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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한자는 모두 國字”
‘국어기본법’ 헌번소원 제소(월간조선)
편집자 주) : 다음은 월간조선 김태완(金泰完) 기자의
「‘한자공부하지 말자’는 한국의 知的수준(2013.10월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발췌․요약하였다.
우리나라 말의 70% 이상이 한자어(漢字語)인데,
한자를 추방하고 한국인은 글의 뜻도 모르고,
텅 빈 수수깡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탄식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런 탄식은, 광복 이후 태어난 ‘한글세대’라는 자부심도 무너뜨릴 기세다.
조순(趙淳) 전 경제부총리는 한글과 한문의 혼용(混用)을 누구보다 강조해 온 인물이다.
“저는 한글세대는 아니지만, 해방 이후 50년 동안 한글을 읽어 왔습니다.
경제학의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도 했고, 책과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글만 가지고는, 제대로 된 저작물을 낸다는 것이
몹시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애덤 스미스나 케인스는 고사하고 최근의 저명한 학자들의 저서도 번역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번역도 못하는 마당에 한글만 가지고는 수준급의 책이나 논문을 쓴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이류국가가 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한동(李漢東) 전 국무총리는 몇해 전 ‘어문(語文)정책 정상화 추진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해 오고 있다.
이 추진회는 작년 7월 결성됐다.
이한동 전 총리의 말이다.
그러니까 실질적 문맹률은 더 높아졌다는 얘기입니다. 이해력이 떨어지니까 학문이나
문화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요.
편협한 애국과 국수주의로 광복 후 국어의 황폐화와 언어능력의 저하를 가져왔습니다.
한자는 외래문자가 아니라 우리 문자, 즉 국자(國字)입니다.
한글과 한자 모두 우리의 국자이죠.
근본적으로 한자어를 외래어로 규정하는 ‘국어기본법’은 잘못된 것입니다.”
<1948년 7월 17일 제정, 공포된 제헌 헌법. 대한민국 헌법은 국한문 혼용으로 적혀 있다.>
— (김태완 기자 問) 한자도 국자라고 보시나요.
이한동 전 총리의 말이다.
“그렇습니다. 국어는 고유어와 한자어․외래어로 이뤄져 있어요.
한자어의 한자는 국자이자 국어입니다.
국어는 수도나 국기․ 국가와 같이 관습(慣習)헌법의 사항이죠.
우리 《헌법전(憲法典)》을 보세요.
수많은 한자가 나오는데, 그럼 헌법에 나오는 한자는 외국어로 표기된 것인가요?”
‘한자 사망’이 낳은 한국사회의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먼저 강원대 한국어문화원 원장인 국문학과 남기탁(南基卓) 교수에게
그 수준을 물어보았다.
그는 ‘초계함’인 천안함 폭침 사태 때의 일을 회상하며 수업 중 일화(逸話)를 들려주었다.
망볼 초(硝), 경계할 계(戒)라는 의미를 알면 쉽게 알 수 있는 말이잖아요.
어떤 일을 수행하는 배인지 아는 학생이 없었습니다.
학점을 5점이나 올려주겠다고 해도 답이 없었어요.
더 큰 문제는 몰라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교양수업을 듣는 의예과 학생들에게 예(豫)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아도 아무도 몰라요.
미리 예 자거든요.”
남 교수는 “사례가 너무 많아 일일이 설명하기 어렵다”며 한숨을 쉬었다.
”언젠가 제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어요.
신문에 ‘부동표(浮動票)’를 겨냥해 선거운동을 한다는 기사가 났기에 ‘부동표가 뭐냐’고 물으니
제자 왈(曰), ‘아닐 부(不) 움직일 동(動)을 써서 움직이지 않는 표’라고 하더군요.
