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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가족이 된다는 것.
마음고생 끝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해율과 주리는 그날 서로의 미래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추진력하나는 끝내주는 해율이 주리의 가족을 만나기로 약속을 한 D-day다.
상견례 날을 잡더라도 일단 양가 어른을 찾아봬야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 해율의 의견이 전적으로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정작 본인도 긴장이 되는 듯하다. 한껏 상기된 얼굴로 바르르 떨기까지 하는 해율을 보며 슬쩍 주리의 손이 해율의 두 손에 포개어진다. 그리고 말없이 슬쩍 지어보이는 미소가 해율의 긴장감을 조금은 누그러트린다.
[띵.동.]
기다리는 사람들도 기분 좋은 긴장감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껏 격양된 여성의 목소리가 현관문을 뚫고 새어나온다. 해율은 자신도 모르게 ‘풉’하고 웃음을 뱉는다. 주리는 호들갑스러운 엄마의 반응이 민망하단 표정을 짓는다. 인터폰으로 해율을 확인한 주리의 엄마가 현관문을 열어 활짝 웃으며 하이 톤의 목소리로 해율을 반긴다. 뒤따라 인기척을 듣고 현관으로 나와 보는 주리의 아빠와 이전에도 종종 본적 있는 주한까지.
“안녕하십니까. 기해율이라고 합니다.”
“그래, 어서와. 일단 안으로 들지.”
“네, 네...”
“호호호,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아우, 엄마. 좀 진정해. 너무 UP된 거 아냐?”
“아하.. 내가 좀 그랬나? 알았어. 근데 사위로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이 처음이다 보니 나 너무너무 떨리는 거 있지.”
“자기, 이해해줘. 우리 엄마가 원래 이정도로 UP되는 분은 아닌데...”
“괜찮아, 반겨주시니까 난 좋은데?!”
해율의 말에 하이 톤의 웃음을 흘리며 주방으로 후다닥 달려가는 주리의 엄마. 주방기구들을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스레인지를 켜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 끌어 졸아 버릴 것 같은 음식들을 잠시 꺼두었다가 다시 가열 하는듯한 소리였다.
* * * * *
상다리가 부러질듯하게 차려내진 음식들 중에는 주리가 평소에는 보지도 못한 메뉴들의 음식도 있었다. 낯선 음식을 대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주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르면서 억지웃음을 지어보이는 주리의 어머니.
“먹게.”
“네, 잘 먹겠습니다. 음식 하시느라 어머니 힘드셨겠어요.”
“오호호호, 내가 쫌 힘들...!”
주리의 엄마가 또 안 해도 될 말을 늘어놓을까봐 설레발치듯 옆구리를 이번엔 주리가 쿡 찌른다. 주리의 엄마는 하려던 말을 삼키듯 말끝을 얼버무린다. 해율은 주리의 한쪽 손을 가만히 잡으며 차분한 말투로 말을 건넨다.
“괜찮아, 자기. 어머니가 나 왔다고 좋아서 그러시는 거잖아. 너무 그러지 않아도 돼. 나 정말 괜찮아.”
“그래도... 우리엄마 UP됐을 때 자제 안 시키면 감당 안 될 건데?!”
“괜찮아. 자기 어머니시면 이제 내 어머니시기도 하니까.”
토닥이며 자신과 더불어 긴장해서 신경이 예민해진 주리를 안심하게 해주려는 해율의 배려. 그제야 주리도 한결 마음이 풀어진 듯 UP된 어머니 말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불쑥 해율의 앞으로 담금 주를 권하는 주리의 아버지. 주리의 귀여운 이목구비가 아버님을 닮은 거구나 싶게 동글동글한 인상의 아버님을 보며 입 꼬리가 쓰윽 올라가 미소를 짓게 되는 해율. 그리고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주리의 아버지가 권하는 술을 받아낸다. 가볍게 ‘챙’ 하고 잔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낸 뒤 고개를 돌려 원 샷을 하는 해율.
“우리 딸이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서 데려온다는데 어떤 사람인가 많이 궁금했었어. 괜한 걱정할 필요 없었네. 오늘 기서방 보니까.”
“감사합니다. 아버님.”
“아버님? 허허허... 자네 참 넉살이 좋구만.”
“제가 좀 그렇습니다. 불편하시면 다시...!”
