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패션과 스타일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련의 단상들. 첫 번째는 헤어스타일이 귀밑 3cm를 넘으면 안 되는 엄격한 규율의 여고생 시절로, 신발은 무조건 납작한 검정 단화에 하얀 양말을 몇 번 곱게 접어 신어야만 했던 것. 물론 멋 좀 부리는 몇몇 친구들은 단정한 양말 대신 일본 여고생들의 쫄쫄이 오버 니삭스로 방과 후 슬쩍 갈아 신기도 했지만 말이다. 또 하나는 패션 도시 밀라노에 살고 있으면서도 여름만 되면 샌들에니삭스를 무릎까지 쭉 땡겨 신던 어떤 친구의 모습. 결국 주변의 만류로 여름용 샌들에는 양말을 신지 않겠노라고 맹세까지 했던 그녀 말이다.하긴 각양각색의 니삭스나 앵클 삭스를 멋스럽게 슈즈와 매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오픈 토 하이힐이나 T—스트랩 슈즈, 플랫폼 슈즈와의 믹스매치는 웬만한 스타일링 감각이 아니면 시도조차 힘들다. 그러나 올봄 4대륙 유행 도시(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의 런웨이를 휩쓴 장본인은 바로 양말! 여고생들의 그늘 아래 존재감 없이 지낸 한을 풀기라도 하는 듯 앵클 삭스는 완벽하게 패션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먼저 디올 레이디들은 반짝거리는 메탈릭한 양말에 플랫폼 하이힐을 매치했는데, 이는 란제리처럼 보이는 레이스 슬립 드레스와 매치되어 야릇한 무드를 자아내는데 일조했다.
역시 존 갈리아노 쇼에도살랑거리는 시폰 드레스에 발목까지 오는 컬러풀한 양말이 매치되었다. 아마도 그는 디올과 갈리아노 쇼를 준비하면서 롤리타의 환상 속에 푹 빠진 듯! 클로에는 축축 처지는 니트 니삭스를 선택했는데, 납작한 가죽 샌들에 매치된 투박한 카키색 니트 니삭스는 남성적인 판초나 유틸리티 스커트에 제격이었다. 또 로샤의 마르코 자니니는 영화 〈연인〉의 여주인공 이미지를 컬렉션에 투영시켰다. 스트로 햇과 실크 슬리브리스 원피스, 가느다란 벨트, 그리고 그녀의 발목 양말은 제인 마치 그 자체였다.양말의 신분 상승은 밀라노에서 극에 달했다. 돌체 앤 가바나의 섹시룩에도 발목 양말은 빠지지 않았다(학생 양말 혹은 간호사 양말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디자인). 보디 수트와 울트라 미니스커트에 매치된 블랙 양말의 조합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만남을 극도로 섹시한 버전으로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또 거의 모든 룩에 베이지색 앵클 삭스를 루즈하게 매치한 마르니 쇼를 봐도 이번 시즌 양말 스타일링은 그야말로 트렌드의 중심이라는 것을 짐작할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로맨틱한 마라스의 소녀들도 죄다 실크 니삭스를 신고 나왔고, 스포트 막스의 밀리터리 앵클 부츠에도 양말이 매치되었다.
요즘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뉴욕의 알렉산더 왕과 실용적인 라인을 구축하는 랙앤본도 니삭스를 쭉쭉 내려 발목에서 멈춰 세웠다. 물론 런던의 버버리 프로섬 쇼에도 니트 양말이 어김없이 등장했고, 루이스 골딘도 갈리아노처럼 메탈앵클 삭스를 선택했다.자, 그동안 맨발에 익숙한 청춘들에게 이번 시즌 양말은 보온성 그 이상을 선물해줄 것이 분명하다. 한 마디로아주 시크하고 스타일리시해질 수 있다는 말씀. 게다가 플랫폼 하이힐에도, 여름용 오픈토 앵클 부츠에도, 글래디에이터 슈즈에도 그저 신기만 하면 되는양말 스타일링이니, “참 쉽죠 잉~”이라 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