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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정신질환(우울증)으로 근로능력이 없다고 판정된 30대 모자세대 가구주가 남몰래 노래방 도우미로 가서 돈을 버는데 그녀를 치근대던 남자가 이래저래 겁박해 돈을 뜯기도 하다가 자신을 피하고 안 만나 준다며 그녀를 부정수급자로 신고 4개월간 일했으니 소급해서 보장비용징수 해야 하는데 그 돈 뭐 그대로 있나? 가보면 눈물이 날 정도인데, 찌른 놈은 당장 수급자 중지시키고 보장비용 징수하고 고발하라고 여직원에게 있는 욕 없는 욕 다하며 협박하고......, |
과연 이 가정이 ‘부정’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비난의 대상인 가구인가요? 만약 저라면 그 모자가구에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아주머니가 돈이 필요했으니 일했고 아픈 몸으로 일하면서 자진신고를 몰라서 못했던, 고의로 신고를 하지 않았던 그렇게 했을 때는 다 말 못할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돈으로 애들 반찬 하나 더 사주고, 옷 하나 더 사다 주세요. 노래방서 도우미로 일하는 것은 공적자료에 조회되지 않으니 눈감아 주겠습니다. 어차피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전적으로 아주머니의 삶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달리 다른 뾰족한 지원도 없으니 그렇게 해서라도 악착같이 돈 벌어 애들 잘 키우시고 제때 병원에 다니시며 치료 꼭 받으시고 절대로 희망을 잃지 말고 열심히 사세요.”
저는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정의이고 제가 해야 하는 복지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이제는 “당신은 법을 어겼고 ‘부정수급자’이며 그래서 수급이 중지되고 그동안 혜택 받은 돈 도로 토해내세요” 이게 제가 할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요즘 사회 여론몰이를 보면 딱히 어려운 가정이면 생활보장위원회라도 열어 보장비용 징수를 감면해 줄 수도 있을 텐데......, 이런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을 분위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 아주머니를 부정수급자로 규정해 놓고 그런 부정수급자를 비난 하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권익을 옹호하고 보듬어 줘야 한다고 말을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현재 조사시스템(행복이음)의 기술적, 제도적 한계로 인해 파악되지 않는 자료를 감사원에서 그들만이 아는 방법으로 밝혀내어 거꾸로 내려 보내 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부정수급자로 만들고 징수조치 하라고 하는데, 이는 앞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시스템의 기능을 보완시켜 앞으로 반영하면 될 일이지 이제 와서 소급해서 보장비용을 징수하라는 것 또한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거니와 또한 처리하는 것도 전쟁이 따로 없습니다.
말이 제가 팀장이지 팀장이 하는 일치고는 한심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거칠고 폭력적인 민원을 상대하고 고질적이고 반복적인 민원을 전담해서 처리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과중한 스트레스로 유산하는 직원 걱정하고, 화장실에 가서 우는 신규 여직원 달래고, 사표 던지는 직원 도닥거리고 이런 일에 더 신경이 쓰입니다. 혹여 한 명이라도 병가를 내거나 사표를 내 버리면 일이 감당이 안 되기도 하거니와 끝없이 반복되는 소모전에 저도 지칩니다. 급여가 줄었다거나 보장이 중지되었다거나 다른 이유로 찾아오는 수급자들 보면 짜증을 넘어 적개심이 먼저 생깁니다. ‘저 또라이 새끼! 왜 또 와서 지랄이고’
서두에서 말했듯이 국민(수급자)과 정부(복지담당 공무원)와의 신뢰 관계는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적해서 부정수급자 만들고 보장비용회수 해서 수십억 도로 받아낸들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나라 살림에 도움이 많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이렇게 해서 사회정의가 실현되었습니까? 수급자를 조사하고 상담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죽이뿐다”
“죽어뿐다”
어떻게 세계 10대 경제교역국, 국민 소득 3만 달러 시대, 복지예산이 30%가 넘는다고 말하는 나라의 그 복지대상자가 하는 말에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참으로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들의 인성이 나빠서 그렇습니까? 무식해서 그렇습니까? 잔꾀가 많아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하십니까?
