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동기의 메카 대전
<< 괴정동(현 내동)유적지에 표지석 건립을 제안하며 >>
< 대전 서구 내동 39-27번지 유적지 전경 >
대전은 금강의 지류인 대전천. 갑천. 유등천을 끼고 비교적 넓은 평야를 발달시켜 사람들의 생활터전이 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곳으로서, 이러한 자연적 배경으로 대전은 일찍이 사람들이 정착하여 삶의 둥지를 틀고 살았던 유서 깊은 고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전을 역사가 없는 신흥도시 쯤 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선입견이나 무관심의 반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고장 대전은 선사시대부터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한국식 청동기문화의 중심지였다는 것이 계속적인 고고학적발굴로 밝혀지고 있다.
한국에서 구석기 문화가 광복 후 1963년 함북 웅기 굴포리에서 구석기 유적지를 발굴한데 이어 1964년 충남 공주 석장리에서 구석기 유적지를 발굴하여 역사, 고고학상 큰 성과를 거두었다.
금강의 지류인 대전의 3대하천변에서는 최근 대전의 시세 확장과 더불어 대규모의 개발사업이 일어나 본격적인 조사사업으로 대전의 인간역사에 대한 자료가 축적됨에 따라 대전의 역사를 살피는데 많은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세인들로부터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까지 조사된 유적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 괴정동(현 내동) 출토유물 - 1967년 7월 (고검식 동검, 동경2개, 동탁2개, 검파형동기(대쪽모양동기), 방패형동기, 원개형 동기, 무문토기, 흑색토기)
< 괴정동 출토유물 >
* 문화동 출토 동검 - 1970년 여름 보문산 까치고개
* 탄방동 출토유물 - 세등선원부지(동검1개, 동모1개, 동끌1개)
* 사성동 고인돌유적 - 1977년 11월(대청댐 수몰지역내)
* 관저동 지석묘유적(현 원내동 유적) - 1977년 충남방적부지
* 칠성당 지석묘군
* 한국과학기술대학정문옆 - 1986.3.9 옛.생.돌 답사 수습(무문토기편 및 빗살무늬 토기편)
* 둔산동 선사유적 - 1991.3.18
* 구즉동 유적 - 1992.1.(구석기 유적)
* 구성동 유적 - 1992.8.(기상청부지, 청동기 집자리 10기)
* 비래동 고인돌 유적 - 1997.4.(요녕식 동검등)
* 노은동 유적 - 1997.(청동기 집자리)
* 용호동 유적 - 1998.11.(구석기 유적)
* 궁동유적 - 1999
* 대정동 유적 - 2001. (송국리형 집자리)
* 용산동 테크노벨리 - 2005.11.(청동기 주거지)
< 전 대전출토농경문청동기 - 1970년 말 >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내륙 지방인 대전에 수많은 선사유적들이 발견되었고 앞으로도 삼대 하천을 주변으로 한 얕은 구릉 저변부에서 계속적으로 이러한 선사유적들이 계속 발견되리라 생각된다.
특히 괴정동의 청동기는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단계의 한국식 청동단검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며 그 문화 수준도 대단히 높은 단계 이다. 이것은 충남지방 나아가 대전지방이 청동기 시대에 청동기 문화의 중심지이며 한 가운데 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시대에는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너무나 빠른 속도로 지형이 변해가고 있다. 미처 전문가의 손길이 닿기도 전에 유적이 훼손되고 사라져가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실정이다. 우리의 역사를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역사의 자료가 되는 유적과 유물을 보다 철저히 보존하고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야한다.
“이러한 취지로 대전청동기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괴정동(현 내동)유적지에 표지석 건립을 제안한다.”
역사에 관한 무지의 시대였던 1960년대 말 밭을 갈던 농부의 쟁기 끝에 걸려 아무런 준비과정 없이 파헤쳐진 괴정동 유적은 변변한 보고서 한 장도 없고 파헤쳐진 돌널무덤의 흑백사진 한 장만 덩그러니 전하는 모습을 보면 역사나 문화등 거창한 말만 앞세우고 있는 우리들의 한심한 모습을 보는 듯 하여 씁슬한 기분마저 든다.
한때 “대전사람 들은 대전은 문화의 불모지”라는 말을 자조적으로 쓰곤 했었다. 어쩌면 이 표현은 대전 사람들에게 적절한 단어가 아닌가 싶으며,대전은 문화의식의 불모지라는 표현이 제격인 듯 하다. 그래도 한가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아직 괴정동유적지(추정) 지역에 큰 건물들이 자리 잡지 않았고 약간의 공터가 남아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한반도 청동기문화의 중심인 괴정동 유적지에 표지석을 세워 대전 시민으로서의 작은 긍지를 세우고 더 큰 훼손을 막고 청동기메카로서의 위상을 세우는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시민들의 작은 시작이지만 이미 이루어낸 성과도 몇 가지 있다.
그 하나는 중구 어남동 단재 신채호선생생가의 복원이고, 또 하나는 서구 둔산선사유적지의 일부보존의 예 이다. 마늘 밭이었던 단재선생의 생가터는 지역의 순수 향토사 단체인 옛.생.돌.모임의 표지석 건립에서 비롯되었다.
< 옛.생.돌.모임에서 세운 표지석 - 오른편 >
둔산선사유적지 또한 1991년 둔산 신시가지 개발과 더불어 현장보존이 어려웠으나 학계와 전문가등 대다수의 시민들의 현장보존의지로 그나마 일부유적이 보존되어 대전시민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지킬 수 있었다.
이에 그동안 대전문화유산의 알림이요 지킴이 역을 자부해왔던 대전문화관광해설사모임에서는 지역의 찬란한 선사유적을 찾아보고 우리지역 대전이 청동기문화의 중심임을 확인하고 학계나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뜻을 같이하는 순수단체와 힘을 모아 괴정동유적에 표지석을 세우고자 한다.
2006년 7월1일
대전문화관광해설사 모임
옛터를 생각하고 돌아보는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