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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면적당 탐방객이 세계 최고인 북한산 탐방기
1. 일 시 : 2016. 07. 23(토)
2. 목적산 : 서울 북한산(836m)
3. 산행코스 : 백운대탐방지원센터→하루재→인수산장→백운산장→위문→백운대→위문→용암문→동장대→대동문→진달래능선→백련사(도상거리-약 8.5km, 산행시간·휴식시간 포함 4시간 8분소요)
4. 참석자 : 고영호, 곽순옥 외 1명(주평철), 권신섭, 권원혁, 구자경, 구자삼 외 1명, 김종기, 김진길, 김필성, 박유현, 박은영, 박주현, 박현수, 양혜승, 이영배, 임민철, 전창기, 조귀정, 조현미, 조현정, 하수호, 최홍구 등 이상 24명
5. 탐방후기
당초 북한산 산행은 7월 15~16일 무박 2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장마철 비로로 인한 안전사고 우려와 버스로 장거리를 무박으로 가는 것을 꺼리는 회원들이 많아 산행부와 의논하여 주간일기예보에 따라 비가 오지 않은 23일로 일주일간을 연기하고 무박이 아닌 당일 산행으로 변경하여 추진하게 되었다.
산행일자를 변경하니 여름방학 종업식과 겹쳐진다는 또 다른 어려움이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까지 왕복하는 버스 임차료도 만만찮은데 대부분의 회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했지만 산행 하루 전날 종업식을 마치고 학교에서 1박 2일 연수를 떠난다고 참가가 어렵다고 한다.
산행회비를 5만원 정도 올리더라도 25명은 넘어야 적자가 안날 텐데 서울에서 합류하는 회원들을 제외하면 겨우 20명이 신청하여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입되어 있는 산악회와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에게 산행 동참을 요청하여 두 사람에게 참가를 약속받았지만 한 회원은 끝내 개인사정이란 이유를 대며 참가하지 않았다.
이러는 와중 산행 전날 양혜승 샘한테서 카톡이 왔다. ‘인원 땜에 걱정 많으시죠? 도움이 못되어... 저도 더위 타고 멀미하여 체력이 될지 걱정이 엄청 되어요. 저에게는 기차 편으로 1박 2일 코스인데~ 당일로는... 인원 땜에 빠지기도 그렇고 고민 많이 했어요.’라고 하기에,
나는 양 샘이 빠지면 같이 신청한 학교 동료 박주연 샘도 빠지는 것이 분명하기에 서울에 사시는 권신섭 선생님도 참가한다며 체력에 맞게 천천히 타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더니,
또다시 ‘일행이 있고 하니 일단 용기를 내어 볼게요. 민폐 될지도~ 혹시 기차로 가면 안 되나요?’한다.
나는 ‘버스를 타고 잠들면 괜찮을 겁니다. 용기를 내보세요. 그리고 목베개를 분비하면 더 좋겠네요.’라고 하니 참석하겠다는 뜻으로 ‘예’하고 답장을 보내 주어 고마웠다.
연산동 06시 22분 연산동에서 17명이 출발하게 되었고, 06시 33분 세연정에서 고영호, 박은영, 임민철이 탔으나 늦잠으로 집에서 늦게 출발한 임민철이 택시를 타고 도착할 때까지 세연정 앞에서 기다리기도 앴다. 만덕에서 타는 회원이 없었고, 북한산 산행초입인 우이동 도선사 입구 백운대산행지원센터 앞에서 권신섭 고문, 하수호 전 기획관리국장, 구자삼 외 1명의 회원이 합류하게 되어 있었다.
버스는 대저분기점에서 부산-신대구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이른 시간이라 고속도로는 막힘이 없고 차는 잘도 달렸다.
회원들은 아침 일찍 집에서 나온다고 얼마나 피곤했는지 차가 출발하자마자 의자에 몸을 맡기고 꿈나라를 여행하고 있다.
