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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차감별협회장 보산 황영복 박사의 공방
좌측에 있는 것은 대부분 말차잔이고, 우측에 있는 다관은 대부분 자사호이다.
좌탁은 순수한 향나무로 만든 차탁이다.
이 차탁은 직접 가공한 것인데 주기철 동호회원이 적극 동참해서 만든 작품으로 사용할 때 마다 감사를 드린다.^^
● 차탁 (장목)에 대하여(보산 황영복 박사의 공방)
중국에서는 차나무 밭을 만들면서
필수적으로 사이사이에 이 장목을 심어 장목나무에서 나오는 장뇌 향을 찻잎에 스며들도록 또는 차나무 뿌리와 장나무 뿌리가 서로 얽혀 장목의 향을
차나무로 옮겨오게 하는데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장목'은 차탁을 만드는데 최고의 재료가 되고 장나무에서 나오는 장뇌 향은 집안에 둘 경우
두통을 없애주는 것으로 어떤 지인은 두통으로 수 십 년 동안을 고통을 당해온 사람이었고, 진통제도 일정회사의 강력한 진통제가 아니면 듣지를 않을
정도이며 한 알이면 보통사람이 진통되는 것을 8알까지 한꺼번에 먹어야 하는 심한 두통을 고통을 당했으나 이 장목 차탁을 들여온 이후 진통제를
거의 복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중국에서는 '장목(樟木') 이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만 자라는 늘 푸른 넓은 잎 큰키나무인
'녹(綠)나무'라 한다. 그리고 최근에 이 녹나무는 암을 치료하는 등 많은 약효적인 성분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나무이며, 잎은 차로 음용하기도
한다.
약용 명으로 사용할 경우 장목이라 한다. 줄기와 잎에서
정유성분을 뽑아내어 살충제, 방부제, 향료로 쓰기도하며. 신경쇠약, 방광염 등에 효험이 있다 민간에서는 암 치료에도
쓴다.
장나무는 수형이 웅장하고 아름다워서 숲의 왕자로 부르는 나무로 키 40m,
밑동둘레 8m에 달하는 것이 있다. 나무 전체에서 송진 냄새를 닮은 독특한 향기가 나는데 이 향기는 '캄파, 사프롤, 찌네올' 같은
정유성분이다. 나무줄기를 잘게 잘라 수증기로 증류하여 얻어낸 정유를 '장뇌(樟腦)'라고 하여 향료와 약재로 귀하게 쓴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장뇌를 우리나라의 인삼과 마찬가지로 국가 전매품으로 취급할 정도로 귀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 녹나무에 항암작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 연구하여 실적을 보고로 아직 연구결과가
밝혀진 것이 없다. '녹나무의 향기는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하여 제주도에서는 해녀들이 물질하는데 쓰는 도구를 녹나무로 만들고, 또 상처를
입으면 녹나무를 태워 그 연기를 상처에 쏘인다.
녹나무는
집안이나 심지어 집주변에 심지를 않는데, 그 이유는 '녹나무의 향기가 귀신을 쫓는 힘이 있어서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혼백이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는 속설이 있고, 조상의 혼백이 제삿날에도 이 나무 때문에 집으로 찾아오지 못할 것을 염려해서이다.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녹나무로 만든 베개'가 인기가 있는데 이를
베고 자면 잠자리가 매우 편안하다고 한다.
잎을 비롯해 나무 전체에 장뇌(樟腦)를 지니고 있으며 향내가 난다. 목재는 황갈색 또는 담홍갈색의
산공재(散孔材)이며, 기건재(氣乾材)는 비중 약 0.52로 비교적 가볍고 가공하기 쉽다. 장뇌가 있기 때문에 내후성(耐朽性)·
내충해성(耐蟲害性)이 매우 높다. 소용돌이나 비늘 모양의 아름다운 나뭇결을 지닌 것도 있다.