“아니야, 좋아. 난 다른 건 바라는 거 없고. 우리 주리 행복하게만 해주면 돼. 난 그거면 충분해.”
“아빠...”
이미 딸을 보낼 마음을 먹고 말을 뱉는 듯한 아버지 말에 주리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리고 괜스레 투정부리듯 아버지 팔을 휘휘 흔든다. 주리의 시선을 마주친 주리의 아버지도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시선을 피해 새로 담긴 술을 홀짝 입안에 털어 넣는다.
“정말, 잘 부탁하네. 내가 부유하게 키우지는 못했어도, 애정을 쏟아 키운 자식이니 절대 마음 상처받는 일 만들면 안 되네. 그러면 나 당장 기서방 찾아갈 거니까.”
“아, 예! 그럼요. 제가 주리 정말정말 많이 사랑합니다. 저희 부모님도 곧 그러실 거구요.”
* * * * *
기회장의 해외스케줄 때문에 주리의 집을 찾아뵙고, 바로 인사를 갈수 없던 상황이라 그 사이에 서로의 지인들을 불러 싱글파티를 준비한 해율과 주리. 적당한 곳을 빌려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그들의 지인들을 맞이하기 위해 한껏 차려입은 둘.
“후... 나 너무 떨린다.”
“나도. 우리 한번 안을까?!”
주리의 답을 듣기 전에 행동을 먼저 한 해율. 갑작스럽게 해율의 품에 안기게 된 주리는 놀란 맘에 뛰는 심장이기도 했지만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심장의 쿵쾅거림을 느낀다. 주리의 심장박동을 함께 느낀 듯 슬쩍 둘의 몸 사이를 벌려 주리와 시선을 맞추는 해율. 동그랗게 뜬 눈으로 해율을 보는 주리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 짧은 입맞춤을 ‘쪽’하고 대었다 떼어낸다.
“이 봐, 이 봐. 사람 불러놓고, 둘이 벌써 그렇게 불타오르고 그럼 돼?”
“아니, 그게 아니라...”
“됐고. 이제 파티를 시작할까?!”
가장 먼저 모습을 보인 허윤이 주니의 손을 잡고, 한껏 꾸민 차림새로 들어섰고 그 뒤를 혜주와 기태, 그리고 승재와 주한이 나란히 줄을 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반가움에 손을 흔들며 그들을 맞이했고, 문이 닫힘과 동시에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마이크를 집어 든 해율이 먼저 입을 뗀다.
“자, 자. 이렇게 저희의 결혼 전 싱글파티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서로가 서로를 한 번씩은 봤던 적이 있겠지만 오늘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다시 한 번 친해지기를 바라며 광란의 파티를 시작하겠습니다!”
“잘 살아라, 기해율! 봉주리!!”
“고맙다, 이것들아!”
나란히 놓인 샴페인 잔을 하나씩 들고, 높이 위로 치켜들며 축하를 격하게 하는 이들. 반면 축하하기 위해 오긴 했어도 씁쓸한 기분은 감출수가 없는 승재는 풀이 죽어있다. 그런 승재의 감정을 충분히 헤아리는 해율이 마이크를 분위기메이커인 허윤에게 넘기고, 자연스럽게 승재 옆으로 다가간다.
‘속상해요?’
‘......!!’
‘알고 있었어요. 승재씨가 주리한테 갖고 있는 마음.’
‘아... 티 났어요?’
‘티 났어요오~?!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였는데요. 그래서 왜 그날 기억나요? 안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 집까지 쫓아가서 같이 술 마시고 한 거예요. 방심하다간 후회할일 생기겠다 싶어서. 놓치고 싶지 않은 여자거든요.’
‘비록 제가 되진 못했지만, 제 마음까지 다해서 많이 아끼고 사랑해주세요. 우리 주리.’
‘어흠. [우리] 단어는 이제 좀 빼면 안 될까요? 거슬리는데...하하하.’
‘제 마지막 자존심으로 그건 붙잡고 있어야겠네요. 형님 긴장 늦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아무튼 정말 행복하게 잘 사세요. 아! 복우리 일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건 차차, 지켜보면 알게 될 거예요. 아무튼 오늘 이렇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승재는 아직 이렇다 할 해결이 나지 않은 복우리 사건에 대해 궁금했고, 그 말에 의미심장한 계획이 있는 듯한 해율의 말에 의문이 들면서도 허투루 보낼 생각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한시름 놓는 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