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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는 대표 한류/07.3.3일자
기획예산처, 올 예산 4배 증액
템플스테이가 한류의 대표 주자임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기획예산처는 지난 2월 15일 “국내외 호응도가 높은 템플스테이를 매력적인 한류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작년도 지원액 35억보다 4배 이상 증액된 15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프로그램 홍보 및 운영비는 1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시설보강비는 25억원에서 80억원으로 증액됐다. 또 외국인이 직접 한국불교의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을 체험할 수 있는 상설 국제선체험센타건립비로 50억원은 새로 책정됐다.
기획예산처는 이와 함께 해외 관광객의 적극적 유치를 위해 작년도 지원액 346억원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695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인 334억원이 관광객 유치 홍보를 위한 광고 및 홍보, 간행물 제작에 쓰일 예정이어서 템플스테이를 해외에 알리는 간접 홍보의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기획예산처 이승재 과장은 “템플스테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시작된 사업으로 일반인들이 절에 머물면서 전통불교문화와 함께 다도, 선 등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라며 “템플스테이의 확대 시행으로 해외 관광객 유치와 함께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이미지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형규 기자
서울 시장님이 해외관광객 유치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관광은 호화스럽게 꾸며놓은 곳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그나라 민족 전통문화가 살아 있는 것이
가장 인기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에 주력하면서 우리 것을 버리는 일을 많이 해왔습니다.
우리전통과 문화를 지키는 일을 불교는 해왔고 절에서 하는 템플스테이는 아주 좋은
관광 상품이기도 합니다. 기흭예산처에서 지원을 해준다면 국립공원에 있는 사찰에도
템플스테이에 필요한 식당, 숙소등을 건립하는데 협력을 구했으면 합니다.
대만 불광산사는 사찰을 건립할 때 어느정도 대웅전 불사가 마무리되면 최대한 많은 강의실과 식당,
사찰을 방문한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숙소를 조성하는 데 주력한다고 합니다.
남의 것을 부러운 시선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좋은 점은 따르고 우리 것으로 만들줄도 알아야 겠습니다.
대만도 전통신앙이 강한 나라인데 성운대사님께서는 생활불교로 자리매김하셨습니다.
여기 대만 불광산사의 모든걸 소개하오니 참고하시고 좋은 점은 본받았으면 합니다.
불광산의 법향 (꼭! 읽어 보십시오.)
불법이 있다면 방법이 있다 / 星雲 大師(대만 불광산사 방장)
나의 일생에 있어서 속가의 부모님은 나의 색신(色身)을 낳아 주시고
키워 주셨으니 은혜와 노고가 많으시다.
그러나 불교는 12살에 출가한 이래로 나를 교육시켜 주었고
나의 법신혜명(法身慧命)을 길러 주어 한없이 유용하게 쓰도록 하였으니 그 공덕이 더욱 크다 하겠다.
어느덧 법랍이 1 갑자(甲子)가 되어 가는 나는 불법의 오묘한 점을
세월이 갈수록 더욱 깊이 체험하고 느끼게 된다.
만약, '불법에 어떤 오묘한 부분이 있느냐?'고 누군가 나에게 물어 온다면
주저하지 않고 '불법이 있다면 방법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어린 나이에 총림에서 공부하며 발심할 때 신도집에 독경해 주러
아침 일찍 산을 내려가고 다시 저녁 늦게 돌아오곤 하였다.
늑대가 출몰하는 인적 드문 곳을 밤늦게 다니는 나를 두고 또래의 도반들은
나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실 걸으면서 묵송(默誦)하는 '육자대명주(六子大明呪)'가 내게
산길을 홀로 걸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차츰 나이가 들면서 깨치는 지혜도 날로 늘어
《유마힐경(維摩詰經)》과《약사 경(藥師經)》을 간절히 독송하면서
'인간정토(人間淨土)'의 청사진을 그렸다.
《심 경(心經)》《금강경》을 수지할 때는 '무(無)를 유(有)로 하는' 법열을 즐겼는데,
후일 이러한 경전 문구 모두가 내가 홍법포교 할 수 있고 중생을 제도하는 밑바 탕이 될 줄은
그때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그 모든 것에 '불법이 있으니 방법이 있어서' 세간에서 널리 중생을 제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옛 조사님들은 '말 한마디 적게 하고, 염불 한소리 더하라.'고 후학들에게
말씀 하시며 격려해 주셨다.