목재는 건축·가구·불상·목어(木魚)·세공품·기구(器具) 등의 재료로 쓰이며 옛날에는 통나무배의
제작에도 사용되었다. 또 정원수로 사용되며 따뜻한 지역의 가로수용으로도 사용된다.
녹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만 자라는 나무다. 장목 또는 예장나무라고도 부르며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 상록활엽수이다. 수명도 길어서 나이가 천 살이 넘은 것도 드물게 있다.
의학적인 연구결과의 발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에 흔히 자라는 녹나무와 족제비로 암 환자를
여럿이 고친 것으로 유명한 일화도 있다.
1. 약성 및 활용법
이미 소개한 것처럼 녹나무에 들어 있는 향기 성분은 '캄파, 사프롤, 찌네올' 등의 정유이다. '정유
성분'은 녹나무 목질과 잎, 열매에 1%쯤 들어 있다. 정유는 나무줄기를 토막을 내어 수증기로 증류하여 얻는데 이렇게 해서 얻은 정유를
'장뇌'라고 부른다.
'장뇌'는 향료로 매우 귀중하게 쓰인다.
살충제, 방부제, 인조향료의 원료, 비누향료, 구충제 등으로 널리 쓰이고 약용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신경쇠약, 간질, 방광염, 신우신염 등에
치료약으로 쓰고 흥분제나 강심제로도 널리 쓴다.
녹나무는
목재로도 매우 훌륭하다. 결이 치밀하고 아름다워서 불상을 만드는 재료로 많이 썼으며, 집 안에 쓰는 가구나 배를 만드는 데도 아주 좋다.
조선시대에는 배를 만들기 위해 녹나무와 소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기도 했다. 녹나무는 무늬와 색깔이 아름답고 목재 속에 들어 있는
정유 성분 때문에 오래 지나도 잘 썩지를 않아 악기나 고급가구를 만드는 데 안성맞춤이다.
2. 증상별 적용 및 복용법
녹나무를 암 치료약을 쓸 수 있다. '갖가지 암에 족제비 한 마리를 털과 똥을 뽑지 않은 채로
녹나무 100~150g쯤과 한데 넣고 대여섯 시간 푹 고은 다음 천으로 물만 짜서 마시면 매우 효과가 크다.'고 한다.
'족제비'는 몸의 원기를
크게 도와서 체력을 회복시키는 효능이 있고, '녹나무'는 암세포를 죽이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이 같은 방법으로 족제비 몇 마리를 해먹고
현대 의학이 포기한 암 환자가 회복된 사례가 여러명 있다'는 보고가 있다.
'녹나무 잎'은 그냥 차로 달여 먹어도 맛이 일품이다. 녹나무 잎차를 늘 마시면 심장이 튼튼해지고 배
속의 기생충이 없어지며, 감기, 두통, 불면증 등이 잘 낫는다.
* 자료 제공 : 국제차협회 회장 정상문 박사(황영복 박사 저, 「차의 원류」, 미스바출판사의
감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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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일을 처리하는 곳인 ‘다소’와 ‘품다와
탕사’
차의 역사 속에 차일을
처리하는 곳으로 '다소'(茶所)라는 곳이 있었다. 고려 왕실의 애용품으로 뇌원차(腦原茶)는 모든 진다의식에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공을 세운
신하에게 하사하는 하사품이었으며, 외국에 공물을 보내는 예물로서도 사용했고, 부의품(賻儀品)으로도 사용하였다. 이 차는 산지에 다소(茶所)를
설치하여 그 산지에서 생산해서 공납하도록 하여 이처럼 거둬들인 차를 중중에 보관 하였다가 국가의 대소행사와 애물에 충당하도록 하였으며, 이
뇌원다는 병다(餠茶, 떡차)로서 맷돌에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사용하는 차였다.
고려시대의 차의 특성은 20개 안,팍의 다소(茶所)에서 만들어졌는데 '다소'란 다원(茶園)을 만들어서
찻잎을 채엽하여 직접 제다(製茶)한 후 왕실 사원 등에 바치기도 하고 다도를 수련하기도 하는 곳으로 보내졌다.
