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마음은
눈은 무얼 자꾸 보려고 한다.
귀는 무얼 자꾸 들으려 한다.
코는 무얼 자꾸 맡으려 한다.
입은 무얼 자꾸 말하려 한다.
손은 무얼 자꾸 만지려 한다.
발은 무얼 자꾸 밟으려 한다.
무얼 자꾸 보려는 눈에게
무얼 자꾸 들으려는 귀에게
무얼 자꾸 맡으려는 코에게
무얼 자꾸 말하려는 입에게
무얼 자꾸 만지려는 손에게
무얼 자꾸 밟으려는 발에게
제발 그러지 말자고 한다. 이젠
그럴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한다.
요즘 내 마은은.
2014. 1. 7.
석 자 붓
붓에는
길이 세 갈래 있다.
뜻을 옮겨주는 도구의 길
멋을 드러내주는 광대의 길
얼을 벼리는 담금질의 길
나는
기꺼이
대장장이의 길을 골랐다.
자루가 길수록
벼리는 힘도 좋으리라.
이것이 굳이 석 자 붓을 만든 까닭.
남들이 비웃어도
떨리는 털끝이 나를 비웃어도
석 자 붓자루에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다.
피보다 더 진한
먹물 한 방울
툭 하고
내 앞에 떨어진다.
그 속으로
내가 사라지고
온세상이 사라진다.
붓도 사라지고
종이도 사라진 곳에서
홀로 빛나는 그것을,
가만히
본다.
보인다.
2014. 1. 17.
5월의 빛
5월의 빛은 표현할 수 없다.
산들바람에 우르르 뒤집는 상수리나무 잎들
뒤집핀 잎에서 번지는 형광물감
5월은 어떤 빛깔로도 나타낼 수 없다.
5월의 빛은 표현할 수 없다.
줄넘기하는 아이들의 종아리와 발바닥
운동장의 뒤엉킨를 빠져나가 골로 들어가는 함성소리
5월운 어떤 빛깔로도 나타낼 수 없다.
5월의 빛은 표현할 수 없다.
철쭉 꽃 떨어진 가지에 돋는 꽃같은 잎
벌들의 다리에 묻혀 생명의 길을 가는 씨앗들
5월은 어떤 빛깔로도 나타낼 수 없다.
5월의 빛은 표현할 수 없다.
빛의 계단에 앉은 지영이와 혜영이
어깨 너머로 넘실대는 젊은 물결
5월은 어떤 빛깔로도 나타낼 수 없다.
표현할 수 없다. 5월의 빛은
나타낼 수 없다. 5월의 빛깔은
어쩔 수 없으니, 그대로 둘 밖에.
어쩔 수 없으니, 그대로 둘 밖에.
2014.5.7.
꽃
우리집에
꽃이 한 송이 산다.
방구석에 놓인 푹신한 침대형 화분에서
한밤의 어둠을 실컷 자고 일어나
샴푸 같은 이슬로 긴 생머리를 촉촉이 적신 다음,
날마다 달라지는 꽃잎을 알록달록 걸치고
현관문을 나선다.
굽이 높은 화분에 저를 옮겨 심고
또각또각 보도블럭을 밟아갈 때면
은은한 향기에
지나가는 눈길들이 일벌처럼 달려든다.
처음엔 조심조심 물을 주었지만
이제는 제 스스로 빗물을 받아 적시는
장미 같기도 하고, 또는
튤립이나 백합 같디고 한,
무슨 과인지 조사된 적이 없어 스스로도 꽃인 줄 모르는
꽃 한 송이
우리 집에 산다.
2014.06.12.
말매미
아파트 방충망에 매달린 말매미가
먼 데 산의 봉우리보다 더 크다.
잠시 후 15층 미루나무 안에
저를 내다보는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매미가 운다.
집안이 울리고,
미루나무의 푸른 손바닥을 우루르르 뒤집으며
온 우주가 울린다.
낙관
시간은 먹물 같다.
종이로 스며들어
글씨를 갈기고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붓끝에서 흘러나오는 먹물로
누구나 명작이 그려지기를 바란다.
뼛가루 글씨를 완성한 추사처럼
작두날에 혼을 맡긴 단원처럼
내 그림에 찍할 낙관 하나
왼 가슴 밑에서 쿵쾅거린다.
춤추는 꽃
바람 분다.
꽃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춤추는 것이다.
너처럼.
뺨
팽목에 왔다.
바람이 뺨을 때린다.
동거차도에 왔다.
바람이 뺨을 때린다.
맹골에 왔다.
바람이 뺨을 때린다.
뺨이 얼얼하다.
온 세상이 얼얼하다.
안산에 오니
모든 뺨이 아가미처럼 붉다.
바람이 분다. 한 동안
온누리에 단풍들겠다.
첫댓글 푸하하하, 아직도 그렇게 이뻐보인단 말이유? 하여간 그 사랑은 못말려... 좋아유. ('꽃'을 읽고) / 저는 요즘 집에가면 등나무와 라일락 꽃이 지붕을 만들어주는 85년 미술대학 앞에 벤치에 앉아 쉬듯 마누라에게 기대어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