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손은 미국문학사 상 뉴잉글랜드 문학의 거장으로 낭만주의적 칼라 속에서 엄격한 청교도주의가 지배하는 뉴잉글랜드 사회를 배경으로 죄와 그 응보로서 발생하는 격리의 문제를 알레고리 기법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묘사한 로맨스의 조각가이다.
17세기 미국의 청교도사회에 장엄한 교도소의 문이 열리고 가슴에 아기를 안은 헤스터 프린이 나온다. 그녀는 간통죄로 처형대에 오르게 된다.
그녀는 남편보다 2년 먼저 보스턴에 왔고 그 사이에 교회의 독신 목사인 딤즈데일과 함께 사생아 펄을 생산했다. 아버지를 밝히라는 재판부의 신문에 그녀는 끝내 묵비권을 행사하고 만다. 그녀는 형기를 마친 뒤에도 평생 간통죄(Adultery)의 첫 글자인 주홍빛 A글씨를 가슴에 달고 다니도록 선고받는다.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던 딤즈데일목사는 죄의식으로 인해 날로 쇠약해져간다. 그의 건강을 걱정한 청교도들의 권유로 헤스터의 남편 칠링워드는 딤즈데일의 주치의가 되고 목사에게 심증을 굳힌 그는 목사의 비밀을 포착한 뒤 온갖 수단을 다해서 딤즈레일을 괴롭히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던 어느 날 헤스터는 숲 속의 오솔길에서 딤즈데일을 만나 그와 함께 사는 의사가 바로 자신의 전 남편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보스턴 생활을 청산하고 유럽으로 도망가 살 것을 제안하자 딤즈데일도 신임 지사가 취임하는 축제일에 축제설교를 마치는대로 영국행 배를 타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칠링워드가 탈출계획을 눈치채고 같은 배에 타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헤스터는 몹시 당황해 한다. 축제설교를 마친 딤즈테일은 헤스터 모녀와 함께 처형대위로 올라가 7년 전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헤스터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1년후,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복수의 칼을 갈았던 칠링워드도 거머리가 피를 빨아먹을 대상을 잃자 말라비틀어지듯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만다. 헤스터는 한 때 마을 사람들과 격리되어 외곽의 오두막에 기거하면서 신성한 신부의 옷감을 바느질하는 것조차도 금지되었었지만 불행한 여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다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선을 행함으로써 속죄를 받은 것이다. 정상을 참작하는 작량감경제도나 집행유예, 선고유예제도의 참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되새겨지게하는 대목이다. 인간은 완전무결한 존재는 아니다. 인간은 자기의 죄를 철저히 인식하고 고쳐나가면 된다. 다만 거기에는 죄에 대한 대가나 고통이 수반된다.
현행법상 간통죄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그와 상간한 자도 같다. 간통죄는 배우자있는 자가 간통하거나 그와 상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범죄인데 이는 가정의 기초인 혼인제도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죄로서 친고죄이다. 간통죄의 고소는 혼인이 해소되거나 이혼 소송을 제기한 후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혼인관계가 해소된 후에는 보호법익이 소멸되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아야한다. 헤스터의 딸아이의 이름이 펄인 까닭은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해서 획득한 유일한 보석이라는 뜻이고 이것은 곧 간통죄 폐지의 상징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