나는 이 말씀에 대해 많은 체험을 가지고 있다.
원에 들어 간지 얼마 되지 않은 때로 기억되는데 겨우 10살짜리 혈기왕성한 나이이니
아직 마음이 들떠 있고 말도 가릴 줄 몰랐다.
나중에 염불정진을 하면서 망념과 번뇌를 줄이게 되었고 도업(道業)도 점차 자라났다.
1953년 대만 북서부 지역의 의란(宜蘭) 뇌음사(雷音寺)에서 7일 용맹정진을
이 끌고 있을 때는 심신이 다 없어져 깨끗해진 것 같고 대지가 텅빈 것 같은 느낌 을 갑자기 받았다.
그 후부터 염불소리가 귓가에 끊임없이 맴돌았고
어떤 때는 실내에서 앉을 때나 설 때조차도 바깥 사람이 말하고 걷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한번은 대선사(大仙寺)에서 7일 용맹정진을 할 때였다.
어떤 사람이 내가 잠을 잘 때 염불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매우 또렷했다고 했다.
또 한 번은 보문사에서 7일 용맹정진을 직접 주도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새 두 마리가 법당으로 날아와 나와 함께 염불에 맞춰 노래를 하였다.
경전에서 극락정토에는 물과 새들도 법을 설한다고 하였는데 실로 맞는 말이 다.
지금까지도 차를 타든 길을 걷든지 나는 부처님의 명호를 염송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길 옆의 한 떼기 한 떼기의 논밭과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 모두가
나의 방편 염주가 되어 주곤 한다.
정념(正念)에서부터 무념(無念)이 되기까지 마침내 염불하고,
헛된 마음에서부터 일심이 되기까지 염불한다. 무념(無念)으로
염불하다가보면 염불한다는 생각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사람이 있고 내가 있다가, 사람도 없고 나도 없어 진다.
심지어는 시간·공간 천지만물 모두가 다 공(空)해지고 아미타 부처님께서
마치 내 몸에서 살아나 신 것 같다.
극락세계가 마치 이 순간[當下]인 것 같다. 나는 단지 '불법이 있다 면'
우리에게 '방법이 있어서' 사바세계에 정토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종교적인 체험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신심을 길러 주었다.
단지 모두들 불 법을 봉행하여 본래 구족된 불성을 개발하면
틀림없이 다함께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그래서 홍법포교의 생애 속에서 속상하고 억울한 일을 얼마 나 겪게 되더라도
나는 시종일관 신심이 꺾여 본 적이 없다.
어떠한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더라도 나는 홍법포교의 사명을 잊지 않았다.
40년 전, 대만에 건너온 초기에는 먹고 싶어도 먹을 것이 없고,
자고 싶어도 몸 뉘일 곳이 없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지금 불교는 퇴락하고 기독교가 성행하니 신앙을 바꾸면
혹시 살아가기가 쉬울 거라고 하였다.
나는 그 사람에게 설사 부처님이 나타나셔서 나더러 "신앙을 바꾸고 옷을 갈아 입어라!"라고
직접 말씀하셨더라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서 말해 주었다.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불교는 대만에서 유례없는 발전을 하였으며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유럽 미주지역 국가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불법이 있다면 방법이 있다.'를 말해 준다.
여러 해 동안 중국대륙과 대만이 분열되어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산가족이 되었고
나 자신도 그와 같은 처지다. 그 동안 감옥에 갇히는 수난과 모략의 고초도 겪었 다.
그러나 한 몸으로 공생(共生)한다는 이념을 가지고 스스로 나서서
평화교류 의 역할을 자처하고 묵묵히 노력하며 일구어 나갔다.
이렇게 민감한 문제에 손 을 대어서 고생할 필요가 있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통일화합에 대해서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걸림이 없었다.
《화엄경》에 '마음·부처·중생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心·佛·衆生, 等無差 別]'라고 하였다.
본래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무한한 보물단지가 감추어져 있다.
그 보물들은 우리들이 노력하여 캐내어 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
는 발심(發心)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1949년, 나 홀로 바다 건너 대만으로 왔는데 비록 머무를 곳은 없었지만
가는 절마다 공양주에서부터 편집일까지, 물긷는 일부터 마당을 돌보는 일까지,
심지 어는 쌀을 지어 나르고 해우소를 치우면서도 조금의 불평불만없이 소임을 다하 였다.
