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世 諱 希敎임희교 선조님(링크)
耆英館기영관이란 耆老所기로소에 있던 건물의 이름이다. 기로소는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기구로 耆社기사라고도 한다. 나이 70이 되면 耆기, 80이 되면 老노라고 한데서 연유한다.(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
賡韻갱운은 다른 사람의 詩韻시운에 맞추어 시를 짓는 것을 이르는 말. (한국고전용어사전)
조선全代전대를 통해 이 기로소에 들어간 사람은 700여명 가량 되었으며, 관리들은 이 곳에 들어가는 것을 큰 영예로 여겼다 한다. 보통 임금이 기로소에 가면 기로소의 노인들과 함께 靈壽閣(영수각 : 선왕들의 어첩과 어필을 모신 곳)에 나아가 行禮행례(도열)한 다음 기영관에 나아가 시로 화답하고 연회를 베풀었던 것이다. 당시 시를 화답한 곳은 耆英館기영관의 西樓서루이다. 이 책은 영조가 기로소의 신하들에게 賜宴사연하였을 때 영조와 왕세손, 기로소의 노신들 그리고 함께 시종한 신하들이 운을 이어 서로 화답한 시축이다. 당시 영조와 시로 화답한 기로소의 노신들 및 신하들은 다음과 같다. 의정부좌의정 한익모(韓翼謨), 행사직(行司直) 안윤행(安允行), 행부사직(行副司直) 심성진(沈星鎭), 행부사직 김시영(金始煐), 부사직 변치명(邊致明), 행사직 조영진(趙榮進), 지중추 고몽성(高夢聖), 부사직 이광부(李光溥), 병조판서 이경호(李景祜), 병조참판 윤득우(尹得雨), 부총관 윤동석(尹東晳), 행승정원도승지 김구주(金龜柱), 승정원좌승지 임희교(任希敎), 승정원우승지 심이지(沈之), 승정원좌부승지 안겸제(安兼濟), 승정원우부승지 서유린(徐有隣), 승정원동부승지 임정원(林鼎遠), 병조참의 심이지(沈履之), 시강원겸문학 김보순(金普淳), 병조정랑 허유, 병조좌랑 이형필(李衡弼), 병조좌랑 조정상(趙貞相), 시강원설서 박상갑(朴相甲), 승정원주서 이정규(李鼎揆), 승정원가주서 김효진(金孝眞), 예문관검열 신우상(申禹相), 예문관검열 이정훈(李正薰) 등 27명이다. 표지는 황색의 蓮花紋樣연화문양이다. 본문의 네 테두리는 雙線쌍선, 絲欄사란은 單線단선으로 印札인찰한 다음 시를 필사하였는데 전체가 매우 고급스럽다. 이러한 형태적인 특징을 보아 국가기관에서 매우 정성들여 만든 책으로 생각된다. 영조와 왕세손의 시는 半葉반엽에 한 수씩 수록하고, 나머지는 반엽에 두 수씩을 수록하였는데 모두 칠언시이다. 군신간에 갱운하여 시를 지은 사실과 사례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이 시축은 영조의 聖壽성수가 80세이고, 즉위하신 지 50년이 되던 영조 49년(1773) 경에 있었던 일로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 내용은 영조가 「香山九老今何八/三日與今千萬康」이라고 시를 내리자 이 시의 운인 「康」자에 맞추어 왕세손인 후일의 정조가 「星乘南極瞻嘉會/杯進西樓祝聖康」으로 화답한다. 이어 기로소의 노신들이 각기 "官職 人名進"의 형식으로 韻字운자를 따라 화답하고 있다. 시의 내용은 모두 영조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내용이다.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 도서정보 본문기록中에서)
1773 영조 49 기영관갱운첩
기로회원 모인 자리 금잔으로 축수하니
耆英一席金觥壽기영일석금굉수
천년 묵은 영목처럼 안색이 강건하시네
靈樹千年玉色康영수천년옥색강
승정원 좌승지 신 임희교 갱진
承政院左承旨臣任希敎賡進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한문고전번역서비스'도움을 받았습니다.(김민선 번역 김종태 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