孟子를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맹자는 백성들이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항산(恒産)이란 일정한 생산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요즘으로 말하면 일정한 수입이 있어 어느 정도 생계가 안정이 되어야 도덕을 지키고 예의를 차리는 마음 즉, 항심(恒心)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복지라는 것은 바로 그런 항산(恒産)을 만들어 주고 항심(恒心)을 키워주는 것이지 어찌 ‘죽인다’, ‘죽는다’ 라는 말을 하게끔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들에게 항산(恒沙)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항산(恒産)과 항심(恒心)을 만들어주는 시스템이 없이 그들을 몰아붙이는 것을 맹자는 망민(罔民)이라 했습니다. 백성을 구덩이 속에 몰아넣어 놓고 그물질을 한다는 것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복지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망민(罔民)하는 것은 아닐까요? (맹자의 자세한 내용은 붙임 번역 참조)
연합뉴스(2015.9.15자)
2010년부터 올해 7월까지 복지삭감 218만명, 삭감금액으론 3조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안철수 의원이 사회보장정보원이 제출한 ‘사회복지서비스별 대상자 추이’ 자료를 보고 ‘정부가 위기상황에 몰린 저소득층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지원하기 보다는 재정누수를 막겠다며 부정수급 방지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였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제가 궁금한 건 사회보장정보원이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자료를 뽑았기에 저런 수치가 나왔는지 참으로 궁금하기만 합니다.(제 개인적으로 그 자료를 한 번 보고 싶은데 구할 방법이 없네요) 안철수 의원이 ‘2010년 행복이음 도입으로 수급자의 소득과 부양의무자의 존재 여부를 파악하기 쉬워지면서 복지급여가 중지되거나 삭감당한 수급탈락자가 대거 양산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 안철수 의원도 행복이음 외에도 다른 여러 방법으로 수급자를 탈락시키고 부정수급자를 양산시키고 있는 것 까지는 몰랐던 것 같습니다.
감사원 감사 자료를 보면 20년 넘게 복지업무를 하고 있는 저도 생각도 못한 소득, 재산 사항들을 발췌, 지적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과연 수급자들이 그런 것 다 헤아리고 자신신고 하겠습니까? 신고하지 않는 것이 고의적, 악의적이겠습니까? 항산(恒産)이 없어 항심(恒心)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자진신고 안합니다. 우리 사회 항산(恒産)이 있는 사람들도 신고 안합니다. 그런 사람들 매일 뉴스에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검찰청 현관에 서서 플래쉬 세례를 받는 장면 매일 뉴스에서 봅니다.
생각해보면 불합리한 법이니 규정이니 지침이니 하는 도구로 구덩이를 파놓고 그들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그물질하는 망민(罔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부정수급 방지와 색출은 전체 과정 중에 하나일 뿐 그에 앞서 우리사회 저소득층인 수급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구제하는 것이 복지의 목적입니다. 전체국민의 2.6% 밖에 안 되는 사람들에게 시행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마치 요술 방망이라도 되는 양, 그 선정기준을 초과하면 그들의 삶이 안정되는 양 자립했다고 말하는데, 그래서 선정기준 넘었다고, 자진신고 안했다고 ‘부정수급자’로 만드는 것이 도대체 망민(罔民)이 아니고서야 무엇으로 설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복지부에서는 감사원에서 그렇게 지적하고 법과 지침대로 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하시겠죠. 감사원은 ‘갑’이고 복지부는 ‘을’이고 하니 그렇겠지만 적어도 감사원의 그런 지적이 가져오는 파장과 문제에 대해 적극 항변하는 노력은 어느 정도 하셨습니까? 다시 15년 전으로 돌아가 엄포, 공갈용이라 했던 ‘부정수급자’를 규정한 법이 오히려 구덩이가 되어 이제는 복지부가 그 속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는 ‘부정수급자’에 대해 다시 개념을 재정립해야할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단지 수급자들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 때문이 아닙니다. 사회정의의 문제이고 신뢰회복의 문제이며 수급자의 권익을 옹호해야하는 정부와 복지를 하는 사람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한겨례 신문사에서 제게 기고를 요청해왔습니다. 복지 일선에서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복지문제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기고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말로는 현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더군요. 그동안 제가 그런 글을 기고하기에는 자질이 부족해서 고사를 했는데 ‘부정수급’과 ‘보장비용 징수’에 대해 한 번 기고를 해볼까 합니다. 18일 교육을 다녀와서 복지부의 [단주기, 부정소명 확인조사 도입]을 한다고 하니 그에 대해 교육을 받아 보고, 보건복지부의 방향에 대해 들어본 후 답변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한 번쯤은 우리사회가 이런 것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나하는 관점에서 필요는 하다고 생각은 합니다.
물론 저의 생각에 동조하여 기사화 할 것인지는 그들이 판단하겠지만 제가 복지에 몸담고 있는 이상 부디 제 생각이 틀리길 바랄뿐입니다. 그래야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제 마음이 위로가 될듯합니다. 나중에 퇴직하고 나서 ‘수급자들에게 그물질(罔民) 하느라 내 젊은 청춘을 바쳤다.’ 라는 후회는 안 할 테니까요.