그 대표적인 곳이 동을산(冬乙山)에 있었던
‘평교다소’(坪郊茶所)와 하동(河東) 화개(花開)에 있던 ‘화개다소’(花開茶所)이었으며,
‘평교다소’는 사원에 차를 바치는 곳으로 다원의 둘레가 4만7천보(步)이고,
‘화개다소’는 주로 조정에 차를 바치는 곳으로 ‘다전(茶田)이 장광(長廣)이 약 50리였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 할 수 있으며, 이 대목은 초의 선사(草衣禪師)가 동다송(東茶頌)에 기록하고 있고, 이규보(李奎報)는 유다시 (孺茶詩)에 고증(考證)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차들은 그러나 대부분 중국것들일 가능성이 크며, 수입해온 차로 귀한 물품으로 대접받았음도 추측하기 어렵지 않지만
‘왕이 백성들에게 차를 하사했다.’는 것은 '곧 백성들도 차 생활을 했다'는 반증이다.
차일을 다루는 찻집을 따로 둔 예는 임진왜란 무렵의 명나라 사람 하교원(何喬遠)의 '민서'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송나라의 어용차밭인 북원에는
전운사(轉運署)의 관청과 찻집인 성휘관이 있었고, 전운사로 있던 정위도 찻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찻집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아마도 명나라 동해인 도륭(東海人 屠隆)의
'고반여사(考槃餘事')의 산재전에 있는 ‘다료’가 처음인 것으로 소고된다. '고반여사(考槃餘事)'라는 제목은 시경(詩經)의 문구인
‘고반재간(考槃在澗) 석인지관(碩人之寬)에서 따왔다.'고 되어 있다.
‘고’(考)는 ‘두드린다’는 말이요 ‘반’(槃)은 ‘악기’이니 ‘고반재간’(考槃在澗)이란 말은
‘악기를 타며, 골짜기에 살고 있다.’는 의미로 고반(考槃)이란 피세은거(避世隱居)하며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은자(隱者)의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시경(詩經)의 문구에서 가져온
‘석인재관’(碩人之寬)은 ‘대인의 흉회(胸懷)가 넓고 크다’는 말이다. 물론 고반여사에서 ‘여사(餘事)’는 여가 시간에 하는 취미를 말하는
것으로 산가(山家)에 사는 묵객(墨客), 즉 책을 읽는 문인들의 생활과 취미에 대한 책인 것이다.
내용은 서(書)와 첩(帖), 화(畵), 지(紙), 묵(墨), 필(筆), 연(硯), 향(香),
다(茶), 금(琴), 분완(盆玩), 어학(魚鶴), 산재(山齋), 기거기복(起居器服), 문방기구, 유구(遊具)의 16 가지 항목에 대해 이모저모
낱낱이 설명하고, 수장(收藏)과 감상(鑑賞)의 방법까지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1600년대 초반에 나왔으니 명나라 문인들의 취미생활 따라서 조선시대 우리 문인계급들의
취미생활, 즉 그들의 풍류(風流)생활 나아가서 은거한 뒤에 산속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어떤 방식으로 추구했었는지를 능히 엿볼 수 있게
한다.
오늘날 21세기 시대가 많이 다르고 문인계급이 아니라
원하는 이는 누구나 풍류의 삶, 멋스런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또 돈이 있고 약간의 지식이 있는 자는 전원주택을 짓고 살거나 또는 귀농하여
나름의 청아(淸雅)한 삶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다.
