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술선생 김 씨 이야기 전의 추진위원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주변의 분들을 더 많은 추진위원으로 모셔 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지면으로 무자년(戊子年)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대한민국 미술선생 김 씨 이야기 전의 책임기획자 배인석 입니다.
잠시 김 씨 전에 대해 설명을 드릴까 하오니 양이 많더라도 바쁘신 와중,
잠시 시간을 내어 끝까지 읽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김 씨 이야기 전은 이렇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6여 년 전, 부산에 있는 한 고등학교 미술부 제자들이 매년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의 그 주에 한 차례씩 스승을 만나 회식을 하였더랍니다.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자리인지라 스승과 제자들 모두 반갑기 그지없었고, 그런 연유로 매번 부산의 저녁운치와 더불어 모두 거나하게 격 없이 취하곤 들 하였습니다. 이렇게 매년 만나면서 제자들은 스승의 환 갑년 전(前)에 꼭 스승을 위한 미술전을 한 번 열어보자는 약속들을 하게 이른 것입니다.
우리가 아닌 모두를 위한 전시를 만들자.
막상 전시를 열려고 하니, 기획단계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만 즐기는 전시가 아닌 모든 이들이 즐기는 전시가 되면 안 될까? 더불어 스승과 제자들이 인연이 된, 고등학교라는(또는 미술이라는)매개의 추억을 좀 더 생생하게 현실화 시켜 끄집어낼 수는 없을까?
그리고 편한 술자리의 대화처럼 우리들의 불순한 추억과 즐거운 해프닝 등을 좀 더 진솔하게 보인다면 어떨까? 모두 재미있고 의미가 있을 것이란 의견들이 모였습니다. 스승을 좀 더 편한 김 씨라 칭하며, 우리 선생의 인생을 조각조각 나누어 보여주고 관람자로 하여금 퍼즐을 맞추는, 또는 보편 한 추억을 상기시키는 당사자가 되게 하는 전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선생님도 기꺼이 이 한 몸 바쳐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고 허락하였습니다. 비로소 전시를 벌릴 작정을 한 것이지요.
모두가 만들어 내어야 가능한 전시랍니다.
막상 전시를 기획하고 구체적인 준비를 생각해보니, 약간 막막하였습니다. 특히 앞서는 문제는 전시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자료와 예산, 가공인력 등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방도를 찾았습니다. 먼저 본 전시에 공감하는 많은 추진위원을 만들어 자료와 재정을 도움 받아 해결 하는 것입니다. 가령 70년 80년 당시의 교복, 교련복, 교과서, 화구, 사진 자료 등등을 출품 받는 식으로 많은 교직의 선생님들은 김 씨의 자료를 채워주고, 여러 동문과 자료를 가지신 분들은 고교미술학도들의 자료를 채워 나가는 것이지요. 더불어 후원금도 모금하여 모두가 만들고 모두가 보는 전시로 또는 가족들과 더불어 관람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드는 겁니다. 이런 방법은 너무나 이때까지 많이들 해 왔던 방법이지만 여기서 중요한건 강한 실행력과 주변의 호응과 지지가 생명인 줄 잘 알고 있습니다. 과연 김 씨 이야기 전은 2008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을까요?
재미만이 아닌, 또 다른 의미의 김 씨 이야기 전-스승과 교육 현실을 제고해 본다.
