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방산桂芳山은 한라산 백록담, 지리산 천왕봉, 설악산 대청봉, 덕유산 향적봉에 이은 남한 다섯 번째 높이의 산으로 설악산, 점봉산, 오대산, 가리왕산, 금당산, 두타산, 태기산 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태백산, 소백산, 선자령 등과 함께 겨울명산에 속해 상고대와 눈꽃의 설경이 먼저 떠오르지만 산은 계절마다 특유의 속살을 지니고 있음을 잘 알기에 이번엔 계방산에서 첫사랑 설렘 같은 계수나무 향을 맡아보기로 한다.
철 다른 계방산의 야생화와 진초록 무성한 주목, 설악산과 가리왕산 방면으로 굽이치는 산그리메가 청명한 오늘 날씨와 딱 맞아떨어져 그림 같은 풍광을 보여줄 것만 같다. 저탄소 녹색성장, 숲의 희망이라는 팻말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맑은 하늘 천정삼아 계방산 푸근한 품에 안기고자 후배 계원이와 함께 운두령으로 향한다.
넘치는 푸름 속에서 다시 만난 계방산
오대산국립공원에 속하는 계방산은 홍천과 평창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운두령에서 산행을 시작하게 된다. 인근에 1999년부터 3년에 걸쳐 살기 좋은 삶의 터전으로 가꾸어진 운두령 산촌마을이 있다. 운두골과 큰골, 갈골 세 개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산간마을이다.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가 정선군과 영월군 경계상의 만항재(해발 1330m)인데 운두령은 국도가 지나가는 고개들 중 가장 높은 곳이다. 왕복 2차로인 31번 국도변의 고개로서 해발고도 1089m이다. 구름 넘나드는 고산의 신선한 공기 덕분에 한여름의 습한 기운은 느끼지 못한다.
계방산분소에서 입산신고를 하고 계방산 정상까지 4.1km의 시점인 진입계단을 오른다. 488m의 고도만 높이면 되는 길이니 급한 경사는 거의 없을 거라는 게 얼추 셈해진다. 하절기에는 오후 3시까지로 입산을 제한하고 있다.
초입부터 물푸레나무가 반가이 맞이한다. 수액이 위장과 폐에 좋다는 거제수나무를 보게 되고 다시 물푸레나무군락을 지나 아담한 나무그늘 쉼터에서 목을 축인다. 제법 경사진 돌계단을 지나면서 쑥부쟁이, 가시엉겅퀴, 둥근이질풀 등 낮게 핀 야생화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고도를 높여갈수록 계방산은 그림 같은 조망을 선사한다.
하늘말나리가 여러 야생화들 틈에서 오롯이 고개를 들고 있다
몸 낮춰 들꽃숨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이다가 시야를 멀리 잡아 낯익은 고봉들과 담소 나누다보면 하늘공간은 금세 소란스러워진다. 멋진 조망이 있다는 건 오르는 수고로움에 대한 커다란 보답이다. 이해가 앞선 좁은 시각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세상, 도시빌딩숲에서와 달리 사물과 사물간의 자연스런 흐름, 그 유기적인 연결을 보게 된다. 그처럼 산은 눈을 맑게 한다. 그래서 더욱 상쾌하다.
“여기서 서북능선을 보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하하하, 귀때기청봉 지나면서 고생깨나 했었지.”
1492m봉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눈길을 멀리 두면 설악산 서북능선이 길게 펼쳐지다가 대청봉이 파스텔 톤 하늘과 맞닿아 오롯이 솟아있다. 남교리에서 12선녀탕을 거쳐 올라 대승령과 큰감투봉을 지날 때만 해도 무난했는데 귀때기청봉의 애추지대를 지나면서 다리에 쥐가 났던 걸 떠올리면 감회가 새로울 만도 할 것이다.
“그래서 지리산 화대종주, 덕유산 육구종주에 이어 국내 3대종주를 모두 해냈잖아.”
한동안 낚시를 즐기다가 등산으로 전향한 계원이의 의지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100kg 가까운 체구에 체력마저 허약한 편이었는데 2년 여 등산을 다니면서 20kg 가까이 감량하고 어지간한 종주코스는 거뜬히 완주해냈다.
소계방산 뒤로 설악산 마루금에서 귀소본능을 느끼고 만다
다시 한강기맥으로 시선을 모으자 오대산으로 이어지고 조신하게 몸 낮춘 치악산도 보인다. 내려다보는 홍천 내면마을 인가들이 산자락마다 옹기종기 모여 있다. 기대했던 대로 청명한 날씨다. 초록과 파랑물감만으로 캔버스를 붓질한 여름풍경화다. 소소하게 바람이 불어주어 은은한 계수나무 향이 코로 스미는 듯하다. 실제 옛날에는 계수나무가 많았다는 계방산이다. 수도 없이 많은 산들과 봉우리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은 어렵지만 보는 자체로 가슴이 트인다.
전망대부근 비탈길에 주목군락지가 있다. 산 나무와 죽은 나무가 공존하는 그곳의 고사목들을 얼핏 보았을 때 수령 1500년은 족히 되었음직하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버티는 주목인지라 죽어서도 뼈대 튼실한 걸 보면 앞으로도 500년은 더 버틸 거라는 추론을 하게 된다.
주목을 보노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소 몰고 밭 갈러 나가던 일상이 중단되는 것일 뿐 삶과 죽음은 그다지 확연한 경계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더욱 현재의 삶을 승격시키고 싶어 하지만 금세 그마저 욕심이란 걸 깨닫게 된다. 살펴보면 아직도 제대로 꼴을 갖추지 못하고 안개 속을 헤매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래도 고개 들고 힘을 내세요.”