기가 막혀서 ‘움직이지 않는 표인데 왜 선거운동을 하느냐’고 했더니
‘확인사살을 하려고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현재의 한국 대학생의 국어실력이라고 봐야 합니다.”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이명학(李明學) 교수는
“한자 한 글자 모르더라도 죽을 때까지 생활하는 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전공 서적을 보아야 하고 전공 용어의 정확한 개념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 전공 학술용어는 한자어입니다.
그런데 한자어로 된 학술용어를 한글로 읽고 뜻을 익히려고 하니 정확한 의미 파악이 안 됩니다...
현재 대학 교재 가운데 한자를 병기해서 쓴 책이 없습니다.
학생들은 한글로 읽고 뜻을 유추해 이해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확한 개념을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전공 용어의 정확한 개념은 그만두고라도 대학생들의 한자어 지식은 거의 바닥 수준입니다.”
(김태완 기자 問) — 한글전용이 ‘단순문맹’을 퇴치했으나
한국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실질문맹’을 양산했다는 지적이 있어요.
이명학(李明學) 교수는
“...표음문자(表音文字․소리를 기호로 나타낸 글자)인 ‘한글’과
표의문자(表意文字․뜻글자)인 ‘한자’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균형을 이루면서
상호 보완을 해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理想的)인 문자체계입니다.”
“한자 거부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 부정하는 것”
1대와 2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한 법무법인 신촌의 김문희 대표변호사는
“한자를 국자(國字)에서 배제한 ‘국어기본법’은 위헌(違憲)”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현재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상태다.
“한글전용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이 우리말의 의미를 전달하는 기본수단인 한자를 배척 혹은
말살해, 우리 국민이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
그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유.
일본은 유치원, 초등, 중등학교에서 1945자의 한자를 필수적으로 배우고
현재 2136자로 상용한자를 늘렸다.
북한은 김일성이 연두 교시(敎示)에서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1970년에 2000자(초․중․고)와 1000자(대학)를 지정해 한자를 학습하도록 하였다.
모두 3000자를 배우고 있다.
북한이 우리보다 먼저 《리조실록》을 완역 출간해
우리나라에 역(逆)수출한 것은 한문교육이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김경수 중앙대 국문과 명예교수).
(김문희 변호사 答) :
“한자를 모르면 동음이의어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어느 지방의 ‘김치 축제’를 알리는 유인물에서
충장사(忠壯祠)라고 해야 할 사당(祠堂)의 영문표기를 ‘충장사(忠壯寺)’라는 절로 알고 ‘Temple’로
썼다고 해요. 향교(鄕校)를 교량(橋梁)의 뜻인 ‘Bridge’로 표기했다고 합니다.
또 어느 대학에서는 ‘○○○ 絞首(교수․교살한다는 의미) 정년퇴임’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린 적도
있습니다. 영자신문(英字新聞)에서는 주간 교수(主幹敎授)를 ‘Weekly Professor’로 표기한 적도 있어요.
또 어느 대학의 신학(神學)선언문에 ‘세계선교사에 유례(類例)가 없는’이라는 뜻의 영문을
‘유래(由來)가 없는’으로 이해해, ‘unprecedented; unexampled’라고 표기해야 할 것을 ‘without origin’으로
표기했다고 합니다.”
(김태완 기자 問) —한글과 한자를 혼용 · 병기(倂記)해야 하는가
(김문희 변호사 答) : “공교육, 특히 초․중․고교 과정에서 상용한자 1800자가량의 한자를 배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약 70%에 이르는 어휘가 한자로 돼 있는 국어는 동음이의어가 많아
순 한글로 된 문장을 읽었을 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수없이 많아요.
...기초한자의 학습은 국민생활과 문화창조에 효율적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국어기본법’ 등에 대한 위헌확인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유입니다.”