부산 신대구 고속도로를 지나 대구 부근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자 편도 4차선 고속도로는 차량들로 빽빽하게 메워졌고, 차량들은 혼잡함 속에서도 속도를 줄였다 높였다 하면서 차선을 바꾸며 요리조리 잘도 빠져 나가고 있었다.
08시에 칠곡휴게소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못한 회원들은 아침식사를 하였고, 운전기사는 원래 화장실과 가까운 곳에 차를 대고 우리를 내려줬지만 하필이면 화장실 확장공사를 한답시고 먼 거리에 있는 주유소 옆에다 임시화장실을 만들어 놓았는데 멀기도 했지만 여름날 아침햇살이 얼마나 따가운지 장난이 아니었고, 서울 날씨가 이렇다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주차장은 주차할 공간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차량으로 가득 찼고, 조귀정 샘은 간식으로 빵을 구입하려다가 인파에 밀려 구입을 포기하기도
15분간 화장실을 이용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했는데, 박주연, 양혜승, 조현미 샘은 운전기사가 아침밥을 먹는 걸로 생각해서 다른 회원들이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회원들은 기다리는 줄은 생각도 안했는지 8시 20분이 되어서야 버스로 돌아왔다.
버스가 출발하고 남구미 부근에 이르러서야 도로가 한산하기 시작했고 얼마 안가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나는 나중을 생각해서 휴대폰 밧데리를 아껴볼 요량으로 밀양을 지나올 때 휴대폰 데이트를 꺼놓았더니만 9시 30분이 조금 넘어 하수호 국장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전화를 하며 카톡을 보냈는데 답장도 없다며 막 나무라고는 카톡을 확인하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카톡을 확인하니 9시 7분에 도착한 내용은 ‘최 회장님! 어디쯤 오고 있는지? 우이동 도착시간은? 우이동에서 아주 간단한 화장품 선물 차량에 올려주고 싶어요. 들고 산행하기는 곤란합니다. 저는 11시경 우이동 주차장 부근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동안 산행을 하지 아니하여 함께 완주할지 모르겠네요.’했고,
9시 29분에 수신된 내용에는 얼마가 화가 났는지 ‘수시로 연락하겠다고는... 현재 시간까지 출발했는지 못 오는지 연락도 없이... 우이동에서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집에서 대기 중. 버스기사 핸폰 알려주세요. 우찌...‘라고 했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도착시간을 묻고는 ‘죄송합니다. 원장님!(현재 서경대학교 초빙교수로 동 대학 평생교육원장으로 재직 중) 지금 현재 충주를 지나고 있습니다. 11시 10분~20분, 11시 20분 안에 우이동에 도착될 것 같습니다.라는 내용과 운전기사의 전화번호’를 카톡으로 보냈다.
09시 46분 충주휴게소에 도착했다. 충주휴게소는 칠곡휴게소와 달리 주차된 차량도 얼마 되지 않았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 한산하였다. 12분을 우리는 북한산을 향해 또다시 출발
9시 56분에 하 국장님은 잠실 집에서 출발한다며 연락이 왔고, 11시 경에 도착예정이라며 도착하면 전화를 달랜다.
버스가 여주JC를 지나고 호법분기점을 지날 무렵(10:31) 우이동과 북한산 백운대탐방지원센터 앞에서 만나기로 한 하수호 전 국장과 구자삼 회원에게 회법 분기점을 지나가고 있다며 알렸고, 10시 55분 동서울톨게이트를 지날 때 운전기사로부터 네비게이션에 나타난 소요시간을 전해 듣고 30분은 더 걸릴 거라고 카톡으로 보냈다.
하 국장님은 우이동 만남의 광장입구 도로변에 도착했다며 사진과 함께 알려왔다.(10:56)
구자삼 사장은 11시 12분 본인이 있는 장소에서 지금 출발한다면서 20분은 소요된다고 전화가 왔고, 11시 32분에 백운대탐방지원센터 앞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11시 반에 산행초입에 도착예정이라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11시 10분에 산행안내를 했다.