나는 이 봉사과정에서 더욱 많은 능력을 발굴해 낼 수 있었으며
게다가 사부대 중의 환영을 받았다. 또한 대중은 나의 발심을 칭찬하며
오랫동안 머물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혼탁한 시국에 인심이 흉흉한 어지러운
그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67년 불광산을 창건할 때이다. 나는 수시로 뜨거운 햇볕과 찬바람 속에서
벽돌을 찍고 돌을 쌓고 나무를 자르고 모래를 져 나르고 시멘트를 비볐다.
이를 본 제자들은 자진해서 도왔고 모두들 한마음으로 힘을 합치니 즐겁기 그지없었다.
제자들을 이끌고 일을 할 때에도 언제나 먼저 손을 걷고 나서서 일하였다.
몸으 로 직접 보이는 것으로서 열 마디 말로 하는 가르침을 대신하니 더욱 효과가 좋았다.
《삼귀의문(三歸依文)》에는 '승가에 귀의하며 중생은 대중에 귀의하며 중생은
대중을 이끌음에 모든 장애가 없기를 기원합니다
[自 依僧, 當願衆生, 統理大衆, 一切無 ]'라는 구절이 있다.
만약 우리들이 마음 속에 '불법(佛法)'을 간직하고
발심공헌할 수 있다면 남과 나 사이의 인간관계에서
단결과 화목·공경하는 '방법이 있게 된다.'고 하겠다.
정리/이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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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대사 업적
불광회원+삼귀의계 수지 불자=300만
세계 68개국에 120개 분원…국내 68곳
[창건 39년 불광산사는 지금]
불광산사 본원 금광명사 강의실에서 대만 불자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불광산사의 본산은 산문에 발을 들여놓는 불자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충격적이라고 할만하다.
20만평에 달하는 널따란 도량의 규모도 규모이지만 도량이 품고 있는 시설 또한 세계 대표 도량으로서 손색이 없다.
불광산사 본산에서는 수행자를 위한 교육에서부터 정진은 물론 세간의 일상 역시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그 시설과 기능이 다양하게 구족돼 있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낸다’는 불광산사의 제일 포교 방편인 불광위성TV의 프로그램 제작 스튜디오와 송출실 등이 경내에 자리잡고 있으며 청소년 1000여명을 위한 공교육 기관인 보문 중·고등학교가 산사의 입구에서 바라볼 때 우측에 위치해 있다. 불광위성TV는 성운 대사의 법문을 비롯한 스님들의 강의, 포교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제작해 불광산사의 분원이나 별원이 개설돼 있는 세계 26개국에 동시 방영하고 녹화방송의 경우 세계 68개국에 송출하고 있다. 1970년 문을 연 고아원인 대자육아원에는 현재 3세에서부터 대학원에 재학 중인 성인에 이르기까지 59명이 생활하고 있다. 개원 이후 이 곳에서 보호받고 교육받은 뒤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는 원생 수가 무려 650여명에 달한다.
수행자를 위한 교육 시설인 4년제 일반 강원은 재가자와 출가자가 함께 공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출가를 원하는 재가자의 경우 강원에서 정진하면서 출가 여부를 결정한다. 강원을 마친 수행자 중 외국어에 재능이 있는 학인들은 영어 전문 강원이나 일어 전문 강원에서 교육을 받은 뒤 해외 별원에서 실습을 하며 세계 각지에 불광의 정신과 성운 대사의 가르침을 홍포한다.
2006년 창건 40년을 맞는 불광산사의 해외 포교 성과는 기실 세계 그 어느 사찰과의 비교도 불허한다. 세계 68개국에 120개 분원이 문을 열어 포교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대만 국내의 분원 및 별원 수만도 68개이다. 세세생생(世世生生) 불자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불광산사에서 삼귀의계를 수지한 대만 불자는 200만명이며 ‘나와 이웃을 위해 자리이타행을 행하겠다’는 원력을 실천하고 있는 대만의 불광회원 만도 100만명이다.
불광산사 본산은 최근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한 대작 불사에 들어갔다. 2년 전 본산 뒤편 20만평에 ‘부처님 기념관’을 조성하기 위한 불사에 착공했다. 현재 5000대의 차량을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완공돼 있으며 본산 경내에 봉안 돼 있는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받들 기념관의 본당이 들어설 터를 닦아 놓은 상태이다.
