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임씨는 고려에 도착하자마자 개경에 진출하였고 조선시대 중반기부터는 그 범위가 전라남도의 땅끝에서 평안남도에 이르기 까지 전국적으로 확장 발전되었다.
고려 정착 초기에는 장흥군 관산읍(옛 장안현) 옥당리 당동마을에 본가를 두었으나 후손이 번성하면서 전라남도 주변지역은 물론, 개성 및 한양까지 이거하여 생활의 범위가 확대되어 갔다.
특히, 조정에 출사하여 관직을 수행하신 선조들께서는 고려시대 수도인 개성과 조선시대 수도인 한양은 물론, 전국 부임지에서 기거하셨으나, 벼슬을 내려놓은 후에는 고향으로 다시 내려와서 여생을 마친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별세하신 후의 묘지도 대부분 고향에 모시는 것이 관례였던 것 같다.
시기적으로는,후손들이 생활의 범위가 확대되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부터 였다.
고려시대까지는 관직생활을 하는 선조들은 개성으로의 이전이 필수적이었나,
일반 후손들은 주변 완도, 진도, 해남, 강진 등지로 이거했으며,
조선시대 초기에는 보성, 고흥, 나주 등지로 생활터전을 옮긴 조상들이 늘었고,
18세기 초(1700년대 초)에는 우리 문헌공파의 본가가 현재의 화순읍 다지리로 이전하여
그 후손들이 화순군 북면, 동면, 광주시, 곡성군 등지로 재 이거되어 씨족범위가 확대 되었으며,
충청도(보령, 아산 등), 경기도 지역, 한양(서울)으로 이동이 많았다.
아래의 지도는 우리 문헌공파 선조들이 이동한 한 지역을 나타낸 것이다.
작성자 : 임인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