시내로 접어든 차량은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기어가는 게 나을 정도로 엄청난 막히어 움직이지를 않았다. 서울을 찾을 때마다 느끼지만 말 그대로 극심한 정체다. 정말 징그럽게 막힌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버스에서 내려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11시 30분이 넘어서 하 국장님과 구 사장에게 차가 엄청 막힌다고 연락을 보냈다.
11시 39분이 되어서 권신섭 고문으로부터도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도로에서 시간을 소비하다보니 우이동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였고, 버스정류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 국장님을 태우고는 도선사주차장으로 올라가며 인사말을 부탁하니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느낌은 진솔하게 말씀하신다. 속이 뜨끔...
드디어 12시 8분 도선사주차장에 도착했다. 도선사주차장은 승용차는 주차할 수 있지만 버스는 회차만 가능하도록 되어있었다. 차창 밖에는 무척 반가운 권신섭 고문과 구자삼 사장이 보였다. 권고문님은 많이 늙으셨고 상체가 앞쪽으로 굽어 허리가 구부정하였다. 그런 몸에도 버스가 바로 정차할 수 있도록 후미를 봐 주신다고 분주하게 뛰어 다니시는 걸 보니 예전의 부지런하시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차가 정차하자 오랜 시간동안 권고문과 산행을 함께하던 회원들은 버스에 내리자마자 권고문과 인사를 나눈다고 분주하다. 나는 앞자리에 있었지만 회원들을 먼저 내리게 하고 제일 나중에 내려 권고문과 기쁨의 재회를 나누었고, 먼저와 챙겨놓은 북한산 국립공원 안내지도를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나에게 건네주었다. 권고문은 차 안에서 본 것보다 많이 늙으셨고, 연로해 보였다. 옛날 같이 산행할 때 젊은 회원들 못지않게 넘치던 그 많던 패기는 다 어디로 갔는지? 산행 때마다 큰소리로 hurry! hurry!라고 외치던 그 열정은? 걸음걸이는 물론 말소리까지 어눌했으며 외관상으로 보이는 건강상태로는 산행자체가 어려워 보였다.
아니라 다를까? 버스가 산행의 하산 지점으로 이동하려고 하자 나에게 금일봉 봉투를 건네주며 같이 산행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하산지점인 구기동에서 기다리겠단다. 그러면서 출발하려는 관광버스에 얼른 올라타지 않는가. 그리고는 하산지점으로 간다던 권고문이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고, 다시 오지 않아 산행 이후에도 만날 수가 없었다.
버스가 떠나고 산행준비와 용변을 마친 회원들과 산행초입 백운대 가는 길 이정표 앞에 서서 단체사진을 찍고는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됐다.(12:17)
선두는 박유현 산행이사가, 후미는 김필성 부회장이, 중간에서 후미 사이에는 전창기 기획이사가 보기로 했다. 선두가 출발했고 나는 회원들이 다 출발했는지를 챙기다보니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북한산을 살펴보면,
북한산(北漢山)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으로 공원전체가 도시지역으로 둘러싸여 평일에도 수만 명의 서울시민이 즐겨 찾는 명산이기도 하고 수도권 이천만 주민들의 자연휴식처이기도 하단다. 또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 명을 넘고 기네스북에는 1㎢당 탐방밀도가 세계최고의 산으로 기록되어 있다나?
또한 거대한 암석 덩어리로 구성된 바위산으로 그 자태가 매우 웅장하고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북한산의 최고봉은 백운대(837m)이며 북쪽에 인수봉(811m), 남쪽에 만경대(800m)가 있다.
옛날 개성 송도에서 한양으로 오다가 이 산을 바라보면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세봉우리가 삼각으로 나란히 솟아있는데서 유래해 고려시대부터 근대까지 1,000여 년 동안 삼각산(三角山)이라 불러져 왔단다.
