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10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시편 20편부터 24편까지 연결된 시편은 아니지만 차례대로 살펴보는 중에 내용적인 연결점이 있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20편은 왕의 승리 기원, 21편은 왕의 승리 선포, 22편은 십자가로 왕의 승리, 23장은 십자가로 승리한 분이 선한 목자가 되어 양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그 양들을 인도하여 어디로 데리고 가십니까? 지난주에 본 23:6절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선한 목자가 자기 목숨을 버리시는 그 인자하심으로 양들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 그 여호와의 집은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봉독”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계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 말씀을 인정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다 여호와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누구의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십니까?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는 바로는 내 몸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을 알 때가 있습니다. 다치거나 병들거나 늙어서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면 내 몸이 내 것이 아님을 조금은 압니다. 그럴 때에 자기 몸의 주인이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고 몸신 프로를 보면서 더욱 내 몸을 챙기려고 합니다. 어제 외숙모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화장이 아니라 매장이었기에 취토(取土)를 합니다. 저는 그 유례가 무언지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성경으로 해석을 하면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확인하는 좋은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취토하고 내려와서는 이동 식당차에서 나오는 소고기 국이 뜨끈하고 맛있었습니다. 취토하는 그 잠깐의 순간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지만 돌아서면 내 몸을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본문 3~6절입니다. “봉독”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습니까?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입니까?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이 말씀의 문자대로라면 저는 여호와 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거룩한 곳에 설자는 이러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자가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는다고 합니다. 이들이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며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자라면 손과 마음이 다 깨끗하여야 합니다.
시편 15:1~5절입니다. “봉독” 앞에서 본 내용이라 그때 설교의 결론만 봅니다. “주의 장막에 거할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됩니다. 그들 위에 하나님의 장막이 함께 합니다. 이 말씀을 은혜로 믿게 된 자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눈물과 애통과 곡하는 것도 잠시 지나가는 것에 불과함을 압니다.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의 복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겁니다. 이러한 자들은 주님을 대면하여 보고 살 그날을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1~6절의 해석과 같은 골로새서 1:13~17절을 봅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만물이 여호와 하나님의 것인데 그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흑암의 권세에 있는 우리를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옮겨지게 된 이유는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설명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면 여호와 하나님도 모르는 겁니다. 예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그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신비입니다.
본문 3~6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 거룩한 곳에 서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을 사람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거룩한 예루살렘 성에 산다고 하면서 그 중에서도 거룩한 성전의 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살해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십자가의 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성전을 삼으십니다. 이것이 골로새서 1장에서 본 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나라에 들여놓으신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왕으로 들어가셔서 죽으심으로 하늘의 문을 여셨습니다.
본문 7~10절입니다. “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10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세상에 문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문들은 다 보이는 문이기에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문은 어디에 있으며 누구에게 열립니까?
창세기 28:10~19절입니다.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1)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의 이름은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으로 사기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중에서 이미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지만 그의 삶은 이름대로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다가 형이 죽이려고 하자 도망가는 신세입니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외삼촌의 집으로 가는 중에 길에서 노숙합니다. 그때 꿈속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아무른 책망도 하지 않으시고 그의 아버지 이삭과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이루신다고 하시면서 하늘과 땅이 연결된 사닥다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깨어나서 이곳이 하늘의 문이라고 하며 또 하나님의 집이라고 벧엘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6절에서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는 말씀은 놀라운 표현입니다. 그러면 사닥다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하늘의 문이 어떻게 열리는지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50~51절입니다.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야곱이 본 그 사닥다리를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라고 하십니다. 이제 영원한 문을 봅니다.
요한복음 12:12~16절입니다.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ㄱ)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예수님께서 스가랴서의 예언대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영광의 왕이 겸손하여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갑니다. 그 성문이 열려야 합니다. 군중들과 어린이들이 환호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시면서 이 성전을 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여 예수님을 성전 파괴자로 몰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이런 일에 왕을 맞이한다고 호산나 외친 자들도 며칠 만에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함께 소리 지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뜻을 사도들도 알지 못합니다. 나중에 성령이 임하고 나서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고 영원한 하늘의 문을 영광이 왕이 여신 것을 증거 하기 시작합니다. 십자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누가복음 23:39~43절입니다.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한 강도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는데 그 낙원의 문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여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며 양의 문이 되십니다.
마가복음 15:38~39절입니다.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기를 지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돌아가십니다. 그 순간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됩니다. 이때 예수님을 처형하던 백부장이 예수님을 향하여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사람에게도 하늘이 문이 열린 겁니다. 그러므로 방금 본 강도나 야곱이 다 하늘의 문이 열린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늘이 문에 열리고 그 영원한 문을 왕의 죽으심으로 여신 겁니다.
히브리서 10:19~20절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집니다. 그 휘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라고 합니다. 그 육체가 십자가에서 찢어짐으로 하늘로 가는 영원한 영광의 문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여셨습니다. 그 문을 여실뿐만 아니라 성령을 보내셔서 자기 백성들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묵시적으로는 이미 하늘에 앉혀 놓았다고 합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받은 사도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합니다.
에베소서 2:5~6절입니다.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이 하나님의 강력한 일하심인데 그 일에 자기 백성을 참여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은 이 놀라운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고 오는 세대에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빌립보서 3:17~21절입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런 내용을 십자가 지신 영광의 왕이 영원한 문을 열어 놓으시고 이미 묵시적으로 이루어 놓으셨기에 이런 말씀을 성경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7~10절을 다시 봅니다. “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10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이 말씀을 문자대로 보면 힘 있는 왕이 와서 우리를 반대하는 적들을 다 물리치는 내용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실 때에 영광의 왕을 맞이하는 모습으로 맞이하였지만 오히려 그 사건과 성전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로 인하여 며칠 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립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통하여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며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았을 때에 이 찬송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짐을 밝히 보게 됩니다.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십자가로 그 영원한 영광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신 분이 영원한 왕으로 하늘의 영원한 영광의 문을 여셨습니다. 이 문이 열린 자들은 세상의 문이 열리지 않아도 별로 답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영광의 문에 들어선 자들이라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를 찬송하며 따라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