스님과 불자를 더해 1300여 대중이 상주하면서 수행하고 산사를 방문하는 불자들을 친절한 미소로 맞이하는 불광산사 본산의 모습은 연못에 핀 연꽃처럼 자비로웠고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자란 나무의 기상을 꼭 닮은 듯 꼿꼿했다. 남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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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 늘 웃으니 도량이 친근해요”
생활불교 실천 위한 불광산사 아이디어
<사진설명>대만 불광산사 본산은 그 규모도 규모지만 내실 면에서도 세계 대표도량으로서 손색이 없다.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봉안돼 있는 법당에서 바라본 불광산사 본산 전경.
“부처가 되기 전 먼저 인간이 되라, 고로 수행자는 늘 불자들에게 친절해야 한다. 사찰은 불자들을 늘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정진해야 한다. 스님과 불자는 상하를 규정하고 구별하기 위한 관계가 아니라 상생의 관계이다.”
불광산사의 개산조인 성운 대사가 제자들에게 항상 이르는 가르침이다. 진리란 누구나 알기 는 쉬우나 그 실행이 어렵듯, 성운 대사의 가르침 역시 그러하다.
불광산사 본산이나 그 외 분원에서 만난 대만의 스님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불자들에게 대단히 친절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불광산사 스님들의 얼굴엔 늘 ‘스마일’이 배어 있었다. 그 이유를 한 대만 스님에게 물으니 “성운 대사가 ‘불자들에게 항상 친절하라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 속에서 인정받는 평범한 인간이 되라’고 이르셨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늘 환히 웃는 얼굴로 불자들을 대하는 대만 스님들의 얼굴에선 ‘생활불교’의 참 뜻을 엿 볼 수 있었다.
도량서 춤추고 노래…사경전 상설
불광산사가 새로운 건물을 신축할 때 가장 고려하는 대목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선 대개 사찰의 전체 불사 중 대웅전 불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대만 불광산사는 사찰을 건립할 때 어느 정도 대웅전 불사가 마무리되면 최대한 많은 강의실과 식당, 사찰을 방문한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숙소를 조성하는 데 주력한다. 대만의 타이페이시(市)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금광명사는 주5일제에 대비해 2003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문을 연 도량으로, 수련 및 회의, 휴식을 겸할 수 있는 시설이 완비돼 있다. 지상 5층에, 지하 1층 규모로 건립된 금광명사에는 30개의 강의실을 비롯한 300명이 함께 입실해 대담을 할 수 있는 대형 회의실, 10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의 대형 식당, 200대의 차량을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 등이 완비돼 있다. 2인 1실의 방사 50여 곳에는 우리나라의 호텔급에 버금가는 편의시설과 샤워 및 세면장이 별도로 정갈하게 마련돼 있다.
어! 사찰에 아미타 놀이동산이
불광산사의 도량은 참으로 다양한 기능을 구비하고 있어 ‘생활불교’란 말을 실감케 했다. 불광산사의 분원에는 우리나라의 선진 포교도량에서나 볼 수 있는 독서실이나 어린이 놀이방, 다실 등을 기본적으로 개설해 운영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문화 전시관을 비롯한 불자들이 만든 물품을 사고 팔 수 있는 불교 용품 판매점, 불자들과 지역 주민들을 위한 결혼관 등 다양한 기능의 공간이 눈에 띄었다.
가장 돋보인 공간은 셀프식 상설 사경전과 강의실이 지역 주민을 위한 복지, 교육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대목이었다. 금광명사 사경전에는 사경을 할 수 있는 붓과 먹, 벼루 등 사경 도구가 있어 사경을 하고 싶은 불자는 언제든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사경 시간은 불자들이 스스로 정해 결정한다. 불자들의 불심을 돈독하게 하고 자신의 발원을 다짐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사경전은 당장 우리나라의 사찰들이 그 아이디어를 빌어 활용해도 좋을 듯 하다.
금광명사의 강의실은 무용관이나 악기 연습실 등으로 이용되고 있어 사찰의 친근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불광산사를 탐방하면서 가장 특이한 시설을 꼽으라면 역시 아미타 신앙을 바탕으로 조성한 정토동굴이다. 불자들이 아미타 신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치한 정토동굴은 놀이동산을 연상케 한다.
