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유지의 여섯 가지 요소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세 가지 요소가 충족 될 때, 건강한 활력이 있게 된다.
그것은 공기, 햇빛, 물이다. 이 세 가지는 생명의 요소들이기도하다.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성도들은 자연적 생명과 더불어 신령한 생명으로 사는 신비한 인간들이다.
때문에, 적당한 햇빛, 깨끗한 공기, 깨끗한 물이 적절하게 공급 돼야 활력 있는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자연적 생명이 있으며 또한 신령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 또 다른 요소들이 반듯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첫째며, 기도가 그 둘째고, 찬송이 셋째 요소인 것이다. 이 세 요소는 영적 양식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특별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양식이라고 말한다.
오직 예수
기록 된 말씀 중에서 어떤 무엇으로도 대치 될 수 없는 말씀 중 말씀은 “구원받을 이름은 오직 예수” 단 하나 이 이름뿐이다. 온 모든 것과 모든 곳에서 이름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구원은 없다.
행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교파가 다르고, 신조가 다르고 교리가 다르다 할지라도 이 신학과 교리는 일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 외에 다른 이름으로 또는 다른 것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 그들은 그리스도인은 아닌 것이다. 이 신학과 교리는 어떤 것과도 타협할 수 없다.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모든 교리와 신학의 근간이다. 뿌리인 것이다. 신구약 성경 66권의 말씀의 내용을 고치거나 변개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앙의 뿌리이고 줄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 그리고 있는 신앙의 형태와 형식은 시대를 따라 재해석되고 재구성 돼야한다. 그것은 성경이 쓰여 지고 있던 시대의 문화가 현대와 다르기 때문이며, 성경이 쓰여 진 국가적 문화와 현재 그 성경을 절대 권위로 인정하고 신봉하는 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나라와 국가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학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고, 교리를 세우는 각각의 교단의 다름이 있는 것을 용납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과 성령으로 낳았음
또 하나 변치 못할 것이 있다. 시대와 문화가 달라도 여전히 재해석 되고, 재 구성돼지 못할 신학과 교리가 있는데 그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이다. 이것은 신학이 될 수 없다. 성경이 써졌던 과거의 그 시대에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이고 밀레니엄 시대인 현대의 시대에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이다.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일5:8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이것을 각 교단 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떻게 ‘자연적인 출생이 달리 해석 될 수 있는가? 이 출생에 거듭하여 출생함이 달리 해석 될 수 있는가?, 거듭 남이란 첫 번의 출생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세상에 출생치 않은 이에게 거듭 남이란 있을 수 없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이미 사망한 자에게는 거듭남 이란 있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망한 자의 살아남은 소생한 것이 지 거듭남이 아니다.
따라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남이란, 살아 있는 자들에게 해당 되는 말씀이고, 살아 있는 자가 예수님의 영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을 받은 ‘영의 사람을’을 일컫는 것이다.
물로만 난 사람들이 성경에는 묘사 되고 있다.
개역 행 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요한의 “세례” 즉 자연적 인간의 이성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의 의지를 동원하여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에베소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교인들이다.
이들을 나는 “종교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종교인들에게 다른 차원의 믿음의 신비한 세계를 열어주는 은혜가 임했다.
행19: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요한의 세례 외에 또 다른 세례를 받았다. 물로 낳았고 또 성령으로 낳았다.
그러므로 이 두 생명의 낳았음, 신비한 기독교 안에만 있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신비의 세계인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세상에 있다
또 하나 움직이지 못할 말씀이 기록됐다. 하나님의 관심은 ‘세상’에 있으시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관심이 있는 것은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상에 피조물 중 으뜸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인간으로 두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통하여 세상에 흘러내리신다. 하나님의 축복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의 사람들을 통하여 세상에 흘러내신다. 이 땅에 존재한 모든 이간이 하나님에게 있어서 소중한 존재인 것은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이러하므로 인간 그가 그 자신의 삶의 영역인 세상을 사랑할 수 없는 그 인간은 하나님의 관심 밖의 사람이다. 세상이란 인간을 포함하여 보이는 물질세계의 모든 것과 보이지 않는 비물질 세계 까지를 아우르는 세상이다. 하나님의 관심 안에 있는 인간은 현재 그자신의 매일매일의 삶의 현장인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아브라함의 복을 흘려내는 하나님 아버지 사랑의 통로요 복의 통로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인간들뿐이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 중 나는 ‘교인’ 과 “성도”로 분류하여 부르기를 즐겨한다. 교인은 예수를 빙자하여 자신의 안녕과 복락을 추구한다. 타 종교인들이 그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는 가장 큰 목적은 자신의 안일에 있듯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 중에 이러한 사람을 많이 발견한다. 이들은 ‘교인’ 이요 ‘종교인’ 인 것이다.
그러나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난 ‘영의 사람’은 자신을 포함하여 그의 사랑의 대상을 세상으로 넓혀 간다. 이 보다 더 깊은 영역에 다다른 성도는 자신의 안일은 이미 이뤄졌음을 믿고 그의 관심은 온통 세상을 품고 있어서 그는 항상 중보자로 하나님 앞에 서있는 이들이다.
이들이 “성도”인 것이다.
결어
나의 자연적인 생명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이 서로 유기적 생명의 관계로 엮어져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너나 할 것 없이 자주 경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육신이 피곤하던지 질병으로 나약해 졌을 때 영혼이 함께 무력해 지는 것을 우리는 경험한다. 또한 영적으로 무기력해져서 기도할 수 없고 말씀 읽는 것이 짐스러워 졌을 때, 육신도 활력을 잃는 것을 경험한다. 이것이 우리의 육신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도 우리의 육체의 지체들 속에 있는 자연적 생명과 연합되어 관계하시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적 생명의 요소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의 요소, 모두 여섯 가지를 지속적으로 적절하게 공급하는 스스로의 힘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주님은 이렇게 우리를 축복하고 계신다.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생명의 요소는 따라서 모두 여섯 가지 여야 한다.
자연적 생명을 위해 햇빛, 공기, 물이 있어야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난 생명을 위해 성경과 하나님의 음성, 기도, 찬송이 있어야한다.
이 여섯 가지 생명의 요소가 적절하게 지속적으로 공급 될 때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 이루신 ‘너희 안에 있는 천국’을 이 땅에 사는 동안 누리며 살다가 자연적 생명이 진한 후에 또는 예수님이 재림하신 이후에 나타나는 영원 영생 복락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