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은 시편 150편중에 가장 많이 사랑받는 시편일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사업장이나 가정에 시편 23편을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은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그런데 시편 23편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음악이나 그림을 좋아할 때에 자신의 심신을 위로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시편 23편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은 목자가 양을 품에 안고 잔잔한 물가와 푸른 풀밭을 배경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아주 목가적(牧歌的)적인 풍경입니다. 목가적이란 목자의 노래를 말합니다. 서정적이고 소박한 그림이나 노래를 말하는데 시편 23편을 그렇게 봅니다.
바흐의 곡에서도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시편 23편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사를 붙여서 노래하는 것도 있습니다. 가사 번역을 보면 ‘양들은 평온히 풀을 뜯으리 선한 목자가 지키는 곳이라 통치자가 잘 다스리는 곳이라 백성들은 안정과 평화를 누리리’ 이런 가사를 붙였습니다. 이 곡도 들어보면 잔잔하고 평안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23편은 그런 목가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배경이 있습니다. 4절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습니다. 다른 번역은 사망이라는 그늘이라고도 합니다. 사망의 그늘이 덮여있다면 곧 죽는 자의 모습입니다. 5절에서는 원수입니다. 즉 죽이려고 달려드는 원수를 배경으로 시편 23편의 찬송이 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목동 출신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에 한 말을 봅니다.
사무엘상 17:34~35절입니다.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사자와 곰을 물리치는 목동의 일도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음으로 일어난 일로 봅니다. 그러므로 골리앗을 물리칠 때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자신의 언약을 이루어내시는 만군(萬軍)의 여호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적들을 물리치시고 자신의 언약 백성들을 구원하여 내시는 일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이 목동일 때에 기름 부음을 받아 양들을 더 많이 잘 쳐서 거부가 되었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고 알게 된 여호와 하나님의 일 하심은 자신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다윗을 위하여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하여서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하실 때에 자기 이름으로 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 언약을 이루시는 일에 다윗이 포함됩니다. 그래서 다윗이 비록 간음하고 살인하여도 그 이름을 위하여 다윗을 징계하시기는 하지만 버리지 않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겁니다. 그 의의 길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4:1~3절입니다.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ㄱ)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 의의 길이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하는 마태복음 1:1절의 말씀처럼 아브라함과 다윗이 어떻게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지를 보면 됩니다.
이어지는 4~9절입니다.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ㄴ)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아브라함과 다윗이 받은 복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이 복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받은 결과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이 주의 기름 부음 받음으로 인하여 수많은 여호와의 전쟁을 합니다. 그러나 다윗보다 더 충성된 우리아를 살해합니다. 자신의 간음을 덮기 위한 일입니다. 간음과 살인은 율법에 따르면 죽임당하여야 마땅합니다. 이보다 더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다윗이기에 방금 본 로마서 4장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로마서 4장에서 인용한 내용은 시편 32편에 나옵니다. 그때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간음도 살인도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한다고 합니다. 목자는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다닌다고 합니다. 지팡이는 끝이 휘어져 있어서 양들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린다고 합니다. 지팡이는 사나운 짐승들이 오면 물리치는 도구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자가 되셔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여 주심을 말합니다. 살인과 간음을 하였다면 죽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주의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시는 일에 다윗을 사용하십니다.
사무엘하 7:13~17절입니다.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다윗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을 지어드리겠다고 하였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다윗이 여호와를 위하여 집을 지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 주신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집은 그 아들 솔로몬이 지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솔로몬이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는 하겠지만 사울처럼 은총을 빼앗지는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솔로몬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 다윗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을 보이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간음하고 살인한 후에 엄청난 사람 막대기와 인생의 채찍을 맞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망의 골짜기로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주님은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여 주신다는 찬양을 합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은 다윗이 가장 노년에 지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들이 달려듭니다. 그 원수들이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참소하는 사탄도 있습니다. 욥을 고발하는 사탄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발하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원수 앞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머리에 부어주시니 내 잔이 넘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손님을 대접하는 모습이 이렇습니다. 지금 죄와 사망의 그늘에 덮여있는 다윗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시기에 내 잔이 넘친다고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에게 넘치는 잔은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른다고 합니다. 이런 확신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주의 기름 부음 받음으로 인하여 나오는 겁니다. 오늘 우리도 주의 성령이 임하시면 자기의 죄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 죄보다 더한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된 자들은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서 살게 됩니다.