부처님과 십대제자가 불자들을 이끌고 정토세상으로 향하는 대형 동산이 동굴 내에 설치돼 있으며 동굴 전체는 화려한 색상으로 장식해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자신의 현재 삶과 과거의 삶을 반성할 수 있는 공간과 불자들이 부처님 앞에서 “앞으로 이렇게 살겠다”는 발원을 할 수 있는 불단도 있다.
남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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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배출한 가정까지 돌보는 모습에 감동”
불광산사 탐방 포교분과위원장 지 현 스님
“대만에서 생활 불교의 진수를 보고 온 느낌입니다. 특히 스님들의 노후뿐만 아니라 수행자를 배출한 집안의 가정까지도 돌보는 책임지는 교단의 모습에서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한국 불교 불광산사 방문단과 함께 7월 19일부터 22일까지 대만의 불광산사 본산을 비롯한 타이페이 분원 금광명사(주지 영부 스님), 불광산사 타이페이 도량(영융 스님) 등을 차례로 탐방하고 돌아온 조계종 중앙종회 포교분과위원회 위원장 지현 스님은 “재일이나 특정한 날에만 절을 찾는 한국의 불자들과 달리 하루에 한번 반드시 절에 들러 기도하는 대만불자들의 깊은 신심에서 대만 불교의 힘을 느꼈다”며 “연령, 신행 경력, 직업 등에 따라 체계적으로 짜여진 자원봉사자 운영 시스템은 감명적이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특히 스님은 “이런 체계화된 자원봉사 시스템은 지역과 국가로 확장돼 대만의 복지와 사회를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출가수행자들의 복지를 완벽하게 책임지고 있는 대만불교의 노력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출가에서 열반까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복지 혜택이 사찰에서 제공될 뿐 아니라 필요한 물품에 대해서도 청구를 하면 언제든지 절에서 비용을 지불하는 등 무소유의 삶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출가수행자들의 가족들까지도 품에 안는 대만 불교의 복지 시스템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대만은 사찰마다 스님들의 부모를 모시기 위한 양로원이 따로 마련돼 있을뿐 아니라 살림이 넉넉지 못한 가정에 대해서는 사찰 차원에서 일정 금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출가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인 집안의 생계와 노후의 문제를 이렇게 말끔히 정리하고 있는 것이지요”
스님은 “갈수록 고령화되는 출가 연령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와 달리 대만 불교는 젊은 출가자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며 “불자들의 깊은 신심과 그물망처럼 촘촘한 승려 복지 시스템은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본받아야 할 좋은 모델”이라고 지적했다. 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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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100만 불자, 전국서 利他行…‘생활불교’ 실천
정부 구호보다 앞선 불광산사 義工의 힘
불자들이 원하는 신행 프로그램을 먼저 제시하고 불자들이 사찰에서 필요로 하는 시설을 먼저 설치하면서 ‘다가가는 불교’, ‘생활 불교’를 실천해 온 대만 불광산사는 창건 39년 만에 사격이나 내실 면에서 세계 대표 도량이라 이를 만큼 급성장했다. 「법보신문」은 7월 19일부터 22일까지 대만 불광산사의 개산조인 성운 대사의 초청으로 불광산사의 본산과 분원을 탐방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과 조계종 불광산사 방문단을 동행해 ‘생활불교’를 실천하고 있는 불광산사를 밀착, 취재했다. 편집자
매월 3300원 보시 ‘의무’
동네법회-경전모임 ‘견인’
재해현장 가장 먼저 ‘출동’
불광회원들은 대만 불광산사의 힘이다. 아미타 수인을 한 채 웃고 있는 불광회원들의 모습이 단아하고 아름답다.
대만 남부의 가오슝현에 위치한 불광산사(개산조 성운 대사)는 생활불교가 실현되고 있는 거대한 수행 공동체이자, 생활 공동체이다. 가히 불광(佛光)이 가진 본 뜻인 불국토라 이를만하다.
1000여명의 청소년들을 위한 보문중·고등학교를 비롯한 1970년 문을 연 대자육아원, 아미타 신앙을 주제로 한 신앙 놀이동산인 정토동굴, 영어와 일어 전문 강원, 재가와 출가자가 함께 공부하고 수행하는 강원 및 사경원,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봉안돼 있는 법당, 외국인 불자들을 위한 법계선원 등 불자들의 눈높이에 꼭 맞춘, 불자들이 자리이타행을 구족할 수 있는 법당과 요사가 20만평에 달하는 불광산사의 본산에 꽉 들어차 있다.