단국대 전자전기공학부 김윤명(金允溟) 교수는
“한자어로 된 기술법률이나 용어 가운데 한자가 사라지는 바람에
개념이 불분명해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 기술법률들의 시원(始原)은 일제시대에 일본어로 만들어진 것이고,
당연히 많은 한자를 포함하고 있어요. 세월이 흘러 시대에 맞도록 법을 고치기 위해서는
현존의 법령을 읽고 잘 이해한 다음에 현대적 기술 수준에 맞도록 내용을 수정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모든 공문에서 한자만 그냥 들어내 버렸어요.
결국 세월이 지나고 현존하는 법령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게 됐어요.
담당 공무원에게 물어도 명확하게 아는 이가 드물어요.”
학생들은 복잡한 기술용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예를 들어, ‘반도체(semiconductor)는 반도체(半導體)인가 반도체(反導體)인가’,
확신을 가지고 답을 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어요.
이것은 한자를 안다 모른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라는 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가 못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전자기학(electron magnetics)이 전자기학(電磁氣學)인가, 전자기학(電子氣學)인가’라는
질문을 해도 마찬가지예요.
전자파에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의미로 읽힙니다.
전자파(電磁波․electronmagnetic wave)와 전자파(電子波․electronic wave)의 차이는
대학교 2학년 때 배우는데, 이것을 한글만으로 가르치는 교수들이 대부분이니
학생들의 개념혼동은 불 보듯 뻔하지 않겠어요?”
김 교수는 이런 말도 했다.
“1달쯤 전에 오선화(吳善花․일본어로 고젠카)라는 한국계 일본인이 인천공항에 입국하려다
반한(反韓)활동 경력으로 입국거절을 당한 일이 있었어요. 그 여자가 평소에 한국인과 대한민국의
나쁜 점들을 여러 가지 주장했는데, 다른 것들은 대체로 억지지만, 딱 하나는 깊이 동의합니다.
따라서 노벨상을 못 타고 있다.’ 전문용어에 대한 완전한 이해 없이 한글로만 이해하고
가르친다면, 50%만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수준 높은 문화가 어떻게 축적될 것이며,
전문용어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노벨상 수상이 감히 가능하겠습니까?”
세계적인 뇌(腦)과학자로 알려진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조장희(趙長熙) 소장은
“40년 넘게 해외에 있다가 들어왔더니 사람들이 한자를 안 써 한국인이 문맹(文盲)이 되어 있더라”는 말부터 했다. “서로 얘기들은 하지만 뜻을 전혀 몰라요. 뜻을 모르니 응용을 못해요.
왜 한자를 안 쓸까요. 아마 일본 식민지였다는 콤플렉스가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한자는 라틴어처럼 중국의 글자가 아니라 동양의 글자입니다. 과학기술 서적은 한문을 안 쓰면 이해를 못해요.” 조 소장은 한자교육과 뇌의 활성화에 대한 연구를 수년간 진행하고 있다.
“뇌 영상으로 찍어 보니, 한글로 읽을 때보다 한자로 읽을 때가 뇌의 많은 부분에서 활성화가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단어를 한문으로 기억했을 때는 뇌의 여러 군데에서 활성화가 이뤄졌지만, 한글로만 기억할 때는 뇌의 한군데만 활성화되었어요.”
“ (한자를 모르면) 중국과의 국제경쟁에서 우리가 지는 겁니다. 그러니 한자를 배우는 것이 국가 존폐와도 관련이 있어요. 비록 뇌과학자이지만 일부 쇄국적(鎖國的)인 언어학자들이 한글전용을 만든 것 같아요.”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정길 전 원장 인터뷰
“ 지금의 상태를 10여년 더 방치하면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은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과거 지나치게 한자와 한문에 압도당한 경험 때문에 역설적으로 한글전용으로 가게 되었으나 우리의 전통문화가 모두 한문으로 표현돼 있다. 정확하게 알려면 한자를 공부해야 한다.
한자와 한문공부를 사대주의와 결부시키거나 민족 자존심의 문제로 접근하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미래가 소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학문적 보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한자과 한자공부가 필요하다.”
<출처 : 「왜 한문 인문학인가」 2014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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