 없는 곳으로 떠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세상에서 와이파이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곳이 있을까. 그래서 그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을 신생의 축제로 이끄는 꽃가루에게서 고통 받아야만 했던 나였기에, 사람들에게 소통의 기쁨을 안겨준다는 와이파이로부터 고통 받는 외로운 그의 처지가 더 절실하게 느껴왔다. 나와 그는 세상 밖 자극에 대하여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예민하게 반응하는 탓에 스스로 고통을 받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봄철 꽃가루가 그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같은 사람만 고통스럽게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반면, 와이파이는 그것에 반응하든 반응하지 않든 모든 사람의 몸에 해독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와이파이의 피해를 입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느끼지 못한다. 오직 두통과 구토의 고통을 겪는 그 사람만이 와이파이가 사람의 뇌를 갉아먹고 뇌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며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서 말세의 조종을 울리는 선지자의 그림자를 보는 것은 역시 내가 너무 예민해서일까?
(월간에세이 2014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