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여름 훈련이 시작되기 전날. 천안에 있는 인문학까페 '산새'에서 열리는 k선생의 강연에 다녀왔다. 영광에서 천안아산역으로 가는 방편은 크게 네 가지로, 첫째는 승용차를 몰고 가는 것이다. 길안내 어플리케이션에 따르면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지만 대전보다 윗쪽이니 3시간은 잡아야 했다. 두번째는 광주까지 승용차로 가서 기차를 타고 가는 법, 셋째는 정읍까지 운전해서 기차를 타는 방법, 마지막으로는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방법이었다. 길눈이 어두운데다 지역 지명조차 아직 낯선 내게 친절히 여러 방편을 일러주신 임산님(학교의 설비와 환경을 돌보는 주무관으로, 출가선배이기도 하다)덕분에 샅샅이 챙길 수 있었다. 서울보다 가까워졌다지만 어떤 노선을 취해도 10만원 정도의 여비는 생각해야 하는 여정이라 초행길에 고민이 앞섰다.
드디어 오늘. 일단 '정읍역' 을 목적지로 삼아 차를 몰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일찌감치 매진된 열차의 입석을 끊고 다시 1시간을 달려 천안아산역에 도착하고 나니 6시. 애매한 시간이었다. 복용하는 약 때문에 저녁을 먹어야 했고 식당 주인에게 물어 '콜밴'이란 걸 타고 강연장으로 향했다. 숨어버린 듯 한 '산새'를 찾아 쌍용2동을 뱅글뱅글 돌다보니 조바심이 났다. 검색한 주소가 아닌가 싶어 형선에게 문자로 확인을 하고 다시 한바퀴를 돌다보니 눈 앞에 익숙한 노란 빛 건물이 보였다.
'어리석음'이란 주제로 진행된 선생의 강연. 요지는 '자기간섭의 역설'과 '자기구제' 이며, 사이의 긴장을 뚫는 비평적 실천으로서의 '산책'이라는 것. "나에 관한 진실이 나에게 속해있지 않고 남에게 있다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되느냐 하면, 바로 리비도가 끊어질때, 이별을 통고받는 리비도적 결별의 순간, 바로 그때 알게 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태도며 성품에 늘 온기가 있는 '연니자'는 고1 딸을 동반하여 놀라웠고, 그 외에도 익숙한 얼굴 몇 몇이 보였다. 1,2년씩 서울을 오다니며 공부에 집심을 보인, 놀라운 학인들이고 선생의 후학들이었다. '회명재'란 이름의 새 장소에서 장숙의 다음 페이지가 열리고 있었다.
'오래 선생님을 만나왔지만 야무지게 공부한 이력은 짧습니다. 오히려 이 모임에 대해서는 더욱 할 말이 없습니다. 그간 보아온 어떤 모임과도 다른, 불연속적 단절이 있는 곳이고 저는 그저 어깨 너머로만 바라보는 청강생이니까요. 오랜 인연의 내력이 오히려 인식론적 장애물이 되어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혹은 이곳의 공부에 걸림돌로 기능할까봐 염려하는 바가 컸습니다만, 요즘엔 이곳 숙인들의 실력이 나날이 높아져 그런 걱정은 사라지고 그저 어떻게 쳐지는 제 공부를, 멀리서나마 챙기며 함께 할 수 있을까.....그것이 걱정일 뿐입니다'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비바람이 부는 어두운 새벽길을 돌아오며 내내 후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