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성과급에 대해서 얘기해보았습니다.
성과급이란 것은 자본가 입장에서는 노동강도를 강화시키고 경쟁을 부추겨 이윤을 더 뽑아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상황은 변한 것이 없고, 오히려 성과급제를 도입하면서 생산량당 성과급을 속임으로
써 더 착취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조금 숨을 돌리는 의미에서 수식이 없는 내용으로 진행하겠습니다. ^^;
"자본주의적 인간형"에 대해서 함께 얘기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을 때가 많습니다.
"사람은 이기적이어서 평등한 세상이란 것은 망상일 뿐이야."
어쩌면 우리들 사이에서도 많이 퍼져있는 생각일지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태어나면서부터 본성적으로 이기적이라서 사람의 사회라는 것에는 한
계가 있다는 말이고,
이 말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실천하려는 노력에 찬물
을 끼얹습니다.
우선 이 말에 대해서 반박하는 것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저는 사람이 본성적으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사람에게는, 모든 동물에게는 살고자 하는 "생존"의 본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이 살아나가는 "생존" 자체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것과 결
합되어져서 나타납니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철저하게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어느 책에서인가 읽은 적이 있는 재미있는 예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던 어떤 서양사람들이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을 찾아가서 IQ 테스트를 했다고 합니
다.
서양사람들은 부족원들 각각에게 테스트 용지를 하나씩 나눠주면 각자가 개별적으로 문제의 해답을 작
성해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인디언 부족사람들이 IQ 문제들을 풀기 위해 모여서 함께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가가서, IQ 문제는 각자가 따로 문제를 풀어와야 한다고 거듭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부족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고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함께 의논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자꾸 각자가 따로 해결하라고 하는지 모
르겠군요."
인디언들에게는 문제를 각자가 따로 해결한다는 자체가 전혀 생소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인디언 부족으로 대표될 수 있는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부족원들이 함께 도와가면서 생활하지 않으
면 부족 및 부족원들의 생존자체가 힘든 상황일 것입니다.
함께 사냥하고 함께 물고기를 잡고, 함께 과일들을 채집해와서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지 않으면 그들의
생존자체가 담보가 되지 않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는 "생존" 자체가 "함께 도와가면서 사는" 삶이 될수 밖에 없고, 거기서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이기심"은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삶이, IQ 문제를 푸는 것에서도 반영된 것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를 돌아봅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의 목적이 돈벌이 입니다. 자본가의 화폐에 대한 무한한 욕망이 노동자를 착
취하도록 강요하며,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서 다른 자본가들을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생존"의 형태를 강요합니다.
그리고, 자본가들이 이와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생산수단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자본가들은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부를 이용해서 원료, 기계, 토지등의 "생산수단"을 구입
하고 노동자를 고용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얘기해왔듯이 생산과정에서의 잉여노동를 착취함으로써 이윤을 뽑아냅니다.
그들에게는 생산수단에 대한 독점적인 소유권이 있고, 노동자에게는 자신의 몸을 파는 방법밖에는 먹고
살 방법이 없습니다.
당연히 노동자는 자식들에게 자본가가 되던지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 종사자가 되기를 권유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서글픔을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공부를 잘하는 길이 있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서 전문직을 가지던지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육의 현장인 학교는 어떻게 될까요? 미래의 "생존"이 걸린 경쟁의 현장이 되어 버립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 자체가 "생존"에 사활이 걸린 일이 된 상황에서
부모들의 교육열만을 탓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누가 자기 자식에게 자본주의 사회에 노동자로 살아가는 비굴함과 서글픔과 가슴답답함을 물려주고 싶
겠습니까!!
이렇게 시장에서의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 교육현장에도 침투합니다.
시험볼때 컨닝을 하게 되고, 다른 친구가 물어봐도 대답을 잘 안해주고 점수를 잘 따기 위해서는 뒷돈이
라도 바치고.....
뭐 이런 일들이 사람이 원래부터 "이기적"이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삶 자체가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보면 "돈"이 최고인 사회입니다. "돈"만 있으면 왠만한 것은 다 가능합니다.
돈이 많으면 일하지 않고도 호의호식 할 수 있고, 예쁘고 잘생긴 애인도 생깁니다. 어디가서도 왕처럼
대접받습니다. 나쁜 짓을 해도 돈이 많으면 처벌도 안 받습니다.
돈으로는 무엇이든지 교환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고민해보면 이것은 일종의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돈"이라는 것, 세종대왕이 찍힌 종이들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가정을 해 봅시다. 이 세상의 아무도 일하지 않고, 맨날 집에서 가만히 누워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아무것도 생산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종대왕이 찍힌 종이로 생산이 되지도 않
은 물건을 창조해 낼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실제적으로 사람은 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의식주도 누릴 수 없고 컴퓨터, 인터넷, TV, 연극 등등 아무것
도 가질 수 없습니다.
사실 내가 쓰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이 땀흘려 일한 결과물들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누군가가 수
고를 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다른 사람의 수고가 있기 때문에 내가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부모님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듯이, 내가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다른 사람이 없다면 나의 존재 또
한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는 이러한 소중한 인간관계를 깡그리 돈관계로 바꿔버립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모든 것에 "이건 얼마" 식으로 가격을 먹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첼리스트 요요마의 공연은 20만원, 새만금 환경파괴를 복구하는 비용은 10조원, 성매매 여성과의 1회
관계 5만원 등등....
이러한 상황이,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이기적"이지 않고, "돈"만 생각하지 않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무리!!
내가 아파도, 가족이 아파도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돈"을 들고 병원에 가야합니다. 돈이 없으면 그냥 아
파 죽어야 합니다.
내가 먹을 음식, 내가 입을 옷, 내 자식의 교육 등등... 이런 모든 것을 개인 혼자서 해결하라고 합니다.
어느 누가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런 사회에서 살려면 당연히 나부터 챙겨야하고 나만 챙겨야
합니다.
최근에 남한에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주로 "탈북자"라고 불리는 북한경제유민들 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북한경제유민"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한번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남한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이 무엇인가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원에 돈을 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땅마다 니꺼
내꺼 해서 땅임자가 따로 있다는 것도 놀랐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를 사는 사람에게는 상식입니다. 병원에 가서 돈내야 치료받을 수 있고, 이건 내땅 저건
니땅 식으로 땅임자가 있는 것....
그런데, 다른 식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병원은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비용걱정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이고,
땅이라는 것은 개인의 치부로 이용되어서는 안되고 사회 전체의 소유로 모든 사람의 이익에 맞게 사용
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인 것입니다.
우리의 사고의 대부분이 사실은 이러한 사회적인 환경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기적"인 삶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인간은 결국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수동적으로 환경의 틀에 주조되서 살아가기만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사람에게서 절망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희망도 발견합니다.
이 글의 연재하면서 적당한 때가 되면, 희망의 얘기도 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자본주의적 인간형"에 대해서 얘기해보았습니다.
사실 하고 싶은 얘기가 더 많았지만 이정도에서 줄이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자본가들이 이윤이라는 것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
첫댓글 너무 너무 좋은 글입니다....좀 긴듯해도 단 한줄도 그냥 넘길 것이 없습니다... 좀 긴 듯하다고 썼는데... 혹시 다른 사람이 길다고 느끼고 ... 산만하게 읽을까... 읽다 말까 하는 염려에서 그리 쓴 것입니다...따로 사족을 붙일 필요없는 좋은 글입니다. 감사...
책으로 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