이런 전차로 2007년 여름부터 기획위원을 중심으로 살살 움직여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협조자가 생겼고, 재미있을 거라는 격려도 많이 받았지요. 진행도중 한 고등학교 특정 선생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작은 추억의 공동체를 긍정하며, 오히려 부럽다는 이야기도 듣곤 하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김 씨 전의 주된 내용이 자리 잡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좀 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한다면 본 전시를 적극 추진하는 주요 제자들은 소위 말하는 386세대들이 주축이며 또한 부산의 어느 공업고등학교에서 미술을 좋아했던 청춘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좋아했던 그림을 하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키우고, 미술학원에 다니며, 대학을 준비하기엔 같은 동년배의 인문고 학생들보다 더 많은 열악함이 산재한 고교시절이었던 것이었죠. 우여곡절 끝에 미술대학을 가는 이도 있었지만, 보통은 애초에 진학은 생각지도 못하고, 산업전선에 또는 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때 나이가 19, 20살 정도로 지금 들어 생각해보면 그저 어리기 그지없는 사회 초년생들 인 것이지요. 또한, 대학을 갔어도 등록금에 집안형편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매일반이었지요. 그런 이들이 오늘날 이런 전시를 생각하고 투자하여 만들어 나가려 하다니? 현재 우리들의 진정한 스승과 교육관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대체 어찌 된 연유이기에 이런 대수롭지 않은 전시 따위를 부러워해야 한단 말인가? 여기서 김 씨 전은 현재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 또는 인간중심의 교육관과 예술교육의 문제를 제기하고 공유해 볼까 합니다. 또한, 우리와의 못다 했던 스승과 제자들의 부족한 관계를 준비과정을 통하여 다시금 채웠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전시를 끝으로 새로운 지평에 서서 이제부터 우리들이 못 다했던 스승과 제자의 추억들을 다시 만들어 나갈 힘들을 축적하는 것이지요. 가능하면 이제부터는 모두의 인생이 아름다운 온전한 스승과 제자로서 말이죠.
이제까지의 진행과정은 이렇습니다.
부산 민주공원 담당자와 장소를 협의하고, 김 씨 전 공식 블로그를(http://blog.daum.net/kim-c) 만들었습니다. 자료현황을 파악하기위하여 주변의 사람들에게 문의 한 결과 교련복, 당시 부산지역의 고교 배지 30여 점, 교지와 관련자료 모교에서 협조, 엉뚱하게 스승은 없는데 제자가 들고 있던 선생님의 전시 팜플렛, 6,70년대 신문자료 부산시립미술관협조, 20여 년 전 부산의 다대포 해수욕장을 배경으로 하는 활동사진 필름, 선생의 백일 사진을 비롯하여 연대별 시각자료 2박스, 당시 제자들의 입시 미술 작품 등이 계속 찾아지는 가운데, 선생의 가족사 플래시 작업, 교직 동료들과 제자들의 인터뷰 영상, 포스터디자인, 전시집행위원구성, 평론가 선정, 공간구성 인테리어 협조 등을 발주를 하였습니다. 또한, 리플렛이 나온 이후로 추진위원들이 후원과 쾌척을 약정하면서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김 씨 전의 한 섹션으로 교육과 관련된 전국의 작가 분들을 30여 명 추가로 초대하여 전시를 풍성하게 하여줄 기획을 마련할까합니다.
이렇게 해 주시면 김 씨 전이 더욱 풍부해집니다.
가장 중요한 게 이제는 빛바랜 고교시절의 풍부한 자료입니다. 자신이 가진 소장품과 관련된 자료들을 망설이지 마시고 기획자에게 알려주시어 꼭 출품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령 고교 때 입시 그림, 상장, 교복, 당시 가방, 교과서 참고서(특히 미술관련), 당시 사진, 학예 전 포스터 등…….)-이건 빨리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뜻있는 후원을 할 수 있는 추진위원분들을 많이 모집해 주셨으면 합니다. 후원금은 1만 원 이상으로 하고, 업체를 가지신 분들은 광고를 게제 하셔도 좋습니다. 모든 추진위원들에게는 초대권과 관련 도록을 발송할 것입니다. 물론 오픈 식 초대도 할 것 이고요. 그리고 부산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전시 디스 플래이, 자료정리 등의 일을 자원해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008년 7월 5일, 항도 부산에서 김 씨 전에 모두 취해봅시다!
일을 시작해 나가니 막상 어려움이 많은지라 받으시는 분들에게는 혹 부담되는 편지가 아닐까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최초에 약속했던 저희는 끝까지 온 정성을 쏟아 전시를 무사히 마칠 것입니다.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부탁드리며, 정말 우리가 모두 만들고 우리가 모두 즐기는 전시가 되길 바랍니다. 2008년 7월 바쁜 일손 잠시 놓으시고, 부산에서 모두 뵐 수 있기를 기원하며 내내 건승하시길 빕니다.
4340년 겨울 / 김 씨 이야기 展 책임기획자 배인석 모심.
김씨이야기-편지.hwp
첫댓글 양현아 이거 신년 그림두 넣엇으면 하는데, 생각좀해보자 편집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