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은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며, 2006년에는 독도왜란을 일으켰다.
입지 왜란 발발 기간과 독도왜란 기간이 왜 그리 똑같은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 똑같다.
특히 2012년은 임진왜란 원년해가 아닌가?
임진왜란과 제1차 독도왜란의 유사성을 살펴보면, 내년 임진년도 우리가 하나가 되어 독도를
지켜야 할 이유가 보인다.
[ 1592년 ]
4. 13. 왜군은 대마도 전진기지였던 이즈하라 항 출발
4. 14. 왜군은 부산진 전투를 계기로 임진왜란을 일으킴
부산진 전투에서 정발 등 조선군대 전멸
4. 15. 고니시는 동래부사 상현이 있는 남문밖에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달라(則戰矣 不戰則假道)는 패목을 세우게 하였고, 송상현은 '싸우다 죽는것은
쉽지만,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戰死易 假道難)' 라고 회답했다.
한동안 방어하였으나, 동래성은 성이 낮고 수비가 허술한 인생문(人生門)을 왜군들이 집중 공격함으로 함락당하고 말았다.송상현은 朝服으로 갈아 입고 북쪽을 향해 네번 절한 후 부모님께
遺詩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4.19. 수비군에는 일본군을 피해 김해성 안으로 피난 온 다수의 백성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지휘관들이 도주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전을 계속하였다.
특히 동문에 김득기, 서문에 유식, 남문에 송빈, 북문에 이대형 등의 선비들이 격렬한 싸움을
벌였으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하였다.
4.20 ~ 4. 21. 왜군 제1번대는 17일 양산과 울산을 거쳐, 19일에 밀양성을 점령한 후 청도, 대구를 거쳐 23일 인동으로 진격하였고, 24일 낙동강을 도하하여 25일 상주까지 침탈하였고,
제2번대는 4.18. 부산에 상륙하여 19일 언양, 21일 경주로 진격하였는데, 경주성에 있던 판관
박의장과 장기현감 이수일 등은 성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4.22. 영천을 돌파한 그들은 신녕, 군위, 용궁등을 점령하였다.
일본군 3번대는 20일 김해성을 점령하고, 21일에는 창원을 공격하였는데 당시 창원 마산포에는
경상우병사 조대곤이 진을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구후 3번대는 낙동강을 도하하여 영산, 창령, 현품 등 동안을 거슬러 진격해 경상우로르 거쳐 27일에는 성주를 점령하였다.
4.30 선조는 궁을 버리고 야반도주 하였고 백성들은 선조를 욕하며 궁궐을 불태웠다.
[2006년]
4. 13. 일본은 독도주변 해양탐사를 발표하고 국제기구에 통보하였고
4. 14. 정부는 우리측 EEZ를 침범할 경우 국제해양법과 해양과학조사법에 따른
무단진입 행위에 해당하는 만큼 정선, 검색, 나포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일측에
통보하였으나, 오시마 대사는 일본이 측량하려고 하는 수력은 일본의 EEZ이라는 것이
일본정부의 입장이라는 기존 입장 고수
4. 15 ~ 4. 18. 일본이 실제로 해양탐사선을 파견할 경우 국제법 및 국내법에 근거하여
나포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간력히 경고한다는 말만 되풀이
4.19. 일본 해상보안청 측량선이 18일 도쿄를 출발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
측량선은 먼저 돗토리현 사카이항에 입항한 후 독도를 측량하기로함.
우리 해경들은 독도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철야경비실시
4.19 ~ 4. 22. 한국정부 '先 수로측량 철회, 後 협상' 한발 후퇴...
한*일차관회의에서 독도지명 문제 유보하기로 결정
4. 25. 누리꾼들의 항위로 외무부와 정부, 청와대 홈페지 마비로 국가에서는 특별담화 실시
※ 이제 우리는 2012년 4월을 주시해야 한다.
임진왜란이 발생한 1592년 4월 14일경 일본의 독도침탈이 발생 할수 있기 때문이다.
☆ 날짜로 본 임진왜란(1952년)과 제1차 독도왜란 2006년 공통점
○ 4.13. : 전쟁징후
*1952년 : 대마도 전진기지였던 이즈하라 항 출발
*2006년 : 독도주변 해양탐사를 발표하고 국제기구에 통보
○ 4.14 : 전쟁발발
*1952년 : 부산진 전투를 계기로 임진왜란을 일으킴
*2006년 : 일본이 측량하려고 하는 수력은 일본의 EEZ이라는 것이 일본정부의 입장이라는
기존 입장 고수
○ 4.18 : 전쟁중
*1952년 : 일본 침공 및 백성들의 항쟁
*2006년 : 일본 해상보안청 측량선이 18일 도쿄를 출발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측량선은
먼저 돗토리현 사카이항에 입항한 후 독도를 측량하기로함.
우리 해경들은 독도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철야경비실시
○ 4.19 ~ 4.22 : 전쟁중
*1952년 : 백성들의 항쟁 및 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성주들
*2006년 : 한국정부 '先 수로측량 철회, 後 협상' 한발 후퇴, 한*일차관회의에서 독도지명
문제 유보하기로 결정
○ 4.23. 이후
*1952년 4월 30 : 선조는 궁을 버리고 야반도주 하였고 백성들은 궁궐을 불태웠다.
*2006년 4월 25일 : 누리꾼들의 항위로 외무부와 정부, 청와대 홈페지 마비,
담화문 발표
[ 그렇다면 2012년 4월 13일 부터 4월 30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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