오늘날에는
이에 대해 다양한 서적과 잡지들이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책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 ‘고반여사’란 책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장 럭셔리한
취미생활에 대한 가이드북인 것이다. 특별히 차와 관련하여 도륭(屠隆)은 그의 ≪고반여사(考槃餘事)≫ <인품(人品)> 조에서 "차를
마실 때는 손님이 적은 것이 좋다"(飮茶以客少爲貴) 손님이 많으면 시끄럽다(客衆則喧), 소란스러우면 아취가 모자란다(喧則雅趣乏矣)"고 적고
있다. 이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獨啜曰神 二客曰勝 三四曰趣 五六曰泛 七八曰施
"홀로 마시면 그윽하고, 둘이 마시면 빼어난 것이요, 서넛을 멋이라 하고, 대여섯은 덤덤할 뿐이요,
일 여덟은 그저 나누어 마시는 것".
품차도(지본담채, 족자형식)
그리고 차와 관련된
그림으로는 명나라의 문인 서화가이며, 오파(吳派)의 문인화가이며, 차인인 <명나라의 문징명(文徵明; 원 즈엉밍, 11470~1559)이
1531년에 그린 그린 '품다도(品茶圖; 품차도)'>가
있다.
문징명은 강소성 장주(長洲)사람이다. 본명은 벽(壁), 이름을 징명(徵明)으로 자를 징중(徵仲)으로 바꾸었다. 호는 형산거사(衡山居士) 또는 정운생(停雲生)이라 불리며, 강소(江蘇) 장주인(長洲人), 시, 서, 화(詩,書,畵) 삼절(三絶)로 일컬어지는 그는 심주의 수제자로서 16세기 오파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심주의 그림과 많은 차이점을 보여 그가 오파 양식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새 계절의 차맛을 본다'는 뜻의 <품차도>는 문징명이 그의 스승이었던 심주의 무거운 필치를 탈피하여
새로운 양식을 보인 그림의 좋은 예이다.
품차도를 분석해 보면?
'새 계절의 차맛을 본다.'는 뜻의 품으로 중경에 위치한 조촐한 초가에는 친구의 방문을 받고 앉아있는 선비가 보이고, 그 옆의 별채에는 동자가 차를 준비하고 있고,
전경의 돌다리에는 하나의 손님이 초가를 향해 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고목으로 둘러싸인 초가집과 그 배경으로 윤곽선만 보이는 먼 산의 깨끗한 느낌은 화가 자신이 영위하고 있는 생활의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갈색, 녹색, 청회색의 단순하면서도 산뜻한 색조 역시 고고한 문인화가들의 기품을 반영한다.
화면의 윗부분에는 문징명(文徵明) 자신이 쓴 산중의 경치와 차를 읊은 칠언절구에 이어 "가정 신묘년(1531)에 친구의 방문을 받고 계절에 새 차를 맛본다 "는 내용의 관지가 있다.
심주의 무거운 필치를 탈피하여 새로운 양식을 보인 것으로 중경에 위치한 조촐한 초가에는 친구의 방문을 받고 앉아있는 선비가 보이고, 그 옆의 별채에는 동자가 차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전경 돌다리에는 또 다른 손님이 초가를 향해 가는 모습과 고목으로 둘러싸인 초가집과 그 배경으로 윤곽선만 보이는 먼 산의 깨끗한 느낌은 화가 자신이 영위하고 있는 생활의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으며,
갈/녹/청회색의 단순하면서도 산뜻한 색조로 문인화가들의 고고한 기품 반영하고 있고, 화면의 윗부분에 자신이 쓴 산중의 경치와 차를 읊은 칠언절구(七言絶句)에 이어 “가정(嘉靖) 신묘년에 친구의 방문을 받고 계절의 새 차를 맛본다.” 는 내용의 관지가 있다.
문징명은 그림 뿐 아니라 서예가로서도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인물호
이미 밝힌것처럼 화가 자신의 낙관, 그리고 청 황실의 수장인이 그림의 왼쪽
윗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품다(品茶)'라는 뜻은 "좋은 차를 나눈다는 차겨루기에서 나온
말이다."
한편 고려시대의 '다소'는
차를 바치던 '공다소'라는 지방제도였고, "탕사라는 말 역시 차겨루기에서 사용되던 것이다."
국제차감별협회장(품다와 탕사) 보산 황영복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