북한산이란 명칭은 1916년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이었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한강 이북의 서울지역을 가리키는 행정구역명인 '북한산'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을 조선 총독부가 사용한 이후 1983년 북한산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공식화되었다고 한다.
북한산 산행 길은 초입부터 돌계단 길이고 오르막이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더군다나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이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높은 습도와 돌계단 길 주위에 빽빽하고 높게 늘어선 소나무와 단풍나무로 둘러싸인 나무숲은 하늘과 소통하는 공기의 순환을 막아버려 말 그대로 더 후덥지근한 날씨로 만들어 놓았다.
이런 날씨 탓인지 산행이 시작되고 300m 정도 돌계단 길을 올라가다 몸 상태가 좋지 않던 박주연 샘이 그 자리에서 멈춰 선다. 산행시작 전부터 속이 좋지 않아 양혜승 샘이 주는 멀미약을 받아먹었더니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 걷기가 어렵단다. 나는 휴식을 좀 취하면 괜찮아질 거라며 잠시휴식을 취했다 올라가자고 말했지만, 박 샘은 우리가 먼저 천천히 올라가면 뒤따라 올라오겠다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도중 후미를 맡아 맨 뒤에서 올라오던 김필성 부회장이 도착했다. 김 부회장은 나와 함께 박 샘에게 보조를 맞춰 천천히 같이 올라가자며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지만 박 샘은 우리보고 먼저 올라가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앞서 올라간 회원들도 있고 시간을 마냥 소비하면서 기다릴 수만은 없는 처지인지라 산행지도를 펼쳐 우리가 산행할 코스를 설명해 주고 충분히 쉰 다음 코스를 따라 천천히 올라오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쉰 다음에도 힘이 부친다면 정상인 백운대만이라도 올랐다가 도선사 쪽으로 내려가는 단축코스를 일러 주고는 앞서간 회원들을 뒤쫓아 하루재로 향했다.
박 샘과 헤어진 후 오르막 돌길을 채 200m도 못 올라갔을 때 양혜승 샘이 우리를 맞으면서 박주연 샘은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다. 있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해 주니 바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한다. 양 샘은 박 샘에게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어서 올라오라고 했지만 박 샘은 양 샘한테도 먼저 올라가면 뒤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독촉을 하던 양 샘은 분명히 올라오지 않을 것 같다며 박 샘 혼자 내버려둘 수 없다며 아래로 내려가며 박 샘 상태가 괜찮을 경우 같이 우리를 뒤따라 올라오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도선사와 백운대탐방지원센터 주위를 관광하고 있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아쉽게도 이게 이날 박주연, 양혜승 샘과 함께한 산행시간의 전부였다. 한참 뒤 내가 백운대를 거의 올라갈 무렵 양 샘한테서 전화가 와 둘이서 휴식을 취하고 인근 구경을 잘하고 있다고 했지만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박 샘으로 인해 시간을 지체한 터라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여 회원들을 쫓아 올라가서 그런지 돌계단 길은 조금만 걸어도 힘이 들었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며 호흡을 거칠게 하도록 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다시피 됐다.
가파른 돌계단 길 사이로 시원한 골바람이 불어오는 언덕을 올라서니 바로 하루재다.(12:40) 하루재 부근은 산행 초입과는 달리 나무가 크지 않아 인수봉이 바로 눈앞에 선명하게 보였다. 먼저 도착한 회원들은 인수봉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고, 인수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홍보이사인 김종기 회원은 회원들의 사진을 찍어준다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리고 있었다. 독사진과 두 서너 사람씩 사진을 찍기도 했고, 무리로 지어 찍기도 했다.
산행 중 인증 샷이라면 빠질 내가 아니라 나도 몇 장의 사진을 찍고는 산행을 계속 이어갔다.
