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일기 311. [미안하다. 엄청 미안하다.]
새벽기도회를 드리려고 문을 나서는데 뒤편 밭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밭에서 몇몇 사람들이 머리에 랜턴을 켜고 배추를 잘라가고 있었다. 온통 어둠이 가득했다. 심지어 그 사람들은 동남아어로 대화를 나누며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나라 사람들이 그 새벽시간 해도 뜨지 않은 어둠에서 남의 밭의 배추를 베어가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다. 그래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파출소에 전화를 했다.
“옆 밭에 동남아사람들이 배추를 베어가는 것 같은데 좀 이상합니다. 한 번 확인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로 신고를 하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니 문자가 와 있었다. “주인과 통화해본 결과 이상 없음을 확인했습니다.”밭을 보니 이미 날은 밝아있었고, 그 사람들은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편견과 선입견 없이 세상과 사람을 대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 순간 편견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하필 몇주전 회복적경찰활동으로 배추절도사건을 다룬 것이 나의 의심을 더했고, 동남아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 의심을 확증하게 만들었다. 대단히 미안했다. 나에게 충격을 받았다.
늘 농사한 채소를 챙겨주시던 한 어르신께서 찾아오셨다. 배추와 무를 주시겠단다. 배추를 받으러가니 아뿔싸... 그 밭이다. 그 어르신이서“아휴~ 제가 아침에 뭔 일을 좀 당했어요~”라며 분주해하신다. 분명히 내가 신고한 일을 말씀하시는 거라는 확신이 든다. 엄청 더 미안해진다. 차마 내가 신고를 했다는 말은 도저히 못했다. 단지 1년 농사를 잘 지은 농부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한 일인데...
동남아사람들이 일하는 것에 대해 편견을 가진 것에 미안했고, 그 어른신께 미안했다. 음료수 1박스를 꺼내들고 밭으로 찾아갔다. “어르신 이거 얼마 안 되는 거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주세요...”라고 전해드렸다.
평생을 살고, 배우고, 깨달아도,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나 자신인 것 같다. 몰랐던 생각과 감추어졌던 못난 마음이 불쑥 튀어나온다. 잘난 삶을 바라지만, 택도 없다. 그냥 미안해할 줄 알고 사는 것이나 잘 해야겠다. 오늘도 미안하다. 아내가 말한다. “당신은 왜 나한테 미안하다고 안해?”아... 오래 살면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