불광산사의 대중 수는 삼귀의계에 귀의한 불자에다 ‘이웃을 위한 이타행을 행하겠다’는 원력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불광회원을 더하면 300만 명을 웃돈다. 창건이후 반세기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불광산사가 대만을 넘어서 세계를 대표하는 도량으로 거듭 난 성공 노하우는 어디에 있을까.
대한불교 조계종의 불광산사 방문단은 주5일제에 대비한 전문도량인 불광산사의 금광명사와 타이페이 도량 그리고, 불광산사의 본산을 각각 둘러보았다. 세 사찰을 방문할 때마다 맞이한 이는 대만 전통의 단아한 복색을 차려입은 여성 불자들이었다. 이 여성 불자들은 아미타 수인을 한 채 두 손을 흔들면서 조계종 불광산사 방문단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방문단 일행이 식사를 할 땐 음식을 나르며 손님들이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고 사찰을 떠나는 손님들을 환송할 땐 사찰 입구에 두 줄로 나란히 서서 정성스런 마음으로 아미타 수인을 한 손을 흔들었다. 이들이 바로 대만 불광산사의 가장 든든한 후원 공동체이자, 불광산사의 생활불교를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는 의공(義工)들이다. 우리로 치자면 자원봉사자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불광산사의 의공은 불광회원을 일컫기도 하는 데 이들은 자신을 위해 수행하고 정진하고 법회에 참석하는 등 자리행(自利行)에 그치지 않고 이웃을 위해, 사회의 공익을 위해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해야 한다는 성운 대사의 가르침에 공감하는 불자들이다. 의공인 불광회원들의 의무는 매월 우리 돈으로 3300원(대만 돈 100원)을 보시해야 하며 불광산사에서 정하는 복식을 갖추어 입고 태풍으로 재해가 난 지역에서 봉사 활동을 하거나 지역 주민을 위한 보살행에 나서야 한다.
티끌모아 태산이라 했든가. 100만명의 풀뿌리 보시 운동은 현재 6000여명이 등록해 공부하고 있는 불광산사의 남화대학을 건립했다. 남화대학은 100만명의 불광산사 불자들이 매월 3300원씩 3년 동안 모금해 문을 열었으니, 십시일반의 보시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불광회원들은 또 불광산사의 지역 지부에서 주관하는 독서회나 경전 읽기 모임에 동참하면서 불광산사의 풀뿌리 포교를 견인하고 있기도 하다.
불광회원 수는 무려 100만명으로, 이들은 대만의 공적인 봉사 구호기구인 적십자사보다도 늘 먼저 재해나 사고 현장에 나타나 구호소를 설치한 뒤 이재민을 돕기로 이름나 있다. 지난 99년 대만을 강타한 대지진 당시에도 불광회원들의 활약은 대만 정부의 구호 손길을 부끄럽게 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풀뿌리 불광회원들의 발길과 손길이 정부보다 더 빠르고 더 따뜻했기 때문이다.
불광산사 성운 대사는 “생활불교란 불자들이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불광회원들은 사회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려 먼저 행해 생활불교를 실천하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불광산사를 지탱하고 불광산사의 미래를 여는 ‘원력 보살’이라 칭할 만 하다.
“불광산사는 주지 인사 어떻게 하나
우리 스님 계속해야 한다고 하는 일 없나”
법장 총무원장, 심정 스님에 주지 인사 꼼꼼히 물어
종단 주지 발령 때 잇단 반기-소송 고충 담아 질의
“대만 불광산사에서는 주지 스님의 임기가 끝났을 때 그 소임을 그만두라고 하면 어떻게 하는가? 행여 재가 불자들이 나서서 우리 스님이 주지 소임을 계속해야 한다고 하는 일은 없는가?”
대만과 한국 불교의 우호 및 두 나라 불교의 교류 증진을 위해 대만 불광산사의 도량을 순방 중인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대만 불교에 대해 어떠한 점이 궁금했을까.
