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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반드시 마지막이길
중요한 날임을 알 수 있는 슈트차림의 해율. 그리고 그 곁엔 오늘 재판을 위해 함께 준비했던 최실장이 있다. 오래도록 준비한 재판이라기엔 무척이나 덤덤해 보이는 해율의 모습.
재판장 안 엄숙한 분위기 속에 변호인석엔 해율과 변호인이, 피고인석엔 복우리가 나란히 자리하고 앉는다. 그리고 방청석에 그들의 재판을 지켜보며 앉아있는 최실장까지. 잠시 후 판사가 모습을 보이고, 모두가 기립해 섰다가 판사가 앉음과 동시에 제자리에 착석한다.
“선고하겠습니다. 주문. 피고인 복우리는 현재 자신의 죄를 뉘우침이 없고, 계속해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려는 경향이 다분함에 있어 죄질이 나쁘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피고인 복우리는 형법 제307조(명예훼손) ②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나 원고 측의 선처를 받아 들여 치료감호 받는 것으로 5년의 징역형을 대신한다.”
* * * * *
재판이 끝나고, 법원을 빠져나오던 해율의 재킷 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걷던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어 화면에 뜬 저장명을 확인한다.
“네, 승재씨.”
“재판은 잘 끝났어요?”
“네, 뭐 나름.”
“크게 구형을 요구하지 그랬어요. 여전히 잘못한 게 없대요?”
“뭐, 그렇죠. 그래도 치료감호 받으면 나아지겠죠.”
“부디 그러길 바랄뿐입니다. 저역시도. 참! 주리는 알아요?”
“아직 말 안했어요.”
“이제 두 사람 행복할 일만 남았네요. 행운을 빌게요!”
“고마워요. 승재씨.”
* * * * *
양가 허락을 받아내고 주리가 해율의 오피스텔에 찾아드는 건 잦아졌다. 결혼식만 하지 않았을 뿐 부부나 다를 바 없이 생활하고 있는 두 사람이다. 오늘 아침도 해율의 침실에서 서로를 꼭 껴안고 있다가 알람소리에 부스스 눈을 뜬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와 살짝 부은 얼굴로 시선이 마주친 해율과 주리.
해율의 시선을 뒤늦게 피하려고 고개를 침대매트리스에 박는 주리. 그런 주리가 귀여운 듯 헝클어진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가지런히 해주고, 부끄러워 들지 못하는 주리의 고개를 양손으로 감싸며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해율. 그리고 차마 똑바로 해율을 마주볼 자신이 없는 주리는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그 틈에 해율은 주리의 입술에 모닝 입맞춤을 한다. 해율의 입술 감촉에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이 번쩍 떠지며 해율을 마주보는 주리.
“어? 눈 떴네?! 아이고, 우리 자기 귀여운 눈곱!”
“피... 그런 건 그냥 말 안하고 해주면 안 돼? 사람 부끄럽게...”
“싫어. 어차피 자기 껀 다 내꺼.”
아침부터 해율은 주리에게 딥한 키스를 건넨다. 이제 더 이상 누구 눈치 보고, 생각해가며 조심스러워할 필요가 없단 듯이. 정말 완연한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듯 그렇게 주리를 아침부터 격렬하게 사랑해주고 있었다.
“사랑해...”
“나도...”
“그럼 한 번 더?!”
주리와 해율 위로 이불을 덮어 올리려는 해율을 만류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하는 주리. 쥐고 있던 이불을 든 채로 쫄래쫄래 주리의 꽁무니를 따르는 해율.
아침 요깃거리를 챙겨보려는 주리는 뒤따라 나온 해율을 마냥 거부하지 않고, 살포시 팔을 둘러 해율을 안아준다. 그리고는 아이 다루듯 한마디 한다.
“우리 착한 기해율씨. 소파에 가서 얌전히 앉아 있어요오~”
“아아앙~ 한 번 더?!”
“안 돼. 배고프잖아. 아침 먹어야지.”
“내 영양분이고, 힘의 원천이고, 보양식은 자긴데?! 난 자기만 있으면 되는데?! 으응~?!”
“에헤잇! 얼른! 가서 앉아있어. 난 아니야. 난 먹어야 돼.”
“피! 너무해! 너무해! 어떻게 나보다 음식이 먼저일수가 있어?! 어?! 자기 어떻게 나한테 이래?!”
뾰로통한 표정으로 허리에 팔을 얹으며 씩씩거리는 척 해보이지만 주리에게 먹히지 않는다. 주리는 어린애처럼 자기랑만 놀라달라는 해율의 투정임을 잘 알기 때문에 그걸 받아줘 버릇 하면 습관이 될 거라 생각해서 이럴 땐 일부러 냉정하게 받아주지 않고, 제 할 일을 한다.
* * * * *
아침을 사랑 넘치게 맞이한 해율이 SSO 본사로 향하면서 전화를 건다.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가 얼핏 새어나오고, 해율이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매형! 우리 누나랑 깨 볶느라 행복하죠?”
“그럼, 그럼. 다른 게 아니고 처남, 나 좀 도와줘야겠어.”
“드디어 온 건가요, 그날이?”
“하하하. 그런 거겠지? 언제 시간 괜찮아?”
“매형 시간 나실 때 만나요. 어차피 전 취준생이라 남는 게 시간이거든요.”
“알았어. 그럼 내가 지금 회사거든?! 업무보고 끝나면 전화할게.”
“알았어요! 이따 봐요!! 프러포즈 대박기원!”
“하하하하하하!”
너무 대놓고 대박을 기원하는 주한의 말에 멋쩍어하며 크게 웃음을 뱉어낸다. 해율이 주한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누구보다도 가장 최측근이고, 함께 자라온 주리의 남동생인 주한이 주리가 원하는 게 뭘 지, 가장 잘 알지 않을까 싶어서다. 물론, 주리의 절친 혜주의 도움과 그 외 부수적으로 지인들의 도움도 받을 예정이지만 우선적으로 메인은 주한의 조언을 중심으로 구성을 짜나가려는 생각이다.
‘부디부디 프러포즈가 성공적이게 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