시편 23편을 20편에서 24장까지 연결하여 보겠습니다. 시편 20편에서 왕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시편 21편에서는 왕이 이미 승리하였고 앞으로도 승리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왕의 승리가 시편 22편에서 십자가로 승리함을 보았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신 그 왕이 선한 목자가 되어 인도하심이 시편 23편입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잔잔한 물가와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물과 풀은 생명의 양식을 말하기에 영혼의 소생을 말합니다. 양들이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선한 목자가 함께하십니다. 선한 목자만이 자기 죽음으로 자기 백성들의 사망 자리에 함께하셔서 그들을 인도하여 영원히 아버지 집에서 살게 하십니다. 이것은 다음 주에 볼 시편 24편입니다.
이제 양과 선한 목자에 대하여 성경 몇 곳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사야 40:11절입니다.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합니다. 그 위로는 이제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외치는 자의 소리가 광야에서 길을 예비합니다. 이 광야의 소리가 세례요한에게서 이루어집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리고 외치는 자가 해야 할 말은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날 것인데 모든 육체가 그것을 보리라고 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집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그 복음은 선한 목자가 양을 구원하십니다.
이사야 53:5~7절입니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이런 양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가 예수님입니다.
에스겔 34:1~6절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3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4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5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6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이스라엘의 목자라는 백성의 지도자들이 제대로 목자 노릇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친히 목자가 되어 주신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7~16절입니다. “7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8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 떼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9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10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13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14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15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여호와께서 친히 목자를 인도하여 내신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17~22절입니다. “1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 18 너희가 좋은 꼴을 먹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19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곧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서 심판하리라 21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를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 22 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양들과 양들 사이에서도 심판하여 구원하여 내십니다.
이어지는 23~31절입니다. “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25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26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27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에의 나무를 꺾고 그들을 종으로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겠고 28 그들이 다시는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며 땅의 짐승들에게 잡아먹히지도 아니하고 평안히 거주하리니 놀랠 사람이 없으리라 29 내가 그들을 위하여 파종할 좋은 땅을 일으키리니 그들이 다시는 그 땅에서 기근으로 멸망하지 아니할지며 다시는 여러 나라의 수치를 받지 아니할지라 30 그들이 내가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며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고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31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있는 중에 받은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라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다 타락하여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백성인 양들은 포로로 잡혀가고 잡아먹히고 다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 사이에서도 힘 있는 자가 없는 자를 괴롭힙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악한 목자들도 치시고 양들 중에 힘 있는 자들도 심판하셔서 가련하고 약한 양들을 구원하여 내시는데 다윗을 세운다고 합니다. 다윗은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다윗에게 허락한 언약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을 성취하시려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합니다(요1:29).
요한복음 10:1~6절입니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이 말씀은 오늘 구약에서 찾아본 모든 말씀들의 자연스러운 결론이며 성취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목자라는 자들이 절도며 강도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른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장차오실 선한 목자를 가리키는 역할을 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못 알아듣자 예수님은 다시 설명하여 주십니다.
이어지는 7~18절입니다.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뿐 아니라 얻을 권세도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버림을 받아 그들을 끌어안으시고 목숨을 얻으시는 일을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선한 목자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구약의 자기 양들에게 생명을 주셨고 신약의 양들에게도 생명을 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그 십자가로 이끄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게 된다면 주님의 양입니다. 이런 자들은 우리가 각기 제 길로 갔지만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심을 믿기에 오늘도 선한 목자를 따라 갑니다. 이들은 목자만 있으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전부이기에 예수님 외에 더 원할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