하루재에서 이내 백운대로 가는 길 왼쪽에 인수봉을 마주하고 자리한 인수대피소가 북한산경찰구조대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오른쪽 인수봉 바로 밑에서 인수봉을 짊어지고 있는 듯 허름한 암자가 하나있다. 이는 인수암으로 암자로 올라서는 출입계단 위 양쪽에는 대리석기둥이 있는데 오른쪽엔 相中無佛 佛中無相, 왼쪽엔 인수암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얼마나 많은 산꾼들이 인수암 경내를 거쳐 백운대로 가려고 했는지 오른쪽 대리석기둥 밑에는 암자 안쪽을 가리키며 등산로가 없음이라는 표지판이 있었고, 왼쪽에는 백운대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어 잠시 등산객들의 출입으로 인한 절집 식구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인수암은 외관상으로 화려하지 않고 허름하게 보이지만 인수봉의 정기를 고스란히 받은 특별한 느낌이 드는 암자였다.
인수암을 지나 얼마 가지 않으면 발걸음도 느리게 하는 깔딱고개와 맞닥뜨린다.
앞서 가던 회원 중 일부는 이곳에서는 땀을 콩죽같이 흘리며 걷는지 서있는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을 찍느라 한참 뒤처졌던 나는 이곳에서 서서히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자 앞서 가던 회원들이 하나 둘씩 제켰고, 이내 거리가 멀어져 저만치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회원도 생겼다.
그런데, 구자삼 사장과 동행한 초등학교 여자동기 회원은 산행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가냘픈 몸매에도 쭉쭉 뻗는 걸음걸이가 구 사장 못지않다. 날렵하기도 하고 계속 같은 속도로 잘도 걸었다. 두 사람은 전날 서울에서 있었던 초등학교 동기모임에 참석한 뒤 같이 산행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여자 동기는 대구에서 살고 있단다.
부산에 살고 있었더라면 우리산악회 산행에 자주 참석할 수 있을 텐데 대구에 살고 있다는 말에 나는 무척이나 서운하고 못마땅했지만, 다정하게 산행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어린 시절 소꿉장난하듯 다정함이 절로 묻어나왔고, 회원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곽순옥 부회장과 동행한 부군 주평철 사장은 중국 설두산, 신선거 해외원정 산행 이후 정기산행에는 처음 참가했지만 평소 테니스로 꾸준히 운동을 해서 그런지 잘 걸었고, 본인은 다른 회원들에게 시샘을 주려는 생각은 없었겠지만 곽 부회장과 함께하며 다정다감하게 걷는 모습이 회원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 다른 한사람 권원혁 선생은 말도 없이 묵묵하게 산도 잘 탄다. 내가 챙길 틈도 없이 조현정 회원 게스트 박현수 회원의 친구로 처음 참석한 김진길 회원과 같이 남자 셋이서 친한 친구처럼 같이 행동하고 산행하는 덕분에 내가 편하고 자유로웠다. 조현수, 김진길, 권원혁 회원님 세분이 친하게 산행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13시 13분 드디어 점심 먹을 장소인 대피소 백운산장에 도착했다. 산장 오른편 모서리부분으로 길이 연결되어 있다. 먼저 도착한 회원들은 다른 산행객들과 섞여 나무그늘 밑 탁자에 5~6명씩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늦게 도착한 죄로 나무그늘이 없는 하늘이 뻥뚤린 백운산장 출입문 앞에 있는 빈 탁자에 자리를 잡고 하수호 국장님과 박유현 산행이사, 구자삼 사장 일행과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여 구자삼 사장과 동창생은 처음엔 우리와 같은 탁자에 앉았지만 높은 열기를 막아주는 나무그늘이 없다보니 어느새 나무그늘이 있는 탁자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도 자리를 옮기고 싶었지만 빈자리가 없어 식사시간 내내 땀을 줄줄 흘리며 도시락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더운데도 정말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새삼 떠올랐다. 새벽 일찍 집에서 나온다고 아침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회원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먹는다.