고개 숙인 그 자리에 조신하게 움츠린 동자꽃, 짚신나물, 산박하 등이 나직하게 속삭이며 힘을 실어준다.
“그래. 낮은 곳에 임해서도 활짝 제 모습을 드러내는 그대들이야말로 소중한 존재들일세.”
이 일대가 생태계보호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환경이 잘 보호되어 있는 곳이라 들풀 하나하나가 소중하고도 조심스럽다. 야생화군락지 뒤로 보이는 오대산 비로봉을 줌인하고 숲을 지나 바로 너른 정상지대에 이른다.
하얀 눈밭일 때 와보고 넘치는 푸름 속에서 다시 만난 계방산 정상(해발 1577.4m)은 산객들로 북적이던 그때와 달리 간간이 새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 산에는 황조롱이뿐 아니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소쩍새, 붉은배새매, 원앙 등의 조류가 관찰되었다는데 그 새들의 울음소리인지는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실하게 선이 그어진 백두대간 등줄기가 고요 중에도 속도감 있는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정상에서 흔적을 남겼던 다른 산들과 두루두루 인사를 나누는 게 즐겁다. 아득히 보이는 가리왕산에서 여기 계방산위치를 가늠하고 다시 이곳에서 두타산을 바라보며 당시의 고행을 더듬으면 산은 세상과 하나이고, 온전히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게 아련하고 또 갸륵하다.
북쪽골짜기에서 계방천이 발원하여 내린천으로 흘러들고 남쪽골짜기에서는 남한강의 지류인 평창강이 시작된다. 정상에서 소계방산으로 휘어 내리는 능선은 마치 느릿하게 꿈틀거리며 위로 향하는 거대한 들짐승을 연상하게 한다. 정상석과 돌탑을 등지고 포커스를 맞춰 인증 샷을 찍는 것으로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하산하면 저 아래 방아다리 약수터에 들러볼까.”
“거긴 왜요?”
“어떤 노인이 백약을 다 써도 효험이 없는 신병을 앓고 있었거든.”
그 노인이 이 지역에 이르러 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
“어인 사람이 이 산중에서 노숙을 하는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나 그렇게 말하자 이 노인은 산신령으로 믿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하소연했다.
“신령님! 부디 제 인생을 가련하게 여기시어 약초 있는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 네가 누워있는 자리를 파보아라”
노인은 잠에서 깨어 있는 힘을 다해 땅을 파헤쳤더니 지하에서 맑은 물이 솟아올랐다. 물을 마시자 정신이 맑아지고 원기가 소생했다.
“며칠을 머무르며 물을 마시니까 씻은 듯 병이 나아져 노인은 산신단을 모셔 크게 제사를 지냈다는 거야.”
“그렇다면 우리도 마셔야죠.”
계방산 아래 영동고속도로 진부 나들목에서 북쪽으로 약 12km 거리에 있는 방아다리약수는 탄산, 철분 등 30여 종의 무기질이 들어있는데 특히 위장병, 빈혈증, 신경통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주변 수만 평에 전나무 100만 그루를 비롯하여 잣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 박달나무, 주목나무 등 70여종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산림욕은 물론 여느 숲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장관을 연출하여 여름철피서지로도 적격이다.
튼실한 기둥줄기 셋을 곧게 뻗은 주목이 돋보이는 주목삼거리에서 이승복 생가가 있는 노동계곡방향으로 내려간다. 은빛상고대와 잡티 하나 없이 눈꽃 풍성했던 주목지대에 들어서서 그해 겨울을 떠올려본다. 다시 밋밋한 하산로를 걷다보니 육산 흙길에 권대감바위라고 부르는 큼직한 바위 하나가 놓여있다. 정상에서 2.2km를 내려온 지점이다.
권대감이라는 용맹한 산신령이 말을 타고 달리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졌다. 화가 치민 권대감이 부적을 써서 던진 이후 계방산에는 칡이 자라지 않게 되었고 그 부적이 지금의 권대감바위라고 한다.
“산신령이라는 이가 칡덩굴 따위에 걸려 넘어지다니.”
“방아다리약수터를 알려준 산신령은 아니가본데요.”
권대감바위의 전설이 적힌 팻말을 동부지방산림청 평창국유림관리소에서 세운 걸 보면 계방산에 칡이 없는 건 맞는가보다.
듬성듬성 늘어선 주목지대를 지나고 바위와 잡목이 마구 뒤섞인 너덜 길을 빠져나오면서 경사는 더욱 급해진다. 이어 노동계곡 물소리가 들리고 노동리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산행 중에 들러붙은 여름부스러기들을 계곡 맑은 물에 씻어내고 내려서자 널찍한 제1 자동차야영장이 있고 바로 야트막한 초가 이승복 생가가 있다.
1969년 12월 9일 밤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당시 무장공비침투지역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평화스러운 곳이다. 산신령 권대감은 말 달리다 넘어졌을 때 칡을 없애는 부적이 아니라 공산당 막는 부적을 던졌어야 했다. 짝퉁 산신령의 덕을 입지 못했더라도 이곳 아래로 제2 자동차야영장이 있고 전국각지에서 많은 산객들이 방문하니 여기서 더는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불로장생하러 방아다리약수터로 가시죠.”
“불로장생하러? 불로장생이라.”
불로장생은 아예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걸까, 아니면 확연한 경계일까. 여름 계방산에서 먹은 더위 때문인가 보다. 살짝 머리가 어지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