두서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산시청 복지정책과 통합관리담당 정원엽
※ 개선의견
보건복지부에서 2016년도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에 있어 의견조회를 하여 몇 가지 개선의견을 제출하였는데 참고 하시고 다시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1. 소득 등 변동 시점(부정수급 발생 시점)이 1년이 되지 않은 건은 보장비용징수 제외(현 조사 시점에 그 소득이 있다면 조사 시점부터 적용)
2. 현 행복이음 시스템으로 조회되지 않는 공적자료(감사원 감사)에 의거 중지, 삭감되는 건은 보장비용징수 제외(현 조사 시점에 그 사유가 있다면 조사 시점부터 적용)
3. ‘부정수급자’라는 용어는 고의적, 부정한 방법으로 사법 기관에 고발되어 처벌을 받고 그에 따라 보장비용을 징수하는 자에 한하여 사용. 그 외는 ‘환수대상자’에 흡수
4. ‘환수대상자’ 중에서 선정기준을 초과하여 중지되었다 하더라도 가구당 소득인정액이 가구당 중위소득의 50% 내지 70% 이하인 자(최소한 교육급여선정기준 이상으로 설정)는 보장비용 징수 제외
• 부정수급자가 가게 되는 곳은 복지사각지대 뿐
부정수급자라 하여 보장비용을 징수하고 아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것까지도 정부에서 지급하였으니 반납하라고 하니 대한민국에서 돈 없이 산다는 것이 힘들기도 하거니와 서럽기도 할 만합니다.
그렇다면 부정수급자가 되어 보장이 중지된 사람들은 우리사회 어느 계층에 속하게 될까요? 중‧상류층? 차상위 계층? 뭐 또 다른 계층이 있나? 이 사람들은 굳이 표현하자면 ‘복지사각지대 계층’에 들어갑니다.
사례1] 요양병원에 있는 노인1인 수급자와 독자인 부양의무자인 아들. 아들이 장애인인 모와 공동명의로 2,500cc 구형 중형자동차 구입(감사원 감사 적발) 일용노동을 하는 아들이 차 살돈은 없지만 지인에게서 차에 여러 압류 건이 많은데 그것을 승계 받는 조건으로 10개월 전 무상증여 받음
- 2,500cc로 장애인용자동차 불인정. 압류 건이 많아 아들이 해결 못해 차를 매매도 못하고 있음. 보장중지 대상
- 아들 왈 “우리 어머니 길에 내다 버리란 말입니까?”
- 저 왈 “당신 어머니는 자진신고 안했습니다. 부정수급자입니다. 법이 그렇습니다.”
사례2] 이혼 후 2남매를 키우며 식당에서 일하는 모자가정. 이혼 전에도 남편이 가정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동거, 서로 왕래가 없었고 가족관계단절을 인정, 부양의무자에서 제외. 남편이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는지 큰 애 고등학교 졸업선물대신 100만원 현금을 보내옴. 사적이전소득 확인 차 1년 거래내역 확인과정에서 발견. 서로 왕래한다고 보고 가족관계 단절 불인정, 이혼 남편 소득조회 결과 부양능력 있음 판정. 100만원이 입금된 7개월 전부터 부정수급자로 간주. 보장중지.
- 아주머니 왈 “그놈은 내 남편도 아니고, 애들 아빠도 아닙니다. 그래도 지 새끼는 생각이 났는지는 몰라도 그게 처음입니다.”
- 저 왈 “나라님은 당신이 이혼을 했으니 당신 남편으로 보지는 않지만 비록 남편이 다른 여자와 동거하며 가족을 꾸리며 살아도 애들 아빠라고 봅니다. 피가 섞였잖아요. 법이 그렇습니다. 당신은 부정수급자입니다”
王曰 吾惛 不能進於是矣.願夫子輔吾志 明以教我.我雖不敏 請嘗試之.曰 無恆產而有恆心者 惟士爲能.若民 則無恆產 因無恆心.苟無恆心 放辟 邪侈 無不爲已.及陷於罪 然後從而刑之 是罔民也.焉有仁人在位 罔民而可爲也.
<번역>
왕이 말하기를 나는 어리석어 그 경지에 나아갈 수 없으니 부디 선생께서 나의 뜻을 도와 밝게 그것을 가르쳐 주세요. 내 비록 명민하지 않으나 한번 해보고자 합니다.
맹자 말하기를 꾸준한 산업이 없으면서도 항상심을 유지 하지하는 것은 선비만이 가능합니다. 백성은 꾸준한 산업이 없으면 항상심도 없어지게 됩니다.
진실로 항상심이 없다면 방자함과 간사한 사치가 행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백성들은 이로 인해 죄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죄에 따라 그들을 벌하는 것은 그물을 쳐놓고 백성을 잡는 짓입니다.
어찌 인정을 베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백성을 그물로 잡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해설>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설명한 구절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백성이 예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마르크스의 사상이나 이념 정치 제도 같은 상부구조가 경제적 기초인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경제결정론과 흡사합니다.
먹고 사는 경제적 상태가 사람의 의식이나 생각마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맹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선비는 그런 경제결정론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의 맹점이 순식간에 보완되는 느낌입니다. 맹자의 통찰력이 마르크스를 능가하나요? 어쨋던 일반 백성들에게는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할 뿐이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다른 고상한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게 되겠죠. 그러므로 왕도의 기본은 백성들이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을 생산하게 해 주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일정한 생산(恒産)이 보장되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멀리 있는 백성들이 몰려오게 되고 천하의 패권은 자동적으로 달성된다는 맹자의 주장입니다. ‘경제를 살립시다.’류의 밑도 끝도 없는 캠페인이 모든 정권마다 되풀이 되는 이유도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 성백효 번역,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