회원들은 탁자 하나에 대 여섯 명씩 나눠 앉아 준비해 온 도시락과 반찬을 펼치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조현정 회원 식탁에는 개인별로 가져 온 기본 반찬에다 족발(?)과 상추, 소주 막걸리까지 푸짐하게 펼쳐놓고 맛있게 먹고 있다. 큰소리로 떠들며 술을 권하기도 하였고, 우리들에게 생탁 한 병과 안주를 나눠 주며 마시란다.
나와 같이 새벽에 동네 초등학교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부산대 국제전문대학원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권원혁 선생은 올라올 때도 조현정 회원 일행인 김진길, 박현수 회원과 함께하더니, 어느새 동행이 되어 마치 함께 온 사람같이 한 무리가 되어 스스럼없이 같이 즐기고 있는 덕분에 나는 근심과 조바심을 덜게 되었고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권원혁 선생은 산행이 끝날 때까지 조현정 회원 일행과 보조를 맞추어 산행을 하여 보기가 좋았다.
구자삼 사장은 편의점에서 일회용 도시락과 과일을 준비해 오고도 산장에서 판매하는 국수가 별미라며 국수를 시키면서 나에게도 먹으려나고 물었지만 난 도시락을 사왔다고 가볍게 거절했다.
역시 도시락을 준비해 온 권원혁 선생과 일부 회원들 역시 산에서 먹는 국수는 특별한 맛이라며 시켜 먹기도 했다. 나는 산에 와서 근기가 없는 국수를 사먹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하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백운산장을 찾은 사람들 중에 국수나 라면을 사먹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 깜작 놀랐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백운산장과 처마 밑 산장명패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돌아가면서 찍었다.
곽 부회장 부군 주평철 사장님은 쭈빗쭈빗해 하면서도 다정스럽게 포즈를 잡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나 역시 하수호 국장님과 같이 사진을 찍고는 백운대 정상을 향해 산행을 이어갔다.
백운산장에서 백운대로 올라가는 길은 하나지만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려면 신경을 써야한다. 무심코 산장 맞은편 화장실 쪽으로 갔다가 되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백운대로 가려면 산장에서 오른편 뒤 모서리를 약간 돌아 돌계단을 올라 좌회전하는 길로 가면된다.
여기서부터 백운대까지는 계속해서 경사가 심하다. 경사진 바위와 돌계단을 밟기가 쉽지가 않다. 위문까지는 가까운 거리지만 점심밥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깔딱고개에서도 생각했지만 이곳에서도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무릎관절이 안 좋아 험한 산을 오를 때 ‘아이쿠 다리야!’를 연발하시던 권정순 교장 샘이다. 참석했더라면 얼마나 힘들어 했을까? 정말 이번 산행에 참석 안하신 게 다행으로 생각되었다.
위문을 지나 성벽을 따라 백운대로 오르는 길에 먼저 도착한 조귀정, 조현정 자매가 만경대를 배경으로 이날의 추억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나도 사진을 찍는 두 자매에 끼어들어 사진 적선을 받고 백운대로 향했다.
위문에서 백운대로 올라가는 길에서 보는
위문 성벽을 지나고 나면 이내 안전한 산행을 위해 설치된 철계단이 나온다. 물론 등산로 곳곳에 돌계단과 바위 능선이 있지만, 내가 2009년 11월과 12월에 찾았을 때는 없었던 계단이다. 언제 설치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좌우에 철제펜스만 처져있을 때에는 잠시라도 방심하면 안전이 담보가 되지 않은 아주 위험한 곳이었는데, 등산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설치해 놓은 게 고마웠다.
백운대의 오르는 능선에서 보는 주위 경치는 과히 예술적이고 자연 속에 살아있는 한 폭의 동양화다.
오롯이 솟아있는 인수봉이며,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만경대, 서울과 산을 감싸고 있는 주변 시가지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말 그대로 눈이 호강한다고나 할까? 너무 호사스러웠다.
이런 경치가 힘 드는 것까지 잊게 한다.
후기는 시간이 나는대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