7월 20일 불광산사의 타이페이 분원인 금광명사(주지 영부 스님)와 타이페이 도량(주지 영융 스님)을 각각 둘러 본 법장 스님은 이날 낮 12시 타이페이 도량이 주관해 마련한 점심 오찬 석상에서 국제불광회 총회장인 심정 스님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다. 그 幸?繭?다름 아닌 불광산사 산하 도량의 주지 자격과 주지 발령 등에 관한 것이었다. 심정 스님은 이에 “강원을 졸업한 후 2년간 도량에?? 실무 경험을 쌓은 뒤 불광산사의 포교당이나 도량에서 소임을 맡아 일을 보게 하다가, 개개인의 원력이나 자비심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주지 소임을 맡을 만한 그릇이 된다고 판단했을 때 비로소 기회를 준다”며 찬찬히 설명했다.
법장 스님은 심정 스님의 답변을 들은 뒤 다시 “주지 임기는 몇 년인가, 주지 발령에 대해 반발하는 일은 없는가”라며 질문을 이어갔다. 심정 스님은 “임기는 3년이며 지금까지 주지 스님이나 재가 불자들이 주지 발령에 대해 반기를 들거나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님이 계속 주지를 맡아야 한다고 한 적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법장 스님은 주지 발령에 관한 질문을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앞으로 이에 관한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질문이 이어지자, 심정 스님은 “불광산사의 중진 스님이 해당 사찰에 가서 성운 큰스님의 가르침과 그러한 일이 불교적인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할 것”이라며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심정 스님은 질문에 답변하면서도 심각하지 않은 일이라는 둥 활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스님은 여기에다 스님들이 개인적으로 제자를 두거나, 개인적으로 신도를 두는 일 역시 불광산사에서는 수행 공동체를 위해하는 행위로 보고 있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법장 스님의 주지 인사에 관한 질문의 배경에는 분명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아픔과 고충이 배어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알다시피 참여종단의 출범 이후 종단이나 교구본사의 말사 주지 인사에 대해 반기를 드는 일은 적지 않았을 뿐더러 이를 뒤집기 위해 법원에 무효 소송까지 제기하는 일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신도들을 동원해 완력을 행사하려는 일도 있었다. 최근 들어 종단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세간의 법원 역시 주지 인사에 관한 종단의 결정을 존중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기는 했으나 종단의 질서와 안정을 뒤흔든다는 비판에도 일부 종도들의 대응 소송은 계속되고 있다. 법장 스님이 심정 스님에게 여러 차례 주지 발령에 관해 질의를 한 것도 종단의 이러한 고충을 염두에 둔 듯하다.
법장 스님과 한국 불교 방문단은 20일 국제불광회 총회장인 심정 스님과 불광산사 스님들의 안내로 실천불교 또는 생활불교라고 일컬을 만큼 재가 불자들의 눈높이에 꼭 맞는 전법 활동과 대사회 보살행에 진력하고 있는 불광산사 타이페이 도량 내에 있는 불광산사 BLTV 방송 스튜디오와 문화 전시관, 법당 등 시설을 둘러보았다. 법장 스님은 한국 불교 방문단을 환영하기 위해 타이페이 도량에 모인 대만의 불자들에게 “여러분들의 고통을 모두 들고 갈 것이며 여러분들이 내게 고통을 선물로 준다면 고맙게 받아 갈 것”이라며 이웃을 위한 이타행의 실천을 강조했다.
한편 법장 스님과 한국 불교 방문단, 불광산사 스님 등은 이날 오후 6시 타이페이의 한 식당에서 주 대만 대표부 황용식 대사가 마련한 저녁 만찬에 동참했다. 황용식 대사는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불광산사 방문을 계기로 한국과 대만 불교가 교류의 폭을 크게 넓혀 서로의 장점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법장 스님은 이에 “한국의 수행불교와 대만의 생활불교가 만나 세계에 부처님의 자비와 행복을 전달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며 교류 확대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법장 스님은 만찬 석상에서 용주사와 쌍계사 등 사찰에서 대만으로 유학을 온 한국의 학인 스님들에게 격려금을 전달하면서 끊임없이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대만=남배현 기자
불교는 초비상입니다.
한국불교는 전법이 초비상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구구절절 말씀 안드려도 심각함을 인식하고 계실 것입니다.
한사람의 지도자가 만명을 만든다고 했듯이 불자라면
누구나 팔걷어 부치고 전법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부대중이 모두 힘을 합쳐 불교발전에 전념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보현행원으로 보리이루십시오..일 행 두손모음...()- 불자 모임 광장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