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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문득
점심(點心),중심(中心), 용심(用心, 中用)이 나름 생각이 났는데
"자기계발과 선의 만남"이라는 책을 읽다가(저자 혜산 양철곤)
무념(無念), 무상(無想), 무주(無住)에 대입하여 보았습니다.
무념, 점심은 한생각 일으킴이니 여기서 심은 순수한 마음이니 순수한 마음에 한점을 찍으니
생각에 메이지 않음이요, 4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메이지 않음이 무상이니 중심을 잡음이요,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니 무주, 용심(中用, 중의 입장에서 움직임)이구나 하고 정리 되면서
이 세가지가 어울어짐이 무심이니 점심, 중심, 용심이 어울어짐이 행심(行心)
행하되 나(바르지 못한 내생각)가 없는것 처럼 행하니 무아(無我)라
행심은 무아라 육체 의식(한생각, 지나친 욕망)에 메이지 않으니 청심(靑心)이라
이 우주에 작용하는것은 오로지 이 하나이니 청심으로 사는 것이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인연을 다함이니
우리는 한생각 바로하면(자기 중심적 생각을 버리면)서
사는것이 쉽지는 않지만 나의 본분을 다함이니
물질적 명예, 부 등은 그림자 일뿐이다.
기독교의 내가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도
빛(순수한 한생각, 무념, 점심), 진리(한생각의 집착없는 원리, 4상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무상, 중심), 생명(순수한 활동, 무주, 용심)행함이니
이 세가지를 합한 행동을 하나님이라 하니
이 청심(靑心)을 불법에서는 아미타불로 아(본체인 빛) 미(빛의 법칙인 진리) 타( 빛의 움직임인 생명활동)로 본다면
기독교의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는 말씀과 불법의 아미타불은 같은 의미가 될수 있고
이 모두가 내가 매일 바르게 행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요 아미타불의 행함 즉 나의 역활이구나 하고 한 생각을 내려 놓아 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무심(無心) =>
무념(無念), 무상(無想), 무주(無住) ┓
점심(點心), 중심(中心), 용심(用心) ┻ 중용(中用) → 행심(行心) → 무아(無我) → 청심(靑心) =>
①빛 → ②진리 → ③생명 = 하나님 --------------------------------------------------┐
①아(본체인 빛) → ②미(빛의 법칙인 진리) → ③타( 빛의 움직임인 생명활동) = 아미타불 -┴ 『 나 』의 역활.
위와 같이 메모하여 보았습니다.
오정님, 좋은 사념 감사합니다.^^
아하! 대단하십니다. 문자에 구속되지 않으시고 읽어내리시니, 감사합니다.
타(본체의빛), 아(빛의 움직임인 생명활동) 인데 제가 원문 내용을 잘못 정리 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