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제서야 벼르고 별러 온 외갓집 조상묘를 찾고자 한다
여러번 외삼촌을 통해 근처 홍성에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가보지를 못했다
어릴적 청양 청남 외갓집 근처에서 우리집이 살다가 5형제 중 나만 공주로 와서 낳았다 그래서 가끔 어머니 손잡고 외갓집에 갔을때 그 근처인 동산 조성한 선생을 모시는 이산사만 외갓집 조상이라하여 한두번 방문했을 뿐 외갓집 조상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들어와 그 윗대조 야곡 조극선 선조의 묘소가 덕산에 있어 두번 찾아가 봤고 그 서원인 예산 도산서원을 한번 찾아가 봤을 뿐이다
현 시대는 사촌들도 거의 만남이 없어 길거리에서 보면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니 이렇게 조상을 찾는다는 것도 할 일 없는 사람의 짓거리로 손가락 받는 시절이지만 그래도 역사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으로서 내 친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생활하는 것이 나쁘진 않을 것이다
어쨌든 오늘 보령에 있는 처제집에 다녀올 일이 생겨 겸사겸사 찾기로하고 홍성을 거쳐 보령으로 달렸다 한동안 미세먼지가 극성이더니 오늘은 안개와 미세먼지가 섞였는지 한치 앞도 구분못하겠다 보령에 들렀다 오후 1시쯤 다시 천안으로 오는 길 다행히 칠흑같은 안개는 걷혀 홍성 홍북 대인리를 들렀다
화양역을 돌아 화양천으로 들어서니 먼 발치에서도 묘역군이 훤히 보일 정도로 넓은 공간의 한양조씨 시조묘역이 보인다
먼저 양절공 조온과 한풍군 조완의 신도비가 우뚝 서 있다
그 옆에 양열공 조인벽 선조께서 쓰신 해월정이란 제목의 시비가 있다
그리고 한양조씨 유래비와 공적비가 있고
그 가운데 좀 오래되어 보이는 신도비가 있다 지중추공 조증의 신도비이다
한양조씨 8세조로 홍성(湖西)입향조이시다
한양조씨가 홍성과 인연을 맺은 것은 7세조 한풍군(자헌대부 지중추원사 한풍군 조완趙琓)이 가선대부 판 홍주목사로 부임하여 장남인 지중추공 조증(趙璔)을 홍성의 유지인 중직대부 전라도 감목관을 지낸 김화의 따님과 결혼시킨 것으로 시작한다.
50여 미터 옆에 지중추공의 장인 장모 묘소가 있다.
지중추공의 장인 김화는 아들이 없어서 지중추공의 배우자인 정부인 영덕김씨 생존시까지만 제사를 지내기로 하였으나 그 외후손들이 500여년간 대대로 시제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지중추공 조증의 호는 노정(魯亭)으로 세종 31년 경상도 예안현감으로 재임시 선정을 베풀어 현민들의 칭송이 자자하였고, 세조2년 보공장군 행 우군 부사맹으로 계실때 개국 정사 좌명 공신이신 한천부원군 양절공 조온의 적장손(맏 손자)으로 세조가 주재한 5공신 회맹제에 참석하셨다.
이후 성종 2년 어모장군 행 충좌위 중부 부사맹으로 계실때 개국 정사 좌명 공신이신 한천부원군 양절공의 적장손(맏 손자)으로 성종이 주재한 8공신 회맹제에도 참석하셨다.
나중에 가선대부 대호군을 역임하시고, 자헌대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지중추공 조증(趙璔)은 5자를 두니 노은 5파로 분파된다.
지중추공의 장자는 승지공 조윤선(趙允瑄)이며, 2자는 예안공 조윤찬(趙允瓚)이고, 3자는 어모공 어모장군 용양위부사직 조윤영(趙允瑛) 이다.
4자는 면천공 조윤상(趙允瑺) 중훈대부 면천군수이며, 5자는 사직공 조윤수(趙允琇)이다.
그중 네째인 면천공 조윤상 선조의 묘소는 이 닭제산 좌측면 옆산에 위치해 있는데 부인이 죽산박씨로 노은의 대표 인물 성삼문의 어머니와 같은 종씨이다.
그런 연고라서 성삼문의 문인으로 따르다가 계유정란을 맞아 한 시대의 희망을 잃게 된다
한층 아래묘역엔 장자인 승지공 조윤선의 단소가 있다
1482년 성종 13년 1월에 충훈부 경력(忠勳府經歷) 조윤선(趙允瑄) 등 5인(人)을 윤대(輪對)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 옆엔 15대 종손 조명한의 묘비가 있다
조명한?의 묘갈은 조덕린이 찬?했는데 그 내용을 아직 해석하지 못해 자세한 내용은 쓰지 못한다
홍성 입향조 지중추공 조증의 묘역을 나와 그 옆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