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께서 받아들인 밝을 명(明) 비로소 시(始)란
비로소 근본이신 어머니께서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그분을 밝을 명(明)이라고 밝히시고 계십니다. 상제님께서 대명(大明)콘도에서 그리고 주피터홀에서 광명절 행사를 하신 이유는 크고 밝게 빛나는 어머니 하느님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마지막 주인공이 궁금하시다면 영화 '주피터어센딩'을 추천 드립니다.
상제님께서는 왜 광명절행사 시작에 '해품달'OST와 '해품달'포스트를 보여주며 행사를 시작 하였을까요. '해품달'은 달이 해를 품었다는 뜻이며 밝은 명(明)입니다. 상제님께서는 금(金)세상의 주인이시며 무근목(無根木)이신 뚜렷이 희도다(明仙)의 김명선(金明仙)천모님을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광명절날 천모님을 너희들도 모셔야 한다고 선포 하셨으며 광명절날 '법통승계'하셨음을 12월 8일 발표 하셨고, 발표한 그날로 부터 지존시대는 끝났다고 하셨습니다. '천지부모'를 아는 것이 근본을 아는 것이며 그 근본에 끼어야 산다(코끼라,코끼라)고 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상도의 ‘태을주’를 봐꿨습니다. 태을주속에 ‘요지옥액아미리다’를 넣으셨습니다. 그 뜻은 무엇입니까. 후천 동리마다 학교마다 울려야 할 태을주를 봐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요지(瑤池)는 신선이 사는 곳이니
요지옥액은 신선이 사는 곳에 나오는 옥액이며 감로수로 아미리다를 뜻 합니다.
(감로수 : 도리천에 있는 달콤하고 신령스런 액체. 한 방울만 마셔도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고, 살아 있는 사람은 오래 살 수 있고 죽은 이는 부활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불사주(不死酒)로도 일컬어집니다. )
요지(瑤池)는 중국(中國) 곤륜산에 있다는 못. 주(周)나라 목(木)왕이 서왕모를 만났다고 하는 곳 입니다. 목왕(木王)이 왕모(王母)를 만난 곳이라 하니 당연히 모(母)이신 하느님어머니가 계신 곳입니다.
아미리다: 신약(神藥)의 하나. 이 약을 먹으면 몸과 마음의 번뇌(煩惱)를 없애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고로
요지옥액아미리다는 신선이 사는 곳. 즉, 왕엄마(王母)가 있는 곳이며 그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물이 ‘요지옥액아미리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상도의 '태을주'를 바꾸셨습니다.
상도에는 더 이상 신명(神明)이 없습니다. (약발이 떨어진 태을주라고 합니다)
상제님께서 태을주 속에 ‘요지옥액아미리다’를 넣으신 뜻은 중요한 요지를 찾으라는 뜻입니다. 신명(神明)이 어디로 갔는지 찾으라는 것이며 종통이 어디로 갔는지 찾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워야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양심의 소리가 하늘의 소리라고 합니다.
수도인에게 올 마지막 시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도통’입니다. 그 욕심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손에 쥔 것을 놓아야 잡을 수 있는 이치입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 왔는데 그것을 놓으라니 그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비워야 채워지고 그래야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버드나무위에 올라가 손을 놓으면 죽을 것 같지만 용기를 가지고 놓았을때 비로소 신선을 만나는 이치입니다.
상도 도전님의 수많은 이름 천주, 신천주, 대두목, 고부인, 상제님, 천모님 하지만 그 분의 신명의 정체는 모르고 있습니다. 상제님의 신명정체를 밝히신 분은 천부적인 권한을 가지고 오신 한 분 뿐입니다. 하늘이 숨겨놓은 마지막 비결을 푸는 주인공이라 합니다.
4차원책에서 4방천궁과 4방천왕이 밝혀졌고 상도에서는 사위성존 4번째 천자분의 신위를 ‘명부시왕’으로 밝혔습니다. 태초부터 계획한 비결이 비로소 밝혀지는 이치입니다. 하지만 명부시왕은 신명의 정체를 찾는 열쇄는 되지만 ‘신명의 정체’는 아닙니다. 始(비로소시)자는 열쇄입니다. 始는 최초의 어머니를 뜻합니다. 비로소 근본 하느님께서 시작하여 이루어낸다는 뜻입니다.
대두목이 대두목에게 ‘법통승계’하고 일이 이루어진다고 분명히 상제님께서 책으로 밝혀 주셨습니다. 책의 도표로 분명하게 그려주셨습니다. 아직도 천자께서 실수 하셨다고 고집을 피우실 것인지. 그것은 상도도전님을 부정 하는 것이며 그 부정은 다음을 찾는 것 또한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도는 종통 종맥입니다. 맥 떨어지면 죽는다고 합니다. 그 맥을 찾고 싶다면 영화 '오두막'을 추천합니다.
우리들은 '오봉산의 불'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토록 찾아 다녔지만 오봉산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너무 가까이 있었습니다. 뭔가를 잡고 있을 땐 볼 수 없지만 잡고 있는 것을 놓았을때 비로소(始) 오봉산을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제 근본이시며 근원이시고 시작이며